한 스님이 동산 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청산과 백운의 아버지입니까?”“빽빽히 우거지지 않은 자이다.” “무엇이 백운과 청산의 아이입니까?”“동서를 분별하지 않는 자이다.” “백운이 종일 의지한다 함은 무엇입니까?”“떠나지 못함이다.” “청산이 아무 것도 모른다 함은 무엇입니까?”“둘러보지 않는 것이다.”
황룡(黃龍)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함이 없고 일없는 사람도 금 사슬의 장애라 하니, 말해 보라. 무슨 허물이 있는가?” 선사가 말하였다.“한 글자가 공문(公門)에 들어오니, 아홉 마리 소가 당겨도 뽑히지 않느니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학인이 깨닫지 못하겠으니, 다시 방편을 베풀어주소서” 선사가 말하였다.“대유령(大庾嶺)에서 웃음이 다시 통곡이 되었느니라”
운문 스님이 조산 스님에게 물었다.“무엇이 사문의 행동입니까?” “절 밥 먹는 것이다.” “그렇게 해나가고 있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쌓아 모을 수도 있겠느냐?” “모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모으겠느냐?” “옷 입고 밥 먹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왜 털 쓰고 뿔 달린 축생이라고 말하지는 않는가?” 이에 운문 스님은 절을 올렸다.
동산 스님이 용산 스님을 찾아가 문안 드리니 용산 스님이 물었다.“이 산엔 길이 없는데 어디로 왔는가?”“스님은 어디로부터 들어오셨습니까?”“구름과 물을 따라 오지는 않았다.”“이 산에 머문 지 얼마입니까?”“세월은 신경 쓰지 않는다.”“스님과 산 중 누가 먼저 있었습니까?”“모른다.”“어찌 모르십니까?”“나는 인간, 천상으로부터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어떤 도리를 얻으셨기에 이 산에 안주하십니까?”“진흙소 두 마리가 싸우면서 바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지금껏 소식이 없다.”이에 동산 스님은 몸가짐을 가다듬고 절을 올렸다.
낭야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여기서 성(城) 안의 7리(里)니라.” 스님이 다시 물었다. “학인이 잘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절대로 강에 내려가서 목욕을 해서는 안 되느니라.”
광덕 스님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어떤 것이 영리한 사람입니까?” 광덕 선사가 대답했다.“유마가 방장을 떠나지 않은 줄을 문수는 도착 전에 알았다.” 스님이 또 한 번 물었다.“어떤 것이 영리한 사람입니까?” 선사가 이에 답했다.“때에 찌든 저고리를 비누로 빠느니라.” 스님이 다시 물었다.“어떤 것이 영리한 사람입니까?” 선사가 말했다.“오래된 무덤의 독사가 머리에 뿔이 돋았느니라.”
자명 스님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9년 동안 벽을 향해 앉은 뜻이 무엇입니까?”“풍년인데 소득이 없다.” “9년 동안 벽을 향해 앉은 뜻이 무엇입니까?”“서천(도인) 사람이 중국 말을 몰랐다.” “9년 동안 벽을 향해 앉은 뜻이 무엇입니까?”“추워도 덮은 이불이 없다.” ※같은 물음에 세 번 답을 하고 있다. 세 구절을 연이어 든 이유가 있으니 1구(句 )에 모두 3구(句)가 들어 있다는 의미를 갖는 법거량이다.
보자 스님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정이 생기면 지혜가 막히고, 생각(思)이 변하면 본체가 달라진다 했습니다. 정이 나기 전에는 어떠합니까?” 이에 보자 선사가 말했다.“막혔다.”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정이 생기지도 않았는데 무엇이 막힙니까?” 이에 보자 선사가 한마디 더 던졌다.“그대는 아직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 정이 생기면 지혜가 막히고…: 망정(妄情)이 생기기 전의 모습을 알고자 한 말에 “막혔다”함은 지혜가 막혔다는 의미.
양산 스님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집안 도적을 막기 어려울 때 어떠합니까?”“알면 원수가 되지 않는다.”“안 뒤엔 어떠합니까?”“무생국(無生國)으로 내쫓는다.”“그의 몸과 마음을 편안히 둘 곳이 아니겠습니까?”“죽은 물에는 용이 숨지 않는다.”“어떤 것이 산 물의 용입니까?”“구름은 일으켜도 안개는 뿜지 못한다.”“갑자기 못을 터뜨리고 산을 무너뜨릴 때엔 어떠합니까?” 이에 앙산 선사사 승상(繩床)에서 내려와 거머쥐고는 말했다. “노승의 가사를 적시지 말라.”
광덕 스님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경전에 아일다는 번뇌를 끊지 못하고 선정을 닦지 않았으되 부처님께서는 그가 틀림없이 성불할 것이라고 수기하셨다고 합니다. 이 이치가 무엇입니까?” “소금이 다하고 숯도 다했다.” “소금이 다하고 숯이 없을 때는 어떠합니까?” “근심하는 사람은 근심 있는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 그에게 근심을 말하면 그를 더욱 근심하게 할 뿐이니라.” ※“소금이 다하고…” 청빈해서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소금’은 번뇌에 비유한 것.※‘숯’은 선정에 비유한 것.
선소 선사가 수산 선사에게 물었다.“백장(百丈)이 자리를 걷은 뜻이 무엇입니까?“용수(곤룡포 소매)를 흔들어 여니 전체가 나타난다.” “스님의 뜻은 어떠합니까?”“코끼리 다니는 곳에 여우의 자취가 끊겼느니라.” 선소 선사가 이 말에 깨닫고 일어나 절을 하고 말했다.“만고에 푸르른 못, 허공의 달을 두세 번 건져 보고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 71명의 선지식(五位門風)을 만난 선소 선사가 임제 문하에 특이한 경지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으며 수산선사를 만나 나눴던 법거량.
봉상부 천개유 선사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절이하나 있는데 무구정광화욕실(無垢淨光化浴室)이라 합니다.” 이 때 누군가가 그 스님에게 물었다.“이미 무구정광(때 없는 청정한 광명)이라면 어째서 욕실을 지어놓았는가?” 그 스님이 말이 없자 천개유 선사가 일렀다.“삼추의 달 밝은 밤에 달려가 둥글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삼추의 달…: 비록 본래 있었으나 반드시 신훈(新熏)을 의지해야 하니 본래 때가 없어도 씻으면 더욱 가벼워진다는 의미.
봉선심 선사와 청량명 선사가 함께 어부 그물에서 잉어가 한 마리 뛰어 넘는 것을 보고 있었다. 봉선심 선사가 말했다.“명(明) 형이여. 날쌔군요. 마치 납승과 같습니다.” 청량명 선사가 답했다.“그렇지만 애초 그물에 걸리지 않은 것만 하겠습니까?” 봉선심 선사가 다시 말했다“그대는 깨달음이 모자랍니다.”이 말을 들은 청량명 선사는 밤에 비로소 깨달았다. ※ 날쌔군요.(俊哉): 방편의 그물을 빌리되 빌리지 않기 때문.※ “그렇지만 애초 그물에…”: 본분만을 지키려 하고 있다.
수(修) 산주(山主)가 한 스님에게 물었다.“어디서 왔는가?”“취암에서 왔습니다.”“취암이 무엇이라 하던가?”“‘문 밖에 나서면 미륵을 만나고 문 안에 들어서면 석가를 본다’했습니다.”“그리 말해서 되겠는가? 문을 나서면 누구를 만나며, 문에 들어서면 무엇을 보겠는가?”이에 그 스님이 깨달았다. ※‘문 밖에 나서면 미륵을 만나고…’: 찰나찰나 석가가 세상에 나오시고 걸음걸음에 미륵이 하생하시니 어디서인들 만나지 못하랴 하는 경지.※‘문을 나서면…’: 어디서 찾느냐? 하는 뜻.
나산도한 선사가 처음에 석상 선사를 만나 물었다.“일어나고 멸함이 멈추지 않을 때 어떠합니까?”“식은 재나 마른 나무같이 하고, 한 생각 만년 가도록 하고, 함과 뚜껑이 맞듯 하고, 맑은 하늘에 티가 없는 것 같이 하라.”나산도한 서사가 깨닫지 못하고 다시 암두 선사에게 가서 다시 물었다.“일어나고 멸함이 멈추지 않을 때 어떠합니까?”“누가 일어났다 멸했다 하는가?”이에 선사가 깨달았다. ※‘일어나고 멸함이 멈추지 않을 때…’: 중생의 망념이 끊이지 않는다는 의미.‘식은 재’는 적멸 경지이고 ‘한 생각 만년…’은 변하지도 흔들리지도 않는 경지.
남원 스님이 상당해 말했다. “재방에서는 안에서 쪼는 것과 밖에서 쪼는 것을 동시에 하는 안목만을 갖췄고 안팎에서 동시에 쪼는 작용은 갖추지 못했다.” 이에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안팎에서 쪼는 과정입니까?”“작가는 안팎에서 쪼기를 하지 않아 안팎에서 쪼음을 동시에 잃느니라.”“여전히 제가 물은 경지가 아닙니다.”“그대가 물은 경자란 무엇인가?”“잃었습니다.” 이에 선사가 그 스님을 때렸다.
양산연관 선사에게 대양연이 물었다.“어떤 것이 형상 없는 도량입니까?” 선사가 관음상을 가리키며 말했다.“이는 오 거사의 그림이다.” 대양연이 입을 열려 하자 선사가 곧바로 물었다.“이것은 형상이 있다. 어떤 것이 형상 없는가?” 이에 대양연이 깨닫는 바가 있어 절을 올리자 선사가 다시 물었다.“어째서 한마디 이르지 않는가”“말하기는 사양치 않으나 종이와 먹에 오를까 걱정입니다.”“이 말이 돌에 새겨질 것이다. ※ 오 거사 : 오도현(吳道玄). 관음을 잘 그리던 당대(唐代) 화가.
형주 육왕산 홍통선사에게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온몸이 닷 푼의 값어치도 되지 않는다.” “너무 가난하십니다.” “옛날에도 그러했다.” “어떻게 살림을 하십니까?” “집안 형편에 따라 다르다.” ※ 닷 푼의 돈 : 오위(五位)를 뜻한다.※ 온 몸이…값어치도 되지 않는다. : 철저히 가진 것 없는 청빈한 가풍.
민왕(王)이 약사도량을 새로 지어 여러 장로들에게 정진 염불을 해달라고 간청했다. 나산 선사도 이에 초청돼 자리를 함께 했지만 단정히 앉아만 있었다. 이에 고산 스님이 말했다. “대왕이 도량을 청했거늘 어찌 정진해서 인연을 맺지 않는가?”“대사는 몇 번이나 읽었는가?”“마흔아홉 차례 읽었소.”“다시 한 가지 읽을 것이 있는데 어찌 대왕과 인연을 맺는 않는가?” 이에 고산이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 단정히 앉았다 : ‘반야다라’가 잠자코 단정히 앉은 것과 같다.
고산 스님이 시중해 말했다.“만약 이 일을 이야기하자면 마치 한 자루의 검과 같다.” 한 스님이 물었다.“화상께서 ‘만약 이 일을 이야기하자면 마치 한 자루의 검과 같다’고 하셨는데, 화상께서도 죽은 송장이요 학인도 죽은 송장이니, 어떤 것이 검입니까?”“이 송장을 끌어내라.” 그러자 스님이 “예”하고는 떠났다. 저녁이 되자 고산 스님이 수좌 스님에게 물었다.“아까 질문한 스님은 어디에 있는가?”“그 즉시 떠났습니다.”“스무 방망이를 때려 주었어야 좋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