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拂子)가 놓여있다. 모습은 올곧고 빛깔은 영롱하다. 검게 칠한 표면에 상감한 은(銀)과 나전(螺鈿)이 하나의 문양을 이룬다. 얇은 자개와 대모가 만들어낸 국화당초문(菊花唐草紋)이다. 국화와 넝쿨무늬는 섬세한 은선 안에서 빛을 발한다. 자개의 총천연색은 색의 향연을 불러일으키고, 대모에 배채된 붉은빛이 향연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은은하게 드러난 빛의 여운은 이내 불자를 감싼다.대한민국 불교미술대전에서 선보인 김종수의 불자다. 불자란 무엇인가? 별명이 불주(拂麈), 불진(拂塵)이다. 주미(麈尾)라고도 부
봄 매화를 보기 위해 선운사로 간다. 뼛속 사무치는 추위를 이겨낸 향기 따라, 어린 민초의 삶을 돌아보고, 고통에 대한 아픔을 생각한다, 우리는 어떻게 역사 속에 동참하고 있는가, 수많은 선재 선재들이여, 작가 박은신에게 있어 꽃은 수행자의 마음이다.서양화 전공에도 동양화 관심현대불화 열망하는 작가에게새로운 모색의 모범답안 제시부친이 한때 신부를 지망할 정도로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었으나, 성장하면서 차츰 과학이나 천문학 등 철학적 사유와 잘 어울리는 불교에 빠져들게 되었다. 작품 주제의 관념적인 경향에 대해 작가는 미술사를 공부하면
한국화 채색화에 있어서 전통을 이야기할 때 고려불화의 기법은 종교적 의미를 떠나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유교철학을 기본으로 하는 조선시대에도 고려불화의 화려함과 전통 채색화의 우수한 미감은 궁중의 기록화로도 그 맥을 이어나갔지만 불화기법을 통해 많은 부분이 계승되었다. 정해진 작가는 한국화의 민화기법과 불화기법을 연구하고 계승하고 있지만 이에 머물지 않고 동시대의 언어로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험과 모색을 끊임없이 이어나가고 있는 작가이다. 전통 채색화의 기법은 섬세하기도 하지만 그림을 그려 나가는 순서와 절차를 단계별로
캔버스의 바탕에 부처가 그려진다. 이내 붉은색이 감싸고 푸른 먹이 뒤덮는다. 붉은색은 부처의 가사와 생성을, 푸른빛을 띤 검은 먹은 부처의 열반과 소멸을 상징한다.캔버스 바탕에 그려진 부처붉은색 감싸고 먹으로 덮어생성과 열반·소멸 상징하다그의 작품은 현묘하다. 아득하고 미묘하다. 그 이면을 헤아릴 수 없다. 시선은 검은 작품으로 향했다. 캔버스 위로 먹이 가득하다. 먹빛은 검고 푸르다. 그리고 붉다. 살펴보니 색이 뒤섞여 있다. 시선은 다시 옆으로 이동한다. 옆 작품처럼 검푸르고 붉다. 화면의 오른쪽 테두리에 캔버스의 미색이 보인다
김일중의 그림은 진실과 거짓의 행간 사이를 이미지화한 것이다. 절실한 것일수록 어쩌면 불가피하게 화려한 법. 지금 사는 세속의 세상(거짓)에서 정토의 세계(진실)로의 진입을 위해 끊임없이 소통하지만 왠지 만족할 수 없는 불완전함이란, 강렬하고 허망하다. 그럴수록 거짓과의 어울림은 불가분의 관계다. 그 흐름을 거스르기에는 불가역(不可逆), 역부족이다.빛을 투과하고 반사시키는자개 특성 적극적으로 활용파편 인연들 모아서 대상화원래는 입체 조각을 전공했었다. 사실적인 조각 공부를 위해 영화 제작의 소품인 실리콘 사체 모형 일도 해보았지만,
도심의 한 복판에서 가끔 새로운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면 가까운 곳에 아름다운 자연풍경도 많다. 특히 광화문에서 사방을 넓은 시각으로 둘러보면 인왕산과 북악산이 눈에 들어온다. 갤러리, 미술관이 많은 평창동만 가도 사방에 아름다운 산이 둘러 쳐져있어 익숙한 눈으로 가까운 데만 봤을 때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여러 계절의 다양한 인왕산현대 소재로 산수화에 담아시대상 반영한 개성적 표현얼마 전 끝난 조풍류 작가의 ‘이산 저산 서울 한 바퀴’ 개인전에서는 그런 의미에서 가까이에서 발견하지 못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누군가에게 시간은 더디게 흘러간다. 혹여 시간이 멈춘 것일 수도 있다. 앉아 있는 몸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시선은 손끝으로 향해있다. 이 적막한 공간 안에서 작가의 숨소리만 들렸고 천천히 움직이는 붓 끝만 보였다. 이내 붓을 멈추고 몸을 일으켜 그림을 지그시 바라본다. 그리고 그는 다시 자신만의 공간에 발을 들였다.시간의 흐름서 빗겨서만물의 본질을 통찰해섬세한 도상으로 표현누군가에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그 속도에 묻혀 시간과 자신을 망각한다. 1초, 1분, 1시간…. 얼마나 지났는지도 알 수 없는 시간 속에
텅 빈 무채색의 공허함 속에 오래된 강렬한 원색의 표현이 도상화 되어 시간을 거스르는 듯한 잔잔함을 보여주는 것이 현승조의 불화다. 중앙의 반가부좌를 한 미륵보살은 여유로운 자태의 당당한 풍미로 묘사되었고, 오래 묵은 황토빛깔과 대비되는 차분한 단색의 명징한 배경으로 구성지었다. 그림은 어느 사원의 실제 불상 같기도 하고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도상화된 형상 같기도 한 여러 중층 의미망을 지닌 다소 아이러니한 장면이다. 무채색 공허함 속 원색의 강렬함유려한 선묘·차분한 색면 대응해인드라망의 추상적 형식에 접근은은한 미소를 띠고 반쯤
그는 도예가다. 도예가는 흙과 함께 살아간다. 흙은 퇴적된 물질이다. 자연 그대로 두면 식물이 뿌리 내리고 자라게 하고, 사람의 손을 거치면 하나의 조형물로 만들어진다. 그것은 도자(陶磁)라 불리며 쓰이거나 감상된다. 도자를 빚어내는 작가를 도예가라 부른다. 도예가에게 흙은 선(禪)의 화두이고, 도자는 화두에 대한 하나의 깨우침이다. 하나의 깨우침을 보여주기 위해 수백 번, 수천 번의 손맛을 담아내는 일생이 도예가의 숙명이다.흙은 ‘화두’ 도자는 ‘깨우침’무심코 두드린 죽구의 흔적형태 벗어난 요체로 재탄생지천명에 이른 도예가. 그와
몸으로 하는 말. 요즘은 허공을 떠다니는 말들을 들으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이고, 어디까지 진정성을 갖고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스러울 때가 많다. 복잡한 생각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이성적, 감성적 판단을 거쳐 나오는 표현이 말이기에 때로는 진실이 왜곡되거나 내 마음과는 다른 표현이 툭 나가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그래서 말로 하는 언어가 아니라 몸으로, 얼굴 표정을 통해 마음으로 느끼는 그대로가 더 진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각기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삶의 기록 담긴 몸으로 표현라이프캐스팅으로 무게 덜어우리 미술
공예는 회화나 조각과 달리 조형예술이면서도 그 쓰임새가 작품에 그치지 않고 일상에서 사용 가능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공예 중에서도 도예는 물, 흙, 불에다가 사람의 손길과 기계적 공정을 거쳐 천연의 질감을 가진 독특한 단단함으로 조형의 공간미를 차지하는 특징이 있다.사찰 꽃살문, 분청 도자로세월에 바라지않는 경건함불교디자인의 새로운 발견도예라는 기물(器物)의 점토에 여러 색을 입힌 꽃살문 장식에 주목하고자 한다. 꽃살문은 불교가 황폐해지던 조선시대에 꽃을 피워낸 소박한 민초들의 정서가 오롯이 담겨있다고 하겠다. 고려불교의
하루가 다르게 맑고 높아져 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길고 지루했던 여름을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한다. 얼마 전 그 더위의 끝 무렵 유근택 작가의 개인전을 만났다. 2014년 조계사 근처 미술관에서 본 개인전 이후 3년 만이다. 전시장은 3개의 주제로 구성되었다. ‘도서관’ ‘산책’ ‘방’ 시리즈이다. 도서관 시리즈 작품들은 대작들이었는데, 단색화의 질감이 고요한 느낌을 준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것은 두꺼운 물감의 물질성이라기보다는 겹겹이 쌓아올려진 한지와 호분, 먹으로 이루어진 화면이다. 전통회화에서 시작된 작품풍경시리즈로 자신 내
‘바람 자니 해맑게 물결도 없어/ 눈에 뵈는 형상들 빼곡도 하다./ 어이 굳이 많은 말 기다리리오./ 그저 봐도 뜻이 이미 넉넉한 것을.’ ‘우리 선시 삼백수’ 중에서.연꽃 향 가득한 7월의 연못작품 속에 시 한 구절 투영공존하는 생명 그리며 관조선시(禪詩) 한 수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무의혜심(無衣慧諶, 1178~1234)이 지은 ‘소지(小池·작은 못)’라는 시다. 나지막이 읊조린 선시의 여운이 가지 않은 채 작가는 말을 이어나갔다. 맑은 물에 비추는 형상은 무엇이던가. 한 그루의 버드나무인가, 푸른 하늘을 날고 있는 새인가,
현대인들에게는 인격화된 붓다라는 전통적 도상보다는 붓다의 철학을 시각화하여 보여주는 것이 오숙진 작가의 작업이다. 그의 작업은 회화라기보다는 소묘, 드로잉에 가깝다. 안료 물감으로 색채를 입히는 대신, 염료 잉크로 무수히 그은 선들이 다소 추상적인 검은색이다. 검은색의 명료함이라서 가볍지 않고 고요하고 반성적인 감흥이다. 본질은 변한다는 무상 진리기존의 만다라 형태 벗어나검은색의 열린 구조로 표현오숙진 작가에 따르면 인도 북동부 다르질링의 티베트 불교사원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 마침 사원 내부에 울긋불긋한 형태의 불교 도상으로 장식
애완동물에서 반려동물이라는 말로 바뀔 만큼 최근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과 이야기가 뜨겁다. 생명에 대한 관심과 존중이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의 삶에 그만큼 깊숙이 들어와 어떤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있을까. 불가에서는 미물 하나에도 존재의 의미가 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큰 의미에서 생명체에 대한 신비한 섭리는 아직 나에겐 끊임없는 물음표이다.개는 동료이자 친구같은 존재내면에 공존하는 이종의 의미상대입장서 보면 가치는 동일박장호 작가의 작품에는 사람들이 반려동물 1순위로 여기는 개가 등장
파리하게 머리 깎은 스님 한 분이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설법을 하고 있는 대상에 머무른다. 보이지 않는 대상, 그는 석가모니이다. 이 작품은 부처님의 일생을 담은 불전도(佛傳圖) 중 중생에게 설법하는 장면으로 짐작된다. 키질 석굴 푸른빛에 매료고증 통해 현상까지 담아이 작품은 쿠차의 키질 석굴 제219호굴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벽화의 한 장면을 옮겨 그린 작품이다. 쿠차는 중국 돈황을 벗어나 비단길이 펼쳐진 타클라마칸 사막 북쪽에 위치한 고대 불교 왕국 구자(亀茲)를 말한다. 쿠차에 조성된 키질 석굴사원
최근 한 뉴스에서 백제 의자왕 시절 입었던 옻칠 갑옷 전시 소식을 들었다. 옻칠 갑옷은 당시 철갑옷에 비해 무게가 가벼운데다, 햇빛 아래에서 반짝이는 효과가 있어 군사의 위용을 높여주는데 효과적이었을 것이라고 전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옻은 수천 년 전부터 공예나 약용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오죽하면 색칠을 하거나 바를 때의 표현과 칠흑 같다는 말 또한 검은 빛의 옻칠에서 유래되어 전승되어 왔을까. 이런 사실을 이웃해서 현대 옻칠 회화 작가인 정상엽의 열정을 큰 틀의 문화적인 맥락으로 읽어낸다면, 동양다움의 표현 형식으로 옻칠이 이 시
푸른색의 국화 꽃잎은 여느 꽃과는 달랐다. 그냥 꽃을 그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좀 더 들여다보았다. 작가는 무엇을 표현하려고 한 것일까. 정물화에서의 흰 백자에 담긴 노란 소국이나, 문인화에서의 사군자 중 하나로 그려진 것이 아니고서는 여류화가들의 작품에선 별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80년대 학번, 혹은 90년대 초까지 동양화과 대학입시에 국화가 자주 등장했기에 작품의 소재로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하늘로 날아가 버릴 듯한 형상불에 태워 사라짐 아쉬움 표현문인화의 한 소재로 소박한 모습과 달리 찬
사문 싯다르타가 마가다국 라자가하(王舍城) 근방 네란자라(尼連禪) 강기슭에 있는 핍팔라(pippala) 나무 밑에 정각한지 어느 날. 음력 12월8일, 미혹(迷惑)으로부터 진리를 찾았다. 성도(成道)의 진리, 바로 ‘연기(緣起)’다. 이때 법열 가득한 말씀은 ‘자설경(自說經)’의 ‘보리품(菩提品)’에 전한다. 스미소니언 방문 중 불화 흥미부처님 가르침 끊임없이 고민연기의 의미 대좌를 통해 표현‘일구월심 사유하던 수행자에게 모든 존재가 밝혀진 그날, 그의 의혹은 씻은 듯 사라졌다. 연기의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말씀은 게송이 되고
서울 조계사 부근 한 미술관에서 1층부터 3층까지 전관을 ‘기억의 간격’이라는 주제로 가득 채운 작품을 보았다. 그중에서 불화(佛畵) 도상을 차용한 ‘열반도’와 ‘반야용선도’ 등의 몇 작품으로 작가의 ‘기억’이라는 주제와 연관되어 눈길을 사로잡았다. 불교라는 전통의 도상 안에서회귀·윤회하는 기억의 조각들기억은 지금의 적나라한 현실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는 그간 전통 수묵화를 이 시대의 다양한 기법으로 그려내면서 주로 한지에 얼룩진 흔적이 퍼지는 자연스러운 추상성을 견지하는데, 화면의 곳곳 여백에 세밀하게 그려 넣은 작은 인물들을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