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0칙: 염불한 공덕을 일체중생을 위해 회향하라.사람의 일생은 사사건건 거짓으로 꾸밀 수 있지만, 죽음에 임할 때는 거짓으로 꾸밀 수 없거늘 하물며 모친께서 임종시 애착의 정이 없이 기쁜 안색으로 편안히 앉아 돌아가심이겠는가. 만약 정업이 무르익지 않았다면 어찌 이러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형제와 가족들이 진지하게 모친을 위해 염불하기만 하면 모친을 이롭게 할 뿐만 아니라 실로 자신이 염불한 공덕보다 훨씬 더 크다. 부처님께서 그래서 독경하거나 주문을 외거나 염불하여 갖가지 공덕을 지어서 모두 법계중생을 위해 회향하라고
제192칙: 병에 걸리면 아가타약을 복용하여야 한다.보통사람은 병에 걸리면 약으로 치료할 수도 있지만, 반드시 약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약으로 치료할 수 없는 경우 불로장생약도 아무런 소용이 없으니 하물며 세간의 약이랴. 치료할 수 있는 병이든 치료할 수 없는 병이든 모두 아가타약을 복용하여야 한다. 이 약은 복용하면 몸이든 마음이든 곧 효과를 보게 된다. 그러나 세상에서 오래 살든 잠시 살든 끝내 모두 죽는다. 죽는 것은 애석하지 않지만 사후에 돌아가는 곳이야 말로 가장 중요하거늘 어찌 잘 자리 잡을지 예상할 수 있겠는가? 역량
제186칙: 부처님의 자비 위신력에 기대어 생사를 벗어나라.우리가 생사윤회하면서 오랜 겁이 지나는 동안 지은 악업은 무량무변하다. 만약 자신이 수행한 힘에 의지해 번뇌혹업을 다 없애 생사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그것은 실로 하늘에 오르는 만큼 어렵다. 만약 부처님께서 설하신 정토법문을 할 수 있다면 진실한 믿음과 간절한 발원으로 아미타부처님 명호를 염하여 극락에 태어나길 구하면 업력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모두 부처님의 자비 위신력에 기대어 서방극락에 왕생할 수 있다. 자력에 기대어 생사를 벗어나려면 비유컨대 모래 한 알도 물에 들어가면
제178칙: 정토법문을 닦으면 크게 행복할 수 있다. 고인이 말하길, “삶과 죽음은 또한 큰일이니, 어찌 슬프지 않는가?” 삼가 말하자면 헛되이 슬퍼만 한다고 구경에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삶과 죽음은 큰일이니, 믿고 발원하여 염불함은 큰 법문인줄 알아야 한다. 이미 죽음이 슬픈 일임을 안 이상, 응당 죽기 전에 큰 법문을 닦는다면 죽음은 슬프지 않을 뿐만 아니라 크게 행복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업(淨業)이 무르익으면 부처님의 자비력에 기대어 직하에 서방 극락세계에 왕생하고 범부를 뛰어넘어 성인에 들어가 삶을 마치고 죽음을 벗어나
제173칙: 이번 생에 정진 노력하여 여래의 본성을 증득하라.전생에 혜근(慧根)을 키우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았다. 만약 이러한 기초 위에 정진 노력하지 않으면서 여래의 본성을 직접 증득하길 기대하면 질그릇을 아직 굽지 않았는데, 비가 내려 흩어져 버리는 것과 같다. 세월은 촉박하고 수명은 얼마이던가? 한 번 숨을 쉬지 못하면 다음 세상에 속한다. 도를 증득하지 못한 사람은 깨달음에서 미혹으로 들어가는 경우는 수만 명에 수만 명이 있고, 깨달음에서 깨달음을 늘리는 경우는 수억 명에 한두 명도 없다. 어떻게 위없는 법기의 아직 굽지
제165칙: 믿음과 발원이 견고하면 극락정토의 연못에 들어간다.수신하지 않고 염불하여도 이익이 있겠지만, 왕생할지 여부는 백 천만 중의 하나를 얻기 어렵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지극히 공손하면 그것이 행운인 점이다. 당신이 지은 두 마디 말은 비록 옳다할지라도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 마땅히 고쳐서 “지혜로 번뇌와 음욕을 끊고 고해를 뛰어 넘겠다. 굳은 믿음과 발원을 세우면 극락정토의 연못에 들어간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확실하다. 공부하는 법칙은 모두 이 두 마디 속에 들어있다. 제166칙: 부처님 명호는 팔식의 밭에서 영원히
제156칙: 자기 본분을 다하라.다른 사람은 수행을 가르칠 때 현묘한 부분에 진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는 자기 본분을 다하도록 지휘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 본분을 다할 수 없으면 설사 참선과 교학을 하나하나 근원을 철저하게 궁구할지라도 삼세부처님의 원수가 될 뿐이니, 하물며 근원을 철저하게 궁구함이 없는 일이겠는가.제157칙: 일심으로 염불하라.피를 뽑아서 사경하는 일을 잠시 시도하는 것을 늦추고 우선 일심으로 염불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라. 아마 피가 줄어들고 정신이 쇠약해져 오히려 수행의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 몸이 건강
제150칙: 일심불란이면 감통이고 감통이면 마음은 정일하다.폐관(閉關) 중 공력을 들임에 응당 전일(專一)과 정일(精一)이 둘 아님을 위주로 한다. 전심(專心)으로 마음이 귀일(歸一)하면 저절로 불가사의한 감통(感通)이 있고, 귀일하지 못한 이전에는 조급하게 망심(妄心)으로 먼저 감통을 구해서는 안 된다. 일심 후에는 반드시 감통이 있게 되고, 감통이면 곧 마음은 한층 더 정일하다. 이른바 맑은 거울이 경대에 놓여 있으면 만나는 형상마다 모두 거울에 비치어 형형색색 어지럽게 분분한 것들이 그것에서 나오는데 나와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제143칙: 16관중 한 법을 관하면서 다른 관도 원만히 관할 수 있다. 작관(作觀)할 때는 자신이 가장 잘 득력하는 연습만 취하는데, 구태여 처음부터 끝까지 매일 거듭 연습할 필요가 있겠는가? 부처님께서 16관을 설하실 때 앞쪽에서는 극락세계의 장엄을 뒤쪽에서는 구품왕생을 알려주고, 그리고 닦은 것의 인과를 알려준다. 각각의 관을 이미 알고 있는 이상, 부처님의 한 법을 관하는 가운데 다른 관도 원만히 관할 수 있다.제144칙: 이 마음 그대로 부처를 지어서 이 마음 그대로 부처이다.‘관무량수경’에서 말씀하시길 “시심작불(是心作佛
제137칙: 충심을 간직하여 자기 본분을 다하라. “충(忠)”, 이 글자의 함의는 일체 행위를 꿰뚫는다. 충심을 간직하면 부모에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가족과 화목하고 친구와 신의를 지키며, 고아를 불쌍히 여기고 난민을 구호하며, 인민을 사랑하고 물건을 아끼며, 악을 짓지 않고 선을 받들어 행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충심이 있으면 속이지 않고 속이지 않으면 자기 본분을 다하며, 본분을 다하면 자기 본분에 속하는 일을 스스로 실행하기에 힘쓸 것이다. 겉으로 대충대충 하면서 실제로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눈속임은 결코 없을 것이다.
제131칙 : 홀로 있을 때 삼가하며 모든 것에 부끄러워할 줄 알라.소인이 선한 일을 하면서 실제로는 악한 일을 하는 연유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세간의 범부라 실상을 모를 뿐이다. 만약 득도한 성인이라면 또렷이 전부 안다. 천지귀신은 비록 득도하지 않았을지라도 과보로 타심통을 얻어 그들도 또렷이 전부 알거늘, 하물며 성문과 연각, 보살과 제불께서 타심통과 혜안이 있어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보듯 삼세를 원만히 봄이겠는가? 그래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길 바라나, 오직 자신만 모를 뿐이다
제126칙 : 색욕으로 몸을 훼손하지 않도록 두려워하고 조심하라.총명한 사람이 가장 용이한 것은 바로 색욕이다. 그래서 경외하는 마음을 항상 잘 유지하여 그릇된 생각의 싹이 조금도 자라나서는 안 된다. 만약 우연히 이러한 생각이 생긴다면 천지귀신, 제불보살이 우리의 일거일동을 모두 알고 모두 보지 않음이 없다고 생각하여야 한다. 사람 앞에서 감히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지 못하거늘, 하물며 불보살께서 보고 있는 삼엄한 곳에서 감히 그릇되고 비천한 생각을 간직하고, 그릇되고 비천한 일을 하겠는가?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누구를 섬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