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중심이 어디인가? 하고 물어보면 사람들은 ‘뇌다, 혹은 심장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실제 몸의 중심은 그때그때 아픈 곳입니다. 발가락 하나를 다쳐도 사람은 그곳을 치료하기 위해서 온몸과 마음으로 정성을 기울입니다. 그렇듯이 공동체의 중심도 아픈 사람, 고통스러운 사람입니다.”(‘붓다, 중도로 살다’) 아픈 곳이 중심이라 하며 세상의 아픈 곳을 향하여 그 상처를 어루만져 생명을 움트게 하고 권력구조를 벗어난 공동체를 이 땅에 심어내고자 인생 화두를 간직하며 실존의 칼날 위를 중도로 균형 잡으며 걸어가는 스님이 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국민 멘토는 단연 법륜(法輪)스님일 것이다. 그의 즉문즉설은 절망과 고통에 빠진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사하며 대안적 삶을 열어준다. 그는 또한 불교 개혁자로서의 면모를 지니고 실천적 불교사상으로 오늘날 불자들의 나아갈 방향을 정토(淨土)로 제시한다. 그를 따르는 정토행자들은 매일 참회 발원을 올린다. 천일결사, 만일결사를 진행하며 기도수행과 포살, 자자를 통하여 명실상부한 수행공동체를 만들어 나간다. 그 천일결사 단위는 3천~4천여 명 선이다.법륜은 1953년 4월11일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에
출세간 불교보다 입세간 불교를, 과거나 미래보다는 현재의 삶을 돌보는 불교를, 초세간 정신으로 세간 속의 인간을 돌보며 세간을 완성시키는 불교를, 모든 존재와 더불어 살아가면서 정토로 구현해내는 인간불교를 불러 내보자. 그 인간불교를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 어떤 장애에도 굴하지 않고 서원을 발하며 앞서 나간 사람이 대만 불광산사(佛光山寺)의 성운(星雲) 대사이다.성운은 1927년 중국 장쑤(江蘇)성에서 태어났다. 12세 때인 1938년 난징(南京) 치샤산(棲霞山) 대각사(大覺寺)로 출가해 임제종 48대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그의 출
우리는 이미 도착했다. 집에 와 있다. 현재 이 순간에 온전히 깨어 있기만 하면 더 이상 구할 것이 없다. 이는 ‘반야심경’의 무소득(無所得)의 경지를 말한다. ‘본래 붓다’의 의미 또한 품고 있다. 이렇게 옛 경전의 깊은 종교적 가르침을 현대의 살아 있는 언어와 의미로 되살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해, 수용, 실천, 변화를 이끄는 것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 틱낫한(Thich Nhất Hạnh, 釋一行, 1926~) 스님이 그 길을 갔다. 그는 베트남 중부도시 후에(Huế)에서 출생해 16세인 1942년에 임제종 소속
“공성을 수행한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대단한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의 일상에서 자신에게 유익한 계행이나 남을 위한 자비행을 실천하며 서로에게 유익한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성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이러한 목표에 맞게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러한 깨달음은 아무 의미 없이 공허할 뿐입니다.”(「달라이라마의 지혜 명상」)제14대 달라이라마(Dalai Lama) 텐진 칸쵸(1935~현재)는 공성의 지혜를 깨닫기 위해서는 자애의 사랑과 자비의 연민이 필수적이며, 일체중생을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보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불교학자로서, 앎과 실천의 길이 세상과 소통하기를 원하고 소통의 길을 열기 위해 행동하는 재가 보살의 시선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보며,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크게 긍정하는 스승이 있었다. 바로 불연 이기영(不然 李箕永, 1922~1996)박사다. 그는 우리 문화, 우리 사상, 우리 불교의 소중함을 깨닫고 원효에 눈을 떠 원효사상을 이 땅에 심었던 인물이다. 그는 원효를 통해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보살의 길이 얼마나 고귀하고 값진 길인지 일깨워 주었다.“그 모든 교훈은 하늘에서 떨어진 타산(他山
공(空), 모든 규정, 그 어떤 한계에도 틀 지워지지 않는 생명의 바다가 허무적 관념, 한없는 부정의 늪으로 빠지려 할 때, 그것을 다시 생활 속에 움직이는 활공(活空)으로 굳건히 세워 이 삶의 현장에서 빛나는 나의 모습으로, 너의 얼굴로 광명을 발하도록 한 것은 한국불교의 신선한 충격이었으며 희망이었다. 공은 보현행자의 원행으로 피어나고 전법으로 구체화되었다. 거기에 광덕 스님이 자리하고 있었다. 광덕(光德, 1927~1999 ) 스님은 1927년 경기도 오산의 고씨 집안 2남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속명은 고병완(高秉完)이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게 아닙니다.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만족할 줄 알면 비록 가진 것은 없더라도 부자나 다름없습니다.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아닙니다.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좋은 말씀)무소유와 청빈을 강조하고,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을 전개한다. 열반에 이를 때까지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바로 평범한 비구 법정(法頂) 스님이다. 그러나 비구 법정은 평범 속에서 평범 이상, 그 너머였다. 그의 향기로운 글과 정신은 우리에게 산사의
한국불교의 수행풍토를 복구하기 위해 봉암사 결사를 추진하여 승가의 수행공동체 정신을 올곧게 실현하려고 애썼을 뿐더러, 절연이속(絶緣離俗)이라는 그 출가적 삶의 지향점을 발원하고 몸소 실천해 나갔던 사람이 성철(性徹) 스님이다. 그는 또한 미추와 신분, 선악과 빈부를 떠나 모든 사람들 누구에게나, 기고 나는 모든 생명들 그 어떤 존재에서나 간직되어 있는 불성, 본래 부처로서의 성품을 강조하고, 이 불성에 눈을 띄우기 위해 철두철미하게 화두 참선에 온 정신을 기울였다. 그것은 자기를 바로 보기 위한 몸짓이었다.“자기를 바로 봅시다./
우리나라 근현대 대표적 기업인으로서 불교 대중화의 실질적 지평을 열어나갔던 사람이 장경호 거사다. 그의 자제들 또한 그러했다. 특히 한국불교의 새로운 변모를 꾀하며 대중불교, 생활불교의 기치를 내걸고 불교를 이 삶의 현장에서 구현해 나가고자 몸소 그 길을 열어나갔던 이가 그다. 그는 이를 지속하기 위해 목숨을 마치기 전 자신의 전 재산을 내놓으며 대한불교 진흥의 초석을 다지는 편지를 대통령에게 쓴다.“이 사람은 올해 77세의 고령인 동국제강의 창업자 장경호입니다. 이제 멀지 않아 이 생을 마칠 것을 내다보고, 인생무상의 대도 앞에,
‘금강경’ 독송을 간경수행법으로 체계화하여 생활 속 수행으로 마음의 해탈을 강조한 근현대의 선지식이 있다. 바로 백성욱 박사다. 그는 일찍이 명실상부한 수행공동체를 마련하여 마음의 수행과 몸의 수련을 동시에 꾀했다. 독일 철학박사 1호 또한 그였다. 자신의 욕망을 뛰어넘은 발원의 중요성도 그는 강조했다. “미륵존여래불(彌勒尊如來佛)을 마음으로 읽어서 귀로 듣도록 하면서 당신의 생각은 무엇이든지 부처님께 바치는 마음을 연습하십시오. 궁리를 가지면 병이 되고 참으면 폭발합니다. 이것이 닦는 사람의 항복기심(降伏其心)이라고 합니다. 아침
“사람은 외계의 사물에 포로 되는 존재가 아니므로 만유의 절정에 서서 종횡자재 해야 한다. 이때 비로소 번뇌는 보리가 되고 고통은 쾌락이 된다. 고통과 쾌락을 양거쌍망(兩去雙忘)하면 낙원 아닌 공간이 없고 득의롭지 않은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고통과 쾌락’)“계박을 피하고자 하는 소극적 태도, 독선, 포기, 도피도 다른 의미의 계박이다. 계박과 해탈은 타(他)에 있지 않고 아(我)에 있으며, 물(物)에 있지 않고 심(心)에 있다. 일체의 해탈을 얻으려면 자아를 해탈해야 한다. 이때 비로소 입세(入世)가 출세(出世)고 출세가 입세
“우리 부처님의 도는 원융무애하여 이것과 저것이 없으며, 친근함과 소원함도 없으며, 귀하고 천함도 없으며, 현명하고 어리석음도 없다. 사성(四姓)의 어느 계급에 속한 사람도 도에 들어오면 동일하고 평등하다. 그러니 어찌 금이나 옥 때문에 모든 흙이나 돌을 버릴 수 있겠는가? 영리한 자는 쉽게 통달하고 아둔한 자는 많이 막힐 뿐이다.”(신규탁 번역)1910년 용성 선사는 위 내용이 담긴 ‘귀원정종(歸源正宗)’을 쓴다. 귀원정종이란 근원으로 돌아가는 바른 종교로 풀이할 수 있겠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전에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주로
근대 한국선의 중흥과 경허선사는 오버랩 된다. 서산대사의 등장으로 한국 선이 부흥의 조짐을 보였지만 조선 말기에 이르러 선원은 찾아보기 힘들었으며 곳곳에 염불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선리를 참구하는 수행자도 매우 드물었다. 말세적 분위기와 더불어 험하고 힘든 세상에서 선을 공부하기란 참으로 어렵다고 여긴 것이다. 경허는 굳은 원력으로 이러한 풍토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 결과 경상, 전라 주요 지역에서 선원이 개설되었다. 그의 제자로서 만공, 혜월, 수월, 한암 스님 등은 근현대 선의 대종장들이었다. 1920~30년대 선학원 운동으로
죄악이 깊고 깊은 인간이다. 욕망이 불길처럼 맹렬히 타오르는가 하면 때로는 자신의 능력과 행위에 대해 한없이 절망하는 ‘나’다. 자력 절망이다. 과연 누가 이 어둠의 늪에서 ‘나’를 구제해 줄 것인가? 그것은 바로 아미타부처님이요 아미타부처님의 중생 구원에 대한 믿음이다.이 아미타 부처님에 대한 철저한 믿음과 염불을 강조한 일본의 성인이 신란(親鸞, 1173~1262) 스님이다. 신란은 일본 정토진종(淨土眞宗)의 개조이며 타력염불 신앙을 끝까지 밀고 들어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을 준 사람이다. 가난한 자, 힘없는 자,
그는 어린 시절 강한 종교체험으로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출가를 감행하였으며 선의 길로 들어서서 치열한 수행 끝에 깨달음을 열었다. 절의 큰방이며 논두렁길에 걸터앉아 농부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부처님 가르침을 나누며 그들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 사람은 평이한 언어로 가르침을 설하고 강렬한 선화나 유머러스한 문자 그림으로 불교를 널리 알리며 일본 임제종을 오늘날까지 굳건하게 뿌리내리게 했다. 바로 하쿠인 에카쿠(白隠慧鶴)다. 하쿠인은 법호인데, 그가 나고 자란 후지(富士)산의 영봉, 그 희디흰 산에서 은거했다는 의미에서 백은
“불도(佛道)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배우는 것이다. 자기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잊는 것이다. 자기를 잊는다는 것은 만법에 의해 증명되는 것이다. 만법에 증명된다는 것은 자신의 신심(身心) 및 타인의 신심을 탈락(脫落)하는 것이다.”(‘정법안장’) 위 글은 일본 조동선(曹洞禪)의 개조(開祖) 도겐(道元) 선사의 선어다. 불도를 배우는 불자로서의 삶이란 자기를 잊는다는 것인데, 그것은 나와 타자의 몸과 마음이 무아로 비워져 자기를 벗어나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벗어나고 자신의 마음을 잊는 것이다. 나로부터의 해방이다. 그것은 달리
일본 불교문화의 고도, 나라(奈良)에는 화엄 동대사와 노사나대불이 자비롭게 세상을 품는다. 그 종교성을 발원하고 구현한 사람으로 쇼무 천황과 교키 스님이 얼굴을 나란히 한다.쇼무(聖武, 701~756)는 일본의 제45대 천왕이다. 그는 불교를 신봉함으로써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웅대한 불교문화를 꽃피웠으며 말년에 천황의 자리를 물려주고 출가자로 살아갔다. 쇼무 천황은 24세 때 즉위한다. 당시 일본은 천황 중심의 국가체제가 정비되어가던 와중이어서 그의 자리는 불안했다. 국내적으로 내란이 일어났으며 외교적으로 잘 지내던 신라와 불편한
모든 생명은 크거나 작거나, 잘났거나 못났거나 그 자체로 소중하다. 앞으로는 생명의 시대다. 온 생명의 생명평화는 지구 환경을 살릴 뿐더러 인류가 공멸에 빠지는 것을 막는 중요한 시대의 화두다. 이 생명 살핌 및 생명 해방과 더불어 정토염불 수행을 거사들을 비롯한 많은 지역민들에게 일깨우고 생명운동, 거사운동, 일종의 영성운동으로 전개한 사람이 연지대사(蓮池大師) 운서주굉 스님이다. 그는 방생축원문과 왕생극락발원문을 남겼다.운서 주굉(雲棲袾宏, 1532~1612)은 명나라 4대 고승 중 한 사람이다. 주굉은 절강성 인화현(人和縣)
계율의 달과 자비의 꽃이 삼공(三空)을 비추어 밝게 빛났으며, 서리 맞은 소나무처럼 청결한 지조와 물에 비친 달처럼 빈 마음을 지닌 이. 도가 높아 수많은 백성과 지식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정도로 사모의 마음을 듬뿍 받은 사람. 인도승에 의해 산스크리트어로 번역되어 동방의 대승경전으로 알려진 ‘증도가’를 지은 스님. 바로 영가현각이다. 그는 ‘선종영가집’에서 공(空)의 참 가치를 일깨운다. “마음이 공에 상응하면 나무람과 헐뜯음 또는 칭찬과 기림에 대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기뻐하겠는가? 몸이 공과 상응하면 칼로 베든 향으로 바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