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누구나 한 번쯤은 부모역할에 한계나 회의를 느낀다. 윤성(중 3)이 부모도 예외는 아니다. 요즘 들어 아들의 잘못된 행동이 심하다 싶어 훈육이라도 할라치면 “지겹게 왜 그러세요”라며 벌컥 화부터 낸다. “뭐가 지겨운데?”라고 엄마가 되묻기라도 하면 이젠 싸움으로 번지니 그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다. 맞벌이를 하느라 할머니 손에 너무 버릇없이 키워서인가?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아서인가? 생각이 많지만 그 어떤 변명이나 핑계에도 불구하고 문제해법은 부모에게 있으니 부모됨의 현명한 대응만이 요구될 뿐
나뭇잎이 알록달록 물들기 시작하는 가을이면 유치원의 야외활동도 그만큼 잦아진다. 유아들은 탁 트인 공간에서 몸을 마음껏 움직이는 활동을 매우 좋아해서 일단 교실을 벗어나면 맘껏 소리도 지르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등 신난다. 그러나 교사는 아이들처럼 바깥놀이를 마냥 즐길 수는 없다. 왜냐면 사고의 대부분이 야외학습시간에 발생함으로 여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아교육에서 야외학습은 매우 중요한 영역이라 제외할 수 없다. 교실에서 배울 수 없는 교육의 한계를 바깥놀이가 보충해주기 때문이다. 자연 교
아기가 두세 살만 되면 “내가 할 거야”와 같은 자기주장을 하게 된다. 이 시기는 언어표현이 부족해 떼쓰듯 자기주장을 하므로 이를 두고 버릇없다고 나무라진 않는다. 그러나 자라면서 아이가 막무가내로 떼쓰듯 자기주장을 고집하는 것은 잘못된 버릇이 형성된 것이므로 고쳐주어야 한다. 잘못된 습관은 쉽게 형성되지만 이를 교정하는 데는 오랜 시일이 걸린다. 그래서 좋은 습관과 사회생활의 기본인 예절교육은 어려서부터 시작해야한다. 자기주장 강해지는 아이들고집 놔두면 나쁜 버릇 고착뒷사람 위해 문만 잡아줘도배려·존중 가르치는 참교육오래전 영국을
얼마 전 우리 집 바로 위층으로 이사 온 젊은 부부가 인사를 왔다. 수박을 한통 내밀며 6살 딸과 4살인 아들을 두었다며 약간 시끄러울 수 있으니 양해를 구한다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필자는 “아이들이 그럴 수도 있지요, 단 너무 뛰지 않도록 주의만 좀 시켜주세요”라며 위아래 층 인연을 환영하였다. 그런 다음 날부터 층간소음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아이들이 아침 7시경부터 뛰기 시작하여 밤 11경까지 쿵쾅거린다. 의자에서 뛰어내리는 소리, 때론 벽에 등을 치는지 우리 거실 바닥까지 쿵 내려않는 것 같아 염려되기까지 한다.
학교에서 돌아온 9살 은석이가 현관문을 들어서며 엄마를 부른다. “엄마, 목 말라요.”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꺼내주는 엄마와 은석이가 작은 실랑이를 벌인다. “아니, 맹물 말고 시원한 콜라주세요.” “목마르면 물을 마셔야지 콜라는 안 좋아.” “물은 맛없어서 싫단 말이야.” “알았어, 콜라 줄게.” 물이 좋다는 엄마와 콜라를 원하는 은석이는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엄마가 양보를 한다. 아이들은 왜 건강에 좋은 순수한 맹물보다 별로 도움이 안 되는 탄산수나 이온음료에 길들여져 가는 걸까? 개발로 맑은 물 갈수록 사라져탄산음료 고집하는
9월12일 밤 8시32분에 규모 5.8의 지진이 경주를 엄습했다. 땅이 심하게 요동치며 좌우로 흔들리는 지진 앞에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오직 몸을 피하는 것만이 전부였다. 집을 빠져나와 아파트 쉼터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겁에 질린 표정들, 신발도 신지 못하고 맨발로 급히 뛰어나온 엄마와 어린 딸의 모습은 때마침 내리는 가랑비에 젖어 더욱 안쓰러워 보였다. 단 몇 초에 불과한 지진의 위력에 인간은 정말 무력한 존재임을 실감하며 사람들은 그저 스마트폰에 매달려 정부의 소식만을 애타게 기다릴 뿐이었다. 과연 인간과 자연, 그리고
고귀한 견해란 ‘있는 그대로를 바르게 보는 것, 탐진치에 집착함이 없는 맑고 바른 앎’이다. 우리가 모든 사물을 바르게 볼 수만 있다면 왜곡으로 인한 쓸데없는 대립이나 고통은 일어나지 않을 터이니 삶이 고결해진다. 그 한 예로 어린 시절 즐겨 읽던 동화 ‘여우와 두루미’가 있다. ‘어느 날 여우는 두루미를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한다. 그런데 여우는 자신이 좋아하는 납작한 접시에 음식을 담아 내놓으니 두루미의 긴 부리로는 그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두루미가 여우를 초대하여 음식을 긴 그릇에 담아 내놓지만 부리가 없는 여우도
“내 것보다 형 비스킷이 더 많잖아?” 5살 다산이는 간식으로 나누어준 과자가 형보다 한 조각 적은 것을 알고 떼를 쓴다. 부모가 주는 과자하나에도 아이들은 그냥 과자가 아니라 관심과 사랑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자기 몫의 과자가 적은 것을 알면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그만큼 적은 것으로 믿고 공정하지 못함에 반발한다. 어디 과자뿐이겠는가? 용돈이나 옷, 책가방 같은 물건을 통해서도 비교하며 사랑을 확인한다. 왜 이처럼 아이는 비교를 통해 관심과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할까? 한마디로 말해 ‘자신이 중요한 사람, 가치 있는 존재’임을
“오늘 뭐 좋은 일 있으세요?” 엄마의 밝은 표정을 보고 딸 지아도 밝게 묻는다. 말이나 행동에는 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이 담겨있어 상대를 파악하는데 요긴하다. 기분이 나쁠 때는 말과 행동도 거칠어지며 좋은 기분에는 말과 행동도 부드러워진다. 이를 가장 잘 느끼는 관계가 제일 가까운 부모자녀이거나 부부일 것이다. 설거지만 거칠게 해도 “엄마, 화나셨어요?”라며 자녀는 엄마의 정서를 염려한다. 거친 행동을 일으키는 엄마의 불쾌감이 언제든 분노로 전이될 수 있음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어서다. 다정하고 따뜻한 부모의 행동은 자녀마음을 편
나비처럼 춤추듯 걷는 3~4살 되어 보이는 여아와 엄마가 서로 주고받으며 부르는 노래가 길에 퍼진다. “초록 등이 켜지면 가요? 안 가요?” 랩처럼 리듬을 넣어 묻는 엄마에게 아이가 “가요”라고 답한다. 이어서 “빨간 등이 켜지면 가요? 안가요?” 엄마의 물음에 “안 가요”라며 아이가 노래하듯 답한다. 가까워져 오는 사거리의 신호등을 보며 엄마가 아이에게 교통규칙에 리듬을 넣어 놀이식으로 가르치는 모습이다.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 얼굴엔 ‘나 잘 알지요?’라는 듯 행복이 가득해 보였다. 그림처럼 평온하고 가족사랑이 훈훈하게 느껴지는
“난 요즈음 수영이 때문에 속상해죽겠어. 글쎄 갈수록 잠만 더 늘어 어제는 학원도 빼먹었지 뭐니?” “한창 잠이 많을 때야, 그럴 땐 그냥 재우는 게 효과적이야.” 초등생 아들이 잠이 많아 공부에 지장이 있다는 친구의 걱정하는 전화를 받고 혜성 엄마는 너그럽게 위로한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이 혜성에게 일어났다면 그렇게 태연하고 너그러울 수 있을까? 부모욕망에 희생 강요당하며학원에 중독된 아이들 한숨성공만 따지다보면 상처 뿐혜성(초등2)이는 일주일에 총 9군데 학원을 다니니까 매일 1~2군데는 가는 편이다. 교과목 위주의 학원이 아닌
한국전쟁을 맞아 공원의 충혼탑 앞에서는 ‘나라사랑 프로젝트’가 초등학생들의 참여 속에 열렸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국군장병과 애국선열들의 충절을 추모하는 이 행사는 역사인식과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겨보는 좋은 기회라 본다. 김구, 유관순, 안중근, 윤봉길 등 애국선열들의 사진에 이름카드를 연결하는 놀이가 있는가 하면, ‘우리고장을 빛낸 호국영웅들’이라는 제목의 부스에는 경주와 그 인근지역에서 활약한 영웅들의 이름 석자로 삼행시를 포스트잇에 적어 사진 옆에 붙이는 이벤트도 있다. “신무기도 없는데 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