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르칸트의 중심에서 동북쪽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나지막한 언덕이 옛 궁궐터 ‘아프라시압’이다. 지금은 마른 풀만 듬성듬성 나있어 버려진 듯 방치된 곳이지만, 아프라시압은 기원전 6세기 사마르칸트의 역사가 시작된 후 13세기 몽골군이 침략할 때까지 도시의 중심 역할을 했다. 기록 속 옛 사마르칸트는 모든 도로가 포장돼 있고 집집마다 수로시설을 갖출 만큼 발전된 곳이었다. 그러나 1220년 몽골군의 침입으로 운명이 뒤바뀌었다. 사마르칸트는 튼튼한 요새로 둘러싸여 처음에는 몽골군의 공격을 효율적으로 막아냈지만, 이내 칭기즈칸은 도시의
이슬람 세계의 보석으로 불리는 푸른 도시 사마르칸트에는 아미르 티무르와 관련된 유물이 상당수 존재한다. 티무르에 의해 다시 세워진 도시인만큼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대표격 되는 곳이 중앙아시아 최대 사원이라는 ‘비비하눔 모스크’다. 사마르칸트의 중심 타슈켄트거리 끝자락에 높게 솟은 에메랄드빛 돔의 아름다운 사원이 그곳이다. 비비하눔은 티무르의 여덟 왕비 가운데 가장 사랑했던 왕비의 이름이다.1398년 인도 원정에서 돌아온 티무르는 이슬람 세상에서 가장 웅장하고 화려한 모스크를 짓겠다고 결심했다.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그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 제2의 도시로 공업과 문화의 중심지다. 자랍샨강의 계곡과 구릉에 걸쳐 조성된 이 도시를 옛 문헌은 ‘동방의 낙원’ ‘황금의 도시’ ‘중앙아시아의 로마’로 기록하고 있다. 자랍샨강은 ‘황금을 뿌리는 강’이라는 뜻으로 일 년 내내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사막 지역에서 이곳이 얼마나 중요했었는지를 말해준다.실크로드 중심도시 사마르칸트는 고대 호레즘 시대부터 ‘마라칸타’로 널리 알려졌고, 중국에서는 ‘강국(康國)’이라고 불렀다. 629년 당나라 수도 장안을 출발해 인도로 향했던 현장 스님도 기록을 통해 사마르칸트를
우즈베키스탄 순례서 마주친 현지인들은 대부분 무슬림이다. 이슬람의 경전인 ‘코란’의 가르침에 충실한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무슬림에게는 다섯 가지 의무가 있다. 마음으로 알라를 인정하고, 하루 다섯 번 예배하며, 수입의 40분의1을 헌금하고, 라마단에 금식하며 일주일에 한번 성지 메카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이 중 메카에서의 기도는 금요일 모스크에서 기도하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 해서 매주 금요일이면 모스크마다 예배를 위한 무슬림들의 발길이 끝없이 이어진다.부하라 사람들도 신앙을 위해, 교육을 위해 수많은
‘다른 곳은 빛이 하늘에서 내리 비치지만, 부하라는 빛이 땅에서 하늘로 비친다.’우즈베키스탄의 속담이다. 오랜 고대도시 부하라의 신비함과 매력을 뜻하는 말이다. 황톳빛 사막도시의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부하라의 지표 아래에는 수천 년의 역사가 차곡차곡 쌓여있다. 그 역사가 뿜어내는 찬란함이 하늘에 닿을 정도라니 부하라에 대한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의 사랑과 자부심이 담겨있는 속담이다. 실제 부하라는 도시 전체가 20m에 달하는 문화층을 가진 중층적 유적군을 이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 지역의 주인이 바뀌면 옛 것을 부수고 새
테르메즈 역사박물관은 우즈베키스탄의 고고학적 가치를 세계에 알리고 소중한 문화유산을 세계인과 공유하고자 테르메즈 건립 2500주년 되던 2002년 4월 문을 열었다. 이곳은 테르메즈에서 출토된 2만7000여점의 고대유물과 페르시아어·아랍어로 된 1만6000여점의 고서적, 필사본, 목판인쇄본 등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은 시대별로 세분화돼 있어 전시관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만으로 이 지역 격동의 문화 변천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역사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은 파야즈, 카라, 달베르진 등 불교 유적지에서 발굴된 것들이다.이곳을
기원후 1세기 카니슈카가 쿠샨의 왕좌에 오르면서 테르메즈는 가장 영향력 있고 번성한 도시가 된다. 특히 카니슈카왕은 다양한 민족과 이질적인 문화가 자유로이 교류하는 광대한 제국을 다스리는 통치이념으로 보편적이고 논리적이면서도 다른 문화에 배타적이지 않은 불교를 선택한다. 한편으로 박트리아의 문자와 예술, 생활양식 등 문화 전반을 이어받은 쿠샨의 왕이 박트리아 정신문화의 한 축인 불교를 수용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카니슈카왕은 스스로 불자가 된 후 대승불교와 상좌부불교 모두를 연구했을 뿐 아니라 불전(佛典) 편찬을 위
우즈베키스탄의 가장 큰 매력은 도시와 자연, 역사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2018년 2월부터 한국인에 대한 비자가 면제돼 여권과 항공권만 있으면 30일 동안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 첫 순례지는 간다라 미술의 화려함을 간직한 쿠샨왕조의 보석 같은 도시 테르메즈다. 테르메즈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를 경유해야 한다. 8시간여를 비행한 후 다시 730km 떨어진 우즈베키스탄 최남단의 도시 테르메즈를 향해 날아올랐다.우즈베키스탄 국토면적은 45만여㎢로 한반도 면적의 두 배쯤 된다. 정해진 국교(
아득히 먼 옛날, 길이 열렸다. 도로도 이정표도 없는 길이었지만 동서의 문화가 만나 교차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목표와 바람을 좇아 이 길에 올랐다. 이 길 주변에서 동서고금의 중요 문명이 발아했고 이 길을 타고 개화했다. 또한 이 길에서 세계사적 사변들이 전개됐고 수많은 민족과 국가의 흥망성쇠가 반복됐다. 고대 오리엔트문명에서 그리스·로마제국, 페르시아제국에서 이슬람제국, 중국의 선진시대에서 몽골제국, 인도의 마우리아왕조에서 티무르제국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에 기록된 주요한 일들이 모두 이 길에서 전개됐다. 인도에서 발현한 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