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 도상과 유사하게 보이지만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으로 감싸주변엔 슬픔에 잠긴 제자들 표현 ▲간다라, 2~3세기, 스와트박물관, 파키스탄 이 이야기는 꾸시나라에서 열반에 든 부처님의 장례(葬禮)에 관한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를 표현한 것이다. 입멸(入滅)을 눈 앞에 둔 부처님께 아난다 존자는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당신의 존체(尊體)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전륜성왕의 유체는 새 천으로 감싼다. 그런 다음에는 새 솜으로 감싼다. 새 솜으로 감싼 뒤에는 다시 새 천으로 감싼다. 이런 방법으로 500번 전륜성왕의 유체를 감싼 뒤 황금으로 만든 기름통에 넣고, 황금으로 만든 다른 통으로 덮은
사왓티서 이교도와 신통 겨뤄수많은 부처님으로 모습 나퉈 간다라미술 소재로 자주 등장 ▲ 간다라, 3~4세기, 페샤와르박물관, 파키스탄 이 이야기는 부처님께서 사왓티사왓티(Sāvatthī, Śrāvasti, 舍衛城)에서 이교도들을 항복시킨 사건 가운데 하나로, 천 명의 부처님으로 모습을 바꾼 것을 표현한 것이다. 꼬살라국의 빠세나디 왕은 바라문교 신자였다가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 이교도와 불교 간에는 서로 갈등하게 되었다. 이때 사왓티에서 다른 교단의 수행자들과 부처님이 신통력을 겨룬 사건이 ‘사위성신변(舍衛城神變)’이다. 그 가운데 유명한 에피소드는 순식간에
▲ 간다라 2~3세기, 찬디가르박물관, 인도 이 이야기는 부처님의 마지막 여로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로, 웨살리(Vesāli)의 기녀 암바빨리(Ambapālī,菴羅波利, 菴婆羅女)가 망고나무 숲을 부처님께 보시한 것을 표현하고 있다. 라자가하에 머물고 계시던 부처님께서는 반열반에 들 때가 가까워왔음을 알고는, 그곳을 떠났다. 암바랏티까 마을을 지나 날란다와 빠딸리(Pātali)를 거쳐 웨살리로 들어섰다. 부처님께서는 암바빨리가 소유한 망고숲에서 잠시 쉬고 계셨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암바빨리는 만사를 제치고 부처님을 찾아갔다. 암바빨리는 어렸을 때 웨살리 교외의 암바 숲에 버려졌는데, 숲을 지키는
간절히 출가 원했지만세 번이나 거절당하자아난다 존자에게 간청 ▲ 간다라, 2~3세기, 라호르박물관, 파키스탄 이 이야기는 부처님께서 이모였던 마하빠자빠띠(Mahāpajāpatī, 大愛道, 憍曇彌)에게 출가를 허락한 것으로, 최초의 여인 출가에 관한 것이다. 숫도다나 왕이 돌아가시자 그의 부인인 마하빠자빠띠는 부처님께 출가를 허락해 달라고 세 번이나 요청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번번이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그 몸과 목숨을 다해 범행(梵行)을 깨끗이 닦으려고 하는 생각을 하지 마시오”라고 거절하셨다. 세 번이나 부처님으로부터 출가를 거절당한 마하빠자빠띠는, 흙이 묻
부처님의 설득으로아들 목숨 건져내합장하는 아타비왕 ▲ 간다라, 2~3세기, 페샤와르박물관, 파키스탄. 이 이야기는 부처님께서 숲속에 살면서 사람을 잡아먹는 야차 아타비카(Ātavika)를 귀의시킨 사건을 표현한 것이다. 옛날에 아타비(Ātavī)라는 왕은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야차 아타비카에게 매일 한 사람씩 바치기로 약속했다. 처음에는 죄를 지은 나쁜 사람을 비롯해 살인자, 도둑 등을 그에게 먹이로 바쳤다. 12년의 시간이 흐르자 왕 부부의 어린 자식만이 남게 되었다. 그날 기원정사에 계시던 부처님은 숲 속으로 가서 왕의 아들을 먹으려는 아타비카를 설득해, 왕의 아들을 부모의 품으로 되
1만명 자식 키웠지만어린아이들 잡아먹어부처님 말씀으로 교화 ▲ 간다라, 2~3세기, 페샤와르박물관, 파키스탄 이 이야기는 부처님께서 어린 아이를 잡아먹던 하리티(Hārītī, 訶利帝母, 鬼子母神)를 불교에 귀의시켜, 안산(安産)과 육아의 신이 되게 했다는 것이다. 하리티는 판치카(Pāñcika, 般闍迦)의 아내로 1만명의 자식을 둔 귀녀(鬼女)였는데, 사람의 아이를 잡아먹는 자였다. 사람들은 그녀를 두려워해 야차녀라 불렀고, 부처님께 이 사실을 말씀드리고 해결책을 구했다. 부처님은 하리티가 1만명의 자식 가운데 유독 사랑하는 막내 아들을
평상 위에 앉아있는 개는전생에 바라문이던 도제 ▲ 간다라, 2~3세기, 페샤와르박물관, 파키스탄 이 이야기는 부처님께서 사왓티(舍衛城)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 탁발을 나갔다가 수카[Suka, 首迦 또는 鸚鵡]의 집에서 부처님을 보고 짖던 흰 개와의 인연에 관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어느 날 걸식을 하시다가 바라문 도제(都提, Todeyya)의 아들인 수카의 집에 가서 그를 만나고자 했으나, 그는 집에 없었다. 그의 집에 있던 흰 개는 큰 평상 위에 올라가서 금 발우에 담긴 밥을 먹고 있다가, 부처님을 보자 짖어댔다. 부처님께서는 “짖지 마라, 흰 개야. 너는 원래 바라문이었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을 들은
출가하는 태자 머리카락보석장식 보관으로 상징 ▲ 간다라, 2~3세기, 페샤와르박물관, 파키스탄 이 이야기는 부처님께서 출가했을 때 일어난 사건으로, 머리카락을 자르자 제석천이 내려와서 천상으로 가져다 모셨다는 내용이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자의 길에 접어들자 먼저 온갖 보석으로 장식된 보관(寶冠)을 벗고, 머리카락과 수염을 깎았다. 그러면서 원을 세웠다. “이제 수염과 머리카락을 잘랐으니, 바라옵건대 모든 번뇌와 쌓인 업장(業障)이 없어지게 하소서.” 부처님의 머리카락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제석천은 그것을 받아서 천상으로 올라갔고, 성의 동쪽 조명원(照明園) 안에 불발탑(佛髮塔)을 세웠다고 한다(‘대집경(大集經)’). 부
사천왕 바친 발우 네개합쳐서 하나로 만들어 좌대·일산 함께 표현발우로 부처님을 상징 ▲간다라, 2~3세기, 국립델리박물관, 인도 이 이야기는 쿠샨제국의 수도였던 페샤와르에서 부처님의 발우(鉢盂)를 불교도들이 경배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간다라 불교미술에서 부처님의 발우에 공양올리는 모습은, 불·보살상의 대좌에 많이 표현되고 있다. 페샤와르에서 행해진 부처님 발우에 대한 숭배는, 중국의 구법승 법현과 현장의 여행기에 잘 나타나있다. “정오가 되면 스님들은 부처님의 발우를 꺼내 속인(俗人)들과 더불어 여러 가지 공양을 올린 뒤 점심을 먹는다. 해질 무렵 향을 사를 때도 또한 그렇게 한다. 부처님 발우는 용
임신한 아내 의심해 살해 무덤 속에서 태어난 아이 출가 후 아버지 귀의 시켜 ▲ 간다라, 2~3세기, 꼴까타 소재 인도박물관. 이 이야기는 전다월이라는 국왕이 바라문의 말만 듣고 임신한 둘째 부인을 죽였는데, 그녀의 뱃속에 있던 아이가 무덤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부처님께 귀의했다는 내용이다(‘불설전다월국왕경’). 전다월 국왕에게는 여러 명의 아내가 있었는데 둘째 부인이 임신을 하게 되었다. 이를 시기한 여러 부인들은 왕이 신뢰한 바라문을 매수하여, 임신한 아내를 죽이지 않으면 큰 화를 입을 것이라고 왕에게 말하게 했고, 이 말을 들은 왕은 임신한 부인을 죽여 매장을 했다. 매장된 무덤
주민들 괴롭히던 나쁜 용금강역사 보내 교화시켜 ▲ 간다라, 2~3세기, 페샤와르박물관, 파키스탄 이 이야기는 간다라 지방의 북쪽에 위치한 스와트 강에 살고 있던 아팔라라(Apalāla, 阿波邏羅) 용왕을 금강역사가 부처님께 귀의케 한 사건이 배경이다. 당나라 승려 현장의 ‘대당서역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대당서역기’제3권 오장나국) 파키스탄의 북쪽 지방에 있는 스와트에는 현재에도 많은 불교 사원지가 남아있고, 히말라야 산의 눈 녹은 물이 흘러든 스와트 강에는 예부터 전해오는 용 이야기가 있다. 스와트 강에 살고 있던 아팔라라 용왕은 가섭불 시절에 주술에 달통한 인간으로 태어난 적이 있는데, 이름은 긍기(祇
▲ 간다라, 2~3세기, 찬디가르박물관, 인도 이 이야기는 마가다국의 불타벌나산(佛陀伐那山, Buddha-vana)에서 30여리 떨어진 예슬지림(洩瑟知林, Yaṣṭi, 杖林)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당나라 현장스님의 인도여행기인 ‘대당서역기’에 이 이야기가 자세히 전해지고 있다. 이교도의 한 바라문은 부처님의 키가 1장 6척(약 4m 80cm)이나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의심을 품고 믿으려 하지 않았다. 부처님의 키를 한 번 재보고 싶었던 바라문은, 어느 날 1장 6척 크기의 대나무를 가지고 부처님 곁으로 다가갔다. 바라문이 대나무 막대기로 부처님의 키를 재려고 하자, 부처님의 키는 늘 대나무 막대기 끝에서 1장 6척을
수행 중이던 아난존자 마왕의 훼방에 놀라자머리위에 손 올려 위로 ▲ 간다라, 2~3세기, 꼴까타 소재 인도박물관. 이 이야기는 마가다국의 수도였던 라자가하(Rāagaha, 王舍城)의 영축산(靈鷲山)에서 부처님께서 마왕 파순 때문에 두려움에 떨고 있던 아난다를 위로한 것이다. 아난다는 부처님의 시자(侍者)로서 부처님의 설법을 가장 많이 들은 인물로 유명하다. 성도 후 20년 동안 부처님께는 정해진 시자가 없었다고 한다. 여러 사람이 부처님을 시봉했지만 부처님은 그들의 시봉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이여, 나는 이제 나이가 들었노라. 그대들은 잘 고려해
불구덩이에 발 넣으니 커다란 연꽃 솟아올라외도들 놀라 불교 귀의 ▲ 간다라, 2~3세기, 페샤와르박물관, 파키스탄 이 이야기는 사왓티에 살고 있던 불교도인 ‘시리굿타’와 외도(外道)의 스승을 따르는 ‘가라하딘나’라는 두 친구에 관한 것이다. 가라하딘나의 외도 스승들은 항상 그에게 말했다. “당신은 왜 당신 친구인 시리굿타를 설득하지 않는가? 그를 설득해서 우리에게 무언가 제공하도록 해야 하지 않겠나?” 스승들의 끊임없는 성화에 어느 날 가리하딘나는 친구인 시리굿타를 찾아갔다. 시리굿타는 “그대는 틈만 나면 나의 스승님께 헌신한 댓가가 무엇인지 묻는데, 그대 스승이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게나”라고 말
나체 외도들 횡포에위기에 몰린 이교도붓다 법력으로 구해 ▲ 간다라, 2~3세기, 카라치박물관, 파키스탄 이 이야기는 부처님께 기원정사를 보시한 수닷타[給孤獨] 장자의 딸 수마가다(Sumāgadhā , 須摩提女)가 자이나교도인 시집식구들을 불교도로 개종시킨 것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녀는 나체 수행을 하는 자이나교 집안으로 시집을 가, 그들을 교화하려다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자 부처님께 도움을 청했고, 이때 부처님께서는 신통력으로 그들을 불교에 귀의케 했다는 것이다. 수마가다의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만부성(滿富城)의 만재(滿財) 장자는 수마가다를 처음 본 순간부터 며느리감임을 직감하고
불전에 등장하는 대표적 악인부처님 살해하려는 악행 묘사 ▲간다라, 2~3세기, 꼴까타 소재 인도박물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고향을 방문했을 때 난다와 함께 출가한 사까족 청년 가운데 한 명이었던 데와닷따는, 부처님의 일대기를 다룬 불전(佛傳) 경전에 등장하는 가장 대표적인 악인(惡人)이다. 그는 빔비사라왕의 아들이었던 아자따삿뚜(Aja-tasattu, 阿世)로 하여금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게 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 자신은 불교 교단의 지도자가 되려고 부처님을 살해하려고 시도했다. 데와닷따가 부처님을 죽이려고 한 사건은 불전미술의 소재로도 사용되었는데, 대표적인 예가 아잣따삿뚜가 소유한 사나운 코끼리
▲ 3세기 경, 나가르주나꼰다고고박물관, 인도 까삘라왓투를 방문한 부처님을 따라 출가했던 난다는, 고향에 두고 온 아름다운 아내를 잊지 못해 출가 생활이 행복하지 않았다. 동생인 난다가 출가 생활을 포기하고 재가자의 삶을 살고자 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부처님은, 신통력을 이용해 그를 데리고 도리천으로 올라가셨다. 부처님께서는 “난다야, 만일 네가 수행을 진실로 즐거워한다면 도리천의 천녀들을 얻게 해 주겠다”고 난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자 난다는 천녀들을 얻을 생각에 수행에 전념하겠다고 부처님과 약속했다. 부처님께서는 애욕에 사로잡힌 난다에게 아름다운 천녀들을 보여줌으로써, 마음의 번뇌를 제거하기 위한 방편을 사용하신 것이다. 지상으로 내려
▲3세기 경, 나가르주나꼰다고고박물관, 인도 부처님께서 까삘라왓투를 방문했을 때 출가했던 이복 동생 난다(Nanda, 難陀)는 출가 이후에도 아름다운 아내 자나빠다깔랴니(Janapadakalyāṇī, 孫陀利)를 잊지 못했다. 그는 틈만 나면 까삘라왓투로 돌아가 아내를 만날 생각만을 했다. 마음을 잡지 못하는 난다를 깨우치기 위해 부처님께서는 그를 데리고 천상 구경에 나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부처님께서는 난다가 부처님의 옷자락을 잡자 마치 새처럼 허공을 날아 향취산(香醉山)에 닿았다. 그때 과일 나무 아래에는 애꾸눈의 암컷 원숭이가 부처님을 쳐다보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난다에게 “애꾸눈의 원숭이와 너의 아내를
향락에 젖어 출가 거부하는이복동생 설득하는 부처님말씀만으로 머리털 떨어져 ▲ 3세기 경, 나가르주나꼰다고고박물관, 인도 깨달음을 얻은 후 고향인 까삘라왓투를 방문한 부처님은 바쁜 나날을 보내셨다. 부처님께서 그곳을 떠날 때 많은 사꺄족 청년들이 출가했는데, 그 가운데 이복 동생인 난다(Nanda, 難陀)의 출가 이야기가 유명하다. 난다는 아버지 숫도다나왕과 이모이자 양모였던 마하빠자빠띠 사이에서 태어났다. 까삘라왓투의 왕위 계승자이면서 부처님의 동생인 그는, 빼어난 용모 때문에 여성들에게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 난다는 세속 생활의 즐거움에 흠뻑 젖어있던 중 그곳을 방문한 부처님을 만났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번 그를 교화하
부처님 반기는 숫도다나왕누더기에 실망한 사람들을신통력으로 귀의케 만들어 ▲1세기 경, 인도 산치대탑 탑문.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은 어느 날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머물고 계셨다. 아들이 부처님이 되었다는 소식을 소문으로 전해들은 숫도다나왕은 아들의 귀환을 고대하며 사신을 보냈다. 그러나 사신으로 간 사람들은 부처님을 만난 후 모두 출가하고 말았다. 숫도다나왕은 사꺄족의 안위를 누구보다 염려하는 깔루다이(Kāludāyī , 迦留陀夷)를 불러, 부처님을 모셔올 것을 명령했다. 왕의 명령을 받은 깔루다이는 라자가하의 죽림정사에 도착해 먼 발치에서 옛 친구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자 부처님이 그를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