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그런 디딤돌 하나하나 밟아가며 도량에 들어섰다. 서울 도심의 작은 미술관을 연상시키는 2층 카페. 이색적이다. 찻집 창문에 새겨진 ‘테이크 아웃’. “자유롭게 거닐어 보시라!”는 주지 스님의 바람을 새긴듯하다.찻집 마당 곳곳에 작은 부처님 앉아 계신다. 언제 저리 고운 부처님들을 품에 다 안았을까. 고찰(古刹) 숨결 배인 낡은 기와로 쳐놓은 담장. 고아해 정감 있다. 그 옆 나무 아래에 키 낮은 벤치 놓여 있다. 그림자 속으로 들어와 나뭇잎 사이로 들어차는 눈부신 햇살을 담아가라는 뜻일 터다. 두 팔 활짝 벌린 듯, 양 옆으로 쭉
“나모라다나 다라야야… 옴 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 나막 가리다바 이맘 알야바로기제 새바라 다바…(삼보님께 머리 숙여 절을 올립니다…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지켜주시는 관자재보살님께 귀의하면 성스러운 관자재의 위신력이 나타납니다….)”한여름 오후, 천년고찰에 70여 대중이 지송하는 범어(梵語)가 흐르는 건 ‘천수대다라니 108독 성취기도’ 원력을 세운 대흥사 신임 주지 성해 법상(性海 法祥) 스님에서 비롯됐다. 교구본사 주지 당선 소감을 피력하는 자리에서는 사찰의 중장기 청사진을 내놓는 게 상례인데 ‘승가의 본질’을 자문했던
진안과 마령 경계선에 희유한 모양의 두 봉우리가 마주한 산 하나가 우뚝 서 있다. 신라시대 서다산(西多山), 고려시대 용출산(聳出山)을 거쳐 조선 초에는 속금산(束金山)으로 불렸다. 계절에 따라 봉우리 이름도 다르다. 안개 자욱한 봄날에 솟은 두 봉우리가 쌍돛대를 닮아 돛대봉, 녹음 짙은 여름 수목 사이에 드러난 봉우리가 용의 뿔처럼 보인다 하여 용각봉, 가을 단풍 때 말의 귀처럼 생긴 봉우리가 유독 두각을 나타내 마이봉, 화선지(설산)에 묵화를 치는 붓(봉우리)과 같다 하여 겨울에는 문필봉이라 한다. 지금은 말의 귀를 닮았다고 하
태안사 조실 청화(淸華·1924∼2003, ‘1종식·장좌불와 50년’ 실천한 선지식) 스님 앞에 섰다.(1997) 삼배를 올리니 맞절로 받으신다. 절을 마치고 말없이 앉았다. 납자의 얼굴을 지긋이 응시한 청화 스님이 한 마디 이른다.“자네는 출가 전에 어떻게 살았나?”윽! 턱 막힌 가슴의 좁은 틈 사이로 유년의 기억이 비집고 들어 왔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이웃집 아주머니와 도시로 나가 살림을 차렸다. 초등학교 1학년 소풍날, 함께 길을 나선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마을 뒷산으로 내달렸더랬다. ‘친구들은 아버지·어머니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사람의 몸에서 난다.’ 인간의 목소리가 최고의 악기라는 얘기다. 하여, 판소리계의 타고난 소리꾼도 궁극의 소리를 얻고자 깊은 산 속 수직 폭포 아래서 피를 토하는 고통을 감내했다. 그 고된 수련 끝에 ‘폭포수 쏟아지듯 장단고저 변화무궁 이리농락 저리농락’하는 경지의 득음(得音)에 이른 창자(唱者)를 명창(名唱)이라 칭한다. 한국 3대 성악으로 꼽히는 범패(梵唄)계의 스님들도 자신만의 소리를 얻어야 한다. 다만 희로애락을 표현하고 이끌어내는 가곡·판소리와는 결이 다른 숭고미가 배인 소리여야 한다. 불교
인도의 나란다(Nalanda)! 직역하면 시무염(施無厭)이다. ‘한량없는 보시’로 충만한 그곳은 부처님 10대 제자에 속하는 목련존자와 사리불의 고향이기도 하다. 굽타 왕조의 두 번째 왕인 쿠마라굽타 1세(415∼454)가 그곳에 ‘나란다 사원’을 조성하니 이내 세계 최초의 대학으로 기록된 ‘나란다 대학(Nalanda University)’이 세워졌다. 교수 1000여명에 1만여명의 학승들이 상주하며 공부했던 전당. 매일 100여군데서 강좌가 열렸는데 불경은 물론 인명(因明, 논리)·천문·언어·의학을 넘어 범패·문학·베다까지도 연구
새하얀 사라(紗羅)가 수월관음을 감싸 안았다. 보관(寶冠), 치마, 요포에 정교하게 수놓인 연꽃·봉황·서운(瑞雲)이 투명한 사라의 틈 사이로 화려한 빛을 발한다. 여러 개의 선을 다중으로 처리한 눈썹, 봄누에 실을 토하듯 부드럽게 그어진 가는 눈, 홍조 띤 엷은 미소. 그리고 섬려하게 내려진 금선(金線). 매혹적이다. 그리고 숭고하다. 지난 3월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관에서 월제(月齊) 혜담(慧潭) 스님의 세로 5미터의 대작 ‘수월관음보살 팔부성중상’을 처음 마주했을 때 벅차게 차오르는 환희를 억누를 길이 없었다. 중국의 전통 묘법
‘마음 길은 찾는 것이고 몸의 길은 세우는 것이구나. 내 일찍이 마음 길은 분명하게 찾아 흔들림 없이 가고 있는데, 한 번 잃어버린 몸의 길을 세우는 것은 마음 길을 찾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구나.’ (허허당 ‘시시-콜콜’중에서)‘시시-콜콜’은 허허당 스님이 지난 30여년 동안 앓아온 통증에 대한 단상이요 독백이다. 첫 전시는 ‘빈 마음의 노래’(1984)였다. 수백, 수천의 동자가 어우러진 중중무진의 세계에 탑이 서고, 달이 뜨고, 꽃이 피었다. 무심에서 툭 터져 나온 붓선과 색감에서 누군가는 세속의 번뇌를 털어버린 청량함을 읽어
교리가 신앙의 내용이라면, 의례는 상징적 표상의 행위다. 신체를 통해 외향으로 표현하는 행위가 의례라는 얘기다. 세속의 공간도 성스러운 시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의례는 신앙공동체를 유지·성숙시키는 원동력이다. 불교의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의례의 설행체계 확립에 매진하는 연구소가 있다. 조계종의례위원회(2011.4 출범)와 함께 의례의 한글·현대·대중화를 선도하고 있는 불교의례문화연구소(2011.9 출범)다. 연구소 개원 이후 매년 2회씩 ‘의례와 종교문화’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할 만큼 의례 분야의 학술토대를 다져가는데 중추 역
매월 8일은 ‘보라데이’다. ‘자세히 보라’, ‘관심 있게 보라’는 의미다. 또한 폭력을 당한 피해자의 멍 자국이 보라색임을 상징한다. 가정폭력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내 가정은 물론 이웃 가정에도 관심을 가져달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경찰청이 2018년 이재정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전달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8년 6월까지 가정폭력으로 16만4020명이 검거됐다. ‘가정폭력 방지법’을 전격 시행(2006)한 지 10년을 넘어서는 시점부터 지금까지도 한 해 4만건, 하루 약 100건의 가정폭력이 발생하고 있는
만년설의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Kilimanjaro·5895m)는 ‘하얀 산’이라는 뜻이다. 조선 시대 제작(1402)된 현존 동양 최고(最古)의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에서 킬리만자로는 ‘달의 산’으로 등장한다. 인류에게 ‘빛나는 산’으로 다가왔던 태산이다. 아프리카 대륙이 뿜어내는 원초적 힘과 고독을 느껴보려 동봉 스님도 저 산으로 걸음 했었다. (2004.11) 그러나 정작 여행 중에 마주한 건 아프리카 53개국 어디에도 한국불교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 땅에 “불교 씨앗 한 알이라도 심겠노라!
2018년 6월의 마지막 날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는 낭보가 속리산에 날아들었다. 승원에 포함된 산사(승원)는 모두 7개.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마곡사, 선암사, 그리고 법주사다.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 등재 이후 3년 만에 ‘인류 전체를 위해 보호해야 할 보편적 가치가 있는 유산(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한국문화유산으로는 13번째이고 충북에서는 최초 등재였다.여명의 붉은 빛이 미륵대불 이마에 내려앉을 즈음 산사가 품어온 국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