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몸과 입과 뜻으로 행동하면서 업(業)을 짓는다. 그 중에서 입으로 짓는 행위, 즉 말과 글이 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말 한마디로 사람이 죽고 산다”는 속담이 있다. 실제로 말 한마디로 불행을 자초하기도 하고, 말 한마디로 소원했던 관계가 개선되기도 한다. 예로부터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 즉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이라고 경계했다. 전당서(全唐書) 설시편(舌詩篇)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팬데믹으로 인해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반대급부로 온라인이 활성화되고 있다. 그런데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 올라오는
나의 할머니는 스님이셨다. 아버지를 장가보내신 후 할머니께서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암자에 들어가 수행으로 여생을 보내셨다. 세상의 인연을 멀리했지만 유독 나를 사랑하셨고 그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불교인의 삶을 걷게 되었다.나는 할머니지만 “스님”이라고 불렀다. 주말이나 방학 때는 많은 시간을 절에서 보냈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이었던 것 같다. 하루는 스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신도들과 함께 나들이를 가자고 하셨다. 차도 없던 그 시절 어린 몸으로 여러 동네를 거치고 거쳐 한없이 걸어도 도착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날은 더워지고 말동
끝이고, 시작이다. 있는 그대로 보면 시작도 끝도 없다지만, 매년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의식을 치르며 우리는 대나무처럼 단단한 매듭을 하나씩 만들어간다. 올해는 대선도 겹쳐 연말의 들썩임이 한층 더한 느낌이다. 이런 시간은 꼭 필요하다. 나 자신을 가다듬고 원칙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 이 시간을 얼마나 잘 치러냈느냐에 따라 이후의 삶은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원칙은 간명하다. 생활은 단순하고 몸과 마음은 고요한가. 짚어보면 버릴 것과 간직할 것이 무엇인지 보인다.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는가. 그
승이 법안에게 물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 법안이 말했다. “그대가 바로 혜초이다.”법안은 법안종(法眼宗)의 개조인 법안문익(法眼文益, 淸凉文益: 885~928)이다. 법안은 속성은 노(魯)씨로서 절강성 여항(余杭) 출신이다. 장경혜릉(長慶慧稜)을 참문하였고, 후에 나한계침(羅漢桂琛 : 867~928)을 참문하여 그 법을 이었다.부처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가장 근원적이고, 또한 납자가 반드시 터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하다. 그래서 달리 나는 누구인가 하는 본참공안(本參公案)과 통하는 질문이다. 이것은 승이
네이버 등 포털을 검색하다 보면, 내가 검색한 것과 연관된 광고가 따라다니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공지능이 내가 특정 상품에 대한 구매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맞춤 광고를 띄우는 것이다.그런데 이는 비단 포털에만 있는 게 아니다. 유튜브를 볼 때도 하나의 영상을 클릭하면, 그다음부터 유사한 추천 영상이 계속해 뜨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게 반복되면, 인공지능이 나의 알고리즘을 파악해 내가 좋아할 만한 것만을 지속해서 노출시켜 준다. 즉 인공지능의 천라지망(天羅地網)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신문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
⑩지장경(地藏經): 삼계교는 모든 경전 가운데 ‘지장십륜경’을 빈번하게 인용하고 있다. ‘지장십륜경’은 삼계교 지장3부경인 ‘점찰선악업보경’ ‘지장보살본원경’보다 빈도가 높다. 특히 ‘삼계불법’ 4권 가운데 ‘지장십륜경’의 인용 횟수는 무려 120회에 달한다. 특히 신라 신방 법사는 651년 신라에 삼계교(지장교) 사상을 전하고자 현장 법사가 쓴 경전을 번경하며, 서문을 통해 삼계사(三階師) 위치를 정립했다. ‘지장십륜경’에서 지장은 “말세구제의 본원에 의해 악 비구를 옹호하고 있다. 속인의 삼보에 대한 절대적인 존경심을 요구하고
Q. 저는 장남입니다. 장남의 책임, 제 아내는 큰며느리 된 책임으로 치매인 어머니를 모신 지 어느덧 5년이 되어 갑니다. 이제 퇴직하고 집에서 함께 어머니를 겪어 보니 저도 못 알아보시는 어머니를 모시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하루에 수백 번씩 들더군요. 생각 끝에 동생에게 어머니를 잠시 맡기고 아내와 가까운 곳에 하루이틀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생각이 들어 얘기했지만 동생은 안된다고 하더군요. 장사를 하며 바쁘게 살기에 이러한 부탁이 어렵다는 것도 알지만 겨우 하루 이틀인데 거절하는 것에 서운한 마음도 들더군요. 아내는 오히려 괜찮
‘묘법연화경’의 ‘제바달다품’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이야기가 서술돼 있다. 부처님은 전생에 한 나라의 왕이었는데 법을 위해 왕의 자리를 선위하고는 스승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스승을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과실을 따고 물을 긷고 땔나무를 하고 음식을 장만하는 등 게으르지 않고 섬기기를 천년이 넘도록 했다고 한다. 구도자가 법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진실하게 보여주신 부분이다. 오늘날 우리는 과연 이런 발심을 실천하고 있을까.모실만한 스승이 없는 것이 아니다. 법당에 부처님과 경전 그리고 절에 오가는 모든 이들이 스승이 될 수 있다.
원효는 태종무열왕 8년(661) 45세 즈음 당 유학을 가던 중에 무덤 속에서 깨달음을 체험하였고, 이어 요석공주를 만나서 설총을 낳고 환속하여 거사가 되었다. 그 뒤 문무왕대(661~681) 20여년 동안은 원효 생애의 전성기로 불교대중화운동과 불교사상체계 수립에 매진한 시기였다. 이 기간 쟁관법(錚觀法)을 만들어 엄장(嚴莊) 같은 화전민을 교화했고, 사생아로 태어난 불구의 사복(蛇福)과 어울리고, 그 어머니의 장례를 치러주기도 하였다.다른 한편으로는 경전연구에 몰두하여 100종 가까운 저술 대부분을 완성하였다. 그런데 원효의 활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의 일이다. 유학할 때 함께 공부했던 분이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다. 유럽에서 은행장도 했던 일본인이다. 말년에 불법이 좋아서 공부하다가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에 대학원에 등록했다고 한다. 백발의 머릿결에 말쑥한 신사 차림으로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분이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된 것은 천도재가 끝날 무렵이었다. 일본에서는 가족 일원의 죽음을 주위에 늦게 알리는 일이 있다. 열반인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사후에 자신의 ‘뒤를 깨끗하게’ 하는 것을 하나의 전통으로 삼는 풍습 때문일지도 모른다. 임종
12월16일 부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순천 송광사에서는 구산 스님 열반 38주년 추모제가 열렸다.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려 일반 신도들은 거의 참석하지 못했지만, 추모의 열기는 뜨거웠다. 살아생전 스님을 친견하진 못했지만 보조사상을 전공하는 필자에게 있어서 효봉 스님과 구산 스님은 항상 그리움의 대상이다. 1969년 송광사에 조계총림이 만들어지고 초대 방장으로 구산 스님이 취임하셨고, 1983년 열반에 드실 때까지 수많은 불사를 통해 오늘날의 송광사를 만드셨다. 그중에서도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목우가풍을 재현하고 제2 정혜결사를 통
[1613호 / 2021년 12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비둘기(Kapota)는 전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텃새이다. 수명이 약 20~35년 정도로 장수하는 새이며, 오랫동안 평화를 상징하는 길조로 불렸다. 인도신화에서 비둘기는 죽음의 신 야마를 보좌하면서 올빼미와 함께 영혼을 사후세계로 운반하는 사자(使者)로 알려져 있다. 죽음의 어둠이나 불운과 연관된 불길함 때문에 인도인들은 비둘기고기를 먹지 않는다. 후대에 이르러 비둘기는 힌두교 쉬바의 신화에서 불멸과 관련된 긍정적 존재로 변화한다. 강력한 쉬바신은 불멸이지만 아내 빠르바띠는 필멸(必滅)의 여신이다. 빠르바띠의 간청으로 쉬
초겨울 하늘은 쨍하니 금이 갈 듯 푸르다. 표충사 가는 길은 엊그제 내린 비로 가을의 흔적이 완전히 지워지고 한적하기 그지없다. 그 길을 달려 도착한 표충사는 홍제교 건너에서 일주문이 먼저 반긴다.이번 여행길은 겨울 표충사 참배와 더불어 부광맹인불자회 지도법사이신 밀양 시적선원 진허 스님을 뵙는 일정이었다. 평소 혼자 여행이 힘든 장애법우도 동행하게 하였다. 먼저 진허 스님을 뵙고 법우와 표충사를 가는 일정이었지만 장애가 있는 우리를 배려해 밀양역까지 마중을 나오시고 표충사까지 안내를 해주셨다.표충사는 경남 밀양에 자리한 통도사 말
신들의 제왕 샤카는 간답바의 아들 빤짜시카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야, 빤짜시카야. 여래들께서 선정에 들어 명상하실 때에 나와 같은 자가 다가가기란 쉽지 않단다. 그러니 네가 먼저 가서 세존을 기쁘게 해드려라. 네가 세존을 기쁘게 해드린 다음에 내가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를 찾아뵙는 것이 좋겠구나.”간답바의 아들 빤짜시카는 벨루와빤두를 연주하며 사랑의 시를 노래 했다.‘존귀한 여인이여, 쑤리야왓차여./존귀한 여인이여, 타오르는 불을 물로 끄듯이/내 사랑의 열병을 꺼주십시오./아름다운 여인이여, 나를 안아주소서./아름다운 눈을 지닌
지수화풍 사대가 흩어지면 우리의 이 몸뚱이는 어디에 있을 것인가? 붓다는 이를 참구하는 죽음명상으로 사마타 고요수행을 하라고 이르면서, 지대(地大)는 다 흙으로 돌아가고, 수대(水大)는 다 물로 돌아가며, 화대(火大)는 불로 돌아가고, 풍대(風大)는 바람으로 돌아간다고 설하였다. 바로 ‘원각경’ 보안보살장의 아래와 같은 말씀이다. “나의 지금 이 몸은 지수화풍 사대가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니(我今此身 四大和合), 이른바 머리카락·털·손발톱·치아·피부·살·근육·뼈·뇌수·더러운 물질은 다 흙으로 돌아가고, 침·눈물·고름·피·진액·거품·
1945년 해방에서부터 1960년 4‧19혁명까지 15년 동안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적산(敵産) 불하‧군종장교 제도 도입‧공휴일 지정 및 종교방송 허가’ 등에서 기독교에 특혜를 주고 불교와 천도교 등을 탄압하거나 편향된 종교 정책으로 어려운 상황에 몰아넣으면서 종교 판도 자체를 완전히 왜곡(전체적으로는 왜곡(歪曲), 불교와 천도교‧유교 등에는 왜곡(矮曲))하였다. 그 결과 해방 당시 전 인구의 5%도 안 되던 기독교(개신교와 가톨릭)가 주류 종교의 지위로 올라가고 천도교와 유교는 소수 종교로 내려갔으며 불교는 답보상태에 머물게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물은 누구였을까? 선종에서는 2대 가섭존자를 꼽지만 실제적으로는 지혜제일의 사리풋타 존자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은 그를 법의 장수(將帥)로 칭할 만큼 신임이 두터우셨고 다른 제자들에게도 그의 모범적 행동을 늘 칭찬하셨다. 그가 부처님 앞에서 반열반에 들었을 때, 부처님은 어느 제자의 반열반보다도 침통하게 여기셨다. 이러한 사리풋타가 자신의 이름을 얻게 된 것은 그의 어머니 때문이다.그녀는 미모가 빼어났고 특히 눈이 사리라는 이름을 가진 새의 눈을 닮아 사람들은 그녀를 사리라고 불렀다. 그러다 보
민화의 열풍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새롭다는 수식어를 달고 있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대세라고 할만하다. 또한 그만큼 민화에 대한 이론적 연구도 착실히 다져졌다. 그 가운데 주목할 만한 성과라고 한다면 민화가 단순히 사대부의 그림을 어설프게 흉내 낸 아마추어의 그림이 아니라 왕실에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향유했던 거대한 미술양식이었음을 한국미술사에 각인시켰다는 점이 아닐까. 그래서 민화의 ‘민(民)’은 민간이나 민속이 아니라 우리 민족기층에 깔린 감성을 대표하는 미술로 평가되기에 이른 것이다.불교미술도 마찬가지로 인도,
靈山會上言雖普 少室峰前句未親 瑞艸夢茸含月色 寒松蓊鬱出雲霄영산회상언수보 소실봉전구미친 서초몽용함월색 한송옹울출운소‘선문염송(禪門拈頌)’ 제28권 1261칙에 나오는 단하순(丹霞淳) 선사의 게송을 인용하였으나 오기가 많아서 그만 엉터리 주련이 되어버렸다. 이를 바로 잡아서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靈山會上言雖普 少室峯前句未[形]瑞草蒙茸含月[秀] 寒松蓊鬱出雲[靑]영산회상언수보 소실봉전구미[형] 서초몽용함월[수] 한송옹울출운[청]부처님은 영산회상에서 말씀을 비록 하셨다고 하지만/ 소실봉(少室峰) 앞 달마대사는 언구를 나타내지 못했네.상서로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