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에 “일체법이 모두 불법[一切法 皆是佛法]”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가 불법이요, 수행의 길 아님이 없다는 뜻이다. 또한 ‘법화경’에서도 “일체 생산 업무가 모두 실상과 위배되지 않는다[一切治生産業 皆與實相不相違背]”고 하였다. 이 말 또한 ‘금강경’ 사상처럼, 살아가는 삶의 원리 자체가 불도의 길임을 시사한다. 그래서 조사선의 개조(開祖) 마조(馬祖, 709∼788)를 비롯해 모든 선사들이 ‘멀리서 찾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늘 우리 자신이 참된 본성을 구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들이 살아
‘산은 어진 사람에게 길을 열고(山開仁者路)/ 물은 지혜로운 사람에게 마음을 씻어준다.(水洗智人心)/ 맑은 경쇠소리 어디서 들려오는가(淸磬從何處)/ 작은 암자는 숲속에 가려 있겠지.(小庵隱樹林)’(설담 스님의 시 ‘방부용암·訪芙蓉庵’ 전문)부용암을 찾아가는 설담(雪潭·1741∼1804) 스님의 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만행(萬行) 길에서 체득한 깨달음이 있었기에 산과 물이 내어놓은 길을 따라 무심히 걷고 있을 터다.선어록에서 보듯 오도기연(悟道機緣)은 언제 어느 곳에서든 일어난다. 밥을 짓다가도, 기왓장 깨지는 소리에도, 날아가는 들
제 방에는 작은 칠판이 있습니다. 요즘 들어 깜박 잊는 일들이 잦은 탓에 벽에 작은 칠판 하나 걸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 칠판에 “따뜻하게, 정갈하게”라는 단어를 적어 놓았습니다. 그 단어가 참 좋습니다. 생각해 보면 스스로 생각이 많음을 꿰뚫어 알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수시로 대상을 옮겨가며 비교하기 급급합니다. 잠시 일어나는 생각에서 비롯된 갈애에 연연하며 그지없는 시간을 보낼 때가 무척 많습니다. 저는 부산의 도심 속에 있는 한 작은 포교당에 있습니다. 이곳 포교당은 거리가 시끄럽고 또 분주합니다. 거대한 메가시티 안
삼보에 귀의하옵고, 저는 천안교도소에 수감 중인 안OO입니다. 이곳에서 오직 법보신문 보는 게 유일한 낙인데 대전에서 이곳으로 이감된 후 한 달이 넘도록 법보신문을 구경도 못 하고 있습니다. 외람되고, 송구하오나 이 불쌍한 죄인이 다시금 법보신문을 볼 수 있게 자비 은덕을 베풀어 주십시오. 불교에 귀의하여 법보신문을 통해 시나브로 불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꼭! 법보신문을 보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법보신문을 꾸려주시는 모든 소임자들께 경의를 표하며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이 중생, 너무도 간절히 법보신문 보
“조계종 포교사로서 부처님 가르침을 지역사회에 올곧게 전하고 회향하는 데 매진해 왔습니다. 지역 사찰의 법회 등 각종 행사에 동참하며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건 젊은 불자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현재 조계종을 넘어 불교계 전체로 확산되고 있는 대학생·청년 불자를 양성하는 대작불사에 법보신문 법보시로 힘을 더하고자 합니다.”조계종 포교사단 대전·세종·충남지역단 염불포교팀 강태윤 팀장과 이희선 포교사가 대학생·청년 포교 활성화를 발원하며 법보신문 법보시에 동참했다. 강태윤 포교사는 2011년 품수를 받아 염불봉사팀을 이끌며 지
“법보시 공덕은 보시 가운데 으뜸이라고 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뭇 중생이 스스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안내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전하고자 하는 인연들이 모여 희망찬 세상으로 거듭나길 기원합니다.”김채원 아름다운동행 주임이 부처님 가르침이 어려운 이웃에게 고난을 이겨내는 지혜의 등불로 다가서길 서원하며 법보신문 법보시 캠페인 동행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특히 “법보시 캠페인은 바른 불자를 양성하는 길이자, 정토세상에 한 발짝 가까워지는 길”이라며 “교도소, 군법당 등 어려운 곳에 정법을 전해 고난을 이겨낼 지혜
“불교 성지순례는 불자들에게 있어서 불교를 공부하며 경전에서 보았던 역사의 현장을 직접 찾아보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래서 법보신문 지면에 담기는 순례 관련 내용은 그 현장에 갈 수 없는 분들이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신심을 다질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라고 생각합니다.”성지순례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불교의 역사적 현장을 살펴봄으로써 부처님 생애를 이해하고 경전 공부에 대한 힘을 키워갈 수 있는 과정이라는 믿음으로 순례객을 안내하고 있는 구광국 ‘아제여행 ㈜케이투어’ 대표가 법보신문을 교도소, 병원법당, 군법당에 보내는 법보
고봉선사(1238~1295)는 의정이 문득 일어나면 공부가 급격히 진전하고 ‘무심삼매’에 들어갈 수 있다는 체험담을 전했다. 그리고 의정이 일어난 이후에는 ‘화두공부’를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공부의 에너지가 현전하면서 공부가 수월해진다. 단지 집중하고 공부를 놓지 않으려고 방일하지 않으면 된다. 몽산화상은 이를 화두가 자연적으로 현전한다고 했고, 고봉선사는 화두가 저절로 들린다고 했다. 이때부터는 공부가 수월해지면서 공부에 힘을 덜게 되는 생력(省力)과 공부에서 힘을 얻게 되는 득력(得力)을 하게 된다고 전했다.이렇게 공부가
수보리 약보살 작시언 아당장엄불토 시불명보살(須菩提 若菩薩 作是言 我當莊嚴佛土 是不名菩薩)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말하기를 ‘내가 마땅히 불국토를 장엄했다’고 한다면, 이는 보살이라 할 수 없으리라.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것은 진짜 장엄이 아니라 그 이름만이 장엄이라는 것이다.보살이 스스로 불국토를 장엄한다고 한다면 이는 사상(四相)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는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득(得)과 법(法)이 이미 있게 되는 것이니, 얻는다는 득은 나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므로 아상일 것이요, 법은 사람의 인(人
호모사피엔스의 진화 단계 중 고등종교의 출현 시기는 생활양식, 정치와 학문, 문화와 예술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혁명기였다. 서기전 500년 전후 세계 각지에서 발현한 이들 종교의 공통점은 ‘말씀’이라는 도그마가 있어 유교·기독교·불교와 같이 ‘교’자가 붙는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고로스요, 그 존재 형식이 말씀이라 구약 성서에서 “태초에 말씀이 있으셨다”고 하며, 그 말씀의 육화가 예수의 탄생이었다. 특정 창시자가 없는 힌두교는 브라흐만의 존재 형식이 ‘말씀’이었고, 말씀을 읊는 사제들의 음성을 신성의 실체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복잡
구글트렌드 등에 의하면, 2023년 말 세계 80억 인구 중에 적어도 2억7500만 명의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명상을 한다. 미국과 서유럽에서는 성인 인구의 15%가 명상을 한다. 이들 중에는 물론 종교적인 이유로 명상을 하는 사람이 많지만, 힐링과 재충전을 위해서 또는 생활 습관 의학의 일부로 삼아 꾸준히 명상하는 사람들의 수도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명상 인구는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21세기 명상은 알게 모르게 일상이 되고 세계 주류 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미국과 유럽 대도시의 명상 인구 대다수가 종교와 상관
나는 고등학생 때 명상 서적들을 우연히 읽다가 처음 발심해 구도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당시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의 세계라는 것이 있고, 그것을 팔만사천 경전 속에 담아 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설하신 진리의 내용을 온전히 깨닫는 날이 올 때까지 나름 부단히 공부하고 정진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땐 깨달음을 얻었다는 큰 어른이 계신다고 하면, 그분이 스님이든 재가 분이든, 우리나라이든 외국이든 가리지 않고 두루 찾아다녔다. 너무나도 간절하게 진리를 깨닫고 싶었고, 왠지 큰 어른을 만나면 그분이 나에게 깨달음을
안식국(安息國·Parthia, BC 240~AD 226)의 왕위를 버리고 출가한 안세고는 득도 후 여러 나라를 유행하며 홍법에 힘썼다. 그가 언제 중국 땅을 밟았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출삼장기집’의 기록은 후한 환제(147~167년 재위) 초에 장안에 입성하였다고 전한다. 안세고는 그로부터 약 20여 년간 장안에 머물며 35부 41권의 경전을 번역하였다. 후한 명제(57~75년 재위)가 꿈에서 부처님의 상호를 뵌 후 가섭마등과 축법란을 낙양에서 맞이하여 백마사를 세우고 ‘42장경’을 번역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그 진위는
동양의 종교 중에서 미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데 있어서 불교가 단연 선구적이었다. 불교도 처음에는 스투파(불탑) 외에는 별다른 물질문화를 만들지 않았지만, 점차 불상 같은 시각물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물질문화의 생산에는 많은 돈이 들기 마련이니, 자연스레 그 바탕에는 불교 특유의 경영관이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참선을 중시하고 무소유를 강조하는 불교가 왜 이렇게 물질문화 생산에 적극적이었을까? 불교경영에 대한 물음은 여기서 시작된다. 우선 ‘불교경영’이라고 하면 불교로 돈을 버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
말은 내밀하게 의식에 스며들어 인식을 장악한다. “너는 이러저러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듣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게다가 다수가 그런 말을 사실처럼 내뱉을 때, 그 말은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포승이 되고 감옥이 되어 나를 묶고 감금한다. 나는 한국 근대종교사도 똑같이 말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역사적 사실로 행세하는 많은 언어와 개념이 인식의 전진을 방해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고 있는 것이다. 한동안 한국종교학계에서는 1883년 11월
히말라야를 다녀왔다는 한 사내가껌을 밟고 섰듯 우렁차게 먼 이야기를 하지만사실 낮은 산이 더 오래된 산이다조용한 산이 높은 산이다눈보라에 이것저것 다 내주고작은 구릉으로 어깨를 굽히고 앉았으나부러울 것 없네 손자 손녀도 우습게 매달리고때론 사이클 탄 이가 우주로 떠오를 듯 달려나가기도 하니언덕에 섰는 갈참나무나 자귀나무도 마음이 연해별다른 벌레들 기어들지 않고청설모며 족제비가 종갓집을 이루는 터내가 오늘 먹을 걱정에 터벅거리며 산을 내려오자산은 슬며시 나의 옷깃을 잡으며곧 볍씨 뿌리는 들판이 될 것이라 귀띔을 한다따뜻한 바람을 모아
① 100살 넘은 노인을 구제하심사위국에 가난한 노인이 있었지. 백 살이 넘은 헐벗은 노인.“세상을 구하러 오신 부처님을 뵈어야지”하며나무 지팡이에 의지해서 부처님을 찾아 나섰지.기원정사에 이르니, 젊은 시봉자들이거지차림 노인을 막아선다. 노인이 호통을 쳤지. “내가 들으니 부처님은 대자대비하셔서 그 덕을 입지 않은 이가 없다고 하던데,허술한 차림이라 해서 길을 막다니?” 부처님이 아시고 노인 안내를 잘 하라셨지. 부처님 앞에 이른 백 여세 노인이 반가움을 어쩌지 못한다. “부처님 저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굶주림, 헐벗음에
[1711호 / 2024년 1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육조혜능(638∼713)에게서 중국선 특유의 전환점이 만들어졌다면, 마조에 의해서 중국선으로 완전히 탈바꿈되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선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는 조사선의 개조(開祖)가 마조이다.스위스의 심리학자 칼융(Carl Jung, 1875∼1961)은 “선은 동양의 정신 가운데서도 불교의 방대한 사상체계를 훌륭하게 수용하여 핀 중국 정신의 가장 놀라운 꽃이다”라고 표현하였다. 칼융의 이 말은 중국선의 정신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인데, 인도선의 색채에서 벗어나 중국의 문화와 사상이 녹아든 중국화 된 조사선을 말한다. 이렇게 당대
내게는 감기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감기 기운이 몰려올 즈음, 나는 마치 비밀 요원처럼 바이러스의 침입 신호를 포착한다. 목뒤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오싹한 기운, 눈가에 찾아오는 그 불청객 같은 피로함을 말이다. 그 순간, 나의 특별한 감지력이 발동한다. 타이밍을 놓치면 꽝이다. 그래서 나는 특급 대응 요원처럼 행동한다. 비타민C를 아낌없이 투입하고, 생강차와 꿀보이차를 대거 동원한다. 그러면 몸속의 면역 세포들이 마치 슈퍼히어로처럼 각성하여, 감기 바이러스들을 일망타진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