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 전 다녀온 인도로 이번에는 불자님들과 성지순례를 다녀오게 되었다. 열흘 동안 마법의 성과도 같았던 따뜻한 나라 인도에서 함께 간 불자님들과 현지인의 포용력에 큰 감동을 경험한 여정이었다. 이번 순례를 통해 불자님들과 나눈 대화 속에서 그분의 생각을 읽고자 했다. 성지에서 주고받은 말에는 그분의 믿음과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고 순례의 순간순간이 연꽃처럼 피어난다.“스님! 여기는 다른 세상 같아요. 저승 같다는 느낌이 들 만큼 다른 세상이요.” 바라나시에서 마주한 안개 자욱한 새벽, 배를 타고 가는데 어느 순간 앞과 뒤를 전혀 가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최종 해답을 도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물음은 쉬이 ‘무엇이 종교인가?’라는 물음으로 전환되곤 한다. 이런 식으로 물음 전환이 이루어지고 사회적 해답이 제시되면 우리가 아는 ‘근대 종교’가 탄생한다.1906년 2월 통감부가 설치된 후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1906년 11월 17일에 ‘종교의 선포에 관한 규칙’을 공포하고 12월 1일부터 시행하여 신도, 불교, 기타 종교 등 일본종교의 한국 포교에 관한 규정을 만든다. 한일병합 후 조선총독부는 이 규칙을 한국의 종교로 확대하여
지난 2018년부터는 종교인도 과세대상이 되었다. 당시 이에 대해 찬반양론이 만만찮게 거론됐었다. 과거에 종교인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었던 것은, 다른 종교는 모르겠으나 불교의 경우는 원칙적으로 스님은 무소유였기 때문에 낼 세금이 없다는 논리였을 것이다. 실제로 초기교단에서는 승려들의 가사와 발우가 유일한 소유물이었다. 비록 현대사회에서는 스님들이 아무리 무소유라 해도 이렇게 살 수는 없기에 사유재산을 어느 정도 가질 수밖에 없지만,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것은 종교인으로서 세속과 단절되어 최소한만을 가지고 산다는 것에 대한 상징성
김해 연지공원 인근 보현산(377.2m) 자락에 자리한 통도사 김해포교당 바라밀선원. 미혹에 빠진 차안의 사람들을 깨달음의 피안으로 인도하려 수담인해(秀潭仁海) 스님이 세운 선원이다. ‘창건 10년’이라는 짧은 역사 속에서도 김해포교의 새 지평을 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통도사 마산포교당 정법사와 인연이 닿아 청소년 시절 때부터 불교학생회 활동을 활발히 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는 아예 절에서 살았더랬다. 남해고속도로 진영 휴게소에서 주유 아르바이트를 하던 1993년 12월 31일. 새벽 12시가 지나면 주유 값이 오른다는 사
“순전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절 수행이었지만 불교와 인연을 맺을 수 있었고 부처님의 수승한 가르침을 배울 수 있었죠.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하면서 20년간 수도 없이 많은 부처님 가피를 받았어요. 부처님 가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만큼 법보시 캠페인을 통해 베풀고 회향하고자 합니다.”20년간 매일 108배 절 수행으로 150만배를 회향해 본지에 소개된 주근호 불자가 법보신문을 교도소, 군법당, 병원법당 등에 보내는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했다. 최근 법보신문과 다시 인연이 닿은 그는 “한 장 한 장 꼼
“교도소에서 힘든 삶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법보신문은 밝은 세상으로 향하는 창이며, 또한 선한 마음을 일으켜 불자로서의 삶을 살게 하는 디딤돌입니다. 진정한 참회는 뉘우치는 것을 넘어 세상을 향한 선한 의지와 보살의 마음을 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법보신문 법보시가 정토 세상을 열어가는 문이 되길 기원합니다.”법무법인 남평 대표 변호사로 법보신문 고문변호사를 맡고 있는 김경규 변호사가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했다. 김 변호사는 사법연수원 33기로 변호사로 활동한 이래, 법보신문 고문변호사를 맡아 크고 작은 소송을 담당해왔다. 불교계는
“대다수 언론이 태생적 한계와 운영의 어려움으로, 편향되거나 힘 있는 단체의 주장에 호도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독립언론 법보신문은 언제나 옳고 그름을 최우선의 가치에 두고 항상 진실에 다가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약자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준 정의로운 언론이었습니다. 제가 20여 년 가까이 법보신문을 애독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홍창수 태고종 총무원 법무지원실장이 법보신문을 교도소·군법당 등에 보내는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하며 이같이 말했다. 홍 실장은 2006년경 경기도에 있는 한 작은 사찰에서 종무원
삼보 귀의하옵니다안녕하세요. 저는 순간의 실수로 공주교도소에 수감중인 불자 ◌◌◌이라 하옵니다. 오늘 이렇게 글을 드리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옵고 법보신문을 꾸준히 좀 보고싶은데 여건이 여의치 않아 부탁의 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1년 1개월이 남았습니다. 여력이 되는대로 정기구독료를 입금토록 하겠사오니 어려움에 처해진 저를 가여이 여기시어 신문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허락이 되신다면 지난 신문부터 좀 보내주신다면 더더욱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꼭 부탁드리겠습니다.[1714호 / 2024년 1월 31일자 /
2월을 ‘정화의 달’이라고 한다. 2월을 뜻하는 ‘February’라는 단어의 어원은 혹독한 겨울을 끝내고 봄을 맞이하기에 앞서 묵은 때를 씻고 향을 쬐는 의식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고대 로마에서도 2월 15일에 죄를 씻는 예식이 있었다고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2월이면 정초기도, 입춘 삼재기도를 앞두고 사찰마다 정성 가득한 기도의 풍경이 불자들에겐 익숙하다. 바로 이 기도와 의식이 정화의 과정에 해당한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정화는 새롭게 시작하거나 깨어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두두물물(頭頭物物)’머리의 우측 상단부분에서 문자가 새겨지듯 어떤 유기체가 움직이는 것 같이 선명하게 각인되는 느낌이 찾아왔다. 그 다음은 이어지지 않았다. 8차선 대로와 인접된 길 어귀 보행 중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옆 사람과 큰 목소리로 대화를 해야만 들릴 수 있는 환경이었는데. 순간이었는지 아니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라도 그것 외 일체의 인식이 사라진 현상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이번 생에서 간화선 수행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자동차의 소음으로 인하여 대단히 시끄러운 대로변의 건물에서 삼중창인 창문
3회에 걸쳐 ‘삼국유사 낙산이성 관음정취조신’조와 익장(益莊)이 찬술한 ‘낙산사기문’(신증동국여지승람 양양도호부조)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 의상이 낙산사의 창건조사로 등장하는 연기설화는 역사적 사실성이 결여된 설화적 허구로 이해하지 않을 수 없음을 피력하였다. 그런데 이 설화의 내용은 사실성이 결여됐기 때문에 불교사 자료로서 폐기해버릴 무가치한 것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비록 의상의 관음신앙 자체를 이해하는 자료로서는 당연히 제외되어야 하겠지만, 의상 이후 그의 불교가 전승되는 과정을 추적하는 불교사 연구의 자료로서는 또 다른 의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출가했다고 하는데, 깨달음이라는 것은 요즘 말로 하면 행복 그 자체입니다. 깨달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행복하면 깨달은 것이라 볼 수 있어요. 그런데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바라는 게 많으면 행복해질 수 없겠지요. 그래서 욕심을 버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관점을 달리해서 인생의 참 목적으로 바꾸면 욕심이 아니라 불교에서 말하는 원력이 됩니다.욕심을 원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불교입니다. 미운 친구라도 그 친구 말을 잘 들어주고, 도와주고 공감하다 보면 머지않아 지인이 되는 것처럼 관점을 바
문화재청은 2021년 8월 24일 ‘서울 영국사지 출토 의식공양구’ 10점을 보물로 지정했다. 금동금강저(1점), 금동금강령(1점), 청동현향로(1점), 청동향합(1점), 청동숟가락(3점), 청동굽다리 그릇(1점), 청동유개호(1점), 청동동이(1점) 등이다.‘서울 영국사지 출토 의식공양구 일괄’은 조선시대 유학자 조광조(趙光祖, 1482∼1519)를 기리기 위해 세운 도봉서원(道峯書院)의 중심 건물지로 추정되는 제5호 건물지의 기단 아래에서 2012년 수습됐다. 조선시대 서원을 복원하기 위해 서원 건물의 흔적을 찾는 조사를 하던
부처님이 설하신 모든 경전의 첫머리는 공통적인 형식을 띠고 있다. 육성취(六成就)라고 불리는 서술 방식이다. 육성취란 여섯 가지 조건을 만족하게 갖추었다는 의미이다. 믿음을 나타내는 신성취(信成就), 들음을 나타내는 문성취(聞成就), 시간을 나타내는 시성취(時成就), 설법의 주체를 나타내는 주성취(主成就), 장소를 나타내는 처성취(處成就), 설법 대상을 나타내는 중성취(衆成就)가 그것이다.‘해심밀경’의 경우 첫머리가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가장 뛰어난 광명으로 장엄한 곳에 머무르시니 이곳에 큰 보살 마하살이 구름처
“사성제(四聖諦)가 위빠사나 명상법이라고?”이렇게 의문을 제기할 분들이 계실 것이다. 그렇다. 사성제는 법념처 명상법의 하나로 ‘대념처경(D22)’에 분명하게 제시됐다. ‘이것이 괴로움이구나!’라고 분명하고 꿰뚫어 알라고 한다. 즉 괴로움을 경험할 때마다 분명하게 알아차리며 관찰하라는 것이다.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소멸 그리고 괴로움의 소멸로 가는 실천법도 분명하게 마음챙기면서 관찰해야 한다. 현재 이 순간 몸과 마음에서 작용하는 다양한 현상들을 관찰하고 통찰하여 바르게 깨달아야 할 법과 진리가 바로 사성제인 것이다.초기불교에서
나는 새해 들어 ‘가짜[假]’라는 주제와 연관된 몇 편의 글을 연재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이것이 그 두 번째 글이다. 이전 것을 건너뛰고도 매회의 글이 그 자체로 이해되면 좋겠다. 그래서 이후로도 이전 내용을 종종 반복하게 될 것 같다.이번에는 환상(幻狀)의 세계와 그곳의 환술사(幻術師)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어떤 교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교설대로 세상을 관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고, 또한 거기서 고통의 근원과 그로부터 빠져나올 출구를 찾는다는 것이다. 저 가짜에 관한 학설을 받아들인 이후로, 나는 자연스럽게 어떤 환상의 세계에
“스님! 화두(話頭) 들리십니까?”“응, 응…”스님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셨다. 내내 곁을 지키고 있던 제자는 조용히 다시 묻는다.“스님! 지금도 성성(惺惺) 하십니까?”“무(無)라, 무라, 무라!”1966년 10월 15일 오전 10시 정각. 효봉 스님은 그렇게 저 언덕 넘어 피안으로 가셨다. 그것도 앉은 채로!효봉(曉峰, 1888~1966) 스님은 1925년 38세의 나이에 석두(石頭, 1982~1954)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당시로서는 ‘늦깎이’였다. 그래서인지 엉덩이 살이 헐고 진물이 흘러나와 ‘살점이 좌복에 달라붙을 정도
“한 번 맛보니 미간을 찡그리게 되고(一嘗已攅眉)/ 두 번 씹자 눈에 눈물이 가득(再嚼淚盈眶)/ 매우면서 달콤한 그 맛은(旣辛復能甘)/ 계피와 생강을 하찮게 보니(俯視桂與薑)/ 산짐승 고기와 비린 해산물(山膏及海腥)/ 그 어떤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네(百味不敢當).”‘속동문선(續東文選)’에 나오는 조선 초 문신이었던 유순(柳洵, 1441~1517)이 ‘부산개침채기이수(賦山芥沈菜寄耳叟)’라는 시에서 산갓김치를 맛본 감흥을 읊었다. 산갓김치는 특유의 강렬한 매운맛으로 먹는 이의 눈에 눈물이 핑 돌게 만든다. 그러나 단지 매운맛으로만 끝
[1714호 / 2024년 1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조론’의 저자, 승조(僧肇, 384∼413)는 ‘도량’이라는 말을 ‘한가롭고 편안하게 수도하는 장소’라고 주석을 붙이고 고요히 마음 편안하게 수행하는 어떤 장소이든 간에 그곳이 깨달을 수 있는 장소라고 명명하였다. 승조는 이렇게 도량을 해석하고 있는데, ‘도량=마음자리’라는 공식으로 봐도 된다. ‘유마경’에서 ‘도량을 가꾸는데,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에 초점을 두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굳이 고요한 숲속에 머물러야 선을 하는 것이 아니며, 수행하기 적합한 장소에서만 도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머무는 일상에서,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