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6호 / 2024년 2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일상에서의 선은 노동 자체를 수행의 연장, 즉 본래심에 입각한 불행(佛行)이라고 하였다. 마조의 제자인 백장회해(749∼814)에 의해 선사들의 계율인 청규가 제정되었다. 청규 내용 가운데 노동과 관련된 부분이 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와 보청법은 일상화된 선사상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낸다. 일상에서 본래심을 전개하는 움직임[動中] 가운데 고요함[寂靜], 이를 평상심의 연장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오분율장’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비록 승려의 규율상 제정한 율이지만 그 나라의 풍습이나 풍토상 어쩔
“부처님의 성도재일을 기념해 전 세계에서 보드가야를 찾은 불자와 현지 주민 등 3000여 명이 ‘세계평화’를 기원하며 함께 걷고 달렸습니다. 지난 25년간 인도 성지순례를 진행하며 한국의 스님들과 불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이번 마라톤대회 역시 한국불교의 관심과 지원으로 원만히 회향할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 법 전하는 법보시를 통해 그동안의 고마움을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합니다.”부처님 가르침을 통해 소외된 곳에 자비를, 그늘진 곳에 광명을 전하는 법보신문 법보시 캠페인에 너윈 신하 보드가야마라톤협회 이사장이 동참했다. 보드가
“군포교는 어린이, 청소년, 청년 전법 대작불사의 꽃을 피우는 최고의 보살행입니다. 법보신문에 담긴 알찬 내용이 장병들로 하여금 불교와 연을 맺는 계기로 작용하길 발원합니다.”한선학 원주 명주사 고판화박물관장이 군법당에 신문을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한선학 관장은 “인재불사 없이는 불교의 미래를 장담하기 힘들다”며 “부처님 가르침이 곳곳에 전해질 수 있도록 청년들에게 신문을 보내는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한선학 관장은 고판화계의 거장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 일본, 티베트, 몽골 등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법보신문을 보면서 불교계 소식을 두루두루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쓰는 글을 통해 불교 공부는 물론, 불교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확장되었습니다. 그렇게 유익한 정보를 얻고, 불교 인연을 공고히 하면서 공부까지 할 수 있으니 법보신문은 참 좋은 도반입니다.”법보신문을 통해 불교 인연을 다지고, 공부하는 제해숙 포교사가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했다. 오래전 기도 인연이 닿은 청도의 한 사찰에서 스님의 안내로 처음 법보신문을 만났다. 구독을 계기로 불교대학에 입학해 불교공부를 시작했고, “불교를 배웠으니 공부
“부처님 가르침 쉬운 언어로 담아내 불자 안목을 넓혀주는 법보신문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게 법보시 가운데 으뜸이라고 생각합니다.”게쉬 텐진 남카(Geshe Tenzin Namkha) 스님이 최근 법보신문을 교도소, 군법당, 병원법당, 관공서 등에 보내는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하며 이렇게 말했다. 티베트에서 온 남카 스님은 여덟 살에 간댄사원으로 출가, 12세~34세까지 ‘반야경’ ‘중론’ ‘구사론’ ‘계율’ 등 오대경(五大經)을 수학하고 강의했다. 2000년에 ‘게쉬 하람빠’가 됐다. 2001년 규메 밀교사원에서 1년 동안 밀교를
“동굴이나 숲은 잊어버리세요. 명상은 도시에서도 가능합니다.” 매 순간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삼매를 얻기 위한 장기간의 수행 없이 불교수행이 가능하다는 레디 사야도의 메시지에 수많은 재가 신도들이 고무됐다. 수행에 대한 이러한 주장은 불교 문헌에서 이미 볼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 이전에는 누구도 이를 적극적으로 설파한 적이 없었다. 레디 사야도는 이것을 자신의 가르침의 중심으로 삼았다. 영국의 식민 지배로 위기에 처했던 19세기의 미얀마 불교는 명상의 대중화로 재점화하였다. 이것은 나중에 위빠사나 운동(통찰명상 운동)으
어떻게 하면 우리가 행복할 수 있을까? 아무리 오랫동안 궁리해 봐도 방법은 단 한 가지 뿐인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이미 행복하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 방법이다. 만약 행복하려고 ‘노력’을 하게 되면, 그 노력을 들이는 한 아직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왜냐면 노력의 결과로 오는 미래의 행복한 상태와 지금 나 사이에는 시간적인 간격이 존재해서, 그 갭이 있는 한 현재가 불만족스럽게 되어 버리거나, 아직은 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즉, 행복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당장 행복할
나도 한때는어머니의 자랑스런 자식이고자 했네.그렇게 세상에 도움도 주리라 믿었네.평생의 끄트머리에 이른내 마지막 바람은단 하루라도 세상에 누가 안 되는 것.나를 무는 모기며 쇠파리한 마리에도부끄러워 눈길을 피하네.(송기원 시선집, ‘그대는 언제나 밖에’, 살림, 2023) 송기원 시인은 소설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내게는 수행자로 다가온다. 그는 인도에서 여러 해 수행했고, 국내에서도 2년 이상 탁발하면서 수행했다. 그가 쓴 ‘숨’이라는 자전적 소설에 따르면, 미얀마 파욱 수행센터에서 몇 년 동안 수행하면서 상당한 경지에 올랐다.
[1715호 / 2024년 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마조의 제자 가운데 선의 일상화를 잘 표현한 대표적인 시가 있다. 내 일상생활에 특이한 일이 따로 없으며/ 내 스스로 차별 없이 즐긴다./ 선택해서 버리고 취할 것이 별도로 없으며/ 너무 법석 떨 것도 치워 버릴 것도 없다./ 누가 주사(朱紫)라고 말하는가?/ 산과 언덕엔 티끌 하나 없는데/ 신통과 묘용은 물을 나르고 섶을 나른다.위의 시는 마조의 제자인 방 거사(?∼808)의 선시이다. 참 진리인 진여 혹은 실상·여여함이라는 것조차 마음에 두지 않는 경지를 엿볼 수 있다. 앞의 시 내용 중 ‘주사(朱紫)’는 붉은색의 관복으로 나라
① 탐욕을 버리면 그 자리가 기쁨 꽃이 고운 봄날, 꽃나무 밑에서 입문한 지 오래지 않은 비구 네 사람이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세상만사에서 가장 큰 기쁨이 뭐냐?”하고.한 사람 비구가 하는 말.“오늘처럼 좋은 봄날, 경치 좋은 곳을 돌며들 구경, 산 구경 다니는 게 큰 기쁨이지.”또 한 사람 비구가 하는 말.“집안의 경사에 푸짐한 음식과 춤·노래로친척이 모여 즐기는 일이 큰 기쁨이지.” 또 한 사람 비구는“재산을 많이 모아, 여러 수레에 싣고,만인에게 자랑하는 기쁨이 제일일걸”또 한 사람 비구가“예쁜 아내를 옷과 화장으로 더 예쁘
초당사에는 중국불교사에 있어 중요한 또 다른 고승의 행적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대웅전 앞 양측에는 각각 비석을 안치하여 초당사에서 활약했던 두 스님의 행적을 기리고 있다. 그중 우측의 비는 청대 용정12년(1734)에 황제가 사찰명을 ‘성은사(聖恩寺)’로 개명하고 구마라집의 제자인 승조(僧肇, 384~414)의 행적을 기리며 세운 것이다. 좌측의 비는 규봉 종밀(圭峰 宗密, 780~841) 선사가 입적한 지 15년 후에 당대(唐代)의 명재상이자 명문가였던 배휴(裴休)가 명문을 쓴 ‘규봉정혜선사비[唐故圭峰定慧禪師碑]’이다. 종밀은
일본 학자 마찌하다료오슈(道端良秀)가 “조식의 범패는 오(吳)의 지겸(支謙)과 강승회(?~280)에 의해 계승되었다”고 할 정도로 오나라에서 활동한 역경승들에게 경전은 그 자체가 범패였다. 지겸은 황태자의 스승이 되어 국정에도 참여하는 가운데 ‘대아미타경’ ‘유마경’ ‘무량수경’ 등을 번역하였다. 축율염(竺律炎)은 유기난(維祇難)과 함께 ‘법구경’ ‘아차말보살경’을 번역하였고, 유기난이 세상을 떠난 후인 230년에는 축율염이 단독으로 ‘삼마갈경’ ‘범지경’을 번역하였으며, 지겸과 함께 ‘마등가경’ ‘불의경’ 등을 번역하였고, 지강량
수보리 어의운하 여항하중소유사 불설시사부 여시 세존 여래설시사(須菩提 於意云何 如恒河中所有沙 佛說是沙不 如是 世尊 如來說是沙) 수보리 어의운하 여일항하중소유사 유여시사등항하 시제항하소유사수 불세계여시 영위다부(須菩提 於意云何 如一恒河中所有沙 有如是沙等恒河 是諸恒河所有沙數 佛世界如是 寧爲多不) 심다 세존(甚多 世尊)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항하에 있는 모래를 부처님이 모래라고 말한 적이 있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모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항하 강의 모래알 수가 많은 것과 같
“꿈은 꿈일 뿐이다. 꿈 속에서 살면서 또 무슨 꿈얘기를 하는가?”20여년 전 열반한 서암 스님이 생전에 나의 질문을 듣고 일러주신 가르침이다.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처님과 인연에 관한 암시는 글 몇 자 적는 것으로는 표현이 어렵다. 물론 무늬만 불자인 일반 대중의 행태를 나도 줄곧 반복해 왔다. 절에 가면 가끔 108배를 하거나, 부처님오신날에 절에 찾아가고, 경치 좋은 도량을 알아보는 것 등이었다. 세속에 사는 우리네들은 사방팔방이 감각적 욕망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 문명이 발달한 요즘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감각적 욕망의
십년 전 다녀온 인도로 이번에는 불자님들과 성지순례를 다녀오게 되었다. 열흘 동안 마법의 성과도 같았던 따뜻한 나라 인도에서 함께 간 불자님들과 현지인의 포용력에 큰 감동을 경험한 여정이었다. 이번 순례를 통해 불자님들과 나눈 대화 속에서 그분의 생각을 읽고자 했다. 성지에서 주고받은 말에는 그분의 믿음과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고 순례의 순간순간이 연꽃처럼 피어난다.“스님! 여기는 다른 세상 같아요. 저승 같다는 느낌이 들 만큼 다른 세상이요.” 바라나시에서 마주한 안개 자욱한 새벽, 배를 타고 가는데 어느 순간 앞과 뒤를 전혀 가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최종 해답을 도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물음은 쉬이 ‘무엇이 종교인가?’라는 물음으로 전환되곤 한다. 이런 식으로 물음 전환이 이루어지고 사회적 해답이 제시되면 우리가 아는 ‘근대 종교’가 탄생한다.1906년 2월 통감부가 설치된 후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1906년 11월 17일에 ‘종교의 선포에 관한 규칙’을 공포하고 12월 1일부터 시행하여 신도, 불교, 기타 종교 등 일본종교의 한국 포교에 관한 규정을 만든다. 한일병합 후 조선총독부는 이 규칙을 한국의 종교로 확대하여
지난 2018년부터는 종교인도 과세대상이 되었다. 당시 이에 대해 찬반양론이 만만찮게 거론됐었다. 과거에 종교인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었던 것은, 다른 종교는 모르겠으나 불교의 경우는 원칙적으로 스님은 무소유였기 때문에 낼 세금이 없다는 논리였을 것이다. 실제로 초기교단에서는 승려들의 가사와 발우가 유일한 소유물이었다. 비록 현대사회에서는 스님들이 아무리 무소유라 해도 이렇게 살 수는 없기에 사유재산을 어느 정도 가질 수밖에 없지만,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것은 종교인으로서 세속과 단절되어 최소한만을 가지고 산다는 것에 대한 상징성
김해 연지공원 인근 보현산(377.2m) 자락에 자리한 통도사 김해포교당 바라밀선원. 미혹에 빠진 차안의 사람들을 깨달음의 피안으로 인도하려 수담인해(秀潭仁海) 스님이 세운 선원이다. ‘창건 10년’이라는 짧은 역사 속에서도 김해포교의 새 지평을 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통도사 마산포교당 정법사와 인연이 닿아 청소년 시절 때부터 불교학생회 활동을 활발히 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는 아예 절에서 살았더랬다. 남해고속도로 진영 휴게소에서 주유 아르바이트를 하던 1993년 12월 31일. 새벽 12시가 지나면 주유 값이 오른다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