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호랑이’라는 단어를 모르셨는지 ‘범’ 이야기만 해주셨다. 1910년대 생이니까, 어머니가 호랑이를 봤다는 말이나 전해준 에피소드들은 조금도 지어낸 말일 수 없다. 기록상으로도 경주지역에서 호랑이가 자취를 감춘 것이 그 후 수십 년이 더 지난 뒤의 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목격담의 묘사가 너무나 생생했다. 동네 언니들과 봄에 나물 캐러 산에 올랐다가 바위 굴 앞에서 장난치고 놀던 황색 고양이 새끼 두 마리를 봤다고 했다. 너무 귀여워 무심코 다가서려던 순간 묵직한 기운을 느끼고 뒤돌아봤더니 암컷 호랑이가 앞발로 땅을 긁으
‘해가 처음 돋아오를 때는산꼭대기 위에 있게 되나니당신의 슬기로운 광명이야말로일체 중생을 비추시리다싯다르타 태자가 세간을 떠나 출세간에 나아가면서 명예와 권력과 부의 상징인 왕자 옷을 벗고 출가자의 의복, 즉 진인(眞人)의 옷이요, 세상을 건지는 자비의 옷, 소망이 이루어지는 법의 옷으로 갈아입고 산에 들어가자 온 산은 서광이 가득하였다.’(수행본기경)이는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를 찬탄한 글이다.집도 절도 없다는 말처럼 나는 요즘같이 자유로울 때가 없다. 이른 아침이면 자욱한 안개 속을 지나 근처 외국인스님들이 공부하는 무상사에 기도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의 일이다. 유학할 때 함께 공부했던 분이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다. 유럽에서 은행장도 했던 일본인이다. 말년에 불법이 좋아서 공부하다가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에 대학원에 등록했다고 한다. 백발의 머릿결에 말쑥한 신사 차림으로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분이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된 것은 천도재가 끝날 무렵이었다. 일본에서는 가족 일원의 죽음을 주위에 늦게 알리는 일이 있다. 열반인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사후에 자신의 ‘뒤를 깨끗하게’ 하는 것을 하나의 전통으로 삼는 풍습 때문일지도 모른다. 임종
얼마 전부터 모임을 만들어 함께 영어 ‘기독경’(기독교 성서)을 읽는다. 대학생 시절부터 우리말로 된 ‘기독경’을 읽어보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다가 멈춘 적이 있었는데, 아마 요즈음에는 쓰이지 않는 옛날 말투가 어색하여 읽는 데에 불편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기독교 관련 서적이나 서양 문학작품을 읽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신‧구약의 구절들을 만나게 되어 내게도 익숙하다. 기독교 입장에서 쓴 글에서는 ‘선한 하느님과 그 제자’들의 모습을 선명하게 그리고 있는 구절들을 인용하지만, 반대로 기독교를 비판하는 작가의 글에서는 ‘복수’를
종전을 반대하는 나라는 일본뿐이다? 종전이 되면 손해를 보는 나라는 일본뿐이다? 그렇게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 정확하게 우리나라와 주변국들의 이해관계, 그리고 대의명분을 따져야 한다. 본디 국제 사회는 정의가 지배하기보다는 국가 간의 이해관계에 의해 결정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가 분단국이 된 것도 미국과 소련, 영국 등의 열강들이 자기 국가의 이해관계에 따라 멀쩡한 땅에 금을 그어서 그리된 일이다. 그런 열강들의 횡포에 대하여 정의를 내세워 저항하는 일 자체가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그렇다고 해도 명분이라는 것 또한 하나
모임이 끝나갈 무렵에는 으레 ‘언제 밥 한번 먹읍시다, 다음에는 제가 사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더러 ‘언제’ 대신 ‘조만간’이라고 시점을 못 박는 사람도 있다. 셀 수 없이 했고,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찜 맛없는 인사말이 되고 말았다. 그때뿐이지 대부분 공허한 헛말로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의 의미와 정감도 날이 갈수록 퇴색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약속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불자들이 사소한 말이라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말은 상응하는 행동이 수반될
위드코로나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실시해 온 사회적 거리두기를 단계적으로 완화하여 일상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말한다. 2년 넘게 사회적거리두기가 시행됨에 따라 개인과 사회공동체는 자타에 의해 서로서로가 격리됐다. 생활에 밀접한 자영업자들의 아우성과 나를 포함한 이웃들 그리고 취약계층들이 생계에 위협을 받을 정도의 여러 부작용이 발생했다. 수많은 사회과학자들의 코로나19 발생에 대한 원인과 미래에 대한 진단은 불안감을 더 증폭시켰다. 따라서 이러한 불안한 미래보다 지금 당장 위드코로나 이후 나와 주변이 어떻게 기지개를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 진(秦)나라는 고작 14년밖에 가지 못했다. 단명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통치 방식일 것이다. 잘 알고 있듯이 핵심세력은 법가였다. 법은 이전 주(周)나라의 통치철학인 예와 악에 부수적인 것이었다. 군웅이 할거하는 시대가 되자 강대국에 병합되지 않기 위해 군주들은 부국강병을 추진하며, 법으로 그들의 권한을 강화했다. 결국 법은 통치자의 이익을 위해 백성을 도구로 쓰기 위한 전략이었다. 오늘날 법이 약자를 보살피지 못하고 가진 자의 편에 서 있는 관습은 그때 형성된 것인지도 모른다. 공맹이나 묵자가 설했던 인과 의가
대학원 시절부터 이제까지 수십 년 동안 ‘논어(論語)’ ‘맹자(孟子)’와 ‘시경(詩經)’ ‘서경(書經)’ 등 중국 고전을 읽을 적에 늘 옆에 두고 참고로 하는 책이 있다. 제임스 레게(James Legge, 1815~1897)라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선교사가 이미 백 수십 년 전에 자세한 주석을 달아 내놓은 ‘4서 3경’의 완벽한 영어 번역인데, 2천 수백 년 전에 세상에 나온 중국 고전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서 편하다.제임스 레게는 1839년 선교사로 현재의 말레이시아 말라카(Malacca)에 갔다가 홍콩(香港)을 거쳐 상하이
가톨릭의 천진암(天眞庵) 성지화 추진 등이 지닌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법보신문 이병두 ‘가톨릭의 원죄’, 진원 스님 ‘무례한 가톨릭’, 수경 스님 ‘역사를 지운 현장, 천진암을 다녀오다’ 참조) 한 종교가 자신의 종교 역사에 중요한 현장을 성지로 선포하는 것이야 밖에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다른 종교에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리고 그 성지화라는 것의 배경에는 정말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거의 모든 가톨릭 성지라는 곳은 조선왕조의 가톨릭 박해로
가을이 오는가 싶더니 벌써 겨울인 듯 기온이 뚝 떨어졌다. 거의 영하권이다. 무엇이든 처음이 더 아픈 것처럼 추위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서둘러 외투를 꺼내 입고 내친김에 목도리까지 걸치고 집을 나선다. 10월에 굳이 추울 것까지 뭐 있느냐고 투덜대면서 출근길을 재촉했다. 때마침 어느 스님이 ‘가을 그냥 가을’이라는 카톡 문자를 보내왔다. 가을은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라도 짧은 편지를 쓰고 싶은 계절인가 보다.일주일에 두세 번 광화문 사거리에서 남산 한옥마을까지 자자와 포살의 길을 걷는다. 가능하면 서두르지
몇 년 전 성당 앞을 지나다 우연히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거기에는 해미성지순례 관련 안내 문구가 써져 있었다. 당시 별스럽지 않게 ‘가톨릭에서도 성지순례로 신자들을 결집하고 전도에 대한 역사적 의미를 찾는구나’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했었다.이 같은 생각이 바뀐 것은 경기도 광주에 있는 천진암에 대한 가톨릭계의 태도를 보면서부터다. 천진암은 오랜 세월 스님들이 머물렀던 수행 공간이다. 그런데 가톨릭에서 자기들 성지라고 주장하며 안하무인으로 깃대를 꼽고 성역화 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불교를 비롯해 종교 역사에서 초전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