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신(歲新)을 코앞에 둔 추운 세모(歲暮)다. 그만큼 만 가지 마음이 교차되는 시기이다. 여기에 그 겨울의 추위보다 더 아픈 사찰들이 있다. 우리들은 즐겁고 행복한 것만 보고 듣고자한다. 고통의 일들은 억지라도 회피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인 것이다.그러나 이 사바세계에 어찌 즐거운 일들만 있으랴. 요즘은 의식주 가운데 그 어느 것보다 ‘주(住, 주거)’의 문제가 심각하다. 사찰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사찰은 단순히 주거의 공간이 아니라 전법의 도량이요, 부처님을 모시는 우주의 전체이다. 몇 년 새 나라 전체가 재개발로 여기저기 파
내게 아이를 좋아하는지 묻는다면, 좋아하지 않는 쪽에 가깝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서툰 걸음은 불안하고 느닷없이 비명을 지르곤 하는 넘치는 에너지가 부담스럽다. 시간과 장소를 개의치 않고 울거나 떼쓰는 걸 받아주고 쉽지 않다. 자는 아이는 천사 같지만, 자고 있지 않은 아이는 평화를 깨는 존재다. 하지만 그래서 아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이 세상은 나에게 그렇듯 아이에게도 활짝 열려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아이가 없기를 바랄 자격이 없다. 아이가 내가 없기를 바랄 자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해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지난 1년을 되돌아보게 된다. 연초 어떤 계획을 세웠고 어느 정도 실천했는지, 서운하게 한 일은 없었는지, 다짐은 흐트러짐이 없었는지, 생각의 초점을 지난 시간에 맞추고 이런저런 일을 떠올리게 된다. 열심히 살아왔다는 뿌듯함보다는 아쉬움이 많은 게 현실이다. 조선 중기 지행합일을 주장한 시인 장유(張維)는 한 해를 보내면서 ‘앞날은 그래도 어찌할 수 있으니,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리라’라 하였다. 지난 일에 얽매이기보다는 앞으로의 일에 집중하는 것이 세모에 필요함을 말한 것이다. 예나
백제불교는 마라난타존자의 전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마라난타존자는 지금으로부터 1635년 전인 백제 침류왕 원년(384년) 중국 동진을 거쳐 백제 땅에 첫발을 내디뎠다. 침류왕은 마라난타존자를 한성 궁궐로 맞아들여 정성스럽게 예를 올리고 설법을 들은 후 이듬해 10명을 출가시켰다. 그것이 백제불교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마라난타존자는 간다라국 출신 스님이었다. 간다라는 지금의 파키스탄 지역이다. 간다라는 알렉산더왕의 동방원정으로 인하여 헬레니즘문화가 전해져 있던 곳이다. 여기에 인도의 불교문화가 전해져 헬레니즘 조각양식을 담은 독특
유엔을 비롯하여 여러 국가들이 모인 국제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1순위 이슈는 항상 환경문제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들 국가가 자기 나라로 돌아오면 환경문제는 후순위로 밀리고 1순위는 경제성장, 일자리 문제가 된다. 대부분의 국가지도자들이 선거로 선출되다보니 자기 임기를 넘어선 장기적인 과제인 환경문제보다 임기 내 국민들에게 직접 이익이 되는 경제문제에 함몰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구적 환경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 없이 국제적 약속에 떠밀려 마지못해 실행하는 듯한 양상을 띠게 된다.2020~30년까지 10년간 지구기온은
인간은 이상한 존재라서 ‘뜻’과 ‘말’이 따로 놀 때가 적지 않다. 호감이 가는 사람에게 무뚝뚝하게 군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웃으며 칭찬을 하는 일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말만으로는 상대방의 뜻을 헤아리기 쉽지 않다. 더구나 여러 가지 정황이 한꺼번에 작용하면 더 복잡해진다. 있는 그대로 보고, 거듭거듭 봐야 비로소 보일까 말까 한 것이 사람의 속내이고 ‘뜻’이다. 얼마 전 당황스러운 판결이 나왔다. 그날 처음 만난 여성을 차에서 강간한 남성에게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법원의 해석이 더 당황스럽다. 식사를 하면서 상대
며칠 전 어느 문중의 시제에서 참석자들에게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사상자를 낸 사건이 있었다. 문중 재산에 대한 갈등이 원인이었다. 이는 극단의 문제이지만, 시제 철을 지내면서 어떻게 시제의 전통을 유지해 가야 할지 고민한 문중이 많을 것이다. 선대부터 대대로 이어오던 풍속을 잘 이어가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현실적 여건은 간단치 않다.그간 문중의 전통을 이어온 것은 시제와 족보 편찬이었다. 상강이 지나 입동이 가까워 오면 웬만한 집안에서는 정해진 날에 시제를 모신다. 4대조까지는 집안에서 기제사를 모시고 5대조부터는 묘소에
매월 50만원씩 통장에 돈이 들어온다면만일 당신에게 매월 50만원의 돈이 통장이 정기적으로 꼬박꼬박 들어온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어떤 일이 발생할까? 2019년 1인 최저생계비는 102만4205원인데 50만원이라면 약 반에 해당되며 적은 액수가 아니다. 만일 가족 한사람들에게 각각 지불되기 때문에 5인 가족이면 250만원이다. 그렇게 되면 비루하게 아등바등하게 살지 않게 되고 하고 당당히 싶은 일을 하며 가족 중 누군가 직업을 잃는다 해도 크게 두렵지 않고 소비도 늘어나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며 살 수 있게 될 것이다.일을 한 대가
얼마 전 서울 광화문을 지나다 시위대와 마주쳤다. 그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우리도 국민이다.” 여기서의 우리란 누구일까. 그것은 한눈에 금방 알 수 있었다. 시위대 사람들은 ‘우리’를 만난 기쁨에 한껏 들떠 있었으니까.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우리’들이 이만큼이나 많다는 기쁨. ‘우리’는 좋은 말이다. 자아가 비대할 만큼 비대해져 오직 나, 나, 나 밖에 없는 시대에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우리’는 “말하는 이가 자기와 듣는 이, 또는 자기와 듣는 이를 포함한 여러
신언서판이란 말이 있다. 전통적으로 인물 됨됨이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았던 외모, 말, 글씨, 판단력 등이다. 여기서 말은 논리적으로 조리 있게 의사를 전달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삼가고 신중한 태도, 배려를 통한 정서적 유대, 언행일치 등 말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말은 의사 소통의 도구이지만 그 전달 과정에서 심성과 교양이 드러나 결국 인품과 직결된다.말은 일상생활에서 그만큼 중요한 것이었기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왔고 실천하려고 노력해왔다. 불가에서는 구업(口業)을 짓지 말아야 함을 가르쳤다. 구업은 신‧구‧
지난 5월1일 영국은 ‘기후변화비상사태’를 선언했다. 이어서 아일랜드, 캐나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도 기후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기후위기는 현재 기대한 것보다도 너무도 심각해 지금의 정상적인 정책으로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실질적이고 위급한 조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기후위기에 관한한 우리는 한참 뒤쳐져 있다. 한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위의 국가이며,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에 이어 4번째 ‘기후악당’ 국가로 선정될 정도이니 말이다. 현재 지구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에 비해 1도가 상승했다. 여기서 0.5도
얼마 전 거리에서 전단지를 받았다. 서툰 디자인의 전단에는 낯선 종교 이름과 함께 앞뒤로 빼곡하게 “지도 말씀”과 계율이 적혀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정직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일하자” “탐내는 마음을 버리자, 인색한 마음을 버리자, 편애하는 마음을 버리자….” 무척 소박한 계율이라 웃음이 나왔다. 부처나 예수의 말씀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말. 계율은 함께 살기 위해서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도리로 여겨지고 있고, 그런 면에서 어느 종교나 대동소이하다. 계율이 없는 종교는 없다. 특히 모든 것이 연결되어있음을 강조하는
9월은 독서의 달이다. 책 읽기에 좋은 계절이다. 도서관을 비롯하여 학교, 관련 기관에서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독서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논의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 독서의 필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지만, 책은 스마트폰이나 영상매체에 밀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독서는 음미와 해석, 지적 긴장을 수반할 때, 그 효용성은 커진다. 오늘날의 독서는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고, 세상을 보는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 아니라, 가벼운 실용정보나 오락용 독서가 주가 되고 있다. 정신적 이완 상태
“까치 뱃바닥 같은 소리 하지 마라”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필자의 은사스님이 생전에 많이 쓰시던 말이다. 내방객들이 은사스님을 찾아와서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이러하고’라며 여러 얘기들을 늘어놓으면 은사스님께서는 그 사람들에게 “까치 뱃바닥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너나 잘해라”라고 하시면서 “차나 한 잔 하고 가라”고 하셨다.그래서 한 번은 ‘까치 뱃바닥 같다’는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여쭈어 보았다. 은사스님께서는 웃으시면서 “까치가 등은 시커멓지만 배는 하얗지 않느냐. 마음 속에 흑심을 가지고
부탄은 국민의 97%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나라이며, 물질적 성장을 위해 자원을 파괴해온 서구의 GNP지표 대신 GNH라는 국민총행복을 지표로 하는 나라다. 서구식 근대화를 서두르지 않고 전통의상과 전통건물 등 문화를 소중히 하는 나라이자, 외국의 원조에 의존하지 않고, 누구나 국왕을 쉽게 만날 수 있으며, 지하자원을 개발하지 않고 보존하며 삼림비율을 75%를 유지하는 나라다. 또한 관광객이 많이 오는 걸 원하지 않고 엄격히 제안하고 있다. 교육비가 전액 무료이고 병원비도 완전 무료인데다 세계 최초로 전 국토가 금연구역이며, 노숙자가
한동안 인터넷에 끔찍한 동영상이 떠돌았다. 한 남자가 카페 앞 고양이를 잔인하게 죽이는 영상이었다. 며칠 뒤 범인은 경찰에 붙잡혔지만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잔인성에 있어서나 동기의 사소함에 있어서나 여러 사람들의 큰 공분을 샀던 엽기적인 사건이었지만 “구속감”은 아니었다. 사람이 아닌 고양이가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끔찍한 영상도 수없이 공유되며 분노를 샀다. 전자가 사고현장을 찍은 CCTV였다면, 후자는 자신이 직접 찍은 영상이었다. 개인 유튜버가 생방송 중에 자신의 개를 학대했다. 신고를 접수하고 출동한 경찰에게
전통은 과거가 아니다. 현재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에 작용하게 될 때 전통의 가치는 존재한다. 사유의 체계에 녹아들어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전통이다. 이것은 강요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향유 계층의 지속적 공감에서 이루어진다. 공감은 다시 계승으로 이어져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게 된다.스님들의 수행과 포교의 공간이자 생활공간인 사찰은 유무형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가람의 배치와 전각의 구성 요소 등 외형적인 것은 물론, 오랜 세월 동안 주석한 스님과 사찰을 거쳐 간 많은 사람들의 사유 양식과 추구했던 가치가 역사가
불갑산에는 7월 중순부터 노란색 상사화가 피기 시작하여 9월 초·중순에는 붉은색 상사화로 온 산천을 붉게 물들인다. 불갑산에 상사화가 피는 철에는 가히 선경(仙境)을 이루어 내니, 옛 사람들은 ‘호남제일지가경, 해동무쌍지보계(호남의 제일 뛰어난 경치요, 해동에서 둘도 없는 보배로운 곳)’이라고 찬탄하였던 곳이다. 6월말 상사초 잎이 완전히 사그라져 없어지고 나면, 노랑상사화는 7월 중순에, 분홍상사화와 흰상사화는 8월 초순에, 붉노랑 상사화는 8월 중순에, 붉은 상사화는 9월 중순에 흰 빛깔의 꽃대만 미끈하게 쭉 뻗어 올라와 청순함
대만불교는 60년대 중반까지 별 존재감이 없던 종교였다. 본토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주도하는 대만에서 불교는 보존하고 지켜야 할 유물이나 유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미래를 위해 원력을 펼치기만 하면 됐다. 또한 조상 덕을 볼만한 유산도 없어 1967년 대학생들의 불교학습운동을 시작으로 거의 맨땅에서 스스로 만들고 세우며 일으켜 오늘의 대만불교가 됐다.성운 스님의 불광산사, 증엄 스님의 자재공덕회, 성엄 스님의 법고산사, 유각 스님의 중대선사 등이 중심이 되어 척박했던 대만불교를 불과 50년만에 현재 대만인
지난 7월 초, 광주에서 한 괴한이 모녀만 있는 집에 침입했다. 50대 여성을 성폭행하려던 남자는 저항하는 피해자를 정신이 잃을 때까지 구타하고 8살 초등학생을 강간하려 했다. 아이가 도망쳐 신고한 덕에 잡힌 그는 발에 전자발찌를 차고 있었다. 성범죄를 포함한 전과 7범. 2026년까지 전자발찌 착용 대상자였다. 충격적인 것은, 경찰이 올 때까지 범인은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성폭행을 못한 미수범이니 잡혀도 금방 출소할 거다, 그가 주장한 내용이었다. 그 기사를 보니 지난해 10월의 살인사건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