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 대사는 한국불교의 정점이자, 앎을 고민하고 그것을 삶에 실천하신 분이다. 또 스님은 인간의 삶 속 갈등과 분쟁을 시시비비가 아닌 화쟁으로 풀어내었다. 스님의 훌륭함은 이 글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분을 대자유인이자 세상을 끌어안으려 괴로워한 수행자로 이해한다. 원효 대사가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깨버리고 일신하는 모습과 그 파격의 사상이 넓게 영향을 미쳤고,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흘러 새로운 희망과 생명력이 되었다. 그렇게 원효 대사는 순수한 자비를 실현하는 보살로 세상을 아울렀다. 스님의 위
원효(元曉, 617~686)는 우리 역사상 가장 탁월한 인물이다. 그는 ‘금강삼매경론’을 비롯한 수많은 저작을 저술한 학자이면서 ‘화쟁(和諍)’이라고 하는 독특한 사상을 계발한 사상가이며, 타력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불교의 진리를 깨달아 그것을 우매한 백성들에게 널리 전파한 승려이다. 불교계에서 그를 ‘성승(聖僧)’으로 추앙하는 것도 그의 이런 다양한 면모를 높이 인정하기 때문이다. 원효의 생애에 관한 기록은 ‘송고승전’ ‘삼국유사’ 등에 일부 실려 전하며, 이를 바탕으로 소설·영화·드라마·오페라·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로 재창조되
사찰과 스님은 상호 부조하고 의지하는 관계에 있다. 스님은 사찰에 몸을 맡긴 채 종교생활을 영위해 나간다면 사찰은 고승 대덕과의 인연 때문에 절로 사격이 높아진다. 고래로 숱한 사찰들이 고승과의 인연을 내세우지만 역대 고승 중에 원효대사만큼 여러 사찰에서 창주로 많이 모시고 있는 분이 없다. 원효 스님과 인연된 사찰전국에 100여 군데 넘어각 사찰의 연기담 속에탄생·업적·입적 등 담겨학승과 무애행 섞여 전래신비한 능력 활약상 많아중국 사찰 신통으로 구원중국까지 퍼진 명성 시사의상·낭지·혜공 스님 등당대 스님들 흔적도 남아민초들의 사
한국의 불교 연구에서 원효(元曉 617~686)가 점하는 위치는 특별하다. 우선 한국불교사상의 첫 번째 장을 펼쳐 열었던 인물이 원효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그만큼 근현대기의 한국불교 연구사에서 원효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아이콘과 같은 인물이었다. 이것은 동시에 그의 사상이 한국이라는 토양을 넘어 보편적인 경계를 획득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원효가 이 땅에서만 추앙되고 전승되었던 인물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동아시아 세계 전체에서 전승되고 연구되어 왔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최남선이 193
원효(元曉 617~686)는 단순히 한국의 대표적인 불교학자가 아니라 국가와 시대를 넘어 인류정신사의 새벽을 연 세계의 지성인이었다. 원효는 7세기 당시 동아시아 불교계를 선도하였고 그의 저술은 멀리 중국과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본고에서 원효사상의 의미를 서구사회의 측면에서 살펴보려는 것은 원효사상이 지닌 보편성과 범세계성 때문이다. 원효는 이제 종교를 넘어 다양한 인문학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으며,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원효로 나아가고자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원효사상의 탁월함에 비해 그의 저술을 직접 읽을 수
분황 원효(617~686)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 사상가이다. 그는 부처와 중생이 지니고 있는 ‘일심지원’(一心之源)과 ‘일심’(一心)의 구도를 통해 당대뿐만 아니라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전역에 영향을 미친 철학자이다. 분황 원효는 두 차례의 당나라 유학을 시도했으나 도중에 ‘일심’을 발견하고 신라로 되돌아왔다. 원효의 깨침은 ‘일심’ 즉 인간이 지니고 있는 심층마음을 발견함으로써 더 이상 유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이후 그는 103부 210여권의 저작을 통해 이 땅의 사상가로 태어났다. 인도·중국·일본서 해설서 봇물인도의
매력은 끌리게 하고, 마력은 홀리게 한다. 매력은 끌려가는 자의 주체성을 허용해 주지만, 이것저것 재보는 거리두기마저 없앨 정도는 못된다. 마력은 거리두기를 허용하지 않는 흡인력을 보여주지만, 성찰에 필요한 주체성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맹목성이 있다. 끌리지만 홀릴 정도로 들어서지 않는다면 간보기로 끝날 것이고, 홀려 하나가 되지만 성찰의 자리를 쉽게 내준다면 맹목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원효 대사 통섭은 다양한 것들이각자자리서 서로 열고 안는 지평권력적 위계·흡수유혹 원천 해체화쟁논법 역시 통섭 위해 펼쳐모든 실천과 염원도 통섭
일본 교토(京都)의 고잔지(高山寺)에는 한국과 관련된 중요한 그림들이 소장되어 있다. 의상(義湘)과 원효(元曉, 617~686)의 진영 및 두 고승의 행적을 그린 ‘화엄연기회권(華嚴緣起繪卷)’이 그것이다. ‘화엄연기회권’은 줄여서 ‘화엄연기’ 또는 ‘화엄종조사회전(華嚴宗祖師繪傳)’(이하 화엄연기)이라고도 부른다. ‘화엄연기’는 ‘의상회’ 3권과 ‘원효회’ 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당시 유행하던 그림 형식인 에마키(繪卷:가로로 긴 두루마리 그림)로 그려졌다. ‘화엄연기’를 제작한 사람은 고잔지를 창건한 묘에(明惠, 1173~1232)
인간은 진실을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이야기는 철학만큼 심오하다. 그래서 간화(看話), 즉 에피소드를 읽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신화학자 죠셉 캠벨은 할머니 무릎에서 듣는 이야기와, 복잡 정교한 철학, 황당해 보이는 신화가 기실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증언한다.한국불교가 나가야할 길은선사처럼 경전 외면하거나학자처럼 박제화하지 않고불교지식 인간화 주력해야원효는 내외전 모두에 정통어떤 틀에도 얽매이지 않아생명이 이끄는 대로 사는 게지혜 완성하는 길임을 역설1. 똥과 물고기“원효는 혜공에게 자주 불경의 뜻을 물었다. 둘이 시내를
한국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이자 종교인인 원효(元曉, 617~686). 이 나라 불교의 새벽을 활짝 열어젖힌 그는 성과 속을 자유로이 넘나들던 무애도인이자 분열과 다툼을 종식시킨 화쟁의 달인이었다. 일정한 스승이 없었지만 뛰어난 저술들로 동아시아 불교를 주도한 사상가였으며, 광대의 옷을 걸치고 불교의 이치를 노래로 지어 민초들에게 들려준 거리의 성자였다. 원효는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오늘날까지 한국인들의 큰 존경을 받는 불교인이며, 가장 많은 연구가 이뤄지는 사상의 바다다. 그렇기에 한국불교가 원효를 닮아 가면 대중의 마음을 얻을
밝은 빛 가득 머금은 산으로 봉황이 날아든다. 산자락 외딴곳 자리 잡은 집 분명 암자이니 달빛 차오르도록 허리 꼿꼿이 펴고 앉은 이는 수행자일 터다. 무슨 소식 기다릴까. 25년 동안 ‘빛의 정원에서’라는 하나의 주제로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선보였던 전준엽 작가가 ‘빛의 정원에서-좋은 소식’을 통해 새해 법보신문 독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화폭 가득한 빛은 밝은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며, 미륵세상과도 통하는 희망의 새 세상이다. 작가는 “희망을 품고 살아온 우리 민족의 생각을 그렸다”며 “봉황의 꿈으로 새날이 열리길
정유(丁酉)년 밝은 해가 솟았습니다. 새해가 되면 많은 것들이 달라집니다. 진득하게 발목을 붙들었던 묵은해의 뒤끝은 새해가 밝음과 동시에 비로소 회색 빛 기억 속 창고에 깊이 갈무리됩니다. 대신 마음 가득 미래를 향한 희망의 발걸음과 신선한 계획들로 채우게 됩니다. 시간은 부처님의 말씀처럼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입니다. 그럼에도 끊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끊어 애써 새해를 만드는 것은 불자들이 초발심(初發心)을 내고 불문(佛門)에 들듯이 매년 새롭게 발심하고 계획함으로써 중생들이 갖고 있는 원초적인 게으름과 나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 백천만겁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 아금문견득수지(我今聞見得受持)/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義)’ 15살에 ‘천수경’ 완벽 암기절 못가면 어쩌나 결혼단념산을 갈아 밭 일구는 중에도땅에 그린 ‘원’보며 윤회공부'삼서근' 들며 60여년 정진일로백장·성철·인홍 스님 뜻 받들어선원 3개 운영·재가자 용맹정진비구니 고품격 도량으로 ‘우뚝’태백산 각화사 암자서 춘양으로 20리 길을 걸어 탁발 나오는 보살이 있었다. 그 보살 문 앞에 서 있으면 냉큼 마루에 앉혀드리고 시원한 냉수 한 그릇부터 건넸다. 절에서
“교구신도회 중심으로 신도조직 내실화하는 한 해”이기흥 조계종 중앙신도회장왕성한 포교활동으로불교 위상·역할 제고부처님 가르침 실천해상생·화합 새역사 발원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김없이 한 해가 저물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합니다. 병신년 새해를 맞아 신심이 더해가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하며 지난 한 해 동안 함께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예를 올립니다. 지난 을미년 한 해는 중앙신도회가 창립 60주년을 맞이한 의미있는 한 해였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대립과 갈등으로 유난히 가슴 아픈 일들이 잦았던 해이기도 합니다. 새해에는 지난해 우리가
“어려움 극복하는 역사적인 한 해 돼야”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병신(丙申)년 새아침이 밝아옵니다. 소망하시는 모든 일을 여의원만(如意圓滿)하게 성취하시길 기원합니다. 영특함과 민첩함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원숭이의 기운을 받아, 올 한 해 국민 여러분께 웃음과 희망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우리는 광복 70주년을 지나오며 고난과 격동의 현대사를 잘 이겨온 저력과 힘을 되새겨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민족의 분단과 사회갈등, 양극화 등의 문제를 함께 짊어지고 있습니다. 너와 나의 생각이 다르다고 편을 가르고, 한 쪽
“전쟁·고통 없는 평화로운 지구촌 만들자”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 새아침! 무차(無遮)의 붉은 태양이 힘차게 떠올라 깨달음과 지혜의 광명을 비추니 마을마다 황금빛 서기가 감돌고 집집마다 가슴열리는 웃음이 넘쳐납니다. 새해에는 좋은 인연을 만들어 갑시다. 남에게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은 덜어주며, 더불어 기뻐하고 함께 하는 것에 나의 행복이 있습니다.온 세상이 인드라망이요, 우주 만유가 연기(緣起)로 이루어졌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관계 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서로가 인정하고 존
2016년은 원숭이띠해이다. 원숭이는 십이간지의 아홉 번째에 해당되고, 시각으로는 오후 3시에서 5시, 달로는 7월에 해당하는 시간신이며, 계절은 7월 입추에서 8월 백로 전까지다. 방향으로는 서남서를 지키는 방향신이며 오행은 금(金), 음양은 양(陽)이다.지혜롭고 용맹한 동물부처님 전생으로 여겨‘육도집경’ 속 원숭이 왕인욕·희생 정신 돋보여경전 소재로도 자주 등장‘백유경’서 출가자에게 원숭이 통해 지계 설해‘서유기’에선 지혜 상징관세음보살 외치며 성불원숭이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 지혜와 꾀가 많은 동물로 알려져 있다. 동작도 재빨라
마라난타로 백제 불교 시작조선불교 원종 종무원 설립해방 앞두고 만해 스님 입적▲372년 진(秦)왕 부견(符堅), 사신 및 승려 순도(順道)로 하여금 불상과 경문을 고구려에 보내옴. 고구려 불교의 시작. ▲384년 마라난타(摩羅難陀), 진(晉)으로부터 백제에 옴. 백제 불교의 시작. ▲552년 백제, 불상과 경권(經卷)을 일본에 보냄. ▲588년 백제, 불사리 및 승려, 사공, 와장(瓦匠), 화공 등을 일본에 보냄. ▲888년 대구화상(大矩和尙), 각간 위홍(魏弘)과 더불어 향가를 수집, 삼대목(三代目)이라 함. ▲1032년 왕이 응
사찰에도 원숭이가 숨어있다. 일주문이나 대웅전에 눈과 귀, 입을 가린 원숭이 조각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는 나쁜 것은 보지 말고, 음란한 소리는 듣지 말고, 오만한 말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속리산 법주사 팔상전 추녀 밑에는 원숭이 상이 있고 대웅전 계단 양쪽에도 화강암으로 된 나한상이 있다. 강화 전등사 나녀상(裸女像)은 법주사 팔상전 원숭이와 비슷하다.전등사 원숭이상에는 2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중 하나는 창건설화에 등장한 원숭이다. 고구려 소수림왕 11년, 공사에 지친 일꾼들에게 원숭이 4마리가 술을 가져다 줬다. 이 술을
록그룹 부활 최장수 보컬이자 경복대 보컬전공 교수, 뮤지컬 배우, 라디오 디제이 그리고 카레이서까지. 가히 만능 엔터테이너라 불릴만하다. 정동하 이야기다.음악매개로 다양한 장르 넘나들며만능 엔터테이너로 활발한 활동콘서트 티켓 5분 만에 매진 기록뮤지컬서 두각 ‘블루칩’ 떠올라“기회, 오는 것 아닌 찾아가는 것”새해엔 음악으로 해외진출 발원부활 보컬로 시작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데뷔 10년 차를 맞은 그에게 2015년은 특별히 더 바쁘고 화려한 한 해였다. 우선 가수인 본업에 충실한 해였다.데뷔 이후 첫 전국콘서트를 갖고 인천, 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