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이 넘치면 신중함을 잃게 되고, 신중함을 잃으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문 대통령과 교황의 만남이 그렇다. 문 대통령이 교황을 만나 평양 방문에 대한 긍정적 대답을 이끌어 낸 것은 반가운 일이다. 교황의 평양 방문이 성사된다면 한반도의 문제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교황이 북한을 방문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남북관계의 열쇠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미국이 쥐고 있다. 그래서 교황이 평양을 방문하는 것은 여론 환기라는 상징적 의미 이상의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문제는 문 대통령과 교황의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 품었던 마음을 일관되게 유지하면 마침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초심(初心)이라고 말한다. 처음 뜻을 품었다고 해서 초심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시류에 물들지 않은 곧은 마음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일본의 유명한 선승 스즈키 순류는 “선심초심(禪心初心)”이라고 가르쳤다. 수행자로서 첫발을 디뎠을 때 가졌던 싱그럽고 투명한 마음, 그 자체가 바로 선의 마음이라는 것이다.초심을 잃어버린 뒤의 결과는 혹독하다. 비리로 파국을 맞은 공직자나 정치인, 최근 재판거래로 국민의
김정은 위원장이 가톨릭 교황을 초청했다. 교황청은 “초청장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교황의 북한방문은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10월13일부터 유럽을 방문하는 문 대통령은 유럽 방문길에 교황을 직접만나 김 위원장이 밝힌 교황초정 의사를 전달할 계획이다.두 번에 걸친 남북정상의 만남으로 한반도는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었다. 이러한 때에 교황이 북한을 방문한다면 화해분위기는 더욱 고조될 것이고, 북한 또한 개방의 길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세계에 보여주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그러나 교황의 북한 방문이 성
독일 나치시절 선전장관을 지낸 괴벨스(1897~1945)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대중선동에 뛰어난 인물로, 독일 국민들을 선동해 유태인 학살의 광기에 휩쓸리게 만든 장본인이다.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두 번째는 의심하게 되고, 계속 말하면 믿게 된다.” “99%의 거짓에 1%의 진실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그가 남긴 말이다.괴벨스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거짓선동의 망령은 지금도 세계를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괴벨스의 선동과 비슷한 현상이 세상을 휩쓸고 있다.
`남북정상이 평양서 만났다. 두 정상은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와 전쟁 없는 한반도를 약속했다. 사실상의 불가침조약으로 평화의 문을 활짝 연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문 대통령은 숙소인 평양 백화원 앞 정원에 나무를 심었다. 남한에서 들고 간 모감주나무였다. 나무 말은 ‘번영’으로 남북의 화해와 통일, 번영을 염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모감주나무는 염주나무라고도 부른다. 문 대통령이 모감주나무를 북으로 가져간 것은 염주를 헤아리는 마음으로 남북의 화해와 상생의 시대가 열리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모감주나무는 불자들에게
나치의 살육을 ‘홀로코스트’라 부른다. 1980년대 한국에도 홀로코스트가 있었다. 부산 형제복지원이다. 1987년 원생 1명이 구타로 사망하자, 35명이 집단으로 탈출했다. 형제복지원의 엽기적인 실체가 세상에 드러났다. 1975년 정부는 대대적인 부랑인 단속에 나섰다. 부랑인 수용시설에는 보조금을 지급했다. 형제복지원은 보조금을 더 받기 위해 마구잡이로 사람을 잡아들였다. 수용자들에게는 상한 밥을 먹이고 하루 10시간씩 중노동을 시켰다. 구타와 감금, 살인과 성폭행은 예사로 벌어졌다. 강제노역과 폭행을 견디다 못해 12년간 513명
이판사판(理判事判)은 가슴 아픈 불교역사가 담겨있다. 보통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쓰는 용어인데, 조선시대 불교가 그랬다. 유교의 나라 조선은 불교를 철저히 파괴했다. 도성을 비롯해 번화가에 즐비했던 사찰은 부서지고 스님들은 산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척박한 땅을 일궈 절을 짓고 불조의 혜명을 이었다.함께 출가했지만 어떤 스님은 이판으로 교학과 수행에 전념했고 사판들은 농사짓고 탁발하며 어려운 절 살림을 꾸려갔다. 이판과 사판, 어느 한쪽이 없어지면 불교는 살아남기 힘들었다. 스님이 된다는 것은 천민이 된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이
종교(宗敎)를 풀이하면 ‘으뜸 되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종교라는 이름으로 일어나는 전쟁과 살인, 일탈들을 보면 의미가 무색해진다.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분쟁의 한 축이 바로 종교 간 갈등이다.우리는 다종교 사회이지만 종교 간 분쟁이 심각하지는 않다. 물론 평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개신교 광신도들이 법당과 불상을 훼손하는 일탈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심각한 사태로 번지지 않은 것은 불교의 포용성에 더해 종교지도자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상대주의적 관점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최근 신학대학에서 파면됐다가 재판에서 이긴 손원영
삼계화택은 ‘법화경’에 나오는 말이다. 중생들이 사는 세계가 불에 타고 있는 집과 같다는 뜻이다.총무원장 설정 스님의 은처자 의혹으로 시작된 혼란은 총무원장 사퇴로 끝났다. 그러나 은처자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다만 설정 스님의 사퇴가 “종단이 더 이상 혼란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결단의 결과였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설정 스님 사퇴로 모든 것이 일단락된 것은 아니다. 설정 스님 퇴진을 극렬하게 요구했던 사람들이 퇴진이 임박하자 오히려 퇴진을 만류하거나 총무원 부실장 자리를 요구하는 등 온갖 추태가 부렸다.
무시무종(無始無終)은 시간과 공간을 보는 불교적 관점이다. 시작도 끝도 없다는 말은 시간과 공간이 무한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주는 불생불멸이다. 무시무종의 가르침에 따르면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다. 순환하는 윤회의 변화만이 있을 뿐이다.그러나 요즘 무시무종의 가르침보다 종말(終末)이라는 무서운 단어가 자꾸 떠오른다. 올해 폭염은 최악이었다. 35℃이상일 때 내리는 폭염경보가 서울에서만 31일이라는 최장기록을 세웠다. 40℃에 육박하거나 넘어선 곳도 있었다. 폭염은 우리만의 고통은 아니었다. 세계가 폭염에 시달렸다. 찜통지구, 불타
한국은 유독 세습에서 자유롭지 않다. 재벌 중심의 기업문화에서 부를 세습하는 것은 놀랍지도 않다. 상속절차를 거치지만 법의 맹점을 교묘하게 파고든 세습의 과정은 세계적 조롱거리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세습의 대열에 개신교가 가세했다. 담임 목사직을 아들에게 승계해 논란이 됐던 명성교회에 대해 해당교단 재판국이 세습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1000억원 규모의 명성교회 운영권이 아들에게 세습됐다. 북한의 독재세습을 맹렬한 비난 하면서도 목사직 세습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이율배반적 행위가 씁쓸하다.이율배반적인 종교라면 가톨릭을 빼놓을 수
어린이집 사고가 계속되고 있다. 경기도 동두천시의 어린이집에서 4살 아기가 통학버스에 갇혀 숨졌다. 운전기사와 인솔교사가 있었지만 버스에 남겨진 어린이를 확인하지 않고 내렸고, 아이는 한여름 열기 속에 죽음을 맞이했다. 버스에 내리지 못한 아이가 있는지 한번만 확인했더라면 아이가 죽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화곡동 어린이집에서는 보육교사가 11개월 된 아이를 재운다며 이불을 덮은 뒤 올라타 질식사했다. 아이를 재운다며 이불을 덮은 뒤 올라탄 행위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그렇다면 분노가 보육교사를 향해야 할까? 어린이집에서의 사고는 어제
급진적 여성주의를 표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WOMAD)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여성시위현장에서 남성혐오 발언들이 이어지더니 안중근, 김구, 윤봉길 같은 남성 독립투사들까지 테러범으로 폄훼하면서 극단적 남성혐오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한다는 빵(성체)에 욕설을 쓰고 불에 태운 모습을 커뮤니티에 올리면서 가톨릭 주교회의가 신성모독이라며 반발하는 등 사회적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여성차별과 불평등을 개선하겠다는 뜻에 반대할 명분은 없어 보인다.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가했던 나쁜 행동들을 똑같이 함으
전쟁을 피해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사람들이 난민신청을 하면서, 난민수용문제가 당면과제로 떠올랐다. 그런데 방향이 이상하다. 인도주의에 입각한 이성적 접근보다는 난민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과 적대감이 팽배하고 있다. 난민반대 청와대 청원이 최대 기록인 60만 명을 넘어서더니, 수용반대집회도 열리고 있다.우리나라는 난민에 대한 포용성이 떨어지지만 난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예멘난민에 대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이들이 무슬림이기 때문이다. SNS에서는 무슬림 테러, 무슬림난민 범죄, 여성 차별적 문화 등이 오르내리고 있다.
군대생활을 악몽으로 기억하는 스님들이 적지 않다. 군대생활은 수행의 단절을 넘어 생명과도 같은 계율의 파괴로 이어지기 쉽다. 강제적 육식과 음주, 그리고 불살생계에 반하는 전쟁훈련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나라가 위급할 때마다 일어섰다는 한국불교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계율을 이유로 병역에 이의를 제기하는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병역거부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다. 병역을 거부하면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는데 ‘여호아증인’이 대부분이다. 매년 5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교도소로 보내
대통령도 법을 어기면 철창에 갇히는 세상이다. 대통령이 제왕처럼 굴던 시절은 지나갔다. 대통령은 주권을 위임받은 대표자일 뿐이다. 권한과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선거로 심판을 받고, 처벌도 받는다. 그러나 이런 달라진 시대흐름에서 여전히 비켜선 곳이 있다. 사법부다.사법권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발표 이후 여론이 들끓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에 있었던 판사들 불법사찰과 정부와의 재판거래 정황이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시절이기도 한 당시, KTX 여승무원 복직사건, 쌍용차 해고사건, 전교조 법외노조사건, 통상임금사건
6·13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했다. 17개 광역단체장 중 14곳, 국회의원 재·보선 12곳 중 11곳을 석권했다. 언론은 보수정당의 참패, 보수의 몰락이라 말한다. 보수를 외쳤던 자유한국당의 참패이기에 나온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게 되면 국민들이 보수 대신 진보에 표를 몰아준 것 같은 착시현상이 생긴다.진보보수 혹은 좌파우파라는 개념은 프랑스 혁명 첫해인 1789년 열렸던 국민의회에서 유래했다. 이 회의에서 왼쪽에 왕정을 없애 근본적인 변화를 바랐던 공화파가 앉고, 오른쪽에 왕정유지를 통한 점진적 변화를 원했던 왕당파가
조계종 중앙신도회와 법보신문, 불교방송이 진행하는 조계종 신행수기 공모 시상식이 6월4일 열렸다.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신행수기 공모전이지만 당선작들을 만날때마다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번쩍 든다. 20여 편에 이르는 수상작들은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참다운 불자의 삶이 무엇인지 골몰하게 한다. 시련 속에서 몸과 마음을 모아 삶으로 쌓아 올린 사리탑들이기에 울림이 더욱 크다.올해 대상작인 총무원장상 시상 때는 유독 우는 사람이 많았다.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위해 30년간 기도와 깊은 신심으로 봉양하며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바지런
“세벌대 기단, 굴도리집, 겹처마, 오랑가구, 교살, 굴도리. 혹시 도종환 장관님, 뜻을 한번 설명하실 수 있겠습니까?”5월29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 도중 청와대 누각인 침류각(서울시유형문화재 103호) 안내판 사진을 띄워놓고 이렇게 질문했다. 암호 같은 용어들이 나열된 안내판에 대한 질책이었다. 안내판이라면 한글로 풀어쓰고, 무엇보다 국민들이 알고 싶어 하는 정보를 담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당연한 지적이었다.이번 대통령의 지적은 불교계가 함께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었다.우리나라 유무형의 문화재 65%는 불교문화재이다. 그러나
중동의 화약고 예루살렘에서 사람이 죽었다. 이스라엘 수도 텔아비브의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자 팔레스타인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여기에 이스라엘 군인들이 최루탄과 실탄을 쏘아 참극이 벌어졌다. 과거에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죽음은 흔했다. 이스라엘은 무장정파를 제거한다며 수시로 폭격을 가해 무고한 사람들을 무던히도 죽였다. 이번에도 60명이 희생됐다. 특히 생후 8개월 된 아이까지 목숨을 잃어 세계는 분노하고 있다.팔레스타인의 시련은 제국주의의 산물이다. 팔레스타인의 땅에, 2000년 전 자신들이 살던 땅이라고 주장하는 유대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