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특히 가톨릭에서는 ‘순교’를 매우 거룩하게 여긴다. 조선 후기 많은 교도들이 권력에 희생된 한국에서는 그 정도가 특히 더 심하여 전국의 도로 곳곳에서 ‘〇〇순교성지’라고 새긴 갈색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조선시대에 가톨릭교도뿐 아니라 동학교도와 홍경래난 관련자 등 더 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했던 곳까지 ‘순교 성지’로 선포하여 중앙과 지방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아 ‘성역화’하고 있다. 로마교왕이 방한했을 때에 그곳을 찾게 하고는 ‘교왕이 다녀간 곳’이라는 표지판이나 표지석을 세운 뒤 로마교왕청의 힘을 내세워 ‘가톨릭의
아침에 조간신문을 읽던 안사람이 묻는다. “여보, 슈퍼 위크가 뭐예요?” “나도 몰라요. 인터넷에서 찾아볼까?” 그래서 결국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매우 좋은 한 주’ ‘정점을 찍는 한 주’를 뜻한다고 나온다. 그래서 신문 기사 내용과 슈퍼 위크의 뜻을 대조해보고 나서 “음, 그런 의미로 이 말을 썼구나” 하고 끄덕거린다. 그렇게 끄덕거리다 보니 갑자기 짜증이 밀려온다. “아니, 나 정도의 사람이 이렇게 뜻을 찾아봐야 할 정도면 누가 쉽게 알 수 있을까? 이런 기사는 누구 읽으라고 쓰는 거야!” 이런 짜증이 일어나는 까닭은 몇 번
막말이 뉴스가 되고 있다. 자주 듣다 보니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지만 단연 눈에 띄는 것은 ‘GSGG’라는 국적을 알 수 없는 영어단어다. 누가 봐도 ‘ㄱㅅㄲ’라는 소리로 들리지만 정작 당사자는 ‘국민의 일반의지…’를 운운하면서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같은 정당 출신의 국회의장을 향해 차마 ‘ㄱㅅㄲ’라는, 육두문자는 사용할 수 없으니까 ‘GSGG’라는 아무 말이나 불쑥 내뱉은 것이 아닐까 싶다. 악구(惡口)라는 불교 용어가 떠올랐다. 더럽거나 나쁜 입이라는 뜻이다. 이 이상 적확한 표현을 찾을 수 없다.거짓말은 더욱 심각
‘가버나움(Capernaum)’은 레바논 빈민가를 배경으로 만들어져 2018년 개봉한 영화이다. 수많은 전쟁 영화들은 전쟁터에서 일어나는 비극과 휴먼을 동시에 담고 있다. 그러나 ‘가버나움’은 전쟁터에 남아 있는 가난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의 생지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주인공인 ‘자인’은 실제 시리아 난민 출신 생존자다. 여기서 생존자란 그저 살아남은 자가 아니라 겪을 수 있는 모든 비극 속에서 살아남은 자를 말한다. 자인이 법정에서 “나를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라고 외치며 시작하는 영화는 기적 같은 유엔난민기구의
헌법 제20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제2항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이다.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에 대한 간결한 조항임에도 인류의 전 역사를 관통하는 경험이 녹아 있다. 과거 종교의 국가 지배나 종교간의 갈등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정교분리 조항으로 종교의 정치활동은 제약받는가. 아니 종교는 정치에 이미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불교, 개신교, 가톨릭의 인구가 국민 전체의 반에 해당하는 상황 자체가 이미 정치와 종교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보여준다.불교는 한반도에 들어올 때부터
조선 왕조 제4대 임금 세종은 한국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임금’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한글 창제를 비롯하여 그가 주도해서 시행한 주요 정책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나는 고결하지도 나랏일을 잘하지도 못하오. 하늘의 뜻에 어긋난 점이 분명 있을 것이오. 그러니 내 결점을 열심히 찾아내서 나로 하여금 그 꾸짖음에 답하게 하시오”라며 신하들에게 자신의 허물과 잘못된 정책을 비판해 달라는 기록(‘세종실록’ 7년[1425] 12월8일)은 ‘세종이 왜 훌륭한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그러나 즉위
전국비구니회·로터스월드의 동남아 사찰 긴급지원(법보신문)을 보면서 감사‧감동과 더불어 안타까움이 일었다. 세계에서 불교국가라고 할 수 있는 나라가 얼마나 있는가? 한국과 일본 대만 등의 불교가 그래도 상당한 교세를 가지고 있는 다종교 국가를 제외하면 동남아의 여러 국가와 몽골이야말로 진정한 불교국가라 불릴 수 있는 나라들이다. 그런데 그 불교국가들이 전반적으로 정치적‧경제적 어려움 속에 놓여 있고, 그것이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극한의 위기 상황에 빠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캄보디아 같은 나라는 킬링필드의 상처로 사원과 승려 체제 자
며칠째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낮에도 덥고 밤에도 덥다. 어제도 열대야로 밤잠을 설쳤다. 무더운 여름날이면 어머니가 해주시던 등목이 그립다. 갓 길어 올린 우물물 한 바가지는 얼음물처럼 시원했다. 머리 위로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던 무수한 잔별들이 까만 밤하늘을 몽환적인 분위기로 만들었다. 은하수였다. 이름 모를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밤새도록 요란했다. 더위를 잊으려고 잠시 유년으로 가는 타임머신을 타봤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후면 부엌쪽이 암반을 깎아낸 경사면 위에 서 있는 구조여서 뒤에서 보면 정면의 출입구보다 2~3층
내가 5살 때부터 키워온 남자아이가 벌써 22살 전형적인 이대남(20대 남성을 줄여 이르는 말)이 됐다. 이 친구는 여성가족부 산하(이하 여가부)기관에서 일하는 내게 불만과 존경의 마음이 반씩 있다고 말한다. 불만은 스님이 하는 일의 정책이 너무 ‘허접’하고, 양성보다는 여성을 위한 편향적 정책이라는 오해가 깔려 있었다.요즘 정치권에서는 여성가족부 폐지론을 주장하고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성가족부는 폐지돼서는 안 된다. 여론조사나 다수결로 이를 결정해서도 안 된다. 우리나라 여성정책은 1995년 ‘여
인터넷에서 증강현실을 찾아보니 인터페이스, 3D 가상공간이 나오고, 이것을 이해하자니 프로토콜, 마커 인식이라는 말이 나오며 다소 과장하자면 무한에 가까운 새로운 용어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이것을 언제 다 이해하나라는 현애상(懸崖相)이 생긴다. 그럼에도 새로운 세계를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의 세대는 실제와 가상현실을 자유롭게 왕래하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가상공간 체험을 하게 되었다. 어떤 회사가 만든 프로그램이었는데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화려한 공간에 넋을 잃고 말았다. 마치 정토계 경전이나 ‘화엄경’
코로나19 문제로 온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불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계도 예외가 아니지만 사태가 시작된 지 2년에 가까워지면서 여기에 익숙해졌는지 이젠 이 ‘비정상을 정상’으로 여기는 분위기까지 엿보인다. 한편으로는 너무 심각하게 여기며 우울증을 앓지 않는 것이 다행스럽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이 굳어지면 우리 사회가 너무 삭막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이 상황은 전 세계 사람들이 다 함께 맞이하는 것인데 불교계만 걱정할 필요가 있느냐?”며 ‘무대책이 최상의 대책’이라며 태평한 사람들도 많지만, 정말 그럴까. 사람들
출정식이다, 출마 선언이다, 정치권이 뜨겁다. 거기다 언론의 선정적 까발리기와 폭로까지 곁들이니 국민은 참으로 갈피를 잡기 힘들다. 얼마 동안 국가의 품격을 결정하고 국가 운영의 방향타를 정하는 일을 앞두고 정신 똑바로 차리려고 애를 써야만 하는 상황이다. 이런 때라면 당연히 우리 불자들도 정치적 의식을 점검하여, 현실의 정치에 대한 올바른 관점과 태도를 세워야 할 것이다.혹시 불교는 초세간적인 종교이기에 정치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참으로 불교의 본질에 대한 잘못된 이해요 편견일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인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