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10년간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둘이서 합심하여 자영업(마트)을 시작했다. 워낙 시간에 얽매이고 중노동에 버금가는 일이라 힘들었지만 성실하게 일한 결과 빠르게 안정되며 보람이 있었다. 한참 상승세를 타고 있는데 건물주가 가게를 비워달라고 하여 마음의 고통을 겪었다.생업 탓에 자녀 못돌봐무겁던 맘이 수행 인연대비주독송이 긍정의 힘50만독 회향…10년 결사이후 몇 차례 더 가게를 하는 동안 규모를 키우고 동업을 하면서 그 뒷감당을 하느라 힘들었고 무엇보다도 가게에 얽매여 중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에게 부모노릇을 못한다는
지난해부터 주말마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간병인 활동을 하고 있다. 병원에서 매주 아프고 힘들어하는 환자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환자들의 쾌유를 위한 기도를 해야 되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게 되었지만 구체적인 기도를 시작하진 못했다. 집에서는 매일 아침마다 108배를 하면서 ‘일과수행’을 하고 있었지만 절을 할 때 환자들을 위한 염원을 보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주말 간병인 활동하면서환자들 위해 막연한 기도암투병 시누이 안타까워자비도량참법 알고 발심대광명사에서 자비도량참법 기도를 입재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은 것은 지난해였다.
누구보다도 건강을 잘 챙겨왔다고 자부했다. 평생 아침에 일어나면 30분 이상 스트레칭을 해왔으며, 담배 끊은 지 15년. 술을 입에 안댄지가 4년이 되었기에 장담할 수는 없다고 하지만 이정도면 그래도 팔순 때까지는 큰 병 없이 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스스로 만족하고 살아왔다.퇴행성경추로 병원 치료투병 중 공생선원과 인연‘이뭣고’ 참구하며 수행고통 소멸에 정진 발원그런데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왼쪽 등 중간쯤에 뜨끔뜨끔한 통증이 느껴졌다. 피곤할 때 나타난다는 ‘담’이겠거니 했다. 그전에도 두어 번 있었던 일이라 또 ‘그놈이 왔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마음공부와 많은 인연이 닿았다. 사춘기 때부터 종교생활 한답시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그래도 텅 빈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친정어머니의 간곡한 청으로 서른 즈음이 돼서야 부처님과 인연이 닿았다. 부처님 법과 만난 그 순간, 채워지지 않았던 목마름이 해갈됐다. 마음공부를 향한 수행이 불붙기 시작했다.어머니 청에 불교 인연남편 사업실패로 고통법륜 스님 말씀에 평안진언을 염송하며 사유처음엔 절이었다. 무조건 했다. 108배부터 하루 1000배씩 100일, 한 달에 몇 번 씩 3000배, 5000배, 1만배&he
오늘도 그 애들이 있을까. 언제부터인가 그 애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마음속에서 불쑥 올라온다. 사이좋은 고라니 두 마리. 새벽기도를 갈 때마다 그 애들은 절 입구에서 날 기다린다. 그리고 내가 나타나는 순간 쏜살같이 산속으로 사라진다. 추울 땐 어떻게 사는 지 봄이면 또 볼 수 있을까. 새벽 4시 사뭇 궁금해지는 마음 추스르며 법당에 들어선다.낯가림으로 못가던 절 불교 공부하면서 출입 매일 ‘금강경’ 독송하니웃음바이러스 절로 퍼져일상이 된 기도. 이렇게 어떤 절이든지 법당으로 선뜻 들어설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1년에 몇 번 정도
친정어머니는 불자였다. 독실했다. 하지만 그 옛날 기복신앙으로만 절에 다니셨다. 그래서 매사 제한이 많아 난 도리어 불편함을 느꼈다. 그런 문제들이 쌓이다보니 불교를 싫어했고, 그런 이유로 초등학교때 엄마 몰래 교회에 다녔다.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집 앞 교회에 다니면서 사회봉사활동도 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교회에 보냈다.그렇게 열심히 하던 신앙생활도 무뎌져 갔다. 어느 날 회의를 느끼게 됐다. 내가 꿈꿔왔던 참 종교인이란 희망은 사라져갔다. 허무했다. 그때부터 난 다시 무신론자로 돌아섰다. 그저 바른 삶만을 고
부처님께 기도를 드렸던 기억을 더듬어보니 13년 전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큰어머니 권유로 진주의 한 사찰에서 사십구재를 지내면서였다. 이후 10년 간은 기억이 없다.과도한 업무로 디스크아내 따라 백련암서 절신기하게 통증 사라져아내와 3년째 3000배3년 전 어느 날, 아내는 평소 함께 하던 도반이 사정이 생겨 기도를 못 가게 되었으니 포항에서 해인사 백련암까지 운전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내의 운전 실력을 알던 터라 약속을 할 수밖에 없었다.법명이 지혜월인 아내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백련암에서 3000배 기도와 아비라 기도를 해
2013년 11월24일, 금강경 간경을 만독했다. 지금까지 날 돌아보면 부정적인 마음이 많았다. 가족 중에서도 특히 엄마와는 물과 기름 같은 뭔가 모를 그런 거리감과 서운함이 있었다. 일을 하면서는 일복이 참 많아 일에 치였었고,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으면서도 지나고 보면 이용당하곤 했다.허우적거렸던 상황들이 너무 싫었다. 가족 간이든 스스로든 밑이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삶 어느 곳에서든 뭔가가 꼭 새어나가는 모양새였다. 그런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절에 다니기 시작했고 그러다 금강경을 만나 공부하게 됐다. 공부를 많이 하면
지난 60년을 무엇하며 살았나. 되돌아본다. 늘 쓸데없는 망상과 생각 속에 사로잡혔다. 언제나 욕망, 증오 등 부정적인 행동으로 스스로가 고통 받았다. 좀더 정확하게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했다. 또 주위 인연에 집착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며 화냈다. 자만심과 열등감을 오가며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살았다. 항상 내면에서 불 같이 일어나는 것들과 싸웠다. 아니다. 싸우지 않고 불과 같이 일어나는 마음들에 편승해왔다.쓸데없는 망상 사로잡혀욕망·증오로 고통받아부정적 생각 알아차리며 내려놓기 반복하자 행복밖으로 보이는 모습과 내면은 달랐다
나는 본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권사였던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녔었다. 결혼 후 살림만 하고 있던 차에 지인의 소개로 연꽃모임 이대원성 보살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때부터 불교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대원성 보살은 그때 겨우 서른 살을 갓 넘은 젊은 나이였다. 그러나 너무도 열심히 불교활동을 하며 절에 다니는 대원성 보살을 보면서 신기함과 호기심으로 따라 다녔다. 우연은 운명이 놓아준 다리였다.사경하고 보시하던 도반대원성보살 모습에 감화본받고자 법화경 사경힘든 시절을 극복한 힘우연 아닌 인연으로 부처님을 믿게 됐고 큰스님들 법
반복된 일상에 회의감불교 접하고 활력 느껴참법배워 새 기운 얻고늘 참회하는 마음 발원 늘 호기심이 많았던 내가 불교를 접하면서 나의 삶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일상에 매몰돼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된 삶에 회의를 느꼈지만 불교를 공부한 뒤로 하루하루 삶이 달라졌다. 절에서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또 스님들로부터 감로수와 같은 법문을 듣는 것은 세상의 어떤 취미보다 재미있었고 또 삶의 활력소가 됐다. 또 (사)미소원 장유정 이사장을 따라 봉사활동을 하며 새로운 희망을 가꿔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미소원에서 진행하는 자비도량참법 기도에 참가했다. 지도법사 희선 스님의 지도에 따라 5일간 호궤합장을 하며 전생에서부터 이어온 악업을 끊고 새로운 선업을 지을 것을 발원했다. 예전부터 꼭 자비도량참법 기
20년간 참선 했지만일상선 여전히 고통지관수행 시작하고는오욕락 견딜 힘 생겨 대학교 1학년 중간고사 때 문제를 다 풀고 좋은 성적을 받으리라 생각하며 기분 좋게 일찍 시험장을 나왔는데 나중에 들려온 얘기 한마디에 내안에 있는 모든 에너지가 분노, 실망으로 끓어올랐다. “뒷장 문제 어땠어?” 뒷장 문제를 놓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별문제 아닐 것 같은데 그 당시 너무 화가 나고 괴롭고 힘들었는데, 그렇게 괴로워하다가 궁지에 몰리니 나도 모르게 기숙사 침대 위에 반가부좌하고 가만히 앉게 되었다. 그런데 참선과 인연이 있었던지 “이렇게 분노하고 실망스러운 지금, 참나라고 할 수 있는 나는 아무 흔들림이 없지 않는가?” 하고 스스로 되뇌자 그 순간 괴로움이 봄눈 녹듯 사라졌다. 몇 시간의 참담한
일상 스트레스 고민하다성수스님 친견하고 발심매일 700배 실천하면서하심 배우고 행복되찾아 ▲대오·45 매일 700배를 꼬박꼬박 실천하며 하루일과를 마무리한다. 직장생활을 하며 매일 절을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지난 2012년 입적하신 활산 성수 스님이 내려주신 평생의 숙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원력으로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몸을 다독이며 묵묵히 절을 한다. 성수 스님은 “선지식을 만나면 반은 된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그대로 실천할 때 비로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돌이켜보면 성수 스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스님의 생전 가르침을 늘 가슴에 새기며 하루하
삶의 무게에 괴로움 겪다참법 수행 실천하며 반성도반들과 봉사모임 이끌며인생의 행복 비로소 느껴 ▲자비심·59 늘 맞는 일상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설레고 두근거린다. 부처님가르침에 귀의해 35년간 수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스승 희선 스님을 만나 자비도량참법기도를 5일간 하고, 회향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마음작용의 인과를 따라 지옥과 극락을 두루 살펴보면서 지난 시간들의 어리석음에 몇 번이나 울컥하며 사람으로 태어난 감사함에 눈시울이 젖었다. 잘못이 있으면 참회하고 뉘우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실제로 그 일을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웠다.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는 것은 곧 자기를 부정하고 죽이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늘 나만 중심으로 두다가우연히 접한 자비 명상에자만 버리고 이타심 배워매일 변하는 삶보면 행복 ▲지원·50 2006년 여름 허리디스크로 한 달간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한 법우가 잡지 하나를 들고 와 볼 것을 권했다. 병실에 갇혀 답답한 일상을 보내던 차에 그 잡지를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그런데 잡지의 한 쪽 귀퉁이에 마가 스님이 지도하는 자비명상에 대한 소개와 함께 지도자교육과정을 모집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오래전부터 자비명상에 대한 관심이 컸던 차에 꼭 수업을 듣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서둘러 퇴원을 하고 첫 강의부터 동참하였다. 첫날부터 자비명상 수업은 나에게 큰 감동을 줬다. 상담이론 수업을 들을 때는 마치 부처님의 말씀을
공주 갑사서 절수행 접해6년째 매일 108배 실천몸과 마음의 건강 되찾고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워 매월 둘째 주마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열리는 3000배 철야정진에 참여한지도 이제 2년이 되었다. 사실 나는 3000배의 반 정도밖에 못하지만 5~6년 전부터 거의 매일 108배를 해온 터라 지인들은 날더러 대단하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항상 난감하다. 절 수행은 9년 전 공주 갑사 템플스테이에서 처음 접했다. 법당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너무 편해서 오래 앉아 있고 싶었지만 무릎과 고관절이 아파서 힘들었다. 차라리 절을 하며 움직이는 것이 편하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것이 절 수행이었다. 그런데 절을 하고나면 복잡하고 답답했던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온 몸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아내의 권유로 불교 입문사업하다 폐암으로 수술자비명상 접하고 삶 변화육체·정신 건강얻어 행복 불교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은 독실한 신심을 가지고 있었던 아내 때문이었다. 아내는 불교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해박한 지식도 가지고 있었다. 의정부가 고향이었던 아내는 대학교 때 불교학생회 동아리활동을 했고, 절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신심을 키웠다. 그런 아내를 따라 휴일 날이면 함께 절에 다니기도 했지만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았다. 아내가 법당에 들어가면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빨리 나오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한 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아내를 볼 때면 불만이 적지 않았다. ‘사업으로 바쁜데 꼭 절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나. 그 시간이면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 사업 이야기를 나누면 인
내면성찰 위해 불교 공부스승 만나 위빠사나 접해7년 수행하며 삶의 변화하루하루 행복이 밀려와 뜨거운 누룽지 숭늉을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머물고는 ‘아, 뜨겁구나, 고소하구나’라고 알아차린다. 뜨거운 숭늉은 목젖 아래로 넘어가고 밥풀은 혓바닥에 남아 머문다. 다시 그것을 꼭꼭 씹어 단맛으로 삼킨다. 시큰하게 익어버린 얼갈이 배추국물김치를 한 가닥 입에 넣고 씹어 삼키고는 색, 수, 상, 행, 식으로 알아차려 본다. 비단 아침 공양만일까. 일상의 모든 순간이 환경에 의하여 찰나 생 찰나 멸의 반복과 순환이라는 사실, 이것을 일상에서 여실지견으로 알아차리게 된 것은 50대 중반이었던 7년 전부터다. 아이들이 모두 성장해 각자의 삶을 찾아 사회로 나가게 되면서, 문득 이제야 비로소 나를 찾고 내
남편 사업실패로 불화우연히 절수행 접하고매일 108배 참회하자삶의 행복·희망 되찾아 불교에 입문한지 어느 덧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부처님 법을 만난 것에 감사하며 사찰에 다니면서 기도와 수행을 하고, 늘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발원하고 있다. 부처님 가르침을 만난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20년 전 우리 가정은 늘 한켠에 어두운 그늘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남편의 거듭된 사업실패로 부부간에 다투는 일이 많았고, 그럴 때면 아이들은 불안에 떨었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에 아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남편과의 불화는 잦아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래서는 안 되겠다. 나라도 중심을 잡지 않으면 아이들이 잘못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우연히 백봉거사 접하고청년불자 1호 인연 맺어장좌불와 용맹정진 체험새말귀 수행 확산에 주력 1967년 대불련 법회에 참석하면서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여름방학 때 해인사에서 개최된 대불련 수련대회를 통해 사찰에서의 수행을 체험했고, 법회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겨울방학 때 직지사에서 열린 대불련 동계수련대회를 마친 뒤 도반들과 해인사 백련암에서 1주일 2만배 기도를 마치고 성철 스님을 친견하기도 했다. 이후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을 듣기 위해 해인사 원당암에서 머물던 어느 날, 우연히 한 일간지에 나온 백봉 김기추 거사님의 금강경법회 기사를 보게 되었다. 당시 재가자가 법문을 하는 경우가 흔치 않았던 탓에 몹시 궁금해 정릉 보림사에서 백봉 거사님의 금강경법회에 직접 참석하게 되었다.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