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목요일은 한 주의 마감으로 바쁜 날일 수 있다.적어도 내게 목요일은, 행복한 요일이다. 바쁜 직장생활에도 목요일만큼은 불교대학으로 공부하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기초반이 끝나고 경전반에 등록할 때만 해도 남편은 직장일도 바쁘고 힘든데 공부까지 한다고 싫어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지금은 목요일 오전이 되면 지각하겠다며 먼저 전화해주고, 힘들어서 빠지고 싶다고 넋두리를 할 때면 오히려 독려해주는 남편이 요즘은 너무 고마울 뿐이다.내가 불교대학에 다닌 후부터 우리 부부의 신심은 더욱 깊어졌다.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주말마다
서운한 감정 알아차리기를 수차례. 그 서운한 감정은 그 친구의 잘못이 아니라 내가 만든 집착의 결과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수행을 반복하던 어느 날,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통화를 하며 나의 감정을 지켜보았다. 그 친구에게 가졌던 서운한 감정은 눈 녹듯 사라지고 없었다.이렇게 명상수행을 거듭하면 할수록 의사소통은 물론,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회복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항상 나로 인한 조건의 대상에서 떨어져서 보게 되니, 어떤 경계에 걸림이 있는지를 온전히 만나게 되므로 훨씬 자신의 마음
불교 인연은 참 오래되었다. 25년 전으로 기억된다. 첫 딸이 아직 어릴 때, 몸이 약한 아기가 안쓰러워 이런저런 용하다는 방법을 찾아 헤맸다. 굿을 하기도 했지만, 이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도도량을 찾아 열심히 기도해 보라는 주변 권유에 찾아간 포교당에서 아기를 업고 그저 기도하며 매달렸다. 어느새 딸은 건강을 되찾았고, 이것이 부처님의 가피라 여기며 절에 더 열심히 다녔던 것 같다.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답답함이 있었다. 그저 소원을 빌기만 하는 신행 생활이 과연 올바른 불자의 삶인지 의문이 생겼다. 불교대학에 문을
목표를 세우고 한 발 한 발 하루씩 다가가니 어느덧 11월14일 회향일이 되었다. 회향법회가 진행되는 동안 자꾸 눈물이 흘렀다. 가장 먼저 누워만 지내던 모습에서 벗어나 매일 꾸준히 수행을 실천한 자신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불과 21일 동안 이어진 ‘금강경’ 독송을 통해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이어졌다. 처음에는 입도 잘 돌아가지 않고 놓치기도 수십 번 반복되던 시간이 떠올랐다. 어느덧 주지스님께서 앞에서 경전 독송을 리드 해 주시면, 눈으로도 따라 읽고 입으로도 소리를 내며 읽을 수 있게 된 사실이 정말 기뻤다.무엇보다 수행 기간
나는 ‘동지보살’이었다.내가 ‘동지보살’인 이유는 지난 2006년 1월 인도여행 중 어느 스님이 붙여 준 별명이기 때문이다. 이따금씩 절에 다닌다는 내 얘기를 듣고 붙여 주신 것이었다.불교 신행 경력은 25년 정도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렇다 할 수행을 해 본 기억은 없었다. 법명은 2004년 경주 불국사에서 받았다. 법명을 말하면 많은 분들이 뜻을 물어본다. 처음에는 법명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지금 법명을 돌아보며 그 뜻을 짐작해보면 ‘마음 바르게 쓰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인도여행의
새벽에 눈을 떠서 108배부터 시작하는 하루는 항상 새롭다. ‘금강경’ 독송과 다라니, 도반의 소개로 시작한 ‘법화경’ 사경까지 이어가고 있는 요즘이다. 지금까지 항상 해오던 수행에 절수행이 더해지고 마지막에는 사경까지 하면서 마무리를 하다 보니 1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다양한 수행을 경험한 덕분일까. 수행마다 가치와 장·단점을 경험하게 된다. 보통 독송이나 주력은 수행을 하면서 수마가 찾아올 때가 많다. 그런데 절을 하면 오히려 의식이 맑아짐을 느낀다. 예전에는 아침에 일과수행을 못하면 저녁에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요즘은 아
그날도 변함없이 딸을 카시트에 태우고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청소를 마치고 친구의 일정이 궁금해서 전화를 하니 절에 있다고 했다. 언니를 따라 동네 안의 작은 절에 있다는 친구의 말에 문득 나도 절에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음력 10월 초하루였다. 마침 친구도 대중법회를 본 이후 점심공양 중이라며 당장 올 수 있으면 오라고 제안했다.새벽에 꾼 꿈 생각이 나기도 해서 3개월도 채 안된 막내딸을 업고 절 입구에 들어섰다. 순간 너무 놀랐다. ‘꿈속에서 본 곳이 여기였구나.’ 그날 무심코 친구에게 건 그 전화 한 통화로 부처
아내도 나의 사경 노트를 보고 다시 사경을 하며 불교 공부를 하고 있다. 함께 불교대학을 다니지는 못했지만, 항상 가까이에서 나의 공부를 응원해 주었고, 같이 부처님의 감로수와 같고 여의주 같은 가르침을 사유하는 최고의 도반이 되어 주었다. 이렇게 공부할 수 있게 된 것이 그의 덕택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고맙기 이를 데 없다.수업을 받을 때는 경전 책에 연필로 줄을 치며 한 구절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중요한 문구나 구절은 괄호를 치면서…. 강의를 듣고 집으로 돌아오면 기억에서 잊힐까봐 배웠던 부분을 사경하면서 복습을 하다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부촉을 받고 유마거사를 문병하러 비아리 내성에 가셨을 때, 유마거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잘 오셨습니다, 문수사리여. 오지 않고 오셨으며 보지 않고 봅니다’라고 말씀하시니, 문수보살이 답하시기를, ‘그렇습니다, 거사여. 만약 와 버렸다면 다시는 오지 못하며 가 버렸다면 다시는 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오는 사람은 어디에서 오는 바가 없으며 가는 사람은 이를 곳이 없으며, 볼 것이 있는 사람은 다시는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유마경’에 나오는 내용이다. 위의 구절처럼 불교 공부를 많이 했다고
누군가의 관세음보살이 되어 준 적이 있던가. 스스로를 돌아봐도 딱히 없다.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고, 누군가에게 단 한 번이라도 뜨거웠던 적이 있었냐고 묻던 어느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관세음보살이 되어보기로 했다. 미타선원 행복명상 커리큘럼에 있는 많은 프로그램 가운데 유독 “관세음보살 되어주기”가 감동이 컸다.누군가를 가르치려 하지 않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들어주면서 진심으로 껴안아 주기를 배웠다. 이전까지 관세음보살이라는 존재는 멀고 아득한, 다가갈 수 없는 이상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전혀 관점이 달라졌
그 즈음이었다. 보물섬을 재발견한 시기가. 3년 전, 무언가 공허함을 느낄 때였다. 오랜만에 친구와 용두산공원을 찾았다.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여기저기 시선을 뿌리고 산책했다. 비탈진 길을 내려오던 참이었다. 하염없는 눈길이 닿은 곳은 미타선원이었다. 마치 도심 속에 섬이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줬다. 이 도량이 내 인생의 보물섬이 됐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아차렸다.사실 나는 평소 나름대로 수행과 기도를 해왔다고 자부하는 재가불자였다. 누군가에게 내세우지 않았지만 줄곧 불경도 읽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무언가 채워지지
“마음대지가 텅 비면 구름장이 열리고, 해가 나오듯 지혜의 햇살이 일체 공덕이 저절로 나타난다.”백졸 스님께서 능엄주 주력수행자들과 함께 낭독하길 좋아하시는 구절이다. 마음대지가 텅 빈다는 것은 마음에 편견, 착각, 유무, 선악 등이 없어진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능엄주와 같이 긴 주를 외우는 어려운 기도를 하는 것은 이러한 집착, 편견 등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어떠한 편견이나 착각이 없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보는 정신능력을 갖게 되는 것인데, 그것은 마치 인공위성에서 360도로 지구를 보는 차원이라고 말씀하셨다.능
누구나 살면서 겪는 마음의 굴곡이 있을 것인데, 나 또한 나의 입장에서는 깊은 마음의 굴곡들을 겪었다. 감정의 기복이 심했는데, 우연히 광명진언 책을 구해서 읽고 책에서 본 대로 수행을 했다. 어느 날 아이가 병이 났고, 대학병원에서 차도가 없어 근거를 알 수 없는 불안감과 공포가 밀려왔을 때, 집 근처 사찰의 스님께 무조건 매달렸다.스님께서 기도를 올려주겠다 하시고 병원을 추천해 주셔서 옮긴 뒤 아이가 나았다. 그럼에도 마음의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던 중, 새벽기도를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새벽 4시에 일어나 30분 뒤에 시작하는
적어도 내게 기도는 결코 힘든 고행이 아니었다.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수행은 삶의 활력이 되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이름도 없이 시작된 자모회 기도반에 홍법사 주지 심산 스님이 ‘세향공덕회’라는 이름을 주셨다. 어느덧 나의 기도도 1200여일을 이어가게 되었다.그리고 세향공덕회에서 만들어진 또 하나의 수행반, ‘세향 10만배 참회정진’. 100일씩 여러 수행법을 두루 거치면서 절수행의 장점과 효과는 익히 경험했기에 10만배 참회정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반가웠다. 절수행의 장점은 누가 뭐래도 운동이 된다는 점이다.
딸은 유독 아토피가 심했다. 도심 속에서 고민은 또 있었다. 두 남매를 키우는 과정은 층간소음으로 인해 이웃집과의 끊임없는 다툼으로 이어졌다. 아토피 치유, 그리고 두 아이가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공간이 절실했다. 우리 가족은 도심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여러 장소를 물색한 끝에 부산 외곽 한적한 마을로 이사했다. 그리고 그 마을에서 찾아낸 보물 같은 도량 부산 홍법사.어쩌면 불교는 나의 삶 가장 밀접한 곳에 있었는데 그동안 너무 외면하고 살아왔다. 어린 시절에는 할머니 손을 잡고 절에 갔었고, 친정어머니는 비록 재적사찰은 없어도
나는 초등학교까지만 다녔다.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은 검정고시로 패스했고 4년제 대학은 학점은행제로 통과했다. 대학원은 동아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를 다녔다. 그리고 국가기술자격증 10개를 취득했다.타고난 약점과 타고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나의 강점으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그 노력은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계속될 것이다. 두려움이 없고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고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존감을 손상시키는 것이라면 절대 허용하지 않은 채 선을 긋고 살아왔다.그러다보니 여러 수행단체를 찾아다니며
일체의 모든 존재는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인간은 불성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존재이다. 나는 부산 서대신동에서 독서실을 운영하고 있던 중 우연히 아주 두꺼운 노트를 얻게 되었다.거기에 ‘반야심경’을 하루에 한 번씩 사경을 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알아서 또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쓴 것이 아니라 그냥 노트가 생겼기에 또 옆에 마침 ‘반야심경’ 책이 있기에 ‘반야심경’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아무 목적 없이 사경을 시작했다. 처음 사경을 시작할 때는 한문을 잘 몰라서 한자 한자 되새겨가며 썼기에 ‘반야심경’
부산 홍법사 어린이청소년불교교육연구소를 이끌고 계신 김경숙 소장과 인연이 닿았다. 자모회 기도모임 ‘세향기도반’에 참여했다. 지금은 어머니들이 김경숙 소장과 함께 원력을 모아 ‘세향 십만배 참회정진 기도반’에서 매일 108배 절수행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렇게 삶을 변화시키는 특별한 계기가 복처럼 다가왔다.아직 기도나 수행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엔 너무 부족한 나 자신이다. 그렇지만 천일 동안 이어지는 십만배 참회정진 기도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가 닿은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하루 108배는 사실 크게 어렵진 않다. 하지만 천일 동
“대행 스님! 아미타불~”3년 전 2015년 부처님오신날. 7살 아들이 부산 홍법사 동자승 단기출가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우리 가족에게는 잊을 수 없는 그 사건 아닌 사건이 계기가 되어 내 삶에도 즐거운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21일간 아들을 보지 못하면서 품고 있던 미안함과 설렘, 그리움 그리고 만난 아들을 대행 스님이라 부르던 그 날, 나의 마음속에 가득했던 환희심. 지금도 그 날을 생각하면 감동과 눈물이 교차한다. 막연히 불교를 가깝게 여겼지만 선뜻 와 닿지 않았던 종교와 수행. 그 두 단어가 지금은 내 삶의 큰 이정표가 되
누군가는 기적을 영험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오늘도 크게 실수하지 않고 변함없이 부처님 전에 마지공양 올릴 수 있는 지금이, 나에게 존재하는 어떤 것보다 큰 영험이다.스님께서는 능엄주를 계속 지송하면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 삼세가 흘러도 틀리지 않을 선택과 행동을 한다고 하신다. 얼마나 사건을 바로 보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리라. 남들은 세월 속에 묻어나는 경험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많이 보이고, 이해될만한 일로 다가온다. 아마 능엄주를 수지 독송하는 모든 수행자들이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