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정토 봉화사를 향해 아미타 부처님께 108배를 올린다.나는 원래 구경을 다녔던 사람이다. 무엇인가 부족한 사람 같아 선뜻 불교에 다가서지 못했고 불법이 너무 어렵고 무슨 뜻인지 몰라 법문을 따라 읽기에 급급했다. 그런 이에게 가을 들판의 햇살처럼 하동 봉화사 주지 원상 스님이 나타나셨다.친정아버님의 49재 인연으로 스님의 법문을 듣고 또 듣게 되었다. 연이어 어머님의 49재까지 지내다 보니 봉화사와의 인연도 깊어지며 불심도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부모님께서 내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봉화사는 친정같이 편안하고 부모님같이 존경스
유튜브불교대학 시청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처음 들어오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불교의 4대 상징 꽃’이라는 주제로 말씀드리고, 이어 ‘연꽃의 여섯 가지 큰 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먼저 ‘불교의 4대 상징 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불교의 꽃이라고 하면 첫 번째는 당연히 연꽃입니다. 연꽃은 중요해서 연꽃 하나만 갖고도 며칠 동안 설명해도 될 정도입니다. 연꽃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두 번째는 불두화입니다. 불두화는 4월 전후 부처님오신날 즈음 피는 꽃입니다. 꽃말은 ‘제행무상(諸行無常)’입니다. 불두
사람들은 보이는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들리는 것을 듣는 것이 아니라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인식하고 싶은 것만 인식한다.일반적인 말로 하자면 모두 지극히 주관적인 삶을 살 뿐이다. 가끔 “객관적으로 보면…”이라며 말하는 사람이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우리는 객관적인 관점에서 말한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보편적인 다수의 의견으로 위장해서 타인을 설득하고자 한다.불교는 참 편안하다. 무엇보다 억지 주장을 하지 않는다. 억지 주장을 하
30대 말 정법사에 와서 불교대학에 입문하고 처음 다라니기도에 동참한 날을 떠올려본다. 지금은 대작 불사로 웅장한 법당을 갖추었지만, 그 당시에는 작은 법당 그리고 마당까지 가득 불자님들이 앉아서 다라니기도에 동참했다. 그 모습을 보는 것으로도 환희심이 나 처음에는 계속 동참한다는 생각보다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거나, 가족 중 누군가 시험을 칠 일이 생기면 꼭 다라니기도에 동참하겠노라고 발원했다. 한 달을 기도로 시작하면 그렇게 마음이 편안했다. 3일의 기도를 잘 끝내고 나면 신심과 환희심으로 충만해졌다. 물론 기도의 환희심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또다시 산문을 닫았습니다. 참가자들에게 비상 연락을 하고, 법당 가득가득한 행사 물품과 음식 등을 정리하느라 혼이 빠질 지경이었지요. 마침내 백중기도까지 혼자 올리게 되었습니다. 허탈한 마음, 분노가 일어나는 것과 동시에 잊고 있었던 한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로프라라는 티베트 스님은 중국 경찰에 체포되어 18년 동안 감옥에 갇혀있으면서 심한 고초를 겪었습니다. 후에 석방되어 달라이라마 존자를 만났습니다. 달라이라마 존자는 고생이 많았다며 위로하자, 스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들을 미워하고, 자비심을 잃게 될
백중은 조상님들을 위로하고 조상님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입니다. 또한 나를 위하는 기도 날이기도 합니다. 이런 날을 맞이해서 조상과 나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우선은 부모님, 조상님 나아가 주변 사람들의 은혜를 알고 갚는 것이 훌륭한 일이겠지요. 그러면 우리는 왜 은혜를 알아야 될까요. 찰스 로퍼(Charles Roper) 박사가 쓴 ‘나는 들었다’는 시의 일부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나무가 하는 말을 들었다. 우뚝 서서 세상에 몸을 맡겨라. 너그럽고 굽힐 줄 알아라./ 하늘이 하는 말을 들었다. 마음을 열어라
푸른 소나무, 붉은 꽃 토해 내는 배롱나무, 야자수 종려나무 등이 어우러진 도량은 이국적인 정원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뿐인가. 실향나무, 은행나무, 벚나무 등 14종 500여 그루의 나무들이 내어준 숲길은 자연스레 사색의 세계로 이끈다. 수년 동안 자신을 괴롭혀 온 망념이라도, 곳곳에 배치된 의자에 앉아 숨 한 번 길게 내쉬면, 스쳐가는 바람에 떨어져 나갈 듯싶다. 시민들이 이 절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다.한적한 동산의 정취에 빠져들 즈음 높이 45m의 원형 대웅보전을 토대로 자리한 21m의 아미타 대불이 ‘이곳은 절’이라고 설파
28대 진덕여왕대(647〜654)는 선덕여왕 말년 일어난 비담의 반란을 진압한 것을 계기로 군사권을 장악한 김유신이 고구려와 백제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한 혈투를 계속하였고, 친당정책의 외교권을 장악한 김춘추는 당과의 군사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삼국통일의 준비를 마치게 되었다. 그리고 대내적으로 정치와 문화의 개혁을 추진하여 다음에 등장하는 강력한 중대왕권의 기반을 조성하였다. 진덕여왕대 김춘추가 주도한 정치와 문화의 개혁내용 가운데 가장 중심적인 것은 중앙 행정관서의 정비와 새로운 운영원리의 모색이었는데, 이것은 왕권강화의 차원을 넘어
지난달 다라니 기도를 회향하는 날,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법당에 들어온 소년을 보았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초공양을 올리며 늦은 시간까지 할머니와 함께하는 그 소년을 통해 시나브로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이 떠올라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뭉클함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용솟음쳤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부처님과 인연 맺은 건 소년과 비슷한 나이 즈음이었다. 어머니의 신심은 어린 나이에도 그 지극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어머니께서는 집에서 먹을 쌀을 사실 때면 늘 한 주머니 정도 되는 양의 쌀을 먼저 떠서 이물질을 세심하게 골라내시고 집안 한쪽에
긴 코로나19 상황이 우리들을 힘들게 하는 것도 모자라 폭염에 이어 태풍까지 고난의 연속입니다. 그간 우리들이 너무 환경을 함부로 사용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습니다. 자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고 앞으로는 더욱 아끼고 사랑하는 삶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행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어느 보살님이 “스님~” 하면서 저를 불러 세웁니다. 걸음을 멈추고 “네, 무슨 일이신지요?”를 물었습니다. 보살님은 기도를 여기저기 올려도 되냐고 질문을 하십니다. 봉은사와 조계사에 아들 대학합격기도를 올려놓았는데 그
불교를 접하고 신행 생활을 이어 온 기간은 10여 년이 되었다. 그동안 나름대로 절에 다니고 기도를 해왔다. 살아오면서 삶이 힘들고 지치는 때마다 불교를 종교로 갖고 있음을 위안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 이상은 나아가지 않는 것 같았다. 무엇인가 무늬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불교 신자”라고 말하는 것도 망설여졌다. 그렇게 불교에 좀 더 깊이 다가가고 싶을 때 대광명사는 부처님의 품 안으로 성큼 손을 내밀어주었다. 도량에 가자마자 참선반에 문을 두드린 것도 생각해보면 참 당돌한 도전이었다. 그런 나를 반갑고 따스하게 맞이
기도하면 정말 이뤄질까? 기도를 많이 한 불자도, 초보불자도 확신이 잘 안서는 분이 많다. 눈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니 믿음이 점점 엷어져 기도하는 불자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자본만능주의 시대이니 어쩔 수 없다고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라 하더라도 일을 많이 해 생산능력이 좋다고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마음의 영역에 있는 아이디어·지식·지혜·운영능력·투자능력 등에 따라 재산의 양이 결정되는 사회이다.기도의 사전적 의미는 절대자에게 소원을 비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불교의 기도는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 있다.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