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에서 나는 언설희론의 습기 혹은 명언종자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보충하려 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습기’ 혹은 ‘종자’라는 은유적 표현이 모호하게 다가올 수 있다. 어쩌면 그 가짜 이름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어떤 환영을 가리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미륵의 후예들에겐 명료하게 보였지만 우리에겐 잘 보이지 않는 어떤 환영들 말이다. 물론, 그들의 체계적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그 이름의 의미가 점점 분명해질 것이다. 그 대신 우리의 인내심을 압도하는 생소한 많은 동의어와 파생어를 연쇄적으로 익혀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고려 후기 목은 이색(李穡, 1328~1396)은 ‘목은시고’의 ‘금주음(衿州吟)’이란 시에서 관악산 신방암 주지스님으로부터 만두를 얻어먹고서 만두에 대한 감흥을 시로 읊고 있다.신도가 스님께 공양하는 것이 상례인데(檀越齋僧是故常)/ 속인이 스님의 대접을 받으니 송구한 일일세(山僧饗俗可驚惶)/ 눈처럼 쌓인 만두를 찌니 그 색이 한결 더 하얗고(饅頭雪積蒸添色)/ 만든 두부를 끓이니 그 향기가 더욱 좋구나 (豆腐脂凝煮更香)메밀가루가 아닌 귀한 하얀 밀가루로 빚은 만두였을 것이다. 밀가루로 빚은 하얀 만두를 찌니 그 색깔이 더욱 하얗게
새마을운동은 1970년 4월 박정희 정부가 전국지방장관회의에서 내린 ‘농민, 관계 기관, 지도자 간의 협조를 전제로 농촌자조노력의 방안을 연구하라’는 특별 지시로 조직됐다. 근면·자조·협동의 기치 아래 범국민·범국가적으로 추진되면서, 단순한 농촌개발사업을 넘어 도시·공장·직장 등 한국사회 전반의 근대화 운동으로 확대·발전됐다. 새마을운동은 농촌개발 및 한국사회의 근대화를 촉진했다는 긍정적인 측면들도 있지만, 박정희 정권의 ‘국민국가 만들기’ 정책에 국민을 반강제적으로 동참시켰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의 이러한 부
[1718호 / 2024년 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대승불교 경전보다 초기불교 경전에서 코끼리‧사자‧원숭이‧말‧뱀 등 다양한 축생이 등장한다. 코끼리는 경전에 충직‧충실한 이미지다. ‘법구경’에 코끼리를 주제로 하는 ‘코끼리품’이 따로 있을 정도로 홀로 고고하게 정진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런 것에 기인해 대승불교에서 실천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이 타고 있는 동물이 코끼리다. 부처님께서 코삼비 비구들의 분쟁을 피해 잠시 숲속에 홀로 머물 때, 부처님을 시봉하며 공양 올렸던 동물이 코끼리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코끼리가 홀로 숲속을 거닐듯이’라며, 고고하게 수행할 것을 말씀하고
‘인간은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창구 전북불교대학장에게 이 질문은 오래된 숙제와도 같았다. 질문은 아주 어린 시절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마주하면서 시작됐다. 친어머니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는 재혼했다. 그의 일생을 송두리째 흔든 사건이 벌어진 건 그의 나이 여덟 살 때였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저녁, 새어머니가 문득 방으로 찾아와 말했다. 오늘 삶을 마무리 할 거라고. 이해할 수 없었다. 새어머니와 아버지의 다툼이 잦긴 했지만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 뜻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불과
“신도님들, 법보신문을 꼭 보세요. 다양한 불교 상식도 배울 수 있고 신행과 수행 생활에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조계종 제9교구 팔공총림 동화사 신도회 이달용(법명 금강) 사무처장이 주변 사람들에게 법보신문 구독을 권하면서 하는 말이다. 이 처장은 오랜 세월 불자로 살아왔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어머니 손을 잡고 동화사와 은해사 백련암 마당, 중앙암 돌방구 사이를 뛰어다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때 일에 쫓겨 멀어졌던 불교는 자연스레 그의 삶 속으로 다시 들어왔다.일생의 도반 아내 장혜경(일심행) 불자와 동화사 부도암 동호
“이 도량에서 수행하는 불자들이 사띠(SATI, 알아차림) 수행으로 몸과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성불로 나아가려 하듯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법보신문도 불자들의 목마름과 갈증을 해소하고 고해를 비추는 등대의 역할을 다하기를 바랍니다.”충남 금산 철마산 행복한 마음 수행 도량 용암사(龍巖寺) 무근 스님이 최근 법보신문을 교도소, 관공서, 군·병원법당 등에 보내는 법보시 캠페인에 동참했다. 스님은 2009년 인도 보드가야 사띠 아라마에서 2년 동안 사띠 수행법을 공부하며 정진했다. 이어 전주 참좋은우리절에서 어린이·청소년에게 사띠 수행을 지
태국 아잔 차 스님 전통의 아잔 브람 스님의 제자이면서 테라와다의 비구니를 부활하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던 반테 수자토 스님을 집 근처 커뮤니티 센터에서 만났다. 스님은 자애명상을 가르쳐 주셨고 일상적이거나 심리적인 다양한 질문들을 환영하며 초기불교적 관점으로 답해 주셨다. 내게는 너무나 큰 환희심으로 다가왔다.당시 대안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점심시간이 되면 밥도 대충 먹고 아이들을 피해 식탁 밑에 들어가 명상을 할 정도였다. 한 번은 너무 강렬한 환희심 때문에 잠도 못자고 몸 주변이 커다란 타이어 같은 것에 둘러쌓인 것 같
수보리 어의운하 약유인 만삼천대천세계칠보 이용보시 시인 이시인연 득복다부(須菩提 於意云何 若有人 滿三千大千世界七寶 以用布施 是人 以是因緣 得福多不) 여시 세존 차인 이시인연 득복심다(如是 世尊 此人 以是因緣 得福甚多) “수보리야 네 뜻은 무엇이냐? 만약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를 칠보로 가득 채워서 보시한다면 이 사람은 이러한 인연으로 받는 복이 많지 않겠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이러한 인연으로 받는 복이 대단히 많겠습니다.”부처님께서는 애초에 마음은 없다고 하시고, 마음이라고 하면 이미 마음이 아닌 것이라고
붓다의 법언이 중국에 전래된 초기에는 남쪽의 오음(吳音)과 북쪽의 한음(漢音)이 교차해 오다 수·당대에 이르러 통합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 무렵 중국 범패의 핵심 인물은 석도안(釋道安, 312~385)이었다. 도안은 동진(東晉) 16국 시기에 상산(常山) 부류현(현 기주 부류성촌·冀州 扶柳城村)에서 공맹을 섬기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가 세상을 떠나 사촌 공(孔)의 집에서 자란 그는 얼굴이 못생겼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도안의 초상을 보면 안면이 우락부락하고, 후베이성에 세워진 동상 또한 비슷하다. 그러나 머리가 좋아
당나라 정관 22년(648)에 태자 이치(李治, 훗날 고종)는 돌아가신 어머니 문덕황후를 추념하며 옛 절터 위에 13개 원(院)에 1897칸의 방을 갖춘 대사찰을 세웠다. 이곳이 현재에도 시안시 남부에 남아있는 대자은사이다. 사찰명을 “대자은사(大慈恩寺)”고 하였으니, 곧 자애로운 어머님의 은혜를 생각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정작 자은사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정관 19년(645)에 현장(玄奘) 법사가 17년간의 서역 구법을 마치고 장안에 돌아왔다. 떠날 때는 노쇠한 말 한 필에 의지한 채 혈혈단신으로 몰래 국경을 넘는 신세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