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까지 언급하며 과도한 방위비분담금을 우리 정부에 요구한 것에 대해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가 “미국의 요구는 한국의 안전을 지키는 분담금이라기보다 미국의 패권을 유지, 확장시키기 위해 한국의 국가예산을 폭력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설득력 있다. 냉전이 종식될 즈음 미국은 세계의 안전을 위한 동맹국들의 기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공동방위’ ‘책임분담’이라는 용어가 수면 위로 급부상했고, 2010년대 들어서서 ‘부담분담’이라는 용어로 대체됐는데 미군의 해외주둔에 따른 비용을 동맹국
전국비구니회 12대 회장 본각 스님이 취임했다. 취임사를 통해 “신중하되 주저하지 않는 발걸음으로 비구니승가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일성이 인상적이다. “소통과 화합, 그리고 협력이라는 가치가 비구니승가에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주기 바란다”는 당부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아울러 안정적인 수행환경 조성을 위한 복지체계 보완, 비구니 승가 도약을 위한 인재육성, 사회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지향점 제시, 사찰음식 세계화와 비구니 승가 역사조명 등을 약속했다. 불교계가 전국비구니회에 요구하
조계종 백년대계본부가 종단과 한국불교의 중장기적 미래설계를 위한 여론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24개교구에서 법랍 10년 이상 9455명의 스님들을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설문조사다. 법랍 10년 이상이라면 3급 승가고시 합격자로서 주지소임 자격 요건을 갖춘 스님이다. 전법과 수행 현장에서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을 인식하고 풀어온 스님들에게 듣는 여론이고, 조사결과를 토대로 중장기 과제와 전략을 수립할 예정인 만큼 이번 조사에 실린 무게감은 실로 지대하다. 그러고 보면 자연스럽게 설문 조항에 눈길이 쏠린다. 설문은 총 100여개 문항으
중국과 일본이 수교(1972)를 맺은 20년 후인 1992년 한국은 중국과 수교를 맺었다. 삼국간의 교역과 현지투자가 뒤따르기 시작했고 정치, 경제, 문학, 예술 등의 교류도 증가했다. 급속한 변화에 불교계도 꿈틀거렸다. 한중일불교우호교류대회가 대표적이다.중국불교협회장이었던 조박초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부주석을 지낸 거물이자, “중국 대륙의 불교가 대중을 위해 일하고, 사회복리를 도모해야 한다”고 호소하며 불교 역할의 중요성을 역설해 온 인물이었다. 중국·일본 간의 수교 이후 양국의 불교계를 돈독히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진각종 13대 총인 추대법회에서 경정 대종사가 전한 법어가 의미심장하다. “가을 햇살이 더 없이 살가운 오늘, 부끄럽고 겸허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 아직도 아픔이 가득한 현실 상황에 대하여 불제자의 한 사람으로 그저 부끄럽습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신흥불교교단은 1947년 대구에서 창종된 진각종이다. 당시 불자들에게는 꽤나 낯설었을 밀교의 부흥을 표방한 종교임에도 단숨에 한국불교 4대 종단으로 비약했다. 선·통불교가 주류를 이류는 한국불교계에서 밀교 수행법을 품고 있는 진각종이 차지하는 가치는 지대하다. 잠
국립중앙박물관이 사명유정 스님의 친필·유묵 특별전을 열었다. 일본 교토 교쇼지(興聖寺)와 동국대 박물관에 소장된 작품들이다. 전시 작품이 많지는 않지만 스님의 선기와 대승보살 정신을 직면할 수 있기에 의미 깊다.스승인 서산휴정 스님의 문하에서 정진 한 사명유정 스님은 공관을 깨친 후 금강산에서 무애한 삶을 영위하던 중 임진왜란을 맞이했다. 처참하게 살육 당하는 백성들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승병을 모아 참전했지만 적장마저도 부처님 법으로 다스렸던 사명유정 스님이다.무장이었던 가토 키요마사(加藤淸正)는 임란 때 사명유정을 처음 만났는데
‘원력’에 담긴 의미는 깊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스스로 보살이 되어 다른 사람을 구제하려는 굳은 결의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목적 또는 공동체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려는 결연한 의지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측면에서 보면 후자를 ‘소극적 원력’이라 하겠지만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현안을 타개하려는 서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억불숭유 시대에 꺼져가는 법등을 다시금 밝혔던 허응보우 스님의 삶을 돌아보면 이해할 수 있다.허응보우 스님은 연산군이 폐지한 선교양종을 복원한 후 승과를 복원해 실시했고, 성종이
통도사 사중의 원로스님들 사이에서는 의미 있는 구전 하나가 내려오고 있었다. 영축총림 통도사가 6·25 한국전쟁 당시 부상병을 돌보는 야전병원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다. 최근 공개된 통도사 미륵불소조좌상 복장유물 중 하나인 용화전미륵존불갱조성연기(龍華殿彌勒尊佛更造成緣記)를 통해 이 구전은 사실로 밝혀졌다.이 자료에는 ‘한국전쟁 후 국군 상이병사 3000여명이 통도사에 들어와 1952년 4월12일 퇴거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당시 절에 남아있던 스님들이 부상병 간호에도 힘썼다”는 구전을 감안하면 당시 통도사는 전각, 요사채 등의
조계종 비구니 중 최초로 인가를 받은 선사는 법희 스님이다. 1916년 견성암에서 만공 스님으로부터 ‘묘리당’이라는 법호와 전법게를 받았다. 비구와 비구 사이에만 내려오던 선맥이 처음으로 비구니에게 전해진 역사적인 사건이다. 조계종 비구니 중 최초로 강맥을 이은 스님은 금룡 스님이다. 1922년 구하 스님 문하로 입실건당 하며 전강 받은 금룡 스님은 1958년 광우 스님에게 강석을 물려주었다. 비구니가 비구니에게 법을 전한 건 이때가 처음이다. 봉암사에서 비구스님들의 결사(1947)가 있었다면 성주사에서는 비구니스님들의 결사가 있었
조계종 스님들은 철저한 독신의 삶을 영위한다. 치열한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요 신념이다. 그리고 사유재산을 소유할 수 없다. 부처님과 맺은 인연에 따라 형성된 삼보정재이기 때문이다. 독신과 무소유, 조계종 스님들이 사회 대중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수행자라 해도 생로병사에서 예외일 수 없다. 그렇다면 노후문제는 어떻게 해결해 왔을까? 농경중심의 전통 사원경제 구조에서는 큰 문제로 인식되지 않았다. 기본적인 양식공급 문제는 사원 내에서 경작과 탁발을 통해 해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등분
최근 화순 운주사 옆에 대형 돈사가 신축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운주사 측은 돈사 신축 예정지가 나주 지역이지만 운주사와의 직선거리로 583m인 점을 들어 “돈사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수행환경 파괴와 연간 10만명 이상 운주사를 찾는 국내외 탐방객의 참배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축사신축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돼 있는 운주사인 만큼 행정구역인 화순군이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세계유산 등재의 핵심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다. 인간의 창의성으로 조성된 걸작, 건축, 기술 등 인
대한불교조계종 총본산인 조계사 선재어린이집이 9월2일 문을 연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일제의 조선 강점기였던 1910년 ‘각황사’란 이름으로 산문을 연 조계사 경내에 한국불교의 미래이자 희망이라 할 수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복지교육공간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어린이집의 개원에 개산 109년 만의 경사스러운 희망불사의 출발이라는 의미를 부여해도 손색이 없다. 조계사 인근에 직장을 두고 있는 직장인만도 3만여명에 이르는 서울시 종로구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밤 10시까지 야간 보육의 기능까지 수행할 수 있다고 하니, 대한불
인류 최초로 위없는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를 전하는 창작 뮤지컬 ‘싯다르타’가 9월5일 첫 선을 보인다고 한다. 부처님의 일대기를 담은 창작 뮤지컬은 ‘싯다르타’가 처음일 것이다. 뮤지컬은 음악, 무용, 연극 등의 요소들이 어우러진 종합무대예술이다. 기악과 노래뿐 아니라 연기와 무용 실력을 갖춰야하기에 배우들의 역량에 흥행이 가름되곤 한다. 또한 비교적 넒은 무대와 섬세한 조명 등의 기반시설을 구비한 곳이어야 공연이 가능하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불교 창작 뮤지컬은 그리 많지 않았다. ‘원효’ ‘사명대사’ ‘천도재 니르
스리랑카, 미얀마,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네팔, 몽골과 재한줌머인연대의 이주민 불자들이 마음을 합쳐 한국다문화불교연합회(가칭) 창립을 추진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홀로 서야 하는 이주민들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연합단체가 출범하는 것으로, 건강한 다문화가정으로 성장·정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1988년 서울 올림픽이 막을 내린 후 ‘코리안 드림’을 품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5년 후인 1993년 정부는 3D 업종 기피·고령화 저출산 현상으로 급감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총림이 다스려지지 않고 법륜이 구르지 않는다면 장로가 대중을 위하는 도리가 아니요, 몸과 입과 뜻의 업이 고르지 않고, 행주좌와의 행동거지가 엄숙하지 못하면 수좌가 대중을 통솔하는 도리가 아니다.… 아침에는 상당법회에 참여하고 저녁에는 청익(請益)하며 짧은 시간도 헛되이 버리지 말아야 장로에게 보답하는 도리요, 높고 낮음에 순서를 지키며 행동거지에 찬찬하고 자상하여야 수좌에게 보답하는 도리다.”선종 사찰의 기품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이 글은 백장청규 정신을 되살리고자 노력했던 중국의 종색 선사가 후학들을 위해 남겨 놓은 가르침이다
정부는 법에서 규정한 조직과 기구를 통해 국가를 통치하고, 종교는 자체적으로 규정한 법을 통해 전법을 펼친다. 실행방법 상으로는 큰 차이를 보이지만 국민의 행복을 이끌어야 한다는 동일한 목표를 갖고 있다. 특히 한국불교는 국민의 삶을 고양시키는 일이라면 언제든 국가·정부의 협력자 역할을 자처해 왔다. 아울러 고통을 덜어내는 일에도 팔소매를 걷어붙였다. 불교사상이 갖는 화해와 포용성에 기반한 행보라 할 수 있다.6·25한국전쟁으로 이 땅에 주검이 쌓여갈 때 고승들이 부산으로 운집했다.(1951) 훗날 조계종 종정을 역임하며 ‘산은 산
21세기 정보화시대에 진입하며 명상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다. 정서지능 향상, 리더십 증진, 창의성 계발 등 인간의 내적 잠재력을 깨워 능력을 배가시키는 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과학·의학적으로 증명됐기 때문이다. 구글, 오라클, 트위터 등의 세계 유수 기업이 명상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현 시점에서도 명상 열기는 고조되고 있다. 명상 수행에 따른 의학·임상 결과가 2000년 전후에 비해 보다 더 명징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울, 불안, 중독을 해소시키는데 명상이 주효하다는 잇따른 임상결과와 논문
동국대는 2015년을 전후로 심한 내홍을 겪었다. 한국 유수의 대학들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을 마주하며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일 때 동국대는 내분에만 2년에 가까운 시간을 소비했다. ‘풍랑에 휩쓸린 나룻배’를 구할 강단 있는 선장이 절실했다. 신임 총장 보광 스님과 신임 이사장 자광 스님은 그 역할을 완벽에 가깝게 해냈다.영국 대학평가 기관인 QS의 ‘2018 세계대학평가’ ‘2018 중앙일보 대학평가’에서의 높은 순위는 명문 사립대로서의 위상을 다져가는 방증이었다. 허리띠를 졸라 매고 재정확충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 600억원
1990년 7월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 8개의 불교단체가 신규가입했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의 전신인 대한불교총연합회에서 탈퇴(1970년대 중반)한 원불교는 이때도 가입하지 않았다. 그 결과 원불교는 1990년 10월 WFB(세계불교도우의회) 서울대회 참여여부 갈림길에서 불교의 한 종파인지, 아니면 신흥종교의 하나인지를 분명히 해야한다는 교계 안팎의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최근 원불교는 2020년 WFB 제30차 총회를 유치하기로 결정했다. 29년 만에 원불교는 똑같은 비판에 직면했다. 불교재산관리법 제정·시행 당시 원불교는 이 법에서의
태고종 27대 총무원장 호명 스님이 주재한 연석회의에 원로회의·중앙종회·호법원 소속 스님들과 전국 지방교구원장·간부 스님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현 종단현안 해결’에 초점을 맞춘 연석회의에 종단 핵심 인사 스님들이 운집했다는 건 태고종 정상화를 향한 종도들의 열망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방증한다. 아울러 신임 총무원장에 거는 기대도 지대함을 시사한다. 연석회의에 참석한 대중이 현 집행부에게 당부한 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종헌종법·사회법에 따른 편백운 스님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방안 강구이고, 또 하나는 조속한 종무행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