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일본의 삼정사에 한 젊은 스님이 있었다. 그는 유난히 가난했고 인연이 박하여 누구하나 찾아오지도 않았다. 같이 지내는 대중들도 외면하니 항상 외로운 처지였다. 어느 날 ‘내가 이렇게 가난한 것은 이 절이 나와 인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데로 옮겨보면 더 나아질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그는 떠나기로 마음먹고 짐을 싼 후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꿈속에서 깡마른 체구에 행색이 초라한 젊은이 하나가 출타를 하려는지 짚신을 신으려고 댓돌에 쪼그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얼굴은 야위고 푸르스름했다. 이 절에 여러 해 있었지만 한 번도 본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다가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젊은이가 뜻밖의 말을 했다.“나는 여기에 오랫동안, 특히 당신과 항상 같이 있
도량에는 한 송이 동백꽃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 산과 바다는 덩달아 일어나 빛으로 깨어나고 있다. 새해 들어 첫 장날에 나와 보니 어판장 거리에는 사람들로 생기가 넘쳐흐른다. 붕어빵집 노보살님은 해묵은 병이 가신듯이 신명나게 희망을 구워내고 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속담처럼 긍정의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래 마음의 속성이다. 마음은 어떠한 절망이나 대상에 물듦이 없지만 스스로 빛을 등지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통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 서있는 일터에서 한걸음 옮기고 한손을 들어 올리면서 일어나는 생각을 따라가지 말고 바로 돌이켜 현전일념을 이룬다면 모든 고통과 어둠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온통 행복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지금 성공학으로 마음을 주시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긍정의
백장회해(百丈懷海, 720~814) 선사는 선근이 깊었던 분이다. 그가 어렸을 때 어머니를 따라서 절에 간 적이 있다. 어머니가 불전에 절을 하는 것을 보고 불상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것이 무엇입니까?”어머니가 말했다.“저 분이 부처님이시다.”백장이 말했다. “형상은 사람과 같아서 저와 차이가 없군요. 나중에 저도 부처님이 되겠습니다.”이 닮고 싶은 마음이 종교의 시작이다. 백장 선사가 90세가 되어서도 대중운력을 빠지지 않자, 하루는 젊은 수좌들이 장난삼아 농기구를 감추어 버렸다. 그러자 선사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하루 종일 나오지 않았다. 대중들의 공양 걱정에 이렇게 말씀 하셨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선가(禪家)의 온갖 직책(職責)에서부터 식사(食事)
일타 스님 소개로효봉 스님께 출가 340일 동안 17만배 회향50년간 끝없는 기도 정진 손수 빨래하며양말도 꿰매 신어 시주 열심히 해도 번뇌 여의어야 ‘극락’ 1959년 7월 14일 대구 팔공산 동화사. 서울에서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가 노스님과 마주하고 앉아있었다. 젊은이에게 그 노스님은 거대한 산맥이었다. 그가 한국인 최초의 판사라는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8년간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에 오후불식 등 치열한 정진으로 큰 깨달음을 이루고 출가 12년 만에 송광사 조실에 추대됐던 선가(禪家)의 ‘전설’ 효봉 스님이었던 까닭이다. 그는 효봉 스님에게 출가를 하러 왔다고 말씀드렸다. 스님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네 얼굴은 중 상호인데 지금까지 왜 속가에 있었느냐?”라며 허허
일미세계로 화합하는태안 앞바다가 신음안방 닦듯 모래 닦아불성 광명 드러내야 한 덩어리 붉은 해가 검은 파도를 떨치고 바다에서 솟구쳐 오른다. 갓난아이처럼 방긋한 미소로 빛을 토하며 서서히 뭍으로 기어오르고 있다. 탐진치 삼독이 반야의 작용인줄 알아 일체 생멸인연이 밑바닥을 쳐야 안심입명 하는 불성 광명이다. 『화엄경』 「보현행원품」에서는 보현보살이 열 가지 행원을 설하며 부처님의 무량한 공덕을 지금 이 자리에 시현해 보이고 있다. 보현행원은 부처님의 세상을 여는 열쇠이며 영원한 자기의 생명을 개척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현대인들은 온갖 정보의 훈습으로 가치관이 흔들려 방황하고 있으며 수행하는 사람들도 안일한 선정에 매몰되어 더 이상 길을 몰라 헤매고 있다. 보현행원은 모든 생
성공도 실패도 모두 버릇좋은 습관 기르는 것 중요 아프리카의 한 감방에 펄족과 밤바라족의 죄수가 함께 있었다. 그들은 우연한 기회에 간수로부터 둘 중 한명은 팔을 자르고, 다른 한명은 목이 잘릴 거라는 왕명을 전해 들었다. 교활한 펄족은 갑자기 고통을 호소하며 팔을 잘라달라고 애원했다. 그가 어찌나 큰소리로 떠들어대는지 참다못한 간수가 소원대로 팔을 잘라주었다. 펄족은 통증으로 밤새 끙끙대면서도 목숨은 건졌다며 흡족해 했다. 그러나 그 옆의 밤바라족은 신경 쓰지 않고 잠을 실컷 잤다. 이윽고 날이 밝았다. 그런데 왕은 두 사람을 처벌하지 않고 석방시키라고 했다. 팔을 잃은 사람이 분해서 날뛰며 소리쳤다. “저 밤바라족은 멀쩡한 데 나만 팔을 잃었구나!” 왕이 웃으며 말했다. “책을 읽
잔잔한 아침 바다에 노을이 번지고 있다. 숲은 빈 몸으로 서있어 부채살처럼 끝없이 펼쳐진 나뭇가지 사이로 바다를 드러내고 있다. 세상은 지금 대선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후보들이 전국을 돌며 바다에 파도가 일어나듯 표심을 잡으려고 지지자들을 앞세워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십이인연이 본래 공하듯이 후보들은 저마다 차별된 정책과 비전으로 승부하되 출신처가 본래 국민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올해 대선의 공통된 화두는 국민통합과 경제문제라고 한다. 한 결 같이 계층과 세대 간의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를 이대로 두고서는 국가경영에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후보들은 자기만이 적임자로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외치고 있지만 서로가 비방만 할 뿐 뚜렷한 정책과 비
한 여인이 아이를 안고 저수지로 목욕을 하러 갔다. 그녀는 아이를 먼저 씻기고 나서 자신도 물속에 몸을 담갔다. 그때 한 야차(夜叉)가 아이를 보고 잡아먹고 싶은 생각이 들어 여인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다가가 “당신 아기냐?”고 물었다. 그리고 젖을 먹여주고 싶다고 청했다. 여인의 허락에 젖을 물리는 척 하던 야차가 갑자기 아이를 안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이의 엄마는 깜짝 놀라 뒤쫓아 가서 야차를 붙잡았다. 그런데 야차는 갑자기 돌변하여 “이 애는 내 아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결국 둘은 재판관을 찾았다. 재판관은 마당 한가운데 선을 그은 후 두 여인을 마주보게 했다. 그리고 아이의 팔과 다리를 각각 잡게 하고는 말했다. “지금부터 이 선을 중심으로 많이 끌어당긴 사람이 아이의 주인이다.” 여인과 야
화두 순일하면 이기심 사라지고 항상 진실해 행복이 절로 나온다 찬바람이 길을 잃고 문풍지에서 울다가 온통 숲을 뒤흔들고 있다. 바다에는 거센 파도가 끝없이 달려오고 갈대밭에는 먼 비행을 마친 철새들이 한가롭게 자맥질을 하고 있다. 모든 것이 귀했던 시절, 조그만 암자에서 보낸 치열했던 동안거가 그리워진다. 탁발로써 한철 먹을 식량을 마련하고 손수 김장과 땔감을 장만하였던 기억이 새롭다. 춥고 눈이 많은 깊은 산골이라서 인적이 끊어지고 눈 속에 갇히면 내려오는 산짐승들이 유일한 도반이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좌선으로 하루를 보냈는데 한창 때라서 항상 배가 고팠지만 먹을 것이 없었다. 그래도 부족한 것은 정진뿐이라서 화두를 놓치게 되면 끝없이 절망해야 했던 때가 엊그제 같다. 돌이켜 보면 그때 얻은
가을은 수확의 계절작은 인내심으로도삶은 절로 풍부해져 춘생하장(春生夏長)추수동장(秋收冬藏)봄에는 소생하고, 여름에는 성장하고, 가을에는 거둬들이고, 겨울에는 갈무리한다.이것이 천지가 운행하는 도의 큰 길이다.(此天道之大經也) 『史記』 우리 절은 광화문에서 삼청동으로 올라가는 초입, 경복궁의 동문과는 도로 하나를 마주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옛 왕궁의 돌담이 도로 너머로 높고 튼튼하게 세워져 있고, 서울에서는 보기 드물게 넓은 보도를 따라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있다. 이 길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때도 이 은행나무의 변화와 함께한다. 이른 봄 앙상한 가지에서 새순이 싹트는 시기, 그리고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이즈음이다. 구청에서는 새벽 한때 외에는 낙엽을 일부러 쓸지 않기도 한다.
불립문자란 일체경전 포섭의 의미사람마다 본래 한 권의 경전 있어반일은 좌선하고 반일은 경전보라 도량에는 고절한 국화꽃 향기가 청아하게 흐르고 풀씨는 바람을 타고 먼 적멸로 여행을 떠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경전을 독송하며 평생을 신심으로 살아온 노거사님께서 전화가 왔다. 낙엽은 떨어져서 뿌리로 돌아가는데 아직 인생이 돌아갈 곳을 몰라 왠지 불안하고 흔들린다는 것이었다.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은 세상사에서 크고 작은 일을 당할 때마다 삶의 나침반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종이와 먹으로 이루어진 경전의 문자가 공한 줄을 모르고 집착하여 지혜를 밝히지 못하고 안심입명처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사미계를 받고나니 어른 스님들께서는 경전을 익히면서 사문의 위의를 갖추고 발심이 되면 선방에 가
“그대가 하고자 하는 것을 행하라!” 이것은 1534년 프랑수아 라블레가 『가르강튀아』에 텔렘 수도원을 통해 자기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를 제시하며 내세운 이념이다. 거기에는 통치 기구가 없다. 공동 생활자들은 자기 자신을 다스리며 자기가 바라는 바에 따라 행동한다. 혈통 좋고 교양 있고 고결한 영혼의 선남선녀들만이 그곳에 들어갈 수 있다. 대략 여자들은 열 살, 남자들은 열두 살 때다. 거주자들은 각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는다. 다만 소요, 폭력, 분쟁 따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힘든 일은 수도원 밖에 사는 종복들과 장인들이 맡는다. 흔히 꿈꾸는 천국일 수 있다. 그러나 라블레는 어수룩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의 이상적인 수도원이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