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형이 ‘죽어도 내일은 오고야 만다’더니 올해 달력도 기어코 한 장밖에 남지 않았다. 12월은 왠지 아쉽고 뭔가 허전하다. 아마도 ‘마지막’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2020년은 일 년 내내 너무 소란스러웠다는 기억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호흡기질환인 코로나19의 충격이 워낙 컸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더 지혜로웠다면 작금과 같은 볼썽사나운 모습들은 굳이 지켜보지 않아도 될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저런 상념들이 뒤섞여 머릿속이 어수선하다.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기사와 승객들 사이에 벌어진 마스크 시비를 여러
전염병의 기세가 오래도록 꺾이지 않고 점점 심해져 간다. 그로 인해 겪게 되는 직접 간접적인 고통이 세상을 무겁게 덮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종교에서 위안과 안식을 찾고 삶의 희망을 얻고자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종교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실망을 넘어 절망을 느낄 정도로 한심하다. 사회적 고통을 키우기도 하고 고통에 눈감기도 한다. 사람들이 겪는 현실의 고통에 대해서 참된 종교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것일까.최근 개신교의 선각자들이 기독교의 절망을 통감하고 적나라하게 교계의 현실을 비판함과 동시에 스스로 잘못을
얼마 전 나는 한국정토학회로부터 ‘땅설법’에 관한 한 편의 논문심사 청을 받았다. 이 논문을 보면서 땅설법의 본격적 논문이라는 기쁨이 있었다. 땅설법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17년이다. 땅설법의 법주이며 주인공인 삼척 안정사 다여 스님을 만난 것은 참말로 묘한 인연이었다. 아파트 재개발사업 문제로 사찰과 조합 간 분쟁이 있을 때 함께 집회와 시위를 도와준 한국불교수호연합회(이하 한불련) 멤버로서였다. 나는 스님의 예사롭지 않은 행동과 말에서 ‘땅설법’의 얘기가 나오자 귀가 번쩍 뜨였다. 이때 나는 그 실체가 묻혀 있던 땅
2020년 10월 30일 현재 올해에만 열다섯 분의 택배 노동자께서 사망하셨다. 비극의 속도는 가속화되어 엊그제의 소식이 오늘 낯선 일인 양 다시 도달하고, 듣는 이의 마음도 툭 툭 떨어져 휘청이는 몸을 가누기 어렵다.의문이 꼬리를 문다. 배송업체들이 당일배송을 대대적으로 광고하고 나섰을 때 그 정책은 택배 노동자분들과 합의가 된 것이었나. 분류작업을 택배 인력이 담당해야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똑같은 비극이 이토록이나 반복되는 마당에 당일배송 정책과 택배 인력에 대한 분류작업 배당을 즉시 중단하지 않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비용이
설악산에만 단풍이 든다면 그것은 가을도 아니다. 때가 되면 아무 데서나 단풍을 볼 수 있어야 비로소 가을이다. 도심 한복판의 서울 남산에도 가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만추(晩秋). 남산은 지금 만산홍엽(滿山紅葉) 그 자체다.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오를 수 있는 남산이 지척에 있다는 게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일주일에 서너 번 남산 둘레길을 무작정 걷는다. 마음의 때는 벗고 다리의 근육은 알뜰하게 챙기는 나만의 행선 수행이다. 코스는 거의 일정하다. 장충단공원의 수표교를 지나 국립극장까지 올라간 다음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남산
“왜 이렇게 힘들어!”라는 유행가의 절규가 아프게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세상이다. 오래도록 유행하고 있는 전염병이 주는 상실과 고통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겪는 보다 근본적인 고통의 원인은 통하지 않는데서 온다고 생각한다. ‘동의보감’ 역시 “고통은 통하지 않는 것이다”고 적시하고 있다. 혈류가 흐르지 않으면 갖가지 병이 생기는 것처럼, 물류의 불통이 궁핍과 불편을 초래하고, 고용시장의 불통이 청년실업과 조직의 경직성을 야기하며, 인간적인 교감과 소통 부재가 불신과 갈등을 조장한다.패망한 월나라의 경제를 일으켜 세운 계연
“무슨 차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답은 커피, 녹차, 홍차, 대추차 등 다양하다. 영어로 “Would you like tea or coffee?"라고 물을 때, 보통 tea를 선택하면 홍차가, coffee를 선택하면 커피가 제공된다. 영어의 차(tea)에는 coffee가 포함되지 않는다. 차는 차나무 잎을 가공해 음료화 시킨 것을 의미한다. 마실 수 있는 모든 음료를 차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지만, 커피는 커피나무 열매를 가공해 만든 음료일 뿐 차라고 부르지 않는다. 차잎이 없으면 차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차를 마시는
1인 가족의 증가와 주거난의 심화로 한국인에게 집이 갖는 의미는 어지간히 쇠락한 듯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인간에게 집이란 편안함과 휴식을 주는 곳으로서 근본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귀소본능의 원천이다.집은 희망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닿기 어려운 먼 곳에 있을 것만 같은 이상과 희망도 알고 보면 결국 내가 깃들어 사는 집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 벨기에 작가 마테를링크의 동화 ‘파랑새’에서 희망의 상징인 파랑새를 찾아 나섰던 틸틸과 미틸 남매가 끝내 그 파랑새를 발견한 곳도 침실 머리맡의 새장이었다던가.최근 미국 콜로라도 대학의 샘
나이 70을 훌쩍 넘긴 가수 나훈아가 세상을 울컥하게 만들고 있다. 추석 연휴 첫날에 방영한 KBS2의 ‘2020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라는 특별방송 때문이다. 특히 15년 만에 방송출연한 그가 부른 ‘테스형’이란 노래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노래를 하다말고 중간중간에 무심한 듯 작심한 듯 던진 멘트들은 여야정치권의 아전인수를 낳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가수 나훈아의 노래에는 독특한 유머코드와 해학적 언어습관이 작동한다.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는 가사는 슬픈 듯, 기쁜 듯,
최근 우리 사회에 공정(公正)이란 말이 부쩍 많이 등장하고 있고, 이 말을 둘러싼 논란도 어지럽게 전개되고 있다. “도가 사라지니 도에 대한 말이 넘쳐난다”고 하는 노자의 말이 아프게 느껴진다. 몇 해 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이 있었다. 한동안 나는 이처럼 이해하기 어렵고 쉽게 재미를 느낄 수도 없는 책이 어떻게 많이 팔리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야 현실에서 정의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니까 정의라는 말도 그립고 그것을 찾고자 하는 열망이 더 강해진 결과라 이해하게 되었다.공정이란 말에는 치우
8월 중순 수도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코로나 재확산으로 말미암아 온 나라가 더욱 강력해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한 지 여러 주째다. 사업장 일시 폐쇄로 소상공인 자영업자 분들이 겪고 계실 고통은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도 공공장소에서의 의무적 마스크 착용이 몹시 불편하실 줄 안다. 그래서일 것이다. 마스크 착용을 권유하는 시민과 이를 거부하는 시민 사이의 갈등이 언론에 부쩍 자주 등장하는 것은.정부 시책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발 또는 세대별 문화 지체 등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막연하게 떠오르는 몇
순전히 우연이었다. ‘미스터트롯’에서 초등학생 정동원이 가수 진성의 ‘보릿고개’를 구성지게 부르는 것을 보게 된 것은. 처음엔 좀 거북했다. 보릿고개란 말의 뜻도 모를 앳된 얼굴의 13살 소년이 굳이 저런 가사의 노래까지 불러야 하나 싶어서였다. 정동원이 노래하는 동안 화면에는 원곡자 진성의 붉게 충혈된 두 눈이 클로즈업되었다. 그와 나는 베이비부머 시대에 태어났고 나이도 엇비슷한 것으로 안다. 내가 노래 속의 가사에 훅하고 감정이입(感情移入)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보릿고개의 첫 소절인 ‘아야 뛰지마라 배 꺼질라’는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