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종단 3대 사업으로 출발40여년 만에 한글대장경 완간남양주 봉선사의 겨울이 유난히 차갑다. 봉선사 조실 월운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별채 앞마당에는 찬바람만 가득하다. 조실당에 걸려 있는 ‘다경실(茶經室)’, ‘능엄대도량(楞嚴大道場)’ 두 개의 현판도 유달리 외로워 보인다. 동국대, 역경원, 월운 스님. 이 셋은 셋이 아닌 하나였다. 불자라면 그 누구도 동국대를 떠난 역경원도, 역경원을 떠난 월운 스님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재 이 순간은 아니다. 동국대는 역경원장 월운 스님을 일방적으로 해임했고, 역경원 조차 단일 원이 아닌 ‘불교학술원’과 통합할 태세다. 불자들로부터 ‘역경보살’이라는 칭송까지 들었던 월운 스님의 심기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기에 충분하다. 방문을 열자 300여권의
동국대가 지난해 12월초 동국역경원장 월운 스님을 일방적으로 해임한 가운데 월운 스님 전강제자들이 동국대의 이번 인사행정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은해사 승가대학장 지안 스님과 불국사 전 강주 진원 스님을 비롯한 15명의 월운 스님 전강제자들은 지난해 12월 30일 ‘동국대학교 동국역경원장 임명에 대한 입장’이란 성명서를 발표하고 “동국대 이사회의 파행적 역경원장 임명에 동의할 수 없으며, 동국대 이사회, 조계종 총무원, 종립학교관리위원회가 적극 나선 이번 인사행정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월운 스님 전강 제자 일동은 “2008년 12월 8일 동국대는 역경의 산증인이신 노사(老師)님을 철저히 무시한 채 신임 역경원장을 미리 내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언반구도 없이 축하와 격려가 있어야 할 역경원장
동국대가 지난 12월초 동국역경원장 월운 스님을 일방적으로 해임한 가운데 월운 스님 전강제자들이 동국대의 이번 인사행정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은해사 승가대학장 지안 스님과 불국사 전 강주 진원 스님을 비롯한 15명의 월운 스님 전강제자들은 12월 30일 ‘동국대학교 동국역경원장 임명에 대한 입장’이란 성명서를 발표하고 “동국대 이사회의 파행적 역경원장 임명에 동의할 수 없으며, 동국대 이사회, 조계종 총무원, 종립학교관리위원회가 적극 나선 이번 인사행정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월운 스님 전강 제자 일동은 “2008년 12월 8일 동국대는 역경의 산증인이신 노사(老師)님을 철저히 무시한 채 신임 역경원장을 미리 내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언반구도 없이 축하와 격려가 있어야 할 역경원장 임명을
삼국시대 △617년 신라 원효대사 탄생 △665년 신라 고승 혜통 당에서 구법하고 귀국 △725년 법천사 창건 △833년 진주 연지사종 주성 고려시대 △929년 천축 삼장법사 마후라 내왕 △953년 황룡사탑 벼락 맞고 소실 △1289년 7월 8일 보각국존견명, 인각사에서 입적 조선시대 △1397년 9월 흥천사 준공, 선종의 수찰로 삼음, 11월 일본 구주탐제원도덕이 예물을 바치고 대장경을 요청 △1457년 세조 『능엄경』, 『법화경』 등을 수교하고 함허당『금강경설의』를 교정. △1553년 1월 양종 시경승 2천 5백여명에게 도첩을 줌 △1877년 9월28일 일본 진종 대곡파 본원사 조선개교사 오촌원심 방문 근·현대 △1913년 2월20일 택성 김탄허 스님 탄생. 5월 25일 만해 한용운 『조선불교유신론
장순용 동국역경원 역경위원이 최근 동국대의 역경원장 월운 스님 해임과 관련해 ‘해임 유감(解任 遺憾)’이란 기고문을 보내왔다. 장순용 역경위원은 고려대 사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 철학과를 수료한 뒤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과 태동고전연구소 지곡서당을 수료했다. 제17회 행원문화상 역경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대장경과 한국불교전서의 한글 번역에 힘쓰고 있다. 편집자 월운 스님이 역경원장 자리에서 ‘해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먼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역경에 원(願)을 세우고 평생을 헌신한 분이라서 노령이나 건강상의 이유로 ‘스스로’ 물러날 수는 있을지언정 ‘해임’될 수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역경원장인 스님과 아무런 사전 협의나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해임 결정을
“오늘 봉선사에서 나오면서 역경원을 만드셨던 우리(운허) 스님 영정 앞에 절을 하고 역경원 소임을 그만두게 됐다고 고하고 나왔습니다. 15년간 맡았던 역경원장에서 물러나는 과정이 갑작스럽고 깔끔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더라도 역경원에 대한 불자들의 관심과 지원이 끊이질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2월 19일 오후 2시 동국대 정각원에서는 평생 역경의 길을 걸어온 팔순의 노스님이 200여 대중들 앞에서 이별을 고하고 있었다. 연말이면 으레 있었던 역경 후원회 송년법회가 역경원장 스님의 이임식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지난 12월 8일 동국대가 역경원장 월운 스님에 대한 일방적인 해임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이날 정각원에는 그동안 원장 스님을 도와 역경불사에 참여했던 역경원 직원들과 물심양면으로 후원
지난 50여 년 가까이 역경불사에 헌신해왔던 동국역경원장 월운 스님이 동국대의 일방적인 해임 결정에 따라 동국역경원을 떠나게 돼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동국대는 지난 12월 8일 총장이 주관하는 인사위원회를 통해 지난 10월 31일자로 계약이 만료된 역경원장 월운 스님의 재계약을 승인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에 따라 월운 스님은 지난 1993년부터 맡아오던 역경원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고, 이런 가운데 불교대학 모 교수가 차기 역경원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국대 측은 역경원장의 갑작스런 해임 이유로 불교학술원 추진을 위한 부득이한 조치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최순열 동국대 학사부총장은 “불교문화연구원, 전자불전문화콘테츠연구소, 역경원 등을 하나로 묶는 불교학술원 추진과정에서
삼일 닦은 마음 천년보배 일구에 마음 동요해 출가50년 정진 속 대강백 우뚝 카페 ‘염화실’로 人佛사상 펴 여래가 걸림 없는 청정한 지혜의 눈으로 온 법계의 모든 사람들을 두루 살피시고 말씀 하셨다. “신기하고 신기하도다. 모든 사람들(衆生)이 여래의 지혜를 다 갖추고 있구나. 다만 어리석고 미혹해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구나.(奇裁奇裁 此諸衆生 云何具有如來智慧 愚癡迷惑 不知不見)” 『화엄경』 여래출현품에 나오는 이 일구는 ‘일체중생이 다 부처’라는 뜻이다. 전 조계종 교육원장 무비 스님 역시 여기에 입각, 인터넷 전법도량 ‘염화실’을 통해 ‘사람이 곧 부처(人卽是佛)’라는 ‘인불’사상을 펼쳐 보이고 있다. 그간의 ‘참 나’찾기 등과는 또 다른 맛과 힘이 느껴진다. 어렸을 당시 한 동자승과
소승-대승 모두 하나의 강일 뿐바다에 이르면 결국 물이요 불법맹목적 殺佛殺祖는 대단한 착각成佛作祖에 마음두고 공부해야 1938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아이는 어려서부터 총명해 한학에 밝았다. 1954년 ‘오천년조선역사’라는 책에서 우연히 이율곡이 산사에서 공부를 했다는 대목에 ‘나도 입산하겠다’며 네 살 연상의 벗과 함께 만암 스님이 주석하던 백양사를 찾았다. 그의 얼굴을 살핀 만암 스님은 시 한수를 지어주며 입방을 허락했다. “어린 나이에 중이 되려는가?…. 봄바람은 무슨 힘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가? 물의 넋은 천연해서 어디든 맑아지네.(春風何力人人樂 水魄天然處處澄)/ 불법은 결코 속세의 문턱이 아니라 소심한 뜬 생각으로 오르기 어려워라.(佛法決非塵俗境 小心泛想必難登)” 그러나 며칠 후 동행한 도
평생을 종단 개혁과 역경, 어린이 포교를 위해 헌신했던 석주 스님의 추모비가 건립됐다.한국불교아동문학회(회장 신현득)는 10월 31일 아산 보문사에서 ‘석주 스님 추모비 제막식’을 봉행할 예정이다. 스님의 상좌 송운 스님의 도움을 받아 한국불교아동문학회가 건립한 석주 스님 추모비는 어린이 포교를 위해 스님이 남긴 업적을 기록한 전면 536자의 비문으로 구성됐다. 또 불사 모연 동참자 명단, 제자들도 각인됐다. 1909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석주 스님은 15세 되던 해 남전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28년 부산 범어사에서 사미계를 받았으며 1949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당대의 선지식으로 손꼽히던 남전, 만공, 석두, 도봉 스님 등을 시봉하며 가르침을 받은 스님은 1958년 불국사 주지를 시작으로 19
평생을 종단 개혁과 역경, 어린이 포교를 위해 헌신했던 석주 스님의 추모비가 건립됐다. 한국불교아동문학회(회장 신현득)는 10월 31일 아산 보문사에서 ‘석주 스님 추모비 제막식’을 봉행할 예정이다. 스님의 상좌 송운 스님의 도움을 받아 한국불교아동문학회가 건립한 석주 스님 추모비는 어린이 포교를 위해 스님이 남긴 업적을 기록한 전면 536자의 비문으로 꾸며졌다. 또 전면 추모 후면의 비문과 불사 모연 동참자 명단, 제자를 포함해 총 793자가 각인됐다. 1909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석주 스님은 15세 되던 해 남전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28년 부산 범어사에서 사미계를 받았으며 1949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당대의 선지식으로 손꼽히던 남전, 만공, 석두, 도봉 스님 등을 시봉하며 가르침을 받
“예불 등 의식은 불자들을 지극한 신심으로 이끌 수 있을 뿐 아니라 재가불자로서의 생활규범을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좋은 신행방법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날 이러한 의식의 내용과 절차를 이해할 수 있는 재가불자란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의식이 한문으로 진행되는데다가 그 의미를 이해시키려는 노력도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의식에 중점을 두되 무조건 따라하는 것이 아닌 이해하고 동참하는 법회가 될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오는 11월 중순부터 매주 화요일 오후 7~9시까지 서울 무악재역 인근 기원정사에서 직장인을 대상으로 불천화엄법회(不千華嚴法會)를 여는 연세대 신규탁〈사진〉 교수는 “오래전부터 발원했던 일을 마침내 시작할 수 있게 돼 대단히 기쁘다”며 “한국불교의 전통을 가장 잘 살린
학교 운동장에 숲이 생겼다. 부연 먼지가 날리거나 잔디가 깔려있어야 할 운동장에 나무가 빽빽하다. 생소한 풍경이지만 훨씬 더 정감이 간다. 남양주 광동중학교(교장 이학송)가 9월 24일 3년 동안 운동장에 가꿔놓은 숲을 일반에 공개하는 ‘학교숲의 날’〈사진〉 행사를 열었다. ‘학교숲’은 환경운동단체인 ‘생명의숲’이 지난 2003년부터 학교를 자연친화적인 교육환경으로 바꾸자는 취지로 전개하고 있는 환경운동이다. 광동중학교는 ‘학교숲’ 시범학교로 선정돼 3년 전부터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숲으로 조성한 다른 시범학교와 달리 광동중학교는 학교의 자투리 공간뿐 아니라 운동장 전체에 숲을 조성해 환경운동단체들과 ‘학교숲’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교육계의 이목을
학교 운동장에 숲이 생겼다. 부연 먼지가 날리거나 잔디가 깔려있어야 할 운동장에 나무가 빽빽하다. 생소한 풍경이지만 훨씬 더 정감이 간다. 남양주 광동중학교(교장 이학송)가 9월 24일 3년 동안 운동장에 가꿔놓은 숲을 일반에 공개하는 ‘학교숲의 날’ 행사를 열었다. ‘학교숲’은 환경운동단체인 ‘생명의숲’이 지난 2003년부터 학교를 자연친화적인 교육환경으로 바꾸자는 취지로 전개하고 있는 환경운동이다. 광동중학교는 ‘학교숲’ 시범학교로 선정돼 3년 전부터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숲으로 조성한 다른 시범학교와 달리 광동중학교는 학교의 자투리 공간뿐 아니라 운동장 전체에 숲을 조성해 환경운동단체들과 ‘학교숲’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교육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재가 불교 철학을 위한 시도적 논의 신규탁/연세대 철학과 교수. 선과 화엄사상 전공 1. 재가 ‘불자’로 사는 길 출가한 ‘불자(佛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경전과 율장 속에 전하고 있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에도 출가해서 ‘불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분들을 ‘스님’이라 부른다. 이 분들은 소위 ‘출가’를 하신다. 말 그대로 세속의 가정을 버리고, 수행자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 대중’ 속에 몸을 던져 거기서 살아간다. ‘스님’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는 역사적인 전승도 있고, 또 대장경 속에 문헌 조목도 남아 있으니 그것을 참조하면 답이 나온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의 경우는 세속의 가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불자’의 길을 가는 ‘스님’들도 점점
“구경(究竟)으로 나아가라는 가르침을 받들어 쉼 없이 연구하고 정진하는 제자가 되어 불조와 스승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조계종 승가대학원장 요산(樂山) 지안(志安) 스님의 전등강맥을 전수하는 법회가 8월 29일 영축총림 통도사 반야암에서 봉행됐다. 동국대 강사 청원 스님을 비롯한 송광사 강사 도산, 수덕사 강사 인해 스님은 전강법사인 지안 스님이 내린 ‘교해리 전대법륜(敎海裡 轉大法輪), 지해상 건대법당(知解上 建大法幢)’이란 전법게송에 머리를 숙이며 “쉼 없이 정진하고 연구하는 제자가 될 것”을 발원했다. 전법게는 “교해 속에서 대법륜을 굴리고 지해 위에서 큰 법의 깃대를 세우길 바란다”는 뜻으로, 지안 스님은 “사람의 신체에 비유할 때 교학은 하체에 해당하고 하체가 튼튼해야 행
“성실한 전강 제자 든든” 현대 언어로 경전 해석” 불교-사회 소통 시켜야” 강원을 졸업하기도 전 중강을 맡아 강단에 섰다. 그리고 출가 7년 만에 통도사 강원의 가장 어른인 강주가 되었다. 속된 말로 ‘천재과’라는 세간의 칭송이 따랐지만 정작 스님은 30여 년의 세월을 묵묵히 경전과 함께 했다. 노력보다는 타고난 재능에 의지하기 쉬운 ‘천재’들의 과오를 스님은 단호히 거부했다. 산문 출입을 끊어버리고 밤을 꼬박 지새우며 공부하던 스님은 후학들의 나태함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 엄격함 때문인지 어느 틈엔가는 ‘도끼자루’라는 별칭도 따라 붙었다. 그런데도 그 별칭 아래 자꾸 후학들이 모여든다. 그 모습을 보면서 스님은 ‘절집안의 엄혹하고 순수한 수행가풍이 퇴색되고 있다고들 걱정하지
1977년 신문에 실린 이서옹 종정의 중앙종회 해산 발표 장면. 사진제공=민족사 종정-총무원장 중심제 힘 대결…결국 소송으로 얼룩져교세 위축과 승려자질 저하로 분열…10·27법난 빌미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대처승 사찰에서 물러가라’는 담화 발표를 계기로 시작된 이른바 ‘정화운동’은 1970년 1월 대처승 측에서 태고종을 창종함으로써 막을 내린다. 조계종은 이 분쟁을 ‘정화운동’ 또는 ‘정화불사’라고 부르며, 오늘날 조계종이 한국 불교 최대 종단의 모습을 갖추게 된 계기가 된 것으로 파악한다. 반면에 태고종 측은 2006년에 발간한 『태고종사』에서 이 사태를 법난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법난의 성격은 이승만 정권이 일본 불교 잔재 청산한다는 미명 아래 비구 승단
부처님 좋은 법도 혼자만 즐기다간세상일 멀어지고 불교는 도태될 것 듣고 배운 법에 자신을 비추어부끄럼 없도록 실천 노력해야 여러분 반갑습니다. 여러분이 모두 알고 오셨겠지만 이 법회는 대원정사와 법보신문사가 합동으로 마련한 법회입니다. 그동안 훌륭한 스님들을 많이 청해 법문을 듣고 오늘 마지막으로 제가 이렇게 나왔습니다. 부처님 법은 저절로 펴지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 법이 잘 펴지도록 돕는 이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성도 후 제일 먼저 만난 이가 법을 전하는 제자가 아니라 장자였습니다. 봄이 오면 꽃이 피겠지만 시멘트 바닥 위에서 꽃이 피는 것은 아닙니다. 시멘트 마당 위에 흙이라도 한줌 뿌리고 씨앗을 심어야 꽃이 피는 법입니다. 우리 삶에서는 이런 노력이 매우 중요한데
화합 요청하는 시대 승가정신 회복으로 가정·사회·국가 밝혀야 최악의 절망에서 최대의 희망 찾는 게 바로 부처님 가르침 불교는 가장 인간적으로 소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드러내 보이면서 자기의 마음을 건사해 가도록 하는 종교입니다. 불교의 주제는 바로 마음이고, 이 마음은 또한 세상살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하나의 망념을 주제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갖고 수행함으로써 삶을 바로 알고 바로 생각하는 것, 그 마음이 곧 불교를 행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법을 배우는 불자들의 신행과 수행은 모두 마음 문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불교의 근본 대의가 됩니다. 우리가 불교를 믿는 신앙적 정서를 말할 때는 흔히 네 가지로 말합니다. 첫 번째는 불교를 만난 인연으로 부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