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대장경 발간 편집회의 장면. 사진제공=민족사 1964년 동국대학교 부설 동국역경원 설립정부·조계종·동국대 함께 참여한 대 역사1971년 이탈리아의 밀라노 전시회에 출품통불교적 관점으로 펴낸 ‘불교성전’ 인기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에 불경은 인도의 고대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로 되어있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1세기 중반인 후한 초기에 불경이 한역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시기는 4세기 경이고, 중국을 통해서 들어왔기 때문에 경전은 한문으로 되어 있었다. 한문으로 된 불경은 지식인이 아니면 아무나 쉽게 읽을 수는 없었다. 불교가 나의 실체를 깨닫는 종교라고 한다면 그 깨달음을 알기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는
경제난으로 주름이 깊어지는 만큼 삶에 대한 좌절이 커지는 시대. 대중의 시름을 보듬고 삶에 희망을 불어넣어 줄 대강백 5인의 감로수 같은 사자후가 서울 도심을 적신다. 재단법인 대원정사와 법보신문사는 6월 29일부터 7월 3일까지 매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남산 대원정사 큰법당에서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대강백 5인을 초청, ‘대강백, 희망을 설하다’를 주제로 대법회를 개최한다. 중창불사를 마친 재가불교 근본도량 대원정사의 새 출발과 불교계 유일의 독립언론 법보신문 창간 2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대강백 초청법회에는 조계종립 승가대학원장 지안 스님(6월 29일), 하동 칠불사 회주 통광 스님(6월 30일), 승가대학원장을 역임한 통도사 율주 혜남 스님(7월 1일), 부산 화엄사 회주 각성 스님(7월 2
불교학연구회(회장 본각)는 최근 「불교학연구」 제19호를 펴냈다.이번 호에는 △종교와 노인의 여가(유승무) △일과 여가의 통합(정영근) 등 발표 논문을 비롯해 △초기경전에 나타나는 궁극 목표에 관한 고찰(임승택) △지와 관, 선정과 사념처에 관한 고찰(한자경) △원효 『기신론해동소』에 나타난 원음의 현대적 이해에 관한 연구(김원명) △도솔가에 나타난 미륵신앙(최정선) △운허의 생애와 불교사상 소고(신규탁) 등 논문이 실려 있다.
제불(諸佛)은 설궁(說弓)하시고 조사(祖師)는 설현(說絃)하시니, 불설무애지법(佛說無碍之法)은 방귀일미(方歸一味)어니와 불차일미지적(拂此一味之迹)하야사 방현조사소시일심(方現祖師所示一心)이니 고(故)로 운(云), 정전백수자화(庭前栢樹子話)는 용장소미유저(龍藏所未有底)라 하시니라. 〈선가귀감(禪家龜鑑)〉 제불(諸佛)은 설궁(說弓)하시고 조사(祖師)는 설현(說絃)하시니, 부처님은 활을 설명하시고 조사는 활의 줄을 말씀하셨다. 서산대사께서 부처님과 조사님의 가르침을 비교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활은 불법의 전체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활의 줄은 활의 일부입니다. 활을 전체적으로 보면 굽은 곳도 있고 곧은 것도 있고, 처음과 끝이 긴 곳도 있고 짧은 곳도 있습니다. 그러나 활의 줄은 곧습니다. 물론 당기기
“동학사 강원은 경허, 운허 스님 등 근현대 한국불교에서 뛰어난 강백을 배출했던 유서 깊은 승려 교육기관이었습니다. 특히 1950년대 처음으로 비구니 전문 강원이 개설돼 그 동안 수많은 비구니 강백들을 배출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전통을 계승해 동학사 강원이 국내 최고의 비구니 강원으로 발돋움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3월 27일 동학사 강원 학장으로 취임하는 해주 스님(동국대 교수, 사진)은 “전통과 현대식 교육방법을 적절히 도입해 동학사 강원의 옛 명성을 계승해 나가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히 스님은 “이제는 강원에서도 과거의 교육방법을 고수하기보다는 현대식 교육방법을 도입해야 할 때”라며 “이를 위해 동학사 강원부터 전통과 현대식 교육방법을 적절히 도입한 새로운 교육과정을 신설해 나갈
“참회 정진은 뭇생명 모두에게 늘 똑 같은 자비심을 낼 수 있도록 하는 길잡이이며 누구나 3000배 기도를 하다보면 자신의 성품이 부드럽게 변화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3000배 참회 기도를 통해 국난을 극복해 왔던 역대 고승들의 행적을 기리고 그 뜻을 잇기 위한 대규모 3000배 참회 정진법회가 5일간 봉행된다. 부산 감로사(주지 혜총)가 3월 17일부터 22일까지 감로사 삼천불전 임시법당에서 제57회 삼천불 3000배 참회기도법회를 봉행한다. 참회기도는 매일 600배씩 5일간에 걸쳐 3000배를 하는 정진 프로그램으로 기도 기간 중에는 하루 3회에 걸쳐 제방의 대덕 법사 스님을 초청, 감로 법문을 듣는 시간도 마련돼 있다. 3000배 참회기도 법회에는 조계종 포교원장 겸 감로사 주지
불교는 역경(譯經)의 역사다. 역경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시대와 지역에서는 불교가 늘 융성했고 그렇지 못했던 지역에서 불교는 생명력을 잃고 말았다. 이러한 예는 불교사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구마라집과 현장법사가 인도말로 된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했기에 중국불교는 꽃 피울 수 있었으며, 티베트대장경이 아니었다면 티베트에서 불교는 뿌리내리지 못했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해방 후 교단의 온갖 혼돈 속에서도 불교가 제1종교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구한말 선각자들에 의해 번역된 한글 경전이 한 몫 톡톡히 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경전이 한글로 번역됐기에 올바른 불교에 대한 이해가 확산될 수 있었고, 불미스러운 교단의 다툼도 ‘본질이 아닌 현상’으로 간주할 수 있는 대
동국대 교내 구석에 자리 잡은 역경원 건물 지난 1964년 개원 이후 지금까지 한문 일색인 고려대장경을 비롯한 불교경전을 우리말로 옮김으로써 한국불교 현대화에 절대적인 기여를 했던 동국역경원이 조계종과 동국대의 홀대 속에서 고사위기를 맞고 있다. 동국대 한켠 허름한 공간에 자리 잡은 역경원은 낡고 오래된 건물만큼이나 퇴색한 채 몰락하고 있다. 역경원 직원들의 급여는 동국대 교직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며, 2~3년에 한 번씩 이리저리 이사 다녀야 할 정도로 학교 내 위상 또한 극도로 낮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대장경 한글화 이후 역경원의 주된 사업이 돼야 할 ‘한국불교전서’ 번역작업조차 역경원이 아닌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으로 넘어가 2007년부터 문화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연세대 한국학진흥위원회가 1월 30일 오후 2시 30분부터 3시간 동안 연세대 상남경영관 메이풀 룸에서 불교를 주제로 제5차 한국학 포럼을 개최한다. ‘백용성, 한용운, 이운허 스님을 통해 본 불교와 역사인식’이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포럼에서는 홍사성 불교평론 주간의 사회로 진행되며, △백용성의 연구현황(김광식) △백용성의 불교사상과 조선의 근대화(김정희) △한용운과 독립선언서 공약삼장 기초자 논의(박걸순) △근대불교 연구방법론을 통해 본 한국학 연구의 방향-만해 한용운을 중심으로(박재현) △운허 스님 큰 길 큰 사랑(신용철) △운허 스님의 생애와 불교사상 소묘(신규탁) 등 논문이 발표된다.
연세대 한국학진흥위원회가 1월 30일 오후 2시 30분부터 3시간 동안 연세대 상남경영관 메이풀 룸에서 불교를 주제로 제5차 한국학 포럼을 개최한다. ‘백용성, 한용운, 이운허 스님을 통해 본 불교와 역사인식’이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포럼에서는 홍사성 불교평론 주간의 사회로 진행되며, △백용성의 연구현황(김광식) △백용성의 불교사상과 조선의 근대화(김정희) △한용운과 독립선언서 공약삼장 기초자 논의(박걸순) △근대불교 연구방법론을 통해 본 한국학 연구의 방향-만해 한용운을 중심으로(박재현) △운허 스님 큰 길 큰 사랑(신용철) △운허 스님의 생애와 불교사상 소묘(신규탁) 등 논문이 발표된다. 한편 논평자로는 불교교단사연구소 소장 원두 스님,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사무총장 효림 스님, 고흥택 전 광동고 교장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조계종 25교구 본사 봉선사(주지 인묵)는 홍법강원 복원 계획을 세우고 1차년도 사업으로 강주채 건립을 추진한다. 월초 스님과 운허 스님으로 이어지는 교학도량의 맥이 생생히 살아 있는 봉선사는 홍법강원 복원 불사 3개년 계획을 통해 강주채와 강당, 강원을 복원·신축해 교학 도량으로서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고 지역 포교의 밑거름을 마련한다는 각오다. 3년간 39억 3000여만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이번 사업의 첫 시작으로 올해 강주채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봉선사 경내 염불당 옆으로 자리잡게 되는 강주채는 122㎡ 규모의 전통 한옥식 목조 건물로 건립된다. 현재 문화재청의 현상변경허가를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며 오는 봄 착공해 10월 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 강주채
“수행자라면 모름지기 참선과 불학, 염불, 기도 등 불가의모든 방편이 한데 어우러진 화엄의 바다가 돼야 하네. 그게 연극 같은 인생 멋들어지게 사는 일이 아니겠나.” 제 12장 보살의 길 혜국은 차를 한 잔 더 마신 뒤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더니 일타가 화엄사를 떠나 해인사로 간 얘기까지 마저 했다. “화엄사 하안거를 마친 우리 스님께서는 해인사 퇴설당으로 갔지요. 당시는 퇴설당이 선방이었거든요. 거기서 지월스님, 서옹스님을 모시고 2년 정도 정진하셨지요. 그런데 우리 스님을 조계종에서 놔주지 않았지요. 1962년 4월에 정화대책 중앙종회비상종회의원으로 발탁해 율장 부분을 담당케 했지요. 그런 뒤 그해 8월에는 정식으로 조계종 초대 중앙종회의원으로 선출됐고 더불어 교육위원, 감찰위원,
해방 후 좌우합작운동 앞장중도적 삶 일관…69년 입적 성숙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군에 항복한 이후 중경의 임시정부가 상해로 옮기고 조국의 앞날을 염려하던 중 같은해 12월 1일 전북 옥구비행장을 통해 입국했다. 임시정부 요인이었던 홍진, 조성환, 신익희, 조소앙 등과 함께 입국한 성숙은 다음날 서울에 도착했다. 이후 좌우합작을 주창하며 몽양 여윤형과 함께 근로인민당을 조직하고 중앙위원에 뽑힌 성숙은 해방정국에서 좌우합작운동을 펼치는데 앞장섰다. 이후 1955년 조봉암 등과 접촉하여 진보당 추진위원회에도 관여했으나, 훗날 5·16 군사반란 이후 이른바 통일사회당 사건으로 다시 옥고를 치러야만 했다. 성숙은 57년 11월 16일 근로인민당 재건사건이 불거지면서 근로인민당재건 당 총책의 혐의를
“니가 승중(비구니)이 되어 잘해서 승중계에 혁명을 일으켜서 큰 중이 되면 안되나.”성철 스님으로부터 이 이야기를 듣고 출가한 청담 스님의 딸은 그로부터 13년 뒤 한국 최초의 비구니 강사가 되었고, 후일 봉녕사에 한국 최초의 비구니 율원을 개원했다. 그가 걸어온 길은 한국은 물론 세계 비구니사의 물길을 터가는 과정이었다. 국내 최초의 비구니 강사 한국 최초의 비구니 강사 묘엄 스님〈사진〉의 주강 50년을 기념해 봉녕사승가대학이 기념논총을 출간했다. 이 논총에는 묘엄 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은 제자들과 인연이 있는 학자, 스님들의 논문 21편이 수록됐다. 해외에서는 한국 비구니승단이 남녀평등 승가의 상징처럼 추앙되고 있지만 사실상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한국의 실정 또한 ‘평등’을 논할 수준은 아니다.
보살의 삶으로 칭송되는 홍법 스님의 입적 30주기를 기념해 문집이 발간된다. 홍법 스님의 입적 30주년이 되는 2008년 7월 29일 추모일을 기해 스님의 생전 발자취를 모은 문집을 발간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홍법문도회(대표 정우)는 최근 경남 양산 통도사 인근의 통도사 자비원 요양원 4층에 홍법선사추모문집 편집사무실을 마련하고 홍법 스님과 관련된 자료 및 유품을 모으는 데 진력하고 있다. 통도사 강주와 주지를 지낸 홍법 스님은 1930년 출생해 1978년까지 한국 근현대의 격동기를 보내고 세수 49세의 나이로 원적에 들었다.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 봉선사 조실 월운 스님과 함께 운허 스님의 문하에서 해인사 강원 1기, 통도사 강원 1기를 졸업한 3명 중 한 사람이다. 스님은 195
“봉선사는 교종본찰로 월초 큰스님과 운허 대강백 스님의 유지를 봉대해 문도간의 화합을 바탕으로 한 원융살림을 이룰 것입니다. 또 재정을 투명하게 하고 적절한 인재를 등용함으로써 교육과 복지, 포교를 통한 문화총림을 건설해 국내 최고의 도량으로 만들기 위한 기틀을 다질 생각입니다.” 지난 8월 31일 봉선사 산중총회에서 주지후보로 선출된 인묵〈사진〉 스님은 “많은 대중스님들이 나를 지지해 준 것은 문중을 화합 시키고 깨끗한 봉선사를 만들라는 뜻으로 안다”며 “봉선사 대중스님들과 불자들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열심히 일하는 본사주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묵 스님은 문화총림을 위해 △홍법강원 재건 △월초·운허 스님 사상 연구 위한 학술모임 주도 △한글대장경 보급 사업 및 역경사 양성 후원회 조직 △대중
MBC가 9월 12일 뉴스데스크를 통해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고등학교 졸업장 없이 대학에 편입했으며, 이를 통해 취득한 대학졸업장을 자격으로 해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며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의 학력도 위조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총무원이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는 지관 스님 학력은 63년 경남대의 전신인 마산대를 졸업, 69년 동국대 불교학 석사학위 취득, 76년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 등이다. 그러나 MBC 측이 문제제기를 한 것은 마산대 학적부에 기록돼 있는 ‘건국대 국문과 입학 및 당시 6년제이던 진주산업대 전신 진주농림중학교 졸업’과 동국대 학적부의 ‘진주 동명고의 전신인 해인고 졸업’ 부분이다. MBC 측은 진주농림중학교 졸업생 명단에서 지관 스님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으며,
정찬주 장편소설 삽화·송영방 “계율이 바로 서지 않으면 불교도 바로 서지 못해. 부처님께서 무엇을 지키라고 했는지 공부할 필요가 있어.모르니까 엉터리 가짜 중들이 많지.” 해가 일찍 떨어지는 겨울이었다. 그러나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바다가 인접한 창원의 날씨는 포근했다. 그날도 눈이 오려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모래 덮인 경내와 요사 기왓장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초저녁부터 나직하게 들려왔다. 전쟁이 끝난 후의 어수선하고 남루한 분위기 속에서 오랜 만에 들어보는 정다운 겨울 빗소리였다. 방문을 열면 암막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도 ‘똑똑똑….’ 하고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가깝게 들렸다. 그날 밤에도 일타는 성철의 부름을 받고 조실채로 건너갔다. “부르셨습니까.”“이거 먹어 보래
정찬주 장편소설 삽화·송영방 “저 간판이 당신 신심 깊은 것을 증명하고 있는기라. 저걸 떼어마산역 광장에 갖다 세우자, 이 말이야.”“아이구, 큰스님 부끄럽습니다.”“신심에서 돈 낸 것인가. 간판 얻으려고 돈 낸 것이제.” 하안거 중에 특별위령제가 실시되기도 했다. 범어사에 전사자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으므로 지내는 특별위령제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참석하는 위령제인 탓에 철저한 경비와 동원된 부산 시민들 속에서 행사가 치러졌다. 범어사 스님들은 위령제 순서에 따라 천도재를 지냈다. 일타도 목탁을 치며 극락왕생을 염불했다. 이때 동산은 위령제에 참석한 국방장관에게 유골안치소를 옮겨주도록 건의하여 허락을 받아냈다. 빠른 시일 안에 도량의 수행 환경이 정상화되도록 조치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던 것이다
정찬주 장편소설 삽화·송영방 “공부하는 사람은 계행을 깨끗하게 해야만 한다. 계를 우습게 알지 말아라.무명에 빠져 미혹에 머물러 있을 때 이를 반전시켜 본래 마음으로 회복하는그때가 바로 계이다.” 일타는 전쟁 중이었으므로 응석사에서만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절 사정은 그만큼 궁핍했고, 금오 회상에서 정진하겠다는 수행자들이 줄을 서 있기 때문이었다. 일타는 응석사에서만 1년을 보냈으므로 이제는 자리를 비켜주어야 했다. 금오 회상을 떠나야 했다. 일타는 오락가락하는 봄비처럼 어디로 떠나야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일각은 진즉 통영 미래사로 떠나버렸고, 함께 동안거를 보냈던 노승 소천도 하안거 방부를 들이려고 이 절 저 절을 알아보고 있었다. “노장님은 어디로 가시렵니까.”“오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