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를 지나면서 참으로 여러 생각이 든다. 민족의 역사에 가장 참혹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그리고 그 참혹한 아픔을 치유하는데 얼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할지 모르는 아픈 역사…. 그렇지만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 아픔을 치유하지 않으면 우리 민족, 우리나라가 바로 설 수 없는 역사의 상처가 바로 6‧25이다.그 치유의 바른 길은 무엇일까? 여기에 정답은 없을 것이다. 정치적 입장과 사상적 색깔에 따라 극단적이고도 천차만별한 시각이 존재하고, 자칫 그런 입장들이 부딪히면 건설적인 토론이 되기보다는 극단적 감정의 대립으로 치닫는 파국을
이번 연재를 시작하며 소개했던 청계 정종여(1914~1984)의 진주 의곡사 괘불도를 다시 살펴볼 때가 되었다. 인간 세계에 발을 담그고 사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그가 지냈던 삶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일제강점기에는 참전을 미화하는 그림을 그리고, 군인들의 무사귀환을 위한 ‘수월관음불상’을 그려 헌납했던 일로 그는 현재 친일화가 명단에 이름이 올라있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 서울이 점령되었을 때는 김일성 초상화를 그렸고 그 후 월북했다는 점은 점점 그를 잊힌 화가로 만들었다. 친일에다 월북까지 이렇게 금기시
여실지견,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함을 역설할 때 새끼줄과 뱀의 비유는 꽤 적절하다. 한 사람이 밤길을 걷다가 무엇인가 뭉클 하고 밟았는데 기다란 실루엣이 영락없이 뱀이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간 사람은 다음날 날이 밝고서야 그놈의 정체가 궁금하여 단단히 채비를 하고 그 자리로 돌아온다. 허탈하게도 그 자리에 있는 것은 평범한 새끼줄이었다. 가늘고 길다는 공통점 때문에 그 사람은 제멋대로 혼비백산 했던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보면 놀랄 일도, 불안할 일도, 고통스러울 일도 없다. 있는 그대로 보면 오해할 일도, 불편해질 일도, 싸울 일도
그동안 사경했던 ‘법화경'까지 봉안하면서 사경의 힘이 강력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정말로 발원하는 대로 생각하던 대로 이루어졌으니, 평소에 어떤 일이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설사 불가능해 보이는 일일지라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추구해 나가야 할 것 같다는 희망도 발견했다. 혼자 하는 사경만으로도 이렇게 좋은데 도반들과 더불어 하는 사경은 정말 신심이 솟아나는 과정이며 많은 선지식을 만나는 과정이며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활동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이렇게 선원에 몸담고 사경을 한 이후로 점점 더 장엄한
종로노인종합복지관 관장 정관 스님이 6월10일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지역 사무처(WPRO)에서 주관·주최하는 웨비나(Webinar, 온라인 세미나)에 참석해 코로나19로 취약계층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과 실질적인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이날 온라인 세미나는 비비안 린 홍콩대학 의과대학 전략 운영 사무부원장의 진행으로 종로노인종합복지관 관장 정관 스님, 바클라이 테멘길 팔라우의 지역사회 문화부 장관, 린제임스 싱가포르 보건부 역학 질병관리국장, 세바스찬 탄 싱가포르 인적자원부 산업안전보건국장, 아이코 카지 베트남 국제이주기구(IOM) 보건
최근 일어난 하나의 사건과 그 사건을 둘러싼 인물들의 행적을 놓고도 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 각기 다른 해석이 존재한다. 한국불교를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화엄사상, 법화사상, 정토신앙 등 다양한 사상과 신앙형태가 결합돼 있고, 참선‧간경‧염불‧주력 등 다양한 수행법이 통용되고 있기에 한국불교의 특징을 규정짓는 것 역시 같을 수 없다. 그럼에도 한국불교의 근간은 역시 선이고, 선사들의 삶은 곧 한국 선불교의 역사라 할 수 있다.10년 전 외국 선방에서 1년여를 지내고 귀국하면서 ‘한국불교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고민의
“냥이에 대한 책임감은 뜻밖에도 내 삶에 대한 충실한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굳이 누구와 대화를 하거나 라디오를 듣듯이 시간을 흘려보낼 마땅한 것이 하나도 없이 조그만 뇌로 하루 24시간을 가늠하며 살아가는 냥이의 시간은 눈물겹다. 하물며 사람인 내가 빈 마당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튕겨 오르는 한낮의 햇살처럼 기쁘게 살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산중에 사는 스님과 야생 고양이의 만남을 담은 보경 스님의 전작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가 주목을 받은 것은, 인간 대 반려동물의 관계를 일방적인 돌봄이 아니라, 존재와 존재의
가끔 인간의 지성에 경이로움을 느낄 때가 있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 해석이 정반대이거나 분분함을 볼 때가 그렇다. 각자의 입장과 소양의 차이가 존재하는 한 똑같은 견해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할 수 없는 이유도 동일하다. 보다 객관적이려고 노력은 하지만 ‘완전한 객관’은 관념에서나 존재할 이상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옳을 수 없으며 너는 항상 나쁠 수 없다.우리가 객관적이고 옳은 논리를 주장하기보다 차라리 “나의 말에는 나의 욕구와 나의 한계가 명백히 반영되어 있다.” “나의 생각에는 분명히 편견
“생명을 살리는 불편, 즐겁게 실천해 푸르니 청정도량을 만들겠습니다.”전국비구니회(회장 본각 스님)가 환경을 살리고 보호하기 위한 캠페인 ‘푸르니 청정도량 운동’을 선언했다. 전국비구니회는 6월12일 전국비구니회관 3층 대법당에서 열린 제28차 운영위원회에 앞서 법보신문, BTN불교TV, 불광미디어, 불교환경연대와 함께 업무협약식을 갖고 전국비구니회 녹색사찰 캠페인 ‘푸르니 청정도량 운동’의 전개를 위해 각 단체들이 공동협력할 것을 약속했다.[본 영상은 불영TV에서 촬영, 제공합니다. 바로가기http://bytv.kr/]협약식에는
불사 없는 절은 없다. 기존에 있던 전각이나 구조물 혹은 시설물을 수리하거나 교체하는 경우도 불사요, 절을 새롭게 중창하는 것도 불사다.오래전부터 사찰 불사는 스님이나 신도들이 화주보살이 돼 불사금을 마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복원불사를 위해 건물을 해체하거나 탑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상량문을 보면 누가 언제 무슨 연유에서 시주를 했으며 화주는 누구에 의해 이뤄졌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된 이래 사찰과 다양한 성보가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도 왕실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간절한 발원을 담은
고요한 달마산의 새벽을 ‘옴마니반메훔’ 진언이 깨운다. 응진당에서 퍼져 나온 목소리는 미황사 경내를 휘감고 달마산 솟은 바위를 내달아 울린다. 우렁차고도 간절한 소리에 돌아보지 않는 제불보살이 없으리라. 펜화가 김영택씨가 미황사로 거처를 옮긴 것은 지난해 6월이었다. 전통산사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고자 펜 한 자루 들고 전국의 산문을 수없이 넘나들던 그였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상행결장(대장)암 4기’ 판결을 받고 미황사에 발을 들인 그는 그저 환자였다. 이미 복부까지 전이된 암은 수술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항암치료를 시
26장은 “옛 덕 높으신 스님이, ‘단지 너의 ‘눈 바른 것’이 귀하지 너의 ‘행리처’는 귀하지 않다’”고 한 내용이다.서산은 “옛날 앙산(仰山慧寂, 803∼887)이 위산(潙山靈祐, 771∼853)의 질문에 답하기를, ‘‘열반경’40권은 모두 마군의 말이다’고 한 것이 앙산의 바른 눈이다. 앙산이 또 행리처를 묻자 위산이 답하기를, ‘오직 그대의 눈 바른 것이 귀하다’고 한 등의 까닭은 먼저 바른 눈을 연 후에 행리처(行履處)를 설한 것이니, 만일 수행하고 싶으면 먼저 돈오(頓悟)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고 평하였다. ‘위산영우어록
마음챙김 명상하면, 우리는 보통 생각을 비워내어 텅 비게 하는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비우려 해도 생각은 계속해서 일어난다. 마음챙김 명상은 마음이 작용하는 방식을 깊이 이해하게 하고, 생각 및 감정과 더 조화로운 관계를 맺게 도와주는 것이다.수련하다 보면 가끔은 생각이 좀 줄어든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이는 떠오르는 생각과 덜 다투기 때문이다. 흔히 마음챙김 명상하면 평범한 생활과는 거리가 있고 다른 의식상태를 추구하거나, 정신이나 육체의 초월적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라고 오해한다. 심지어 일상적인 현실에서
우리 사회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하거나 근거 없이 비방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자신들의 공약을 내세워 국민들을 설득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과거의 일까지 드러내며 헐뜯기 바쁘고 때로는 사실이 아닌 일을 마치 정말 있었던 것처럼 말하여 사람들을 선동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상대를 비방하는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도 종종 경험할 수 있기도 하다. 회사나 주변의 사람들과 관계를 갖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다른 누군가의 뒷이야기를 하거나 소문으로만 들은 것을 마치 자신이 보고 들
초하루 불공이나 사시불공 등 기도를 집전하다 보면 가장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것이 축원할 때다. 기도 올린 모든 분들을 다 축원해 드리려면 긴 시간이 걸린다. 그러면 법회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가버리는 분들이 많이 생긴다. 독송이나 정근은 같이 따라 하지만 축원할 때에는 각자 알아서 그 시간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축원은 기도 시간을 지루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이지만 그렇다고 줄이기도 쉽지 않다.이런 현상에서 벗어나려면 불자들이 축원의 의미와 기도의 마음가짐을 넓고 크게 가지도록 이해시켜야 한다. 기도할 때 축원이란 누군가의 인생이
금산사 미륵대불의 입찰을 두고 일섭 스님과 김복진이 경쟁한 것을 과연 전통미술과 서양미술의 대결 구도로만 이해할 수 있을까? 당시의 경쟁을 이해하기 위해 두 분이 제출한 포트폴리오 성격의 모형 불상을 살펴보자. 금산사는 불상 제작자 선정을 위해 높이 1m의 모형불상 제출을 의뢰했고, 이에 따라 각각 만들어진 두 분의 미륵입상이 현재 제주 정광원과 공주 신원사 소림원에 소장되어 있다. 덕분에 미륵대불 제작에 앞서 두 분이 어떻게 이 불사(佛事)에 접근하고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일섭 스님의 작품이야 전통적인 화승의 입장에서 조성된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는 불교문화를 어떻게 대중화할지에 대한 답을 제시한 작품으로 1부 저승편, 2부 이승편, 3부 신화편 등 총3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저승편에서는 39세에 과로사한 김자홍이 저승세계 국선 변호사인 진기한과 함께 49일간 재판을 받는 내용과 사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저승차사 강림도령, 일직차사 해원맥, 월직차사 이덕춘이 유성언이라는 억울하게 죽은 군인의 원한을 풀어준다는 내용이 유기적으로 결속돼 있다.이승편은 초등학생인 김동현과 어린 손자를 보살피고 사는 김천규 할아버지가 주인공이다. 할아버지를 데려가려는
어쩌면 저렇게 곱고 아름다울 수 있을까. 캠퍼스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오색연등 행렬이 만들어낸 장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시각 동악은 형형색색 연등들이 마치 야단법석이라도 벌이고 있는 듯하다. 신기하게도 시끌벅적한 소음은 들리지 않는다. 가끔 적막을 깨고 지나가는 조용한 바람소리 외에는 불현듯 신심이 솟구쳐 오른다.두 학기 째 불교한문아카데미 소속 기본과정 수강생이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인스님들 틈에서 말 그대로 초발심자의 자세를 가다듬고 있다. 다만 의욕은 있지만 예습과 복습을 제대로 하지 못해 가르치는 선생님들께는 항상 죄송
“8만2천은 부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고, 2천은 비구들로부터 받은 것이니, 나는 8만4천 가지의 이러한 법들을 전개하노라.”부처님 곁에서 가장 많은 법을 들어 다문제일로 불리는 아난다 존자가 ‘장로게’에서 읊은 내용이다. 이렇게 8만4천의 법이 경‧율‧논 삼장으로 전해지는 초기불전 가운데 경장은 ‘디가 니까야(길게 설하신 경들의 모음)’ ‘맛지마 니까야(중간 길이의 경들의 모음)’ ‘상윳따 니까야(주제별 경들의 모음)’ ‘앙굿따라 니까야(숫자별 경들의 모음)’ ‘쿳다까 니까야(그 외 여러 가르침들의 모음)’ 등 5부 니까야로 나누어
용주사 삼불회도를 둘러싼 논쟁은 작가가 누구인가의 문제와 이 그림이 언제 그려졌느냐의 문제가 서로 맞물려 있다. 김홍도 작품이 아니라고 보는 견해는 이 불화가 용주사 창건 때의 작품이 아니라 19세기말 이후 작품이라는 해석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렇다면 김홍도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1790년 용주사가 세워질 당시의 불화라는 견해는 양립될 수 없을까?지금까지의 정황으로는 그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작품을 1790년에 놓고 보면 너무나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이고, 또한 함께 작업한 화승들의 작풍에서는 이러한 스타일이 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