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지독히도 가난하고 무지한 부모님한테서 배운 건 하루 세끼 입에 풀칠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상의 삶이라 보고 듣고 느끼며 살았다. 남들은 쉽게 가는 중학교도 사정사정 해서 들어갔고 중학교만 보내주면 졸업해서 돈 벌어 오겠다는 약속 끝에 졸업과 동시에 산업전선에 뛰어 들어 일곱식구의 소녀가장으로 살았다. 그때가 17세, 지독한 사춘기를 겪으며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 무엇보다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건 “내면의 아우성?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 하나” “사람도 아닌 것이 짐승도 아닌 것이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 하나” “입에 풀칠하
폐암 말기였다.엄마를 입원시켰다. 엄마는 병원에 있으면서도 집 걱정 일 걱정만 하셨다. 폐암 말기라는 것을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매일 술로 마음을 달랬고 점점 앙상하게 말라가셨다. 마음이 아팠다. 사남매는 돌아가면서 엄마 병실을 지켰다. 하루는 내가, 그다음 둘째 셋째 막내까지 넷이 돌아가면서 병실을 지켰다. 그날은 내가 병실을 지키는 날이었다. 한 살 어린 둘째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전화를 받았다. 독기 품은 독사뱀처럼 원망을 쏟아냈다.폐암 말기 어머니 병실에서동생과의 처절한 몸싸움동생에 대
“어머니!” 나에게는 어머니가 부처님이셨다.중학교 진학 후 음주·흡연 방황공부는 물론 어떤 구속도 싫어약한 친구 괴롭힌 급우 폭행때용서를 구하고 변상한 어머니내겐 “의협심 강한 아들” 용기어머니의 자비와 큰 사랑 앞에“꼭 행복하게 해 드릴 것” 다짐대학·군 복무 초기 부적응 때도좌선하고 기도하며 지혜로 극복일상에서 부처님 가르침 새기며살게 해주신 어머니께 늘 감사22년의 짧은 생을 살아오면서 항상 내 곁에는 부처님이 계셨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기억하는 유년시절, 외동아들이었던 나는 그렇게 불심이 깊은 아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석가
한 참 바쁜 시간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들여다보니 ‘반야원’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언가 급한 일이 생긴 듯 했지만 바쁜 시간을 핑계대어 좀 늦게 전화를 했다. 딸의 담당 생활재활교사가 전화를 받았다.폭행·괴성 등 이상행동 표출담당 선생님 폐쇄병동 권유무도병이란 난치병까지 발병법화경 읽으며 일심으로 염불백련암에서 삼천배 기도정진딸 고통 거둬달라 눈물로 호소절수행 40일 만에 일어난 기적부처님이 내려준 놀라운 가피“어머니…많이 바쁘시죠?”“선생님 죄송합니다. 자주 찾아 가지도 못하고…. 정말 죄
부처님 가피를 체험하는 일은 황홀하다. 멈춰 서서 취해있노라면 현실은 더 매몰차게 다가온다. 그러나 가피 넘어 불자답게 살아가는 삶들이 있다. 그네들 삶은 부처님 가르침에서 달콤함을 찾고 실천에 옮기면서 황홀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 삶은 불교와 불자들 마음에 작은 불씨를 지폈다. 감동과 신행을 향한 발심이다. 그 용기 있는 고백들은 고해를 건너는 ‘희망뗏목’이다. 제3회 조계종 신행수기 공모 대상황성희 ‘기적의 다른 이름…사랑’중앙신도회 주최…BBS·본지 주관우편·이메일·방문 등 134편 접수수상작 19편
처음이었다. 환희심이라는 의미의 감정을 난생 처음으로 느낀 것은 불교를 접했을 때였다. 제법 긴 시간 다른 종교인으로 활동 했었다. 하지만 늘 마음 한 켠에는 채워지지 않는 허전한 공간이 머물러 있었다.구원 교리에 의문 품던 시기 지장보살 원력 환희로 다가와‘부처님이 출가 권했다면분명 희유한 이유 있으리라’삭발 순간의 감동 지금도 생생출가 길 나서 대웅 기지 갖추고고행 능히 이겨 정각 이뤘기에위대한 성인 부처님 완성된 것처음 본 불교교리에서 지장보살의 중생구제 서원을 접하게 되었다.‘어떠한 이유로 지옥에 갔는지는 일체 생각지 않으시
대중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스님의 모습은 삭발·염의한 외모다. 그러나 삭발하고 승복을 입었다고 해서 모두가 정식 스님이라고 볼 수는 없다. 승가공동체 내에는 공동체에 소속된 구성원으로서 스님이 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 요건과 절차, 규정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불교의 장자종단인 조계종의 경우 막 출가한 행자시절부터 최고 법계인 대종사가 되기까지 스님으로 살아가는 전 과정에 대한 요건과 기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행하는 교육과정 등을 대단히 체계적이고 세부적으로 규정하고 있다.행자·법계·승려법 등으로 규정행자로
2004년 9월 첫 문을 연 월정사(주지 정념 스님) 단기출가학교는 시행 초기부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삭발염의하고 한 달간 행자생활을 체험하도록 하겠다”는 주지 정념 스님의 선언은 순식간에 교계 안팎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 달’이라는 기간과 ‘삭발’이라는 조건이 일반인들의 동참을 이끌어낼 수 있겠는가는 의구심과 동시에 단순한 ‘사찰체험’을 넘어 출가의 본래 정신을 일반인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참신한 시도라는 기대도 컸다.한 달간 삭발염의 조건으로 2004년 9월 처음 문 열어일반인 동참여부 의구심 속2000여명 넘는 동문 배
출가(出家)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집을 나선다’이다. 이는 단순히 집이라는 공간을 벗어나는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만약 그런 의미라면 학교나 직장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것도 출가이고, 여행이나 나들이를 위해 집을 비우는 것도 출가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집[家]’이란 기존의 세상에서 소유했던 유형무형의 자산을 뜻한다. 즉 집·전답 등의 동산·부동산과 친척·친구 등의 인간관계와 신분·지위 등의 사회적 권위를 모두 포함하는 단어이다. 즉 출가란 기존에 소유했던 유형무형의 자산들을 몽땅 버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
매년 맞이하는 부처님오신날이다. 부처님오신날은 고타마 싯다르타의 탄생을 의미한다. 우리가 태자의 탄생을 기리는 이유는 태자가 훗날 출가 수행하여, 부처님이 되시기 때문이다. 만약 태자가 단순히 왕의 길을 걸었다면, 훗날 우리들이 그분의 탄생을 기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새로운 삶으로의 역사적 전환욕망·근심 버린 자유로의 출발‘비장한 노력’ 병행돼야 완성부처님 향한 진실한 믿음 전제믿음 없으면 수행정신 훼손시켜‘라훌라’에 준 가장 큰 유산도무너지거나 사라지지 않는 ‘출가’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일이 있다. 부처님오신날이
출가의 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하게 되는 것이 삭발(削髮)입니다. 삭발은 수행자의 가장 큰 표식이면서 상징이기도 합니다. 머리를 깎는 것은 참 쉬운 일입니다. 스타일도 필요 없고, 솜씨 좋은 미용사를 찾아갈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때가 되면 밀면 그만이죠. 항상 머리를 밀고 다니시는 스님들은 이따금씩 머리를 미는 것도 번거로워 대머리가 되었으면 하는 진담 같은 농담도 합니다. 그처럼 삭발은 수행의 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의 그것입니다. 출가자의 모습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 중의 하나이기도 한 것이지요. 삭발은 출가자의
“조계사 동자스님, 경기해야 하는데 유독 조는 스님이 계십니다. 스님들께서 새벽 예불하시니까 잠을 많이 부족 하신가 봐요. 스님, 눈 뜨셔야 합니다~!”“홍법사 동자스님은 계속 공을 손으로 잡으십니다. 개인기가 엄청납니다. 심판께서 아무리 말려도 안 들어요. 스님 발로 차세요. 발!”인기고공 중 불법도박으로2년 간 막막한 시간 보내위기 순간 등불 돼준 불교사찰에서 참회기도 올리며불교행사 자발적 재능기부불자답게 삽시다 동참하며“정직한 웃음 보답” 약속5월4일 오색 연등이 드리운 조계사 앞마당에 ‘명불허전(名不虛傳)의 대결’이 전개됐다
총선이 끝난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한갓져 보였다. 화사한 벚꽃이 지고 난 자리에는 부처님오신날을 찬탄하는 봉축탑이 국회를 장엄하고 있었다. 올해 봉축탑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반출된 이천 오층석탑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빼앗긴 소중한 문화재가 고국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불자 국회의원과 직원들의 간절한 마음이 담겼다.중학교 때 불교와 첫 인연새벽 4시면 예불에 꼭 참석고등학교 때 룸비니회 창립출가하려 사찰 찾아가기도대학 시절에는 대불련 활동참선하며 민중 위한 삶 서원일본 유학 후 교수로 재직제주4·3사건 규명에 앞장국회의원 되고 정각회
절에 한 번 살아볼래?어머니 한 마디에 12살 소녀 ‘예!’눈으로 본 것을 마음으로 보았다 하는 건 착각일 뿐!동국대 장학금 권선 10년사람 키워야 불교 진흥! 5월이다. 땅과 비, 그리고 해와 달이 빚어낸 기적들이 가야산 기슭에도 일어났다. 진달래와 철쭉이 겨우내 품었던 향기를 일시에 발산하고 있다.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꽃이 피었으니 봄이다! 오늘은 특별한 스님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는 날이다. 인연 닿는 비구니 스님들께 부탁드렸었다. 선교를 통해 내외가 명철하신 스님 한 분 귀띔해 주십사 하고. 한 분을 추천 받았고 수소문 끝
“생명 가치 소중히 여기는 사회로 나아가자”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존경하는 불자 여러분, 국민 여러분. 오늘은 모든 존재의 존귀함을 선언하신 부처님께서 오신 날입니다.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셔서 처음 걸으신 일곱 걸음은, 모든 인류에게 크나큰 자비이고 사랑입니다. 이 땅에는 새로운 광명이 비치게 되었습니다. 모든 만물이 이미 부처의 성품을 갖추었으니, 무명의 어둠을 떨쳐내고 바른 마음과 바른 노력으로 사람답게 살아가라는 축복의 순간을 열어주신 날이기도 합니다.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부처님 오시는 길을 아름다운 등으로 장엄합시다”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 사바에 몸을 나투시니 인간세계가 환희에 젖음이요, 이로 좇아 억조창생이 활로를 찾음이로다. 일곱 걸음걸음마다 연화장세계를 나툼이요 천상천하유아독존 일체개고아당안지라 하시니, 이로 좇아 만 중생이 생사를 다해 마쳤고 지옥과 천당이 자취를 감추었으며 고통이 안락으로 번뇌가 지혜로 돌아가며 사바에 어둠이 걷히고 진리의 대광명이 주야로 빛을 발함이라. 집집마다 문을 나섬에 서울로 통하고 집집마다 부처님과 보살님이 맞이함이로다.사바에 서광이 처음 깃든 오늘은 부처님께서
“행복의 등불을 밝힙시다”이기흥 조계종 중앙신도회장 평화로운 마음 향기로운 세상을 위한 사부대중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또한 지난달 재앙에 가까운 지진으로 8000여명의 국민을 잃은 부처님의 나라 네팔의 조속한 재건을 위해 전국의 불자여러분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 부탁드립니다.해마다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이야기 합니다. 세상은 점점 더 각박해지고 개인주의로 인한 폐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며, 현대 사회는 도덕성이 요구되는 많은 분야에서 불교의 참여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불자들은 굳건한
연초록 계절인 5월이면 아무리 삶이 고달팠다 해도 ‘이젠 좀 크게 숨 쉬며 살아도 될 것 같다’는 안도감이 돈다. 최종심사를 기다리는 신행수기 응모작들은 저마다 안도감에 맘껏 기지개를 켜는 사연들로 가득하다.가피입고 기적을 체험한 개개인의 소중한 고백들 위기에서 얻은 깨달음과 변화과정 정리할때 공감축산학도를 꿈꾸던 고등학생이 교사체벌로 인해 일그러진 삶을 살아가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와 스스로의 회심으로 학교 선생님으로 다시 서게 되었다는 김호준 교사의 사연이 쿵~하고 깊은 울림을 주었다. 폭력으로 일그러진 이 세상에서 폭력의 아픔
“어렵고 힘든 일은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섣부르게 인생을 결정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제가 걸어온 길을 학생들이, 불자들이 피해가길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김호준(47·청담) 불자는 소박했다. 신행수기 공모에서 대상인 총무원장상에 선정됐다는 소식에 “부끄럽다”고 했다. 반면 고스란히 드러낸 자신의 아픔이, 아픔을 이겨낸 자신의 과거가 다른 이들에게 힘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제2회 신행수기 공모전은 상처로 으깨진 몸과 마음에 희망이라는 새살을 돋게 만든 계기였다. 마침 올해가 그의 아픔이 곪은 지 30년 되는 해였다. 공모전을
“저 같은 사람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큰 상을 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 옛날 앙굴리마라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새 사람이 되었듯이 저 역시 더욱 마음을 낮추고 열심히 수행하도록 하겠습니다.”제2회 신행수기 공모에서 최우수상인 포교원장상에 선정된 경오 불자는 부산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 경오씨는 본지와의 서면인터뷰에서 “막상 신행수기에 공모한 후 인면수심의 큰 죄를 짓고 사형수의 삶을 산 죄인이 무슨 염치로 글을 써 보냈나하는 후회를 하기도 했다”며 “혹여 저로 인해 큰 상처를 안고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