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교육원이 도심 속에서 전통승가교육 방식을 선보이며 2003년 첫 문을 연 서울불교전문강당 1기생 졸업식이 스님·재가불자 등 졸업생 58명과 축하객 등 200여 명의 사부대중이 참석한 가운데 2월 28일 오후 5시 서울 사간동 법련사에서 열렸다. 심정섭 기자sjs88@beopbo.com
군불교 사상 최초로 군단 차원의 군불교발전협의회가 최초로 발족된다. 육군 제7군단이 위치한 이천, 여주, 양평 3개 지역 사원연합회 회장 스님들은 사원연합회가 함께 힘을 모아 군불교를 진흥시키기 위한 공동 발전협의회를 발족시키기로 결정했다. 창립법회는 3월 5일 오후 2시 육군7군단 법당인 호국상승사에서 개최된다. 이 협의회의 의장은 이천사원연합회 회장인 용학사 혜봉 스님, 여주사원연합회 회장인 여주 법천사의 법성 스님, 양평 사원연합회 회장인 사나사 화암 스님이 공동으로 맡게 된다. 이천, 여주, 양평 3개 지역 군불교발전협의회는 앞으로 육군 7군단 예하부대와 항공작전사령부 예하부대 소속 군법당에 대한 공동 지원을 펼치게 된다. 호국상승사 주지 오성 경연수 법사는 “산발적으로 이루어
서울 서초불교사암연합회(회장 춘광 스님)가 2월 21일 서초구민회관에서 ‘서초구민을 위한 신년 하례 대법회 및 경로잔치’를 봉행했다. 이날 법회에는 여래원 주지 운월, 대성사 주지 법안, 천개사 주지 계수 스님을 비롯 조남호 서초구청장, 최정규 서초구의회 의장 등 사부대중 800여명이 동참했다. 춘광 스님은 신년사를 통해 “우주만물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것처럼 올 한해는 보살행의 실천으로 상생의 사회를 만들자”며 “사부대중 모두가 불보살의 가피로 날마다 좋은날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축원했다. 이에 조남호 서초구청장은 “종교와 종파를 떠나 지역에 어려운 일이 발생할 때마다 서초구사암연합회가 앞정서고 왔다”며 서초구사암연회에 깊은 감사를 표했다. 서초불교사암연합회는 이날 효부·효자에 대한
사회복지법인 통도사 자비원(대표이사 현문 스님)이 3월 20일까지 제7기 호스피스 봉사자 교육생을 모집한다. 이번 호스피스 교육은 3월 23일부터 6월 29일까지 매주 수요일 15주간 진행된다. 수강생들은 말기 암환자 및 임종을 앞둔 환자들을 위한 전문 봉사자 양성 과정을 교육받게 된다. 60명의 수강생을 모집하는 이번 교육은 입금 순으로 마감하며 교육비는 15만원이다. 자비원 사무처장 오심 스님은 “자비원은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봉사인력 양성에 앞장서고 있다”며 “통도사 자비원 노인전문요양원과 연계해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최상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055)381-3999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신계사 맞은편에 건립될 예정인 불자수련원 금강산 신계사 인근에 불자수련원 건립이 추진된다.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은 2월 21일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을 예방하고 불자수련원 건립 계획을 공개, 종단의 협조를 요청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스님을 예방한 현대아산 김윤규 사장이 신계사 불자수련원 건립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총무원을 방문한 김윤규 사장은 “금강산 신계사를 찾는 불자들과 성지순례객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데 비해 이들이 머물면서 기도 등 신행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라며 “600~800여 명이 동시에 머물며 수행과 기도를 할 수 있는 불자수련원을 신계사 맞은 편에 건립하고자 한다”며 조감도를 공개했다. 현대아산이 건립을 추진하는 불자수련원은 신계
불광사·불광법회는 2월 20일 불광사 보광당에서 금하당 광덕대선사 6주기 추모법회를 봉행했다. 이날 추모법회는 대각회 상임이사 흥교, 불광사 전 법주 지정, 불광회 회주 지홍 스님 및 문도스님을 비롯한 사부대중 2,000여명이 동참한 가운데 진행됐다. 지정스님의 인사말과 흥교 스님의 추모사로 진행된 이날 추모법회는 광덕스님 법어 중 호법법회 때 법문했던 내용만을 모아 ‘정법광명이 영원하여지이다’라는 제목으로 책자 및 CD를 선보였다. 특히 15분간 진행된 광덕 스님 육성법문(85년 5월 1일 호법법회 법어)은 이날 참석한 불자들로 하여금 발심·정진하는 마음을 되새겨보는 자리가 됐다.
마음이 세상 만들어 내기에 마음으로 시비분별 하지 말라 사람은 처음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경험은 아무런 시비 분별도 없고, 다만 경험 그 자체로써 받아들여진다. 그들에게 있어 모든 경험은 좋고 싫은 것도 아니고, 옳고 그른 것도 아니다. 아무런 분별 없이 있는 그대로 다만 느끼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천진불 어린 아이도 조금씩 경험에 시비와 분별을 붙이게 된다. 그런 시비 분별은 곧 신념을 만들어 낸다. 경험을 통해 신념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신념은 또 다른 경험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경험은 또 다시 그 신념을 뒷받침해주고 증명해 주게 된다. 그럴수록 그 신념은 보다 확고해지고 그 신념에 점점
답답하면 답답할수록 불보살님께 기도해 보라 스스로 질문에 답하게 되리 북경에도 겨울바람이 차다. 집안에서 보면 해가 나서 밖이 따스해 보이는데 실제로 밖으로 나가 보면 매서운 바람이 온 몸을 할키고 지나간다. 그런데 이렇게 추운 바람이 뜻밖으로 좋은 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북경 공기 속에 있던 공해 물질을 바람이 죄다 쓸어가 오랜만의 청명한 하늘을 바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처음 봤을 때는 분명 나쁘게 보이는 것인데 나중에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쁘게 보이는 것에도 내가 몰랐던 쓸모있는 좋은 점이 있다는 사실을 일상에서 종종 발견하게 된다. 사람은 살다 보면 어떨 때 정말로 답답한 경우가 있다. 특히 본인의 불분명한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나 자신이 정말로
가난을 선택할 수 있는가 선택한 가난은 지혜로움의 원천 요즈음 들어 가난하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내게는 가난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충분하게 갖추어져 있는가 스스로 비추어 보는 일이 많아졌다. 선택한 가난은 무한한 지혜로움의 원천이며, 영혼의 스승이다. 가난하게 산다는 건 우리 안의 창조적이고 자주적인 본연의 능력과 지혜를 삶 속에서 마음껏 발휘하면서 산다는 말이다. 부유하고 편리하게 살면 우리는 본래의 능력을 자꾸만 잃어버리게 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그만큼 축소되며 몸과 마음의 능력도 함께 소멸되고 만다. 그렇게 부유와 편리에 길들여지고 나면 자신 스스로 할 수 있는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영역이 퇴화되고 모든
知人들은 전생에서 이어진 인연 지금 주위 사람 어찌 대하나 관해 몇일전 나는 북경에서 홍콩 출신의 불자 한 분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첫인상부터 왠지 예전에 알고 지낸 사람처럼 친근해 보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신심 깊은 불자였다. 저녁 공양을 같이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평소에는 남들에게 잘 하지 못했던 본인의 명상 체험을 나에게 털어놓았다. 그 이야기가 하도 재미있어서 그 법우님의 동의를 얻어 이 곳에 한번 적어 볼까 한다. 그 법우는 한 10년 정도 염불을 위주로 수행을 했다고 한다. 하루는 평소처럼 관세음보살 명호를 염하면서 의식을 이마 정중앙에 모으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마 정중앙 부분에서 터널 같은 것이 보이더니 본인이 마치 그 터널을 통과하는 느낌을 받았다
태국 바다에서 해일과 만나는 순간 낙원도 지옥 ‘무상(無常)’도리 느껴 하필이면 그때 나는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위에 떠있었다. 수마트라에서 시작된 지진의 여파로 해일이 일어날 때 나는 인도양이 바라보이는 태국 남단의 섬, 홍 아이랜드 (Hong Island)라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연말 수업이 없는 짬을 틈타 잠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고 그래서 궁리 끝에 생각해낸 곳이 바로 태국 남단의 조그만 섬이었다. 주위분들에게는 남방불교 순례겸 해서 잠시 다녀온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북경의 건조한 겨울 바람과 공해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따스하고 오염되지 않은 바다와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꿈에 그리던 인도양의 섬과 내가 처음 만남을 가지는 바로 그 시간이 하필이면 세계 3대 재앙의 하나로 손꼽히는
‘내 것’은 그 어디에도 없어 스님들은 스님 틀 깨는 사람 불교공부를 하고, 수행을 하는 사람들일수록 정말이지 큰 아상에 빠져들곤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수행을 많이 하면 할수록 ‘나는 수행 잘 하는 사람이다.’ 라는 등의 ‘나 잘난’ 상을 많이 만들어 낸다. 물론 그런 마음을 가지면 잘못이고 틀렸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그런 마음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니 자책하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잘 지켜볼 수 있어야 한다. 잘 지켜봄으로써 ‘나’란 허상에서 바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이건 수행자들에게 있어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수행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점을 잘 지켜보는 것이다. 잘 지켜보아 거기에 빠지고 집착하지 않는 것이 수행이다. 그것이야말로 아상의 실체
변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라 그리고 그 흐름에 나를 맡기라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일체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진리, 즉 무상(無常)의 진리이다. 일체 모든 존재는 끊임없이 변한다.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고 찰나 찰나로 흐른다. 어느 한 순간도 멈출 수 있는 것은 없다. 아니 어떻게 멈출 수 있단 말인가.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진리와 하나되어 흐르라. 그러면 어떻게 진리와 하나되어 흐를 수 있는가. 변화한다는 진리, 무상이라는 진리와 하나되어 흐르면 된다. 변화를 받아들이며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변화의 흐름에 몸을 맡기라. 그 흐름을 벗어나려 하지 말라. 변화는 진리이다. 그러니 변화를 붙잡으려 하지 말라. 우리의 모든 괴로움은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데서 온다. 변화
네온사인 번쩍이는 천안문에는 뿌리잘린 巨木이 표류하고 있다 중국은 도대체 한국에게 어떤 존재인가? 특히 21세기에 들면서 이 질문의 무게가 갈수록 더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각종 서적과 대중 매체들이 중국의 향후 미래를 여러 각도에서 점치고 있고 그런 각종 예측과 함께 언제부터인가 차이나 드림을 꿈꾸며 중국땅을 밟는 한국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중국 위기론을 내세워 앞으로 중국의 기술과 한국 기술의 차이가 10년 아니 5년 안에 따라 잡힐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다른 어떤 이는 상해나 북경의 생활비가 한국 웬만한 도시 생활비와 거의 맞먹는 수준에 왔다면서 이런 위기감을 더욱 부채질하기도 한다. 혹자는 이런 상황이 ‘기회’라며 자녀들의 조기 유학을 중국으로 보내기도
온갖 느낌도 인연따라 온 환영일 뿐 그대로를 인정하고 느끼고 바라보라 저녁 노을이 질 때가 되면 난 해지는 풍경 속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요즘 같으면 찬바람이 휑하니 불어 내 안에서 피어오르는 느낌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때다.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외롭다고 할 수도 있겠고, 고요하다거나 평화롭다거나 할 수도 있겠지만 애써 그것을 표현하지 않아도 좋다. 뭐랄까 내 안의 본래적인 감각을 온전하게 끌어내 주는 이 느낌에 가만히 마음을 모으다 보면 이 대자연의 숨결과 하나되는 듯 내 마음은 어느덧 선(禪)으로 향한다. 이러한 느낌은 참 소중하다. 그 느낌을 그저 휙 지나쳐 버리지 말라. 가만히 그 느낌에 마음을 모아 집중해 보면 그 모든 느낌들 속에서 명상의 연결점을 만
마음이 만들어내는 잡음을 멈추고 내 안에서 울리는 고요함을 들어보라 아직 세상이 깨어나지 않은 초겨울의 새벽이다. 방금 일어나서 그런지 정신이 비교적 맑고 고요하다. 습관처럼 가만히 좌복(坐服) 위에 앉아본다. 그리고 조용히 들어본다. 세상의 소리, 내 안의 소리 그리고 세상과 나를 너머 있는 소리. 아무 소리가 없는 정막도 사실은 가만히 들어 보면 방안을 가득 메우는 미묘한 파장의 떨림이 있다. 이런 고요함 안에 있는 진동을 느끼다 보면 세상 전체가 나와 하나가 되어 함께 진동하는 것 같다. 소리를 듣는다는 것, 생각보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잘 듣기 위해서는 마음 안에서 만들어내는 잡음을 일단 멈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전을 펴 본다. 먼저 『법화경』에 나오는 「묘음보살품」(妙音菩薩品
계절의 변화에 고개돌린 당신 혹시 자연의 초대를 거절한건 아닌지 가을인가 싶더니 벌써 겨울의 한가운데로 와 있다. 지난주에는 벌써 첫눈을 맞이했으니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하얀 세상이 온통 내려앉게 될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통 형형색색의 단풍들이 한껏 가을을 수놓고 있었다. 참 야속도 하지, 봄꽃들이 그러했듯이 가을 단풍 또한 한창 피어오른다 싶으면 그냥 바로 아쉬움을 남기고 잎을 떨군다. 지금은 도량 주위가 온통 낙엽밭이다. 겨울철에 수북이 쌓인 눈을 밟을 때 발이 쑥 들어가는 것처럼, 지금 산을 오르면 수북이 쌓인 낙엽들로 발길이 푹 푹 빠지곤 한다. 이맘때쯤 숲의 아름다움은 이런 낙엽에 있지 않은가 싶다. 낙엽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그 길 없는 산길을 걷는 느낌. 그 바스락
나이들수록 마음의 평수도 늘어나니 나이드는게 과히 나쁜 것은 아닌 듯 출가자에게 무슨 생일이 따로 있으까 마는 그래도 다음주가 되면 나이를 한살 더 먹게 된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제는 모르는 새 단어를 외울 때 예전처럼 바로 바로 기억이 나지 않고 좋아하는 운동을 해도 예전만큼 실력이 나오지 않음을 느낀다. 세속으로 치면 더 이상 청년이 아닌 완전히 아저씨가 되어 버린 셈이다. 그래도 나이가 한두살씩 먹어간다는 것이 나는 그리 싫지만도 않다. 젊은 날의 왕성한 혈기는 없어도 경험으로 축적된 판단력이라든지 예전에는 없던 침착성이 어느덧 나이와 함께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5∼6년 전에만 해도 나는 참으로 어리석은 면이 많았던 것 같다. 한번은 법회 중에 찬불가를 할 때 목
성적·학벌·돈으로 내린 평가 행복 기준이라 더이상 속지말자 수능시험도 이제 끝이 났다. 그동안 학생들은 공부하느라, 어머님들은 기도하느라, 스님들은 축원하느라 모두들 고생이 많았는데 어쨌거나 이제 한 고개를 넘어섰다. 이제 다 끝났으니 남은 것은 그저 다 맡겨버리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싶다. 그러나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은 정작 이제부터다. 과연 어떤 대학이 좋은 대학인가. 좋고 나쁜 대학은 없다. 다만 서로 ‘다른’ 대학이 있을 뿐이고, 서로 다른 학과가 있을 뿐이다. 다르다는 것은 좋고 나쁨이 아니다. 다만 서로 다른 개성이 존중되어진다는 말이다. 이 대학을 가도 괜찮고 저 대학을 가도 괜찮다. 이 전공을 택해도 좋고 저 전공을 택해도 좋다. 어디에라도 고집하고 ‘꼭’ ‘반드시’
조건적 발생(緣起) 속에서 가동하는 기본적인 원칙은 원인과 결과이다. 연기법은 일상 속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조건적 발생의 예를 들어 자세하게 묘사될 수 있다. 우리 주변에서 발견되는 조건적 발생의 본질을 입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여기 하나의 오일 램프가 있다고 하자. 오일 램프의 불꽃은 심지와 기름에 의지해 타오른다. 심지와 오일이 존재할 때, 램프의 불꽃은 타오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어느 것 하나만 없어도 불꽃은 꺼져버린다. 여기서 오일과 심지는 조건적 발생의 원리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또 하나, 식물의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식물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씨앗과 토지, 습기와 공기, 그리고 햇볕이 있어야 한다. 씨앗이나 햇볕 등 요인들 중 어느 한 가지만 없어도 식물은 자라날 수 없다. 이처럼 모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