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황사기와세트.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5월 11일부터 경주출토유물보관동에서 ‘분황사 출토유물’특별전을 열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분황사 발굴조사 출토유물을 비롯해 250여점의 유물이 전시된다. 분황사에서만 출토되는 기와는 창건 금당에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되는 연화보상화문수막새, 쌍조문암막새 세트와 1차 중건 금당에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되는 초화문수막새, 쌍조문암막새 세트가 선을 보인다. 또한 연화문, 보상화문, 당초문, 용문, 비천문 등 다양한 기와는 신라 -통일신라-고려-조선에 이르기까지의 기와 양식을 전해주고 있다. 바둑판형전 이와함께 가로 15줄, 세로 15줄의 바둑판전(42X42cm, 높이 7.8cm)도
5월 10일 수△한국불교미술협회 ‘한국불교미술대전 및 학술대회’=오후 4시, 동덕갤러리 A·B 전관, 16일까지. 02)2268-3090△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 ‘공명선거 기원 및 종교편향 제도 마련촉구 공개포럼’=오전 10시, 한국일보 송현클럽. 02)732-7272△전국불교산악인연합회 ‘제5·6대 총재 이취임 법회’=오후 3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02)735-0408△조계종 총무원 ‘동화사·은해사 주지 스님 임명장 수여식’=오전 10시, 불교역사문화기념관 4층 접견실. 02)2011-1700△진각종 ‘회당 대종사 탄생 104주년 기념법회’=오후 2시, 총인원 무진설법전. 02)913-0751 5월 11일 목△영주포교당 홍법사 ‘영주불교문화대학 개강식 및 신입생 환영법회’=오후 3시, 영주포교당 홍법
동국대 김상현 교수, ‘동국사학’서 주장 김주한-하정룡 씨 기존 주장 모두 반박 『삼국유사』에 수록돼 있는 찬시(讚詩) 48수는 모두 일연 스님의 지은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동국대 김상현〈사진〉 교수는 최근 「동국사학」(2005년 12월)에 기고한 「삼국유사의 찬 연구」라는 논문을 통해 “찬시 중에 일연 스님의 작품이 아닌 것이 포함돼 있는 몇몇 학자의 주장은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삼국유사』의 저자가 일연 스님이듯이 이 책의 한 서술형식으로 돼 있는 찬(讚)도 일연 스님의 작품으로 보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삼국유사』에 포함돼 있는 찬시(讚詩) 48수는 각 항목별로 본문의 서술을 끝낸 뒤에 찬자 자신의 느낌을 칠언절구(七言絶句)의 한시(漢詩) 형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나는 스님 아닌 거사자기 욕망의 분출을무애라 변명 말라요즘도 신라와 비슷나를 칭송하기보다중생의 아픔 감싸라한국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이자 종교인으로 손꼽히는 원효(元曉, 617~686). 이 나라 불교의 새벽을 활짝 열어젖힌 그는 성과 속을 자유로이 넘나들던 무애도인이자 분열과 다툼을 종식시킨 화쟁의 달인이었다.초지보살로 일컬어지는 원효는 그 탄생부터 신비롭다. 617년 어느 날, 유성이 품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아이를 밴 한 여인이 경산 불지촌(佛地村)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런 산기를 느낀 그녀는 미처 집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밤나무 아래에서 아이를 낳았다. 이 때 새들은 노래하고 오색구름이 땅을 뒤덮었다 전한다. 부처님의 탄생 설화를 쏙 빼닮은 이 아이가 바로 원효다.귀족가문에 태어난 원효의
지난 2월 1일 의정부지법 민사합의 12부는 2004년 회암사가 문화재청을 상대로 “회암사지 출토 유물을 돌려 달라”며 제기한 소유권 확인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절이 소실돼 사라지거나 규모가 줄었다하더라도 재건돼 승려들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다면 과거와 현재의 동일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사찰 경내지에서 발굴되거나, 혹은 폐사지 출토 유물에 대해 일방적인 소유권을 행사하던 국가 또는 문화재 관련 단체들의 불법 행위에 대해 제동을 건 첫 사례로 뜻 깊은 판결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수년에 걸쳐 수백억을 들여 불교중앙박물관을 완공하고서도, 오는 11월 개관을 앞두고 성보 문화재가 없어 원활한 운영에 적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는 종단으로서는 국가가 소유하
조계종이 2006년을 ‘성보문화재 소유권 반환 운동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조계종 총무원은 오는 11월 예정돼 있는 불교중앙박물관 개관에 맞춰 국립박물관을 비롯해 경기도 박물관, 동국대 박물관 등에 소장돼 있는 성보문화재 1100여점 등의 반환을 10대 핵심 사업으로 채택, 추진할 것임을 공식 발표했다. 또 현행 사찰경내지 출토문화재 관리의 문제점에 대한 법령의 보완 및 행정지침의 개선을 요구하는 여론을 조성함과 동시에 명백한 성보임에도 그 소유권이 국가에 귀속돼 있는 문화재에 대해서는 소송을 통해 그 소유권을 인정받겠다는 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 회암사 판결 높이 평가 이 같은 조계종의 행보는 최근 양주 회암사지 출토유물에 대한 ‘소유권 확
‘백 그루 소나무에 몸을 나투셨다’는 설화는‘머무를 곳도 떠날 곳도 없다’는 無碍의 상징원효대사가 이곳에 앉아 수행을 했다는 소요산 원효대.원효의 무애자재한 모습을 설화식으로 표현한 이야기들에서는 원효가 무애자재(無碍自在)하여 일시에 몸을 백 곳에 나투었다고 합니다. 『삼국유사』에 나타나는 ‘몸을 백그루 소나무에 나타냈다(分軀於百松)’ ‘몸을 백가지로 나투었다[分百身]’ ‘몸을 여러 곳에 나타냈다(數處現形)’ ‘백 곳에 형상을 드러냈다(百處現形)’ 등의 표현이 대개 이 뜻입니다. 일찍이 원효는 송사(訟事)로 인해 몸을 백 그루의 소나무에 나타냈던 일이 있고, 이로 해서 모두들 그의 위계(位階)를 초지(初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설화가 아니라 불교교리에 근거를 둔 매우 상징적인 이야기입니다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11월 21일 오후 2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4층 접견실에서 한국불교문화사업단장에 전 총무부장 현고 스님을 임명한데 이어 종책자문위원장에 중앙종회의원 정휴 스님을 인선, 임명장을 수여했다. 이와 함께 종책 및 사정, 기획, 사회 등 분야의 특별보좌관과 문화국장, 호법부의 상임감찰에 대한 인사도 단행했다.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해인사 주지 현응 스님, 불국사 주지 종상 스님을 종책 특보에, 종회의원 장윤 스님을 사정특보에, 동국대학교 교수 보광 스님을 기획특보에, 전 사회부장 정념 스님을 사회특보에 각각 임명했다. 이와 함께 문화국장에는 혜조 스님을 재임했으며 호법부 상임감찰에는 종덕 스님을, 호법부 조사 과장에는 각천 스님을 각각 임명했다. 다음은 신임
저(笛:적)를 잘 불어 ‘가는 달을 멈추게 했다’는 대금의 달인 월명 스님을 기리는 추모재가 지난 10월 16일 황룡사터에서 열렸다. 올해로 13회를 맞는 월명 추모재는 ‘젓대소리 온 땅 가득 달빛으로 내려오심이이라’라는 제목으로 경주문화축제위원회(위원장 백홍수)가 주최, 신라사람들(대표 최승욱) 주관으로 진행됐다. 문학과 음악, 춤 그리고 문화재가 어우러진 예술축제인 월명 추모재에는 500여명의 사부대중이 모인 가운데 도솔가와 제망매가 낭송을 시작으로 육법공양, 바라춤, 국악연주, 분황사 탑돌이 등이 이어졌다.
불교의식-현대음악 어우러진 無碍 장 연출 10월8일 불국사에서 열린 영산대재. 10월9일 분황사에서 열린 원효예술제. 천년전 신라의 서라벌도 이와 같았을까? 10월 8일, 9일 33회 신라문화제 행사 일환으로 경주 불국사와 분황사에서 열린 영산대재와 전국불교음악제, 원효예술제는 장중한 불교 의식과 현대적 음악, 흥겨운 한마당이 어우러진 무애(無碍)의 장이었다. 특히 아스라이 어둠이 내린 가운데 범영루 앞에서 열린 전국불교음악제는 5000여명의 인파가 몰려드는 등 불국사의 아름다움과 하모니를 이뤄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 신라문화제 불교 행사는 10월 8일 영산대재로 막을 올렸다. 무설전 앞에서 열린 대재는 석가모니불의 괘불탱이 걸린 가운데 진흥왕, 표훈대사, 김대성 재상
화쟁은 단순한 이론이 아닌 실천의 문제당대에도 극찬…고려 때는 화쟁국사 시호 선덕여왕 3년(634)에 창건된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제30호). 원효는 이곳 분황사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여러 저술을 펴냈다.이번에는 원효의 화쟁(和諍)사상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화쟁에 대한 이해는 참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화쟁은 서로 다치지 않고 화해롭게 지낸다는 것인데 이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효의 화쟁사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 관심을 가져왔지만 정작 원효의 화쟁을 규명해내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도, 또 어느 정도 규명해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는듯 보이는 것도 화쟁이 언어의 문제가 실천의 문제이기 때문입
1. 『삼국유사』 ‘흥법편’에는 삼국에 불교가 전래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이에 관한 설명으로 틀린 것은? ① 고구려는 소수림왕 2년(372년)에 전진왕 부견이 승려 순도를 시켜 불상과 경문을 보냈다. ② 고구려는 소수림왕 2년 (372년)에 동진에서 승려 아도를 시켜 불상과 경문을 보냈다. ③ 백제는 제15대 침류왕때 서역에서 승려 마라난타가 동진에서 오니 그를 궁중에서 머물게 하고 예로써 공경하였다. ④ 신라는 제19대 눌지왕 시대에 사문 묵호자가 고구려에서 일선군(경북선산)에 왔다 사문 묵호자는 ‘사문 아도’화상과 동일인이다 2. 『삼국유사』 기록에 의하면 법흥왕과 진흥왕이 만년에 출가한 사찰로, 신라불교의 전래자 건설자, 완성자 등 10聖을 모셨던 사찰은? ① 표충사 ② 흥
민중들에 의해 신통력 갖춘 도인으로 찬양-윤색한중일에 지대한 영향…日 원효 생애 다룬 저술도무덤에서의 하룻밤은 훗날 원효 스님을 동아시아 불교사의 위대한 성사(聖師)로 만들었다.(『화엄연기회권』中) 원효의 대중교화는 그의 학문적 성과나 사상적 깊이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황량하고 거친 세상이라는 들판에서 삶에 지친 사람들의 묵정밭을 일구고 가꾸는 일이란 보살행의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원효가 만난 사람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밭가는 노인과 산골의 몽매한 사람, 그리고 광대, 백정, 술장사 등 시중사람들과도 어울렸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거리의 아이들이나 부인들까지도 원효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의 익살과 웃음, 노래와 춤 등은 삶에 지친 거리의 사람들에게는 신나는 일이었고, 잠자는 영
요석과 사랑은 파계 아닌 의도된 몸짓‘생이지지’는 잘못…평생 정진한 수행자경주 분황사에 모셔져 있는 원효대사 진영.원효는 44세이던 문무왕 원년(661년)에 다시 도당유학의 길을 나섰습니다. 물론 이 때도 의상과 함께였습니다. 그런데 원효는 남양만이 멀지 않은 직산의 어느 옛 무덤 속에서 깨달음을 얻습니다. 『송고승전』의 ‘의상전’에 전하는 원효의 오도(悟道) 설화는 다음과 같습니다.원효와 의상은 중도에 심한 폭우를 만나 길 옆의 토감(土龕) 사이에 몸을 숨겨 회오리바람과 습기를 피했다. 다음날 날이 밝아서 보니, 해골이 있는 옛무덤이었다. 궂은비는 계속 내리고 땅은 질척해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또 연도의 벽 중에 머물렀는데, 밤이 깊기도 전에 갑자기 귀신이 나타나 놀라게 했다
보 광 스님 동국대 불교대학원 원장 해마다 여름이면 각 본사를 비롯하여 전국의 사찰은 수련대회 준비에 바쁘다. 소승도 어릴 때에 불교학생회를 다니면서 여름방학에 행하는 수련대회가 많이 기다려졌다. 선배들과 지도교사의 가르침을 따라 유명사찰에서 행하던 수련대회는 결국 나를 출가의 길로 접어들게 했다.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어느 해 범어사에서 있었던 수련대회 중 저녁예불 시간에 스님들이 치던 북소리였다. 큰 장삼을 입고 치는 북 솜씨에 빠져들었다. 어떻게 손놀림이 빠르던지 춤을 추는 것과 같았으며, 장삼에 오조가사를 한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한 해는 밀양 표충사에서 수련대회를 하였는데, 항상 마당에서 풀을 뽑던 노스님 한 분이 계셨다. 그런데 수련회가 끝나던 날 그 노스님이 법문을
범어사해운대포교당 반야원(주지 목종 스님)은 3월 11일 불교대학을 갓 졸업한 제1기생과 제2기 입학생들 대상으로 제1회 문화유적 답사를 실시했다. 처음 실시하는 문화유적 답사여서 불자들의 반응을 세심하게 점검하고자 정원을 꽉 채운 한 대의 고속버스로 출발한 소수정예 답사팀 45명은 경주 불국사, 석굴암, 분황사, 황룡사지를 돌아보며 불교의 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일 먼저 불국사에 도착한 반야원 답사팀은 해설사의 자세한 설명과 함께 도량을 돌아 비가 내리는 가운데에서도 법당에서 반야심경을 봉독하며 부처님의 나라 불국사의 의미를 마음에 새겼다. 이어서 안개 자욱한 석굴암에서는 반야원 주지 목종 스님이 직접 안내를 맡아 불자들과 하나가 되는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으로 답사팀은
조계종 신임 호법부장 서리에 영덕 장육사 주지 종수 스님이 임명됐다.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3월 3일 오전 신임 호법부장에 이어 조계종 사회국장을 역임했던 정념 스님을 신임 사회부장으로 낙점해 임명장을 수여했다. 호법부장 서리 종수 스님은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열리는 제166차 임시중앙종회의 인준을 거쳐 호법부장으로 확정된다. 신임 호법부장 서리 종수 스님의 인준은 그리 어렵지는 않을 전망이다. 중앙종회의 종책 모임인 일승회 등 여러 종책 모임과의 관계가 두루 원만해 거부감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집권 후반기를 함께 이끌어갈 집행부 구성이 마무리됐다. 기획실장 법안 스님을 비롯한 호법부장 서리 종수 스님, 재무부장 동진 스님, 사회부장 정념 스님
불국사 주지 종상 스님 대통령 공약 이행 요청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황룡사와 감은사 복원 불사를 국태민안과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아 이행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조계종 제11교구본사 불국사(주지 종상 스님)는 11월 15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황룡사 및 감은사 복원 불사 이행과 태권도 공원 경주 유치’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불국사 주지 종상 스님은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공약 사업으로 제시한 불사는 많았지만 그 중 남북통일과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황룡사 및 감은사 복원 불사는 어려운 시기에 국난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사료된다”면서 “불국사와 불교계, 경북도민의 염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건의했다. 스님은 이어 “우리의 역사를
10월 9일 불국사 범영루 앞에서 열린 32회 신라불교문화 영산대재 모습. 불국사 주지 종상 스님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신라 1000년의 찬란했던 불교문화와 원효 스님의 화쟁 사상을 되새기는 신라불교문화 영산대재와 원효 예술제가 불국사와 분황사에 잇따라 열렸다. 불국사(주지 종상 스님)는 10월 9일 오전 5000여명의 사부대중이 참여한 가운데 제 32회 신라불교문화 영산대재를 성대히 거행했다. 법흥왕, 표훈 대성사, 김대성 재상, 박정희 전 대통령, 성림당 월산 대종사 등 불국사의 융창과 수행 가풍을 이끌었던 선사와 장자들의 거룩한 자취를 경모하기 위해 마련된 이날 행사는 범영루 앞 특설법단에서 1부 기념법회와 영산대재, 2부 예술제의 순으로 진행됐다. 명종 5타로 시작된 1부 기념법회에서는
불국사 신라불교문화 영산대재 기념법회 장면 분황사 원효예술제 공연 모습 신라 1000년의 찬란했던 불교문화와 원효 스님의 화쟁 사상을 되새기는 신라불교문화 영산대재와 원효 예술제가 불국사와 분황사에 잇따라 열렸다. 불국사(주지 종상 스님)는 10월 9일 오전 10시 20분 5000여명의 사부대중이 참여한 가운데 제 32회 신라불교문화 영산대재를 성대히 거행했다. 법흥왕, 표훈대성사, 김대성 재상, 박정희 전 대통령, 성림당 월산 대종사 등 불국사의 융창과 수행 가풍을 이끌었던 선사와 장자들의 거룩한 자취를 경모하기 위해 마련된 이날 행사는 범영루 앞 특설법단에서 1부 기념법회와 영산대재, 2부 예술제의 순으로 진행됐다. 명종 5타로 시작된 1부 기념법회에서는 불국사 합창단과 청계사 합창단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