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방 법계에 부처님 아니 계신 곳 없으니 아무리 작고 좁은 절이라도 부처님은 계실 겁니다. 겨울 한 철 나기가 곤란스러워 보이는 절이 보이면 아이들과 함께 올라가서 절을 올립니다. “부처님! 이 절이 잘 되게 해 주십시오”라며 절을 올리고 나면 절의 살림 걱정이 덜 됩니다.부처님의 슬하에서 69년을 살아온 재가불자로서는 약간의 시주와 기도만이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입니다. 삼배를 마친 손자는 묻습니다.“할머니! 부처님은 6년 동안이나 고행을 하셨다는데 왜 저렇게 뚱뚱해요?”“네가 본 부처님 상(像) 만이 부처님이 아니라 여러 시대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혜림님의 첫 돌을 축하합니다.’ 예순 네 살의 나는 50여 봉사자들이 부르는 노래에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한사랑 파주공동체’ 장애인들도 함께 울었다. 2018년 1월31일 심장이식 수술로 새 생명을 받고, 2019년 2월1일 첫 돌을 기념한 잔치다. 철없던 시절,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알고 천방지축 살아왔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고 집을 떠나 40여년을 방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한 친구와 사소한 의견 충돌로 주먹다짐까지 하게 되었다. 심신
설렘과 긴장으로 잠을 설쳤다. 우리 일행은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도착해 셔틀버스를 타고 백담사 주차장에서 내렸다. 신발 끈과 마음자락을 단단히 묶었다. 여린 새순이 겨우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 계곡에는 생강나무의 노랑 솜꽃이 봄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동행한 분들이 나눠 주는 결연한 웃음의 의미를 말없이 새기면서 걷기 시작하였다. 4월 산바람이 아직도 차갑게 옷 속을 파고들어 늘어진 마음을 잡아주었다. 이번 성지순례는 8월 말이면 긴 교직생활을 끝내고 교단을 떠나 인생 제2막을 시작하는 나 자신에게
‘엄마 자장면 시켜서 함께 드실래요?’딸아이 방문이 열리면서 한 말 한마디에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감정에 휩싸였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딸아이를 보며 되물었다. “뭐라고 뭘 시켜 먹자고?” 다시금 들려오는 딸아이의 소리, ‘자장면 시켜먹자고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알았어. 시켜먹자.” 딸아이 마음이 변할까 생활정보지에서 중국음식점을 찾으며 “부처님 감사합니다. 지장보살님, 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를 수 백 번 읊었다. 딸 나이 40이 넘어 처음으로 한 ‘같이 밥먹자’는 말이었다. 한 집에 살면서 식구들과 함께 밥을 먹은 게
남쪽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을 타고 흐르는 물이 그동안 답답했다는 듯 하얗게 속살을 드러내며 봄소식을 전한다. 수선화·목련도 방긋방긋 미소 짓고, 앞산도 아련한 연록의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나는 불교신자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경전 한 구절 제대로 읽어 본 적 없다. 그저 정월초순, 사월초파일, 백중, 동지 때만 절에 갔다. 1년에 4번 절에 가는 신도들을 보고 우리스님이 웃으시며 말씀하시길 ‘보살님은 무늬만 불자’라 했다.그렇다. 산수가 빼어나다는 배내골에 귀촌해서 신불산 백련사와 인연을 맺은 지 7~8년이 되었지만, 아직 ‘천수
“손톱에 구름이 떴네. 누가 너한테 큰 선물을 주려나보다.”손톱에 갈대 모양으로 흰 스크래치가 나 있었다. 선생님은 불그스름한 손톱 밑 살 위로 비치는 흰 구름은 어디서 쓸려왔는지 몰라도 약간의 보랏빛이 돈다며 손가락에 뜬 구름은 꼭 아미타불께서 내영하실 때 타시는 자색(紫色)구름 같다고 하셨다. 나의 샤미센(비파 모양의 삼현악기) 선생님이시다. 선생님과의 샤미센 수업이 끝나면 으레 구품사(九品寺)로 산보를 나갔다. 종문 가까이에는 죄의 무게를 달아보는 할머니와 염라대왕이 계시고, 그곳을 지나 손을 씻는 우물 뒤편의 안쪽 당에는 지
1988년의 IMF사태를 겪어오면서 세상살이가 참 쉽지 않았다. 그때 나는 불행의 열차에 실려 이승에서 지옥세계로 불리는 교도소에 들어오게 되었다. 20년이란 형량을 선고받았다.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20년형을 받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굴곡진 삶의 의혹을 풀어보려 불교에 입문했고 그것은 ‘행운’이라는 말 말고는 설명이 되질 않는다. 처음엔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 상고도 했지만 불법을 만나 공부하면서 모든 것이 인과에 의해 열매 맺는 것임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었다.부산교도소에 잠깐 머물 때, 공장출력을 신청해 부산교도소의
불교에서는 존중받아야 할 생명이 인간에 국한되지 않는다. 개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은 물론 벌레 한 마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는 마땅히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이는 ‘모든 생명이 고통을 싫어하고 즐거움을 선호한다’는 불교의 기본 전제에서 출발한다. 또한 산 생명을 죽이지 않는다는 불살생(不殺生)과 나와 다른 존재가 둘이 아니라는 자타불이(自他不二)는 다른 존재의 고통을 이해하고 평안하게 해주려는 ‘공감’이라 할 수 있다.초기불교 경전인 ‘숫타니파타’에서는 다른 생명을 공격하거나 다치게 해서 안 되는 이유로 “내가 그렇듯이 이들도
무착 스님(無着, Asańga)은 대승불교의 큰 흐름인 유식학을 일으킨 4~5세기 인도의 고승이다. 젊은 시절 미륵보살로부터 직접 가르침 받기를 원했던 무착 스님은 비장한 결심으로 동굴에 들어가 혹독히 수행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6년이 지나도 미륵보살은 나타나지 않았다. 스님은 낙담했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더욱 결연한 각오로 정진했고 다시 6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무착 스님은 깊이 절망했다. 미륵보살 친견은 불가능하리라 여겨졌다.스님은 12년간 정진했던 동굴을 뒤로 하고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죽어가는 개가 눈에 들어온
불교와 인연 맺은 동물들은 이색적인 행동으로 방송에 소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법당에서 합장한 모습으로 기도하거나 예불에 참여하는 등 사찰 반려동물들의 불심을 상징하는 행동이 눈길을 사로잡는다.대중들의 뇌리에 가장 강하게 각인된 동물은 단연 상주 용흥사의 고양이 해탈이. 2010년 SBS ‘TV 동물농장’을 통해 소개된 해탈이는 늦은 밤 법당 안 좌복 위에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으로 놀라움을 자아냈다. 가지런히 모은 앞발은 마치 합장하는 듯했고 한참동안 부처님을 응시하며 같은 자세를 유지했다. 주지 우성 스님은 “합장을 하고
동물들이 사찰 공동체의 당당한 일원으로 스며들고 있다. 과거 사찰견이 목줄 맨 경비원의 역할이었다면, 이제는 사찰 대중과 함께 살아가는 반려동물로 인정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 반려동물 1000만 시대에 발맞춘 변화다. 다양한 사연을 품고 사찰과 인연을 맺은 동물들이 스님 혹은 신도들과 교감하는 가운데 부처님 품 속 반려동물로 살아가고 있다.대표적인 사례는 국내 유일의 황금법당으로 알려진 서울 수국사(주지 호산 스님)다. 도심 한복판의 고즈넉한 자연에 금빛으로 장엄한 법당이 어우러져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곳에 얼마 전부터 ‘쿤이
“우리 ○○가 얼마 전에 죽었어요. 스님, 49재를 지내고 싶은데 도와주세요. 꼭 좋은 곳으로 보내고 싶어요.”반려견을 키우던 한 부부가 서울에 위치한 사찰 주지스님에게 간곡히 드린 부탁이다. 스님은 너무 슬퍼하는 부부를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가족처럼 반려견을 생각하는 부부의 마음을 헤아려 49재를 지냈다. 평소 반려견이 즐겨 먹던 음식을 올려놓고 경전을 독경하며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부부는 “위로가 됐다. 좋은 곳에 간 것 같아 정말 위로가 됐다. 너무 고맙다”며 눈물을 훔쳤다. 비로자나국제선원 주지 자우 스님은 “불교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