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한국학진흥위원회가 1월 30일 오후 2시 30분부터 3시간 동안 연세대 상남경영관 메이풀 룸에서 불교를 주제로 제5차 한국학 포럼을 개최한다. ‘백용성, 한용운, 이운허 스님을 통해 본 불교와 역사인식’이란 주제로 열리는 이번 포럼에서는 홍사성 불교평론 주간의 사회로 진행되며, △백용성의 연구현황(김광식) △백용성의 불교사상과 조선의 근대화(김정희) △한용운과 독립선언서 공약삼장 기초자 논의(박걸순) △근대불교 연구방법론을 통해 본 한국학 연구의 방향-만해 한용운을 중심으로(박재현) △운허 스님 큰 길 큰 사랑(신용철) △운허 스님의 생애와 불교사상 소묘(신규탁) 등 논문이 발표된다. 한편 논평자로는 불교교단사연구소 소장 원두 스님, 만해사상실천선양회 사무총장 효림 스님, 고흥택 전 광동고 교장
“용성 스님의 대각교 선언은 식민지 불교체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그의 대각교 선언은 기존불교의 타락과 모순에 처절히 반발한 것으로, 불교 근대화의 노선을 홀로 개척하겠다는 의사표시였다.” 대각사상연구원이 11월 24일 서울 대각사 대각성전에서 개최한 2007년도 대각사학술세미나 ‘백용성조사의 전법과 대각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나아갈 길’에서 ‘불교근대화의 노선과 용성의 대각교’를 발표한 부천대 김광식〈사진〉 교수는 “용성 스님의 대각교 창립은 식민지 불교로부터의 독립이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용성 스님의 행보는 혁명적인 근대화 노선이었고, 민중으로의 결합이었다”고 설명했다. “선농불교를 행한 화과원의 생활, 승려들의 자급자족, 승려의 대처육식 반대 등은 바로 이같은 노선의 결과였다”
“세상에서는 그의 일생이 성실하였기에 그를 신뢰했고, 유능했기에 그를 기대했으며, 몸 바쳐 겨레를 사랑하였기에 그를 존경한다.” 범산 김법린(1899~1964) 선생. 그의 한 제자가 범산의 삶을 이렇게 정의했듯 그는 스님으로서는 선지식이었고, 독립운동가로서는 끝까지 불의와 맞섰던 투쟁가였으며, 학자로서는 동서고금의 깊은 이치를 꿰뚫은 석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1899년 음력 8월 23일 경북 영천군에서 태어난 그는 13세에 영천 은해사로 출가했다. 그곳 범어사에서 강원교육을 수료하고, 20세 때 불교중앙학림에서 공부하던 중 3·1운동에 참여했고 곧바로 부산으로 내려가 1만여 명이 동참한 불교계 만세운동을 지도했다. 체포당할 위기에 처하자 급히 국경을 넘은 선생은 중국 상해에서 군자금을
‘풍란화(風蘭花) 매운 향내 당신에야 견줄 손가/ 이 날에 님 계시면 별도 아니 더 빛날까/ 불토(佛土)가 이외 없으니 혼(魂)하 돌아오소서.’ 1944년 6월 29일. 해방을 불과 1년여 남겨두고 만해 한용운(1879~1944) 스님은 파란만장한 삶을 접어야 했다. 구국의 기도로 인한 과로, 갑자기 발병한 중풍, 영양실조 등이 그 원인이었다. 위당 정인보(1892~?) 선생이 애도사에서 묘사했듯 만해는 끝이 보이지 않는 역사의 내리막길에서 홀로 매운 향내 뿜어내던 고고한 풍란이었다. 1879년 홍성에서 태어난 그는 한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다가 27세 때인 1905년 연곡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후 1910년 국권이 피탈되자 임제종 운동을 전개해 전통불교를 지키려 노력했으며, 중국과 시베리아 등을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의 추측 및 왜곡보도로 불교의 대사회적 위상이 급격히 추락하고 있는 가운데 자정과 혁신을 다짐하고 불교인들의 단합된 의지를 천명하기 위한 대규모 법회가 봉행된다. 조계종총무원은 10월 19일 오전 11시 경북 문경 희양산 봉암사에서 ‘수행종풍 진작을 위한 봉암사 결사 60주년 기념대법회’를 개최한다. 조계종정 법전 스님과 총무원장 지관 스님을 비롯해 5000여 명의 대중이 참여할 예정인 이번 법회에서는 봉암사 결사의 의미를 계승해 수행종풍을 진작하고 신행혁신을 다짐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봉암사 결사는 지금부터 60년 전인 1947년 청담, 성철, 자운, 보문, 우봉, 혜암, 법전 스님 등 20~30대의 눈 푸른 선객들이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로 치열한 수행정진에 돌
2007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에 다섯 권의 불교저술이 선정됐다. 부천대 김광식 교수의 『한국현대불교사 연구』(불교시대사), 동국대 황인규 교수의 『고려말·조선전기 불교계와 고승 연구』(도서출판 혜안),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강희정 씨의 『관음과 미륵의 도상학』(학연문화사), 이화여대 한자경 교수의 『불교의 무아론』(이화여대출판부), 동국대 김호성 교수의 『천수경의 새로운 연구』(민족사) 등이다. 2007년 학술원 우수학술도서는 2006년에 발간된 학술서적 중 연구업적 면에서 가장 뛰어난 저술들을 선정하는 것으로,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책은 대한민국학술원의 지원을 받아 전국의 대학 및 공공도서관 등에 보급된다. 탁효정 기자
일본을 대표하는 계율학자 마츠오 겐지 야마가타(山形)대학 교수가 7월 30일부터 8월 3일까지 4박 5일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청정계율이 살아있는 한국불교의 현장을 직접 보고 싶어서 왔다는 그는 짧은 방문 기간 동안 동국대 김호성 교수와 동행하며 해인사 율원, 불국사 석굴암, 분황사, 황룡사지, 조계사, 선학원 등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들을 둘러보았다. 또 해인사 율원장 무관 스님, 민족사 윤창화 사장, 정우서적 이성운 사장, 부천대 김광식 교수 등을 만나 한국불교와 일본불교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 나누는 시간들을 가졌다. “한국의 스님들은 결혼을 하지 않잖아요. 그렇다면 군대 역시 가지 않습니까?” “성행위를 하는 것만이 파계가 아니라 군대를 가는 것 또한 파계행위가 아닙니까?” “군대를
월정사 금강선원 조감도. 한암, 탄허, 만화 스님 등 근현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사들의 주석처였던 오대산 월정사에 전통 선원이 복원된다. 월정사는 한암, 탄허 스님 등 근현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사들이 주석하며 간화선 수행전통을 올곧이 계승했던 월정사 금강선원을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월정사는 2008년까지 총 예산 44여억 원을 들여 연면적 300여 평의 부지에 선원, 요사채 등 5개동을 건립할 예정이다. 특히 60여 평의 규모로 건립될 선원에는 안거 결재 때마다 20여명의 스님들이 수행 정진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며, 스님들을 지도할 교수실, 조실실을 별도로 마련할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월정사는 외형은 전통 사찰 건축 양식을 따르되 내부는 냉난
항일·친일 논리 벗어나‘근대성’ 주목한 첫 논문 1904년 서대문을 지나는 전차의 모습. 최근 학계의 근대 담론에 있어서 불교는 항상 마이너리그로 치부돼 왔다. 하지만 이 시대에 불교는 분명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는 주장이 김상현 교수에 의해 제기됐다. 1990년대 이후 한국 근대를 전공하는 학자들에게 있어서 초미의 관심사는 바로 ‘근대성(modernity)’이었다. 역사학계에서는 근대성이 이미 18세기 후반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내재적 발전론이 제기됐고, 사회학계에서는 개항과 함께 근대가 시작됐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제기됐다. 하지만 그 논의에서 불교는 항상 제외되는 영역이었다. 친일불교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불교사 연구는 근대불교 연구에 대한 기피로
1959년 만덕사 시절의 동산 스님(사진 가운데). 사진에는 월탄, 월복, 명선 스님이 보인다. 사진은 명선 스님이 보관하고 있다. 동산 대종사의 사상, 수행가풍을 전승하고 있는 동산문도회의 1대 상좌 스님들과 원로 스님들이 동산 스님과 함께 불교정화운동에 참여했던 당시의 기억들을 회고한 소중한 기록이다. 조금씩 희마해져가는 50여년 전의 기억들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되짚어가며 일일이 풀어 쓴 이 기록은 그 면면이 한국불교역사의 소중한 순간들이다. 특히 이 책은 용성 스님의 상수제자로 용성 스님의 법과 율맥을 이어받고 1954년부터 1962년까지 전개된 불교정화 운동의 최일선에 서있던 동산 스님에 대해 일반대중도 이해하기 쉽도록 개괄적이고 쉽게 풀어 쓰고 있다.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본부장 명진)는 3월 22일 오후 4시 동국대 행정대학원 첨단강의실에서 제1차 통일정책포럼을 개최한다. ‘시대를 보는 눈, 한반도에 진정 화해의 봄바람이 부는가’라는 주제로 열리는 통일정책포럼은 동국대 고유한 교수와 국민대 정창현 교수의 발제를 시작으로 민족공동체추진본부 김희택, 김광식 정책기획의원의 토론 순으로 진행된다. 02)720-0531
1919년 중국 상해에서 12명 승려 이름으로 발표“7000명 승려 피로써 독립투쟁하겠다” 내용 담겨 선언서 작성자 놓고 백초월·신상원 등 의견‘분분’ 1919년 11월 15일 중국 상해에서 발표된 대한승려연합회의 독립선언서. (사진제공=민족사) 「대한승려연합회 독립선언서」는 1919년 11월 15일자 중국 상해에서 12명의 승려 이름으로 발표된 독립선언서이다. 이 선언서는 1969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굴했다. 당시 국사편찬위원회에 있었지만 후에 동국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를 역임하였던 임영정은 1970년 3월 15일자 현재 「불교신문」의 전신인「대한불교」 신문에 이 선언서의 입수 경위와 발견의 의의를 소개하였다. 그가 소개한 내용은 이러하다. 이 선언서는 1
“불교를 깊이 연구하려면 우선 학자부터 불교적인 마인드를 가져합니다. 신앙과 수행, 스님, 불교의 체질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동안 연구하며 느낀 것입니다. 15년 전과 비교해보면 불교와 수행, 스님들에 대해 이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근대불교사의 자료 수집을 위해 전국을 좁다하고 찾아다니기로 유명한 부지런한 학자 김광식 박사가 12월 18일 본지 ‘한국불교 명저 100년’ 강좌 세 번째 초청 강연자로 법보신문 문화강의실을 찾았다. 김 박사는 ‘근대 불교의 개괄’이라는 제목으로 1시간여 동안 근대 불교를 되짚어보는 열띤 강연을 펼친 뒤 『한국 근대불교사 연구(1998 민족사 간)』에 대해 수강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고려시대불교를 전공한 제가 20년 전에 운 좋게 천안 독립기념관에 연구원으로
이기영 추모학술대회 불연 이기영 선생의 10주기를 추모하는 학술대회가 11월 3일 동국대 덕암세미나실에서 열린다. 이 학술대회에는 이민용, 정병조, 조성택, 이태승 등 그의 제자들과 김상현, 김성철 등 후배 교수들, 그리고 서래대학 총장 랭카스터, UCLA 버스웰, 류고쿠대 아라마끼 등 그와 교유했던 외국인 학자들이 대거 참석해 이기영 교수의 업적과 한국불교학의 연구성과들을 논의한다. 근현대불교사 학술회의 (재)선학원 부설 한국불교선리연구원은 11월 2일 오후 2시 서울 타워호텔 그랜드볼룸에서 ‘한국 근현대 불교사 연구의 동향과 과제’를 주제로 제2회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김혜경 성신여대 강사가 ‘일제의 불교정책’을, 김경집 동국대 강사가 ‘일제 침략기 불교계의 대중화 및 개혁운동’을, 이덕진 창원전
일제하 최초의 수좌대회를 기록한 회의록이 발견됐다. 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소장 현종 스님) 불교사연구위원이자 상임연구원인 김광식 박사는 최근 인사동 모처에서 발견한 ‘조선불교선종수좌대회회록’을 9월 6일 공개했다. 조선불교선종수좌대회는 1935년 서울 선학원에서 열린 수좌대회로 당시 「매일신보」와 「동아일보」 및 선학원 소식지인 「선원」 등에 이 대회 개최를 알리는 기사가 남아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 대회의 정확한 진행과정과 목적, 결과 등은 알려지지 않아 연구대상으로 남아있던 부분이다. 김 박사는 “이 회록에 대한 조사를 통해 일제 강점기 하에서도 수좌들은 선수행의 전통을 지키며 독립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며 “수좌 대회를 통해 선종 종파의 독립을 지향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효당은 해방 그날까지 독립운동 전개”항일로 외적 독립-차로 내적 독립 추구 8월 15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개최된 효당 스님 추모학술대회. 만해와 함께 만당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 명성학교를 세운 민족교육자, 한국의 차도를 재건한 차인, 제헌국회 국회의원 최범술 스님. 일제 식민지와 독재 정권을 절망에 빠진 민족과 스스로에게 빛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한 명의 위인을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수식어가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의 삶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수식어가 등장했으니 바로 친일승려라는 호칭이 그것이다. 임혜봉 스님은 1993년 『친일불교론』, 2005년 『친일승려 108인』에서 효당 최범술 스님을 친일 승려 중의 한 사람으로 지목한 바 있다. 8
장수 죽림정사(조실 도문 스님)는 6월 3일 용성 조사 탄신을 기념하는 제143회 봉찬법회를 봉행했다. 대흥 스님을 비롯한 원두, 보광, 법륜, 환희, 보승, 혜근 스님 등 30여명의 문도 및 제자 스님들과 김상두 전 장수군수, 장재영 군수, 장수군 불자회 한국희 회장, 대각사상연구원 김광식 교수, 백용성조사유훈실현후원회 한명옥 회장 등 용성 조사의 가르침을 기리는 불사에 수희 동참하고 있는 200여명의 사부대중이 동참, 용성 조사의 법덕을 되새겼다. 조실 도문 스님은 “용성 조사께서 143년 전 이 땅에 나투신 것은 상구보리하고 하화중생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온 누리에 전해 인류를 무명의 어둠 속에서 구원하고자 함이었다”고 설한 뒤 “용성 조사의 대각 사상을 깊이 새기고 받들어 겨레와 세계의 만중생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춘삼월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다”는 한 마디를 남기고 홀연히 오대산으로 들어가 입적할 때까지 27년 동안 산문 밖을 출입하지 않았던 한암 스님은 과연 어떤 스승이었을까. 지난 날 한암 스님(1876∼1951) 회상에서 수행했던 스님과 재가불자 25명이 한암 스님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증언한 내용을 담은 수행일화집 『그리운 스승 한암 스님』이 도서출판 민족사에서 출간됐다. 『그리운 스승 한암 스님』은 불교사학자 김광식 씨가 범룡 스님을 비롯해 도원, 보경, 화산, 도견, 설산, 천운, 무여 스님 등 한암 스님 회상에서 수행했던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으로, 어렴풋하게나마 스님의 수행과 생전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
정태혁 등 “정권 업은 비구들 교권 쟁탈” 김광식 등 “日 잔재 청산-승단청정 계승” 20세기 한국불교사에서 최대의 사건으로 꼽히는 이른바 ‘비구·대처승간의 분규’.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유시로 비롯된 이 분규는 기존 교단 집행부였던 ‘대처측’과 불교정화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이에 맞섰던 ‘비구측’간의 치열한 투쟁으로 17여 년 간 지속됐다. 이 과정에서 사찰 내에서 폭력배들간의 잔인한 폭력이 발생하는가 하면 불교내부의 문제가 법정다툼으로 이어지면서 한국불교의 위상에 커다란 손실을 입혔다. 결국 1970년 대처측이 세운 태고종이 새로운 종단으로 등록되면서 오랫동안 지속돼 온 ‘비구·대처승간의 분규’는 마침내 끝을 맺었다. 그러나 이 분규를 두고 승자인 조계종은 ‘정화(淨化)’로, 패자인 태고
성철 스님은 해방 이후 한국불교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단연 손꼽힌다. 스스로 산승이기를 자처하며 현실사회와 정치에 대해 침묵했지만 근현대 큰스님들 가운데 성철 스님만큼 일반에 널리 알려진 인물은 드물다. 또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성철 스님의 영향으로 참선, 절, 주력 수행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성철 스님은 한국불교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분에 대한 논의와 연구는 돈오돈수론에 국한돼 왔던 게 사실이다. 또 스님은 독립투사도 아니었고, 반독재에 맞선 투사도 아니었으며, 민중운동가도 아니었기에 몰역사적 선승이었다는 비판도 제기돼 왔다. 이런 가운데 최근 출간된 『퇴옹성철의 깨달음과 수행』(예문서원)은 성철 스님의 수행정신과 사상을 종합적으로 고찰한 첫 연구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