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후보 지지·선거운동 참여스님들 구태 이번 대선서 재연 분별·차별 버리는 것이 불교스스로 ‘박쥐중’ 자처하는가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국민들의 관심 또한 정치권에 쏠려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는 중요하다. 나라의 미래가 걸려 있고 개개인의 삶이 달려있다.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오면서 불자들의 표를 이끌어내기 위한 각 후보 진영의 행보도 빨라지고 있다. 후보들마다 불자들이 주축이 된 불교모임을 꾸리고 불자들의 표를 모으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국민의 20%이상이 불자이니, 불교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불자들의 관심도 대선을 향하고 있다. 지난 5년은 불자들에게 암흑의 시간이었다. 장로임을 자랑스러워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종교적인 편향은
조계종 한 해 예산 425억원순복음교회 1곳에도 못 미쳐 투명성·신뢰성 회복없이는불교계 재정 확대는 불투명 내년도 조계종 중앙종무기관의 예산이 총 425억원이라고 한다. 총무원과 포교원, 교육원 예산을 포함해서다. 조계종은 행정부서인 총무원과 전법을 담당하는 포교원, 스님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원, 세 개의 원(院)으로 구성돼 있다. 수백억원에 이르는 예산은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사람들의 시선 또한 수백억원이라는 엄청난 숫자로 향할 것이다. 무소유를 말하는 스님들이 지나치게 돈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지 힐난하는 이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종단을 유지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스님을 교육시키고, 포교를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하다. 가난한 이들을 말로만 위로할 수 없는 노릇
종교인과세 지지 배경은종교단체의 이익집단화 청빈한 삶 살고 있는지성찰하는 계기 삼기를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길 만한 짓을 한 뒤에 남이 그를 업신여긴다.”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린 한 검사의 글이다. 검찰의 자성을 촉구한 이 글에 비루한 검찰의 처지가 드러나 있다. 현 정부 들어 검찰은 국민의 신뢰를 모두 잃었다. 대통령 가족과 친인척 비리에는 한없이 무기력하면서도 비판의 목소리에는 한없이 매서웠다. 불의에 맞서라며 국민이 준 권력으로 국민을 위협했다. 요즘 검찰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곳이 종교계다. 종교계도 국민의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국민들에게 위안과 행복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걱정을 끼치고 있다. 거리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선교활동은 고전이다. 이제는 규모가 커져
사회적으로 힐링 대유행수행은 진리추구 뜻 담겨 일부 돈벌이 수단화 우려불법 천하게 되는 일 없어야 돌아보면 수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참선과 위빠사나는 물론이고 마음챙김과 마음나누기, 동사섭, 아봐타, 마음수련 등 종류도 많다. 우리가 듣지 못한 수행법도 있을 것이다. 세간에서는 수행보다는 명상으로 불린다. 수행은 진리를 추구한다는 탈속(脫俗)의 뜻이 담겨 있다. 치열한 정진의 의미가 강하다. 그러나 대중들의 수행은 진리를 추구한다기보다 육체적 건강, 마음의 평안, 집중을 통한 능력의 극대화 같은 약간은 세속적인 것들이다. 그래서 명상이라는 말이 자연스럽다. 최근에는 힐링(healing)이라는 말도 자주 쓰인다. 풀이하면 치유(治癒)라는 뜻이다. 치료(治療)가 육체적인 병을
외세침략 잦았던 한반도문화재도 수난으로 점철 역사속 서글픈 사연통해문화의 소중함 되새기길 저물어 가는 가을의 끝자락, 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에서는 의미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되찾은 문화재, 되살린 문화재’전이다. 도난당했다가 극적으로 돌아오거나, 훼손됐다 가까스로 복원된 문화재들이 주인공이다. 고난을 이겨낸 사람들에게서 진한 삶의 향기가 느껴지듯이 이들 문화재에 담긴 사연들은 시나브로 가슴을 적신다. 이런 절절함 때문일까. 세월에 씻겨 색이 바라고 윤기마저 퇴색한 문화재들이지만 연일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한반도는 유독 외세의 침략이 많았다. 그 때마다 많은 사람이 죽고 국토는 황폐화됐다. 사람들의 간절한 비원과 기도가 담긴 유산들도 불길을 따라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일
글로 피해를 입는 문자옥진시왕 분서갱유 대표적 본지 향한 어떤 외압에도파사현정·정론 걷겠다 글로 권력자를 비판하거나 사실을 사실대로 기록하다가 화를 입는 일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이 다르지 않다. 중국에서는 이렇게 글 때문에 죽임을 당하거나 감옥에 갇히는 것을 문자옥(文字獄)이라 한다. 말 그대로 글로 인한 감옥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된 대표적인 문자옥은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다. 그러나 문자옥의 역사는 이보다 오래됐다. 중국 역사에 기록된 가장 오래된 문자옥은 춘추시대 장공 때의 일이다. 옛 기록은 이렇게 전한다. 제나라 대부 최서(崔抒)가 왕인 장공을 살해하고 권력을 쥐었다. 당시 역사를 기록하던 사관(史官)은 ‘최서가 왕을 시해했다’고 사실대로 기록했다. 이 글을 보고 분
스님들의 민주화운동으로자유보장…독재정권 일소 욕망 추구 자본주의 아닌 불교적인 민주주의 기대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오는 나라가 있었다. 아름다운 탑이 있고 전설 깃든 도량 가득한 곳. 이른 새벽 뿌연 운무 속 열을 지어 맨발로 탁발하는 스님들이 사는 나라. 바로 미얀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미얀마를 독재의 나라로 기억한다. 그 미얀마가 변하고 있다. 독재에서 민주화로 방향을 틀더니 무섭게 질주하고 있다. 지난 10월7일, 3박4일의 일정으로 미얀마를 방문했다. 미얀마의 경제 수도 양곤은 평온했다. 매섭게 사람과 가방을 살펴보던 관리들이 사라진 공항입국수속 코너엔 한국말로 인사하는 앳된 여성 관리들이 등장했다. 환한 얼굴과 웃음기 머금은 표정에서 민주화된 달라진 나라의 모습이 읽혔다.
사회는 여성 전성시대여권신장, 사회 질 바꿔 부처님도 인격체로 존중시대착오적 현실 변해야 여성들의 전성시대다. 과거 초등학교 반장이 남학생들의 몫이었다면 지금은 셋에 둘이 여학생이다. 사법시험을 비롯해 각종 시험에서 여성들이 수석을 차지하는 일은 일상이 됐다. 성적도 남성에 비해 월등히 높다. 올해는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 후보가 등장했다. 여성들의 재능이 갈수록 빛나고 있다. 여성이 한 사람의 인격체로 인정받게 된 역사는 길지 않다. 1893년 뉴질랜드에서 우여곡절 끝에 처음으로 여성들의 참정권이 보장됐으니 불과 100년쯤이다. 우리나라는 그보다 한참 뒤인 1948년에야 여성에게 투표권이 부여됐다.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되기 전 정치와 권력은 남성들의 몫이었다.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거나, 불완전
역사상 가장 뛰어난 문자정작 국내선 찬밥 신세 조계종, 의식한글화 작업불교 세계화 위한 시발점 10월9일은 영민했던 조선의 군주 세종대왕이 한글을 반포한지 565년이 되는 날이다. 남달리 백성을 사랑했던 왕은 백성들이 쉽고 편하게 쓸 수 있도록 한글을 창제했다. 학자들과 더불어 밤잠을 설치며 연구한 끝에 세상에서 가장 간단하고 과학적인 문자를 만들어냈다. 여기에는 신미 스님 등 당시 고승들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24개에 불과한 자음과 모음을 연결하면 표현하지 못할 소리가 없다. 쓰기도 읽기도 배우기도 쉽다.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문자 중 하나라는 찬탄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다. 국력의 신장과 더불어 한글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이 늘고 있다. 우리의 드라마와 노래가 폭발적인
이슬람·개신교 충돌은종교 본질 혼돈이 원인 문자에만 집착해서는진정한 행복 알 수 없어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충돌이 심상치 않다. 미국에서 제작된 무슬림 비하 영화에 이슬람이 분노하고 있다. 리비아에서 미국대사가 숨졌고, 세계 각국의 시위현장에서 50여명의 아까운 목숨이 스러졌다. 이슬람교와 기독교간 대립은 뿌리가 깊다. 십자군전쟁과 이슬람의 유럽침공 등 크고 작은 충돌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래서 갈등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지금의 갈등은 서방의 책임이 크다. 유럽열강은 19~20세기, 양세기를 거쳐 석유의 확보를 위해 무력을 동원해 중동을 식민지화 했다. 중동의 지도를 다시 그리며 꼭두각시 정권을 세우고 부패한 정권을 지원하며 석유를 약탈했다. 2000년 넘게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내쫓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면서도 불자라는 사실을 숨기는 불자들이 늘고 있다. 학식이 높고 사회적 지위가 있을수록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개종을 강권하는 개신교의 선교가 불편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절 집안이 불편해서다. 불자라고 밝히고 나서 뒷맛이 개운치 않은 기억을 갖게 된 불자들이 적지 않다. 살아온 삶이 다르듯이 누구나 사회적 지위와 나이, 인격의 정도, 생각이 다르다. 그러나 불자라고 밝히는 순간 남성은 ‘일개 처사’로 여성은 ‘일개 보살’로 전락한다. 말을 높이며 공손하게 대화를 하던 스님도 불자임을 알게 되면 갑자기 말이 하대(下待)로 바뀌고 심지어 잠자코 들어야만 하는 처지로 전락하기도 한다. 불교가 자신을 낮추고 마음을 비우는 가르침이라고는 하지만 이유없는 하대를 참는 것이 수행이 될 수는 없을
공양은 베풀어 기른다는 뜻음식은 뭇생명 희생의 결과 쌀 한톨에도 천지은혜 스며그 속에 깃든인연 감사해야 식당에 가면 유독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다. 음식을 앞에 놓고 두 손 모아 경건하게 기도하는 사람들. 바로 기독교인들이다. 유난을 떤다며 아니꼽게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도 있지만 자신들이 믿는 신과 가르침에 충실하려는 모습엔 속기(俗氣)를 넘어선 숭고함이 있다. 음식을 앞에 두고 기도하는 전통은 기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슬람교에도 있고 힌두교에도 있다. 신을 믿는 종교는 항상 식사 전에 기도를 한다. 음식은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니, 세상을 창조한 신의 은총이 지중할 것이다. 유일신을 믿지 않는 불자들도 식사 전에 기도를 한다. 기도문이라 하지 않고 공양게
불살생 넘어선 생명살림 세속화로 본래의미 퇴색 생태복원 사회관심 급증교계 방생문화도 변해야 불교의 첫 번째 계율이 불살생(不殺生)이다.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뿐 아니라 살아 숨쉬는 모든 것이 여기에 해당되니 일반적인 휴머니즘을 넘어서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한발 나아가 방생(放生)을 해야 한다.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않는데 그치지 말고 직접 생명을 살리는 일에 나서라는 것이다. 아마 이보다 더 적극적인 생명사상도 없을 것이다. 방생은 ‘금광명경’에 바탕을 두고 있다. 유수장자가 늪이 말라 죽기 직전에 놓인 물고기들을 두 아들과 함께 구한데서 비롯됐다. 이런 가르침에 따라 불교는 오랜 세월 방생을 해왔다. 끊임없이 강이나 바다에 물고기를 놓아주고
불자들 보시에 인색하니승단 유지는 재에 의존해 보시바라밀 실천 안하며승단개혁 말할 자격있나 승려로서 위의를 잃어버린 스님들을 경책하기 위해 보시를 끊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승단 개혁을 위한 재가불자들의 비장의 카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면에는 분노가 가득하다. 오죽하면 삼보인 스님들에대한 보시를 끊겠다고 할까. 올해 일부 스님들의 파계행위는 도를 넘었다. 포커에,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몰래카메라 설치까지. 어떤 원로스님은 총림의 방장이 되기 위해 종정스님의 권위를 사칭하기도 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재가불자들이 보시를 끊어 승단을 경책한 예는 경전에도 있다. 율장에 기록된 ‘코삼비건도’가 대표적이다. 계율에 대한 이견으로 스님들이 싸우자, 보다 못한 재가불자들이 화합할 때까지 보시를
자연·문화 쉼쉬는 사찰은 아이들 최고의 생태놀이터 아름다운 감성 키워가도록더 많은 사찰 관심 갖기를 처서(處暑)가 지났다. 햇볕은 누그러지고 모기의 입은 비뚤어졌다. 더위도 가을바람에 한결 숨이 죽었다. 한여름 따가운 태양을 피해 방학을 맞았던 아이들은 교실로 돌아갔다. 왁자지껄 붐비던 바닷가 유원지도 평온을 되찾았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들판에 벼가 익어가듯이 아이들의 공부도 풍요롭게 익어갈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가면서 산사(山寺)도 덩달아 고요를 되찾았다. 동심(童心)이 떠난 자리에 가을 풀벌레 소리가 적막하다. 올해는 유독 아이들을 위한 산사 템플스테이가 많았다. 휴전선 인근에서 제주도까지. 산사마다 아이들로 붐볐다. 템플스테이는 어른들에
선불교만의 독특한 전통치열한 수행·구도의 상징 최근 방장자리가 분란원인총림의 암담한 미래 걱정 방장(方丈)스님의 의미는 각별하다. 선불교의 전통을 따르는 한국불교에서 더욱 그렇다. 불자들에게 방장스님은 자애로우면서도 추상같은 수행력으로 대중들을 깨달음의 길로 이끄는 그런 존재다. 살아있는 법의 상징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요즘이야 방장스님의 권위가 예전 같지 않지만 몇 년 전만해도 존경과 귀의의 대상이었다. 수행의 사표이며 그 자체로 깨달음의 지름길이었다. 방장스님은 맑은 지혜와 청정한 수행력으로 세속에 찌든 대중들의 가슴을 말없이 적셨다. 그래서 대중들에게 방장스님은 불자로서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함에 대한 부끄러움이었고 한편으로는 치열한 구도의 약속이었다. 우리들 기억 속에는 시간과 공간
해방 이후 일본불교 자산 미군 의해 개신교 넘어가 일제강점기 불교연구위해적산사찰 연구 반드시 필요 다시 8.15광복절이다. 일제의 족쇄로부터 풀려나 해방을 맞은 지 올해로 67주년. 반백년이 흘러 식민의 아픔을 경험했던 사람들 대부분 세월 따라 가버렸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한 아픔이다. 용서와 화해라는 해원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제와 이들을 위해 부역했던 민족 반역자들에 대한 감정은 풀리지 못한 채 고스란히 후대에 유전됐다. 해방 이후 이 땅에 진주한 미군정은 친일파들을 불러 슬그머니 일을 시켰다. 뒤를 이은 이승만 정권은 대놓고 친일파들을 등용했다. 일제의 아바타들이 반성도 없이 다시 등장했다. 비극이었다.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숨기려 독립을 위해 애썼던 투사들을 핍박
#1. 이규만 불교시대사 사장이 만드는 책들에는 자비가 담겨있다. 지난해 8월부터 출판한 책의 매출 1%를 유니세프에 기부하고 있다. 처음엔 네팔 아이들을 돕고 싶었다.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가 있는 나라. 네팔 아이들의 선한 눈망울에 맺힌 가난이 슬펐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대사관의 문을 두드려도 인연이 닿질 않았다. 그래서 유니세프로 눈을 돌렸다. 고통 받는 아이들이 어디 네팔에만 있겠는가. 불교시대사의 모든 책표지에는 ‘1% 나눔의 기쁨’이라는 작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만약 우리들 손에 불교시대사의 책이 들려있다면 지구촌 어딘지 모를 곳에서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비로소 생명 연장의 한 끼 식사를 제공 받은 셈이다. 이 사장의 작은 실천. 세상이 자비로 물들고 있다. #2. 나운하 대한
술이 문제다. 일상의 작은 실수에서 흉악범죄에 이르기까지 술이 원인인 경우가 적지 않다. 삶이 힘들어서 괴로움 때문에 술을 마시기도 하지만 친구 연인과 즐겁게 마시는 술도 있다. 술이 딱히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너무 많이 마신다는데 있다. 폭음문화가 남긴 그늘이다. 사람들은 종류를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폭탄주에, 하룻밤에도 몇 차례나 자리를 옮겨가며 술을 마신다. 술을 거부하면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거나 왕따가 되기 쉽다. 억지로라도 마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삶이 힘들어지고 사회생활에 윤기가 흐르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술상무’라는 직함이 다 있을까? 그러나 이렇게 마시다 보면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셔버린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엽기적인 흉악 범죄의 상당
올 연말 대선이 가까워오니 조계종 총무원 문지방에 윤기가 돈다. 대통령의 꿈을 품은 잠룡들의 총무원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불교계 지도자에 대한 인사 의미도 있겠지만 속내는 선거 때 표를 달라는 것이다. 2005년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종교인구는 2500만. 이 중에서 불자가 1073만명이다. 개신교 826만명, 가톨릭 515만명이니 이들 종교보다도 월등히 많다. 정치인들은 표가 탐이 날 것이다. 그렇다고 불자들을 찾아가 일일이 부탁할 수 없으니 총무원을 통해 청와대로 가는 티켓을 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총무원 발길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정치권과의 만남은 언제나 아픔과 영욕의 역사였다. 불교는 대선 때마다 유독 정치권의 손을 탔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대통령의 꿈을 꾸던 전두환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