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속에 본래말 없고 사람만 있어일체의 이름은 마음의 다른 이름 가을 하늘이 소리 없이 내려앉은 바다는 더욱 푸르고 몽돌 밭에는 사람들의 흔적은 사라지고 지난 이야기만 구르고 있다. 시(詩)의 말들이 산처럼 쌓여 솟아오른 섬인가. 시선도(詩山島) 이름이 참 예쁜 섬이다. 선원의 좌향이 이 섬의 뾰쪽한 문필봉과 마주하고 있어서 처음 인연이 되었다. 오늘처럼 가을비 그친 후 청산같이 바다가 훤칠하게 트여 끝이 없는 날에는 수평선 저 너머의 세계가 그립고 걸어서 그 섬에 가보고 싶은 충동이 문득 일어난다. 낮에는 멀어서 갈 수가 없지만 어둠이 내리는 밤에는 집집마다 걸리는 등불이 앞마당과 만나고 있어 더 없는 이웃처럼 가까워진다. 시(詩)자를 파자해 보면 절에서 쓰는 말을 시라고 하는데 사실 절에서 쓰는 말
진리는 돈 개입 못하는 순수한 것쉬운 깨달음에 대한 환상 버려야 얼마 전 황룡사 문제가 언론에 대두되면서 또다시 정법과 사법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을 줄로 안다. 이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있어 왔던 문제가 아닌가. 그러나 요즘의 세태를 본다면 그야말로 온갖 삿된 법, 외도들의 황금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법 아닌 것들이 판을 치고 있지 싶다. 이럴 때일수록 불교를 공부하는, 또 정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정법이냐 아니냐를 어떻게 하면 구분할 수 있을까. 딱 정해진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어려운 문제기는 하겠으나 최소한의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몇 가지 적어 본다. 우선 첫째, 정법이 아닌 삿된 가르침을 구분하는데
깨달음은 정법 실천과 수행으로 가능익숙해진 악습과 게으름 경계해야 오랫동안 사찰에 다니시면서 신행 생활을 하신 분들도 가끔식 보면 사찰 안에서 말싸움을 한다든가 다른 신도를 헐뜯는 경우를 본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사찰에 오래 다녔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큰 스님들 법문을 들으면서 부처님 법을 따라 왔는데도 생활에 좀처럼 변화가 없고 불교 신행 생활을 하지 않은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면 문제가 좀 있지 않나 싶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을 살펴보면 우선 불교에 대한 익숙함과 부처님 법 따르는 것을 혼동하는 데에 있다. 사찰에 오랫동안 나온 분들은 당연히 사찰안의 여러 가지 생활에 많이 익숙해져 있다. 또한 그런 분들 중 여러 다수가 사찰 안에서 감투를 하나씩 쓰면서
앎에 사로잡혀 사물 보면 편견 생겨텅 빈 시선으로 그대로 보고 느끼자 새벽 도량이 쨍쨍하다. 유난히 새벽녘에는 새소리가 크게 들린다. 대충 흘려들어도 예닐곱 종류 이상의 새들이 매일 아침 예불에 동참한다. 조용히 새소리를 듣다 보면 이놈은 어떤 새일까, 또 저 목소리를 가진 새는 어떻게 생겼을까, 많이 궁금해지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새들의 삶이 궁금해진다. 마찬가지로 도량 주위로 포행을 하다보면 사소하게 피어난 온갖 들풀이며 야생꽃들 또한 내 마음을 한참 동안 빼앗아 가곤 한다. 산에 사는, 농촌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무와 풀, 꽃 그리고 새들이며 곤충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 이름을 알고, 그 인연을 알고 마주했을 때와
내용과 형식은 밀접하게 붙어있는 것형식 갖춰지면 내용도 완성될 수 있어 우리 절에는 결혼을 하고 나서 시댁 식구들을 따라서 절에 종종 나오기 시작한 보살님이 한분 있다. 절에서 처음 얼굴을 뵌 지 벌써 2년 정도가 지난 것 같다. 그런데 얼마 전 사찰에 늦게까지 남아서 설거지를 하고 계시길래 내심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혹시 보살님께서 법명을 가지고 계신지 한번 여쭈어 보았다. 아직 없으시다는 말씀에 주지 스님께 말씀드려 법명이라도 좀 얻을 수 있도록 한번 해 보자고 이야기를 드렸더니 겸손하셔서 그러신지 본인은 아직 불교에 대해 잘 모르고 신심도 많이 부족해 법명을 받을 만한 준비가 안 되었다고 대답을 하셨다. 이와 비슷한 사례를 또 한번 본 적이 있다. 3년전쯤 한국에서 큰 스님을 모셔와 대규모
신길종합사회복지관(관장 공상길)은 6월 13일 저녁 8시 영등포구 문래공원에서 지역주민 2000여 명과 한국 vs 토고 경기를 응원하는 건강가족문화축제 ‘가자! 16강으로’를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영등포구 건강가정지원센터 개소 기념하고 영등포구에 건강한 가정문화를 넓혀나가기 위해 마련됐으며 한부모가족 100세대를 초대할 예정이다. 한국의 월드컵 예선 첫 경기인 토고와의 경기에 맞춰 2시간 전부터 축하공연과 응원이 펼쳐진다. 공연은 지역 노인의 꼭지점 댄스와 청소년 댄스 등이다. 특히 문래공원에는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독일 현지의 생생한 경기 장면을 관람토록 했다. 한편 신길종합사회복지관은 공연에 앞서 건강가정선언문을 낭독하고 행복한 가정에 대한 소망을 담은 조형물을 점등하는 시간도 마련한다. 02)
“정부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인권위원회(위원장 진관 스님)는 6월 5일 오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회의실에서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인권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지난 25일 ‘시각장애인에게 안마사 자격을 허용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소수약자의 생존권마저 박탈하는 것”이라며 “이번 사건으로 투신자살을 한 장애우가 생기고 있는 반면 정부 당국은 열흘이 가도록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음은 무관심을 넘어 무능한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인권위원회는 또 “장애우와 사회적 소수약자에 대한 배려와 관심은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라며 “정부와 보건복지부는 소외계층을 보호하고 사회적 안
좋고 싫음 분별하면 마음에 혼란 와선택하지 말고 삶 전체를 수용하라 우리의 삶을 가만히 바라보면 끊임없는 선택과 분별의 연속이다. 단 한 순간도 선택을 멈춘 적이 없다. 그러나 모든 분별과 차별, 그로인한 ‘선택’은 삶에 대한 근원적인 대답을 해 주지 않는다. 언제나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선택받지 못한다. 하나가 옳으면 다른 하나는 그르고 하나가 좋으면 다른 하나는 싫어진다. 그 중 좋은 것은 선택하여 내 것으로 가지려 하고 싫은 것은 선택받지 못한 채 버려두거나 심지어 파괴시키고 죽이려 하지 않는가. 좋고 싫은 것으로 나누는 것, 그것은 삶을 있는 그대로 본 관점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에 혼란과 분열, 시기와 질투 그리고 전쟁을 가져올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은 더욱 더 좋고
마음이 만든 것은 존재하지 않는 상그 마음도 정해진 것 없음을 깨달아야절 안 대중 스님 방에 어느 노스님께서 붓글씨로 쓰신 ‘’一切唯心造’ 라는 글귀가 걸려있다. 오고 가며 몇 번을 보았는데 지난주에 우연히 그 방에서 차를 마시다 그 글귀가 내 마음에 들어와 버렸다. “일체의 모든 것이 마음으로부터 지어졌다.” 이 글의 의미를 마음에 두고 조용히 일주일을 보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한 가지 의문이 솟았다. 만물이 다 마음에서 지어졌다고 하면 이 세상은 오직 마음만 있고 손으로 만져지는 내 눈앞의 컴퓨터와 같은 물체는 없다는 말인가? 시간이 조금 더 지나니 내 스스로의 오류가 조금씩 드러났다. 먼저 오직 마음만 있다고 했을 때 그 말에 의심이 가는 이유는 무의식중에 ‘마음은 이런 저런 것이다’라고 내
‘자기다운’ 일 할 때 참다운 성공즐겁게 집중할 수 있어야 “행복” 사람들은 저마다 즐거워하는 일이 다르다. 관심사가 모두 제각각이다. 저마다 ‘자기다운’ 어떤 일에 끌린다. 그 일을 할 때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자기다운’ 일이야말로 자기 자신이 이 세상에 나온 진리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남들이 모두 저 길을 간다고 너도 나도 그 길을 따라 갈 필요는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대사회의 큰 폐단은 모든 사람을 획일화시키면서 똑같은 길을 걷도록 강요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돈 버는 길, 성공하는 일, 그런 외길을 모두에게 강요를 하고 있다. 자기 자신다운 독창과 창의는 지금의 세상에서는 별로 필요치 않다. 사회에서 정해 놓은 ‘성공의 길’을 얼마만큼 잘 규격에 맞춰 따
중생의 고통 대신하려는 마음이 회향남 위한 마음이 본인 돕는 결과 낳아 어렸을 때 처음 불교를 배우고 나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처님 가르침 중에 하나가 회향(廻向)이었다. 내가 열심히 공덕을 쌓아 그 공덕을 나 본인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온 중생계로 돌려야 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잘 이해가 안 되고 또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 이유는 나의 공덕을 다른 이들에게 다 돌려 버리고 나면 나에게는 아무런 공덕이 남지 않으므로 복을 쌓아 불국 정토에 왕생하려는 소망도 이루어 질 수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에게 다 돌리고 나면 나에게는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을 것이라는 어린 학생의 단순한 사고에서 나온 걱정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마음을 내어 다른 사람을 조금이라도 도와
마음 비워 삶 전체를 수용하면 참된 진리의 흐름이 날 바꾼다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을 하는 것은 나를 변화시키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좀 더 쉽게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조금 더 쉽게,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할 수 있도록 불교의 가르침과 수행법 등을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 그런 방법을 생각해 오다 모든 부처님 가르침과 수행법의 핵심을 뽑아 다섯 가지로 정리 해 보았다. 아래의 목록은 한번 읽고 그만 두기 보다는 가까운 곳에 두고 ‘5가지 생활 수행법’ 체크리스트처럼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첫째, 일체를 다 받아들이라. 수용하라. 내 삶에 등장하는 그 어떤 사건도, 사람도 모두 온전한 진리의 목적을 가지고 온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