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하고 싶어절에 갑니다.절하고 또 절하면 저절로 내 병 낫습니다. 땀 뻘뻘 흘리며절하는 한 순간 한 순간의절은 영원을 짜는 피륙절하고 싶어절에 갑니다.절은 절을 하는 장소다. 절은 사원, 사찰이라고 하는데 수행의 장소요, 기도의 장소요, 중생을 교화하는 공간이다. 부처의 길을 가는 수행자 즉, 출가사문들이 모여 사는 수행 공동체 공간이다. 최초의 절은 부처님의 집인 왕사성의 죽림정사이다. 대나무 숲이다.한편 절은 불교 신행생활과 수행에 있어 필수적이다. 절을 하는 목적은 바라는 소원을 기도하는 것과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는 것이다.
그 꽃이 보이지 않는다봉황천변,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흰 불꽃나는 그 주인 없는 땅을 차지한흰 꽃무리의 지주(地主)가 좋았다눈길 한번 주지 않아도마음껏 꽃 세상을 만들어내던 개망초꽃있어도 보이지 않고 보여도 다가오지 않던/ 그 꽃, 개망초꽃땅을 가리지 않는 그백의(白衣)의 흔들림이 좋았다문득 걸음을 멈추고 ‘멈춤’을 생각하니내가 가진 마음속 땅을 모두 내려놓으니거기 시간도 없고 경계도 없는 곳에비로소/ 보이는 그 꽃내 안을 밝히는 그 꽃보여야 꽃이라지만보아야 꽃이다‘비로소 꽃’은 주인이 없는 봉황천 뚝방에 땅주인인 양 흐드러지게 피
꽃은 피었다말없이 지는데솔바람은 불었다가간간이 끊어지는데맨발로 살며시운주사 산등성이에 누워 계시는와불님의 팔을 베고겨드랑이에 누워푸른 하늘을 바라본다엄마…오곡이 익어가는 가을 벌판에 서서 어머니를 생각한다. 엄마의 젖처럼 풍성한 가을이다.꽃이 피는 봄날 봄바람은 불었다가 간간이 끊어지는 날 화순 운주사 산등성이에 누워계신 와불(臥佛)님의 팔을 베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시인은 편안함과 행복함을 느꼈다. 대자대비하신 자비로운 부처님의 사랑을 느꼈다. 그것은 어릴 때 엄마에게서 느끼는 포근한 삶이요 행복감이다. 시인은 ‘엄마’라고 한
이대로 당신 앞에 서서 죽으리당신의 사리(舍利)로 밥을 해먹고당신의 눈물로 술을 마신 뒤희방사 앞마당에 수국으로 피었다가꽃잎이 질 때까지 묵언정진하고 나서이대로 서서 죽어 바다로 가리폭포는 일직선으로 흐른다. 천당에서 지옥으로 끊이지 않고 그대로 서 있는 듯이 흐른다. 내 마음을 임에게 보일 수 있다면 폭포처럼 하얀 마음을 굽힘이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보이고 싶다.정호승(1950~현재) 시인은 ‘희방폭포’에서 부처님에게 시인의 마음을 폭포처럼 보이고 싶음을 노래하고 있다. 폭포처럼 그대로 서서 죽고 싶다고 표현한 것은 온전히
불 들어갑니다!하룻밤이든 하루 낮이든참나무 불더미에 피어나는 아지랑인듯잦아드는 잉걸불 사이기다랗고 말간 정강이뼈 하나저 환한 것저 따뜻한 것지는 벚꽃 아래목침 삼아 베고 누워한뎃잠이나 한숨 청해볼까털끝만 한 그늘 한 점 없이오직 예쁠 뿐!고승의 시신을 불에 태우는 다비식 광경이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 그리고 참나무 장작불은 시신을 시나브로 태우면서 차츰 불길이 졸아들고 잦아들었다. 하룻밤이 지나고 다 타지 않은 장작불(잉걸불) 속에서 환하고 따뜻한 기다란 정강이뼈 하나가 나왔다. 유골이다. 이것이 고승의 몸인 법체(法體)에서
관음상 이루어지다 대자대비하신 모습/ 글로나 붓으로나 옮길 수 있으리만/ 하 그리운 맘에 흙을 빚어 봅니다시방(十方) 어느 곳에 아니 나투심 없으시니/ 이 깨끗하지 못한 놈 차마 버리시랴/ 임이어 헌신하소서 그 얼굴로 보이소서서른두 가지 몸 마음대로 나투시니/ 끝동 회장(回裝)저고리 남치마로 차리시고/ 젊으신 어머니 되시어 오래 여기 머무소서춘원 이광수(1892~1950)는 한국 근대문학의 개척자이다. 100년(1919년 2월8일) 전, 동경 유학생 대표로서 2·8독립선언서를 짓고 독립운동을 하였다. 일제강점기 상황에서 적국(敵國)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으로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
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산에도 들에도 나뭇가지에 새싹이 돋고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도 깨어나 꿈틀거리며 기운이 생동하고 있다. 학교도 긴 겨울방학을 끝내고 개학을 준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설날 SNS로 국민들에게 새해인사를 하면서 양산(梁山)의 집 마당에 핀 매화나무에 꽃이 곱게 핀 모습을 선물하며 남쪽지방의 봄소식을 전해 왔다. 역시 봄이 아름다운 것은 온갖 백화가 다투어 피어나기 때문이다. 국민이 좋아하는 시인 나태주(1945~현재)의 ‘풀꽃’까지 소개해 주어 모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고 산다내가 꽃인데꽃을 찾아다니는가 하면내가 바람인데한 발작도 나를 떠나지 못하고스스로 울안에 갇혀 산다.내가 만물과 함께 주인인데이리 기웃저리 기웃한평생도 모자란듯 기웃거리다가나를 바로 보지 못하고나는 나를 떠나 떠돌아다닌다.내가 나무이고내가 꽃이고끝내 나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헛것을 따라다니다가그만 헛것이 되어 떠돌아다닌다.나 없는 내가 되어 떠돌아다닌다. 중생이 본래 부처인데, 스스로 자기 자신이 부처인 줄을 모르고 평생 중생으로 살다가 죽는다. 불교의 신행 목적은 “중생의 마음속에 부처의 성품과 덕성을
작은딸산바라지 간아내가 돌아온다내일부터만행 끝내고결제에 들어간다동안거몇 십 번인데아직도 먼 성불의 길지금 이 순간 전국의 100여개 선방에서 2000여명의 스님들이 동안거에 들어가 있다. 안거(安居)는 인도에서 비롯되었다. 인도에서는 4월16일부터 3개월, 90일 동안이 우기이므로 외출 때 자신도 모르게 작은 벌레를 밟아 살생을 하게 되므로, 그 기간에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앉아 좌선 수행을 하는 전통이 있었다. 여기에 겨울 날씨가 추운 중국에서는 10월16일부터 이듬해 1월15일까지 동안거(冬安居)를 더하게 되었다. 스님들은 동안거
천오백 년 전화엄사에 끌려왔다는 암소와 수소한 울음이 한 울음을 껴안고 운다새 아침과 헌 오후 두 차례매 맞으며 운다백두대간의 정기가 남으로 뻗은 지리산 천왕봉에 붉은 해가 솟는다. 화엄사 운고각(雲鼓閣)의 큰 북이 둥둥둥 울린다. 기해년 새해를 여는 축복의 북소리이다. 온누리의 고통을 받고 있는 중생들을 구원하는 북소리이다.‘법고(法鼓)’는 천오백 년이 넘는 고찰 화엄사의 큰 북을 노래한 시이다. 화엄사의 새벽예불을 여는 법고소리에 잠에서 깨어난다. 미명 속에서 들려오는 무명을 깨우는 법고소리이다. 불가에서의 북은 악기가 아니라
바릿밥 남 주시고 잡숫느니 찬 것이며/ 두둑히 다 입히고 겨울이라 엷은 옷을/ 솜치마 좋다시더니 보공(補空)되고 말어라정인보(1893~1950)는 1928년, 35세에 두 어머니를 생각하며 40수의 연작 시조 ‘자모사’를 발표하였다. ‘자모사(慈母思)’는 자애로운 어머니를 생각한다는 뜻이다. 아버지는 자식을 엄하게 훈육하고 어머니는 자식을 자애롭게 양육한다는 뜻으로 ‘엄부자모(嚴父慈母)’란 말이 있다. ‘자모사’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사랑을 읊은 시조이다.정인보는 1921년 ‘기진 어머니’란 시를 발표하여 등단하였고, 자타가 인정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