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밤 채취금지’동네 산 초입에 붙어 있던 현수막 글귀다. 야생동물이 먹어야 하니 채취를 금지한다는 설명이 아래 짧게 적혀 있었다. 바로 그 현수막 옆에서 도토리를 열심히 줍고 있는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모든 이들 눈에 현수막이 눈에 띄었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수막 내용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목까지 차올라왔다. 그러다 행여 기분 나빠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몇 번을 곱씹다가 꿀꺽 삼켰다. 산에 오르다보니 이번에는 중년 부부가 열심히 도토리를 줍고 있었다. 같이 간 딸에게, ‘저기 현수막에 도토리 밤 채취 금지라
그날 나는 한 환경단체 ‘후원의 밤’에 참석 중이었다. 로드킬 당한 동물에 관해 슬퍼했고 DMZ에 살고 있는 모든 동식물의 평화를 기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물원 사육장을 탈출한 퓨마가 엽사가 쏜 총에 사살돼 끌려 내려왔다는 뉴스를 접했다. 탈출한 지 4시간 반 만이었고 8살 암컷 퓨마, 이름은 호롱이라고 했다. 여덟 살이 되도록 퓨마가 온전히 누린 자유가 어쩌면 그 최후의 4시간 반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시간조차 자유를 만끽했다기보다는 쫓기는 신세로 공포감에 허둥댔을 걸 생각하니 내 안에 슬픔이 차올랐다. 사육사가 우리의
지난 주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화성갯벌에 다녀왔다. 마침 여름 철새인 저어새며 붉은 어깨도요 등 다양한 도요물떼새들을 만날 수 있었다.썰물 때 바닥이 드러나는 곳을 갯벌이라고 하는데 진흙 혹은 모래가 퇴적되어 형성된 땅이다. 그런데 이런 설명으로는 갯벌을 매우 협소하게 이해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땅이라 하면 그저 흙이 있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생명을 품고 기르듯이 갯벌 또한 다양한 생명을 품고 기른다. 갯벌에는 농게, 망둥어, 맛조개, 칠면초, 퉁퉁마디 등 다양한 저서생물들이 산다. 오고가는 새들을 품고 갯벌에 기대어
이불 두께가 달라지나 싶더니 엊그제가 찬 이슬이 내린다는 백로였다.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대하는 마음이 딴판으로 바뀌었다. 하루하루 염천을 머리에 이고 살던 지난여름의 그 해가 오늘 아침 떠오른 이 해와 다르지 않을 텐데도 변하는 계절이 낯설고도 반갑다. 떠올려보니 그 여름 햇살은 뻗치는 그 순간부터 이미 하루를 좌절시켜버렸던 것 같다. 숨 쉬기조차 버거운 기온이 연일 이어지면서 급기야 입맛을 잃고 말았다. 배는 고픈데 몸이 받아주질 않으니 기력도 점점 딸렸다. 이렇게 몸이 지치니 어떤 일도 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대로
SNS에 자동차 앞 창문에 떠억 붙은 한 마리 낙지 사진이 올라왔다. 태풍 솔릭이 제주 앞바다를 사정없이 강타하던 와중이었다. 처음엔 희화하게 느꼈는데 사진을 보다가 바다에 살고 있는 생명들 또한 태풍으로 고난의 시간을 갖게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세상을 나를 중심에 놓고 내 견해로만 보다보면 주변을 살피는 일에는 인색할 수밖에 없다는 걸 그 사진을 보는 내 태도에서 느꼈다. 실제 태풍이 지나갈 때 바닷 속 해양생물들에게 벌어지는 일에 관한 연구가 있었다. 몸집이 큰 상어처럼 빠르게 멀리 움직일 수 있는 물고
폭염으로 힘든 와중에도 연일 하늘은 아름다웠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드리워진 풍경을 보며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자주 떠올렸다. 미세먼지로 마음까지 뿌예지던 날들을 경험했던 터라 비현실적이다 싶을 만큼 아름다운 하늘이었다. 하루를 마감할 시간이 다가오면 파란 하늘은 노을에게 무대를 넘겨줬다. 아름답다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표현 말고 달리 수식어를 찾기도 어려웠다. 날마다 새롭게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니 감탄하기에도 벅찼다. 삭막한 도시가 어쩐지 풍성해진 느낌이었다. 감상이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저녁노을의 바통을 별이 빛나는 밤이 이
폭염이 이어지면서 우리 집 모이대를 찾는 새들이 뜸해지자 이런 저런 근심들이 뜸해진 자릴 분주히 채웠다. 더워도 너무 더우니 이런 폭염에 혹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짱짱하던 볕의 기세가 조금은 꺾이는 오후 무렵, 찾아오는 몇몇 새들이 반가워 내다보면 하나같이 부리를 벌리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를 견뎌내는 힘겨움이 창문 너머로 전해졌다. 고작 몇 십 그램의 무게로 뜨거운 열기를 감당하는 모습이 안쓰러우나 해 줄 수 있는 거라고는 물그릇을 채우는 것과 모이를 조금 더 내놓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쉼 없이 먹이활동
독일 남부 바이에른이 개마고원 정도 위도에 해당될 만큼 독일은 위도 상 우리나라보다 훨씬 북쪽에 위치해 있다. 보통 7월 평균 기온이 18도 정도라고 하는데 그런 독일도 이번 폭염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한 달 넘게 폭염이 계속되면서 피해가 속출했다. 일단 농작물 수확량이 큰 폭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과 뜨뜻해진 수온으로 물고기 폐사소식이 들린다. 숲 역시 폭염에 고통을 겪고 있다. 헤센 주에서만 80군데 산불이 발생했고 독일에 살고 있는 지인에 따르면 숲의 상층부가 누렇게 말라버렸다고 한다. 비단 독일뿐만이 아니다. 독일보다 훨씬
뒤집어 세탁된 옷을 바로 잡다가 우연히 꼬리표를 보게 됐다. Made In India, 글자를 보자 한 번도 가 본적 없는 인도 풍경이 그려졌다.인도는 부처님이 태어나신 나라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오라투팔라얌 댐이 먼저 떠오른다.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에는 노이얄 강을 막은 오라투팔라얌 댐이 있다. 댐에 갇힌 노이얄 강물은 우리나라 4대강이 보로 물을 가둬서 생긴 녹조처럼 극심한 오염에 시달리고 있다. 이 오염은 이 노이얄 강 서쪽으로 약 32km 떨어진 곳에 세계 최대 의류산업도시인 티루푸르가 있기 때문이다. 의류공장에서 쏟아져 나오
15일 대구에 강의 차 다녀왔다. 동대구역에 내리자 숨이 턱 막혀왔다. 기온이 섭씨 37도를 치닫고 있었다. 지구가 끓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얼른 폭염을 피해 시원한 곳으로 서둘러갔다. 강의가 하필 더위가 정점을 찍는 오후 2시인지라 에어컨으로 미리 실내를 식혀놓고 있었다. 그런데도 몇몇 사람들은 강의실로 들어서며 시원하지 않다며 에어컨 온도를 낮춰 달라 요구했다. 사람들의 요구에 25도로 맞춰진 온도는 21도로 내려갔다. 시원함에 대해 몸이 기억하는 온도가 사람에 따라 매우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17일 오전 11시
모두 가라앉고 겨우 한 뼘 남은 지붕 위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 산사태로 흘러내린 황토가 덮친 철로, 도로 표지판 아래까지 차오른 물이 뉴스 화면에 비춰졌다. 큰 댐이 붕괴되어 물바다가 된 듯한 풍경이었다. 세계 최고 방재의 나라라 불리는 일본이 물 폭탄을 맞았다. 최고 1.8미터가 넘는 비가 쏟아졌고 7월10일 오전까지 알려진 사망자만 110여명에 이른다. 실종자를 포함하면 거의 200명 가까운 인명피해를 냈다. 사태가 수습되고 나면 이번 폭우로 인한 피해는 훨씬 늘어날 걸로 예상된다. 침수된 가옥이며 도로 등 인프라 피해도
세상에는 두 종류의 물건이 있다. 필요한 물건과 필요를 만드는 물건! 어떤 게 필요한 물건이고 필요를 만드는 물건이란 또 무엇일까? 요즘처럼 물건이 홍수인 시대에 이 두 종류 물건에 대한 성찰은 매우 절실하다. 안경의 발명은 단순히 밝은 세상을 선물한 것을 넘어서 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을 가능케 했다. 시력이 낮은 이들에게 안경은 심지어 또 하나의 눈이 됐다.빨랫줄과 집게 역시 매우 필요한 물건이다. 만약 이 둘이 발명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일상은 매우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빨랫줄은 좁은 공간을 몇 배나 늘려줬다. 그 덕에 제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