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질카르가석굴은 쿠처국의 왕들이 조성하고 예배한 왕실 사원이었다. 지극한 신심의 소유자였던 쿠처의 왕들은 석굴과 벽화를 조성하며 불보살상을 금으로 장엄했다. 그러나 화려하고 지극했던 그들의 신심은 약탈꾼들을 불러 모으는 빌미가 되어 석굴의 훼손을 가속화 시켰다. 쿠처에서의 일정은 숨 가쁘다. 오랜 역사의 도시인만큼 수많은 유적, 특히 불교 석굴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답사지였던 쿰투라석굴 외에도 키질카르가(克孜尔尕哈)석굴, 타이타이르(臺臺爾)석굴, 심심(森木塞姆)석굴, 마자르보하(瑪伯赫)석굴, 그리고 현재는 바이청(拜城)현에 속해있지만 옛 쿠처불교의 유적인 키질(克孜尔)석굴,
▲쿠처현 무자트강가에 조성돼 있는 쿰투라석굴의 오련굴 입구. 테라스처럼 보이는 복도를 따라 다섯 개의 석굴이 나란히 조성돼 있는 쿰투라석굴 특유의 양식이다. 그러나 석굴 내부에서는 일체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외관만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본격적인 여정은 신장웨이우얼자치구의 쿠처(庫車)현에서부터 시작된다. 쿠처는 고대왕국이었던 쿠처(龜玆)국의 중심으로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그대로 도시의 이름이 되었다. 서한(B.C 206~A.D 8) 때 쿠처국은 오아시스로 주변 서른여섯 나라 가운데 9대국의 하나였다. 여러 나라들 중 가장 이른 시기인 기원전 1세기부터 이미 불교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쿠처국은 이를 주변 국가
▲간쑤성(甘肅省) 톈수이(天水)시 동남쪽으로 4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마이지산(麥積山)석굴. 깎아지른 절벽에 불보살상을 조각한 솜씨도 놀랍지만 위태로운 벼랑 끝에 기꺼이 몸을 매달았을 이름 모를 이의 신심과 용기도 대단하다. 동쪽면에 조성된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은 천 수백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저렇게 세간을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北京)을 거쳐 신장웨이우얼(新疆維吾爾)자치구의 우루무치(烏魯木齊)에 내리기까지는 24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실크로드’. 그 이름을 중국 대륙의 어느 한곳 즈음으로 막연히 생각하며 무심코 넘기던 시기, ‘익숙한 이름 실크로드’는 그리 낯선 곳이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