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누구나 명상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스님들이 산중에 가서 가부좌를 트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명상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명상의 다양한 방법이 나오고 있지만, 그 방법을 찾기 전에 명상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그 이해를 삶에 적용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핵심은 내 안에서 금부처를 만나는 일입니다. 내 안의 금부처를 만나는 가장 시대적인 방법이 명상입니다. 명상을 쉽고 친근한 말로 풀이하면 ‘자연(自然)’입니다. 자연은 그냥 스스로 그러한 것입니다. 또 가장 적합한
“나무는 별에 닿고자 하는 대지의 꿈이다.” 반 고흐가 했다는 이 말을 오래전 들었을 때는 그리 실감이 나지 않았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렇구나! 나무의 꿈은 위로 올라가 별나라를 보고 싶은 것이어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한껏 위로 자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무는 이처럼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된 생각을 갖고 꿈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무도 그러할 진데, 우리도 이 세상에 나왔으니 주인공으로 살다가 주인공으로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인공은 무대의 중심에 서
반갑습니다. 세존사를 개원하기 위해서 걸망을 메고 온 지 벌써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20년이면 두 번이나 강산이 변했을 기간입니다. 그래도 저의 마음이나 여기 앉아 계신 여러분들의 마음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부처님의 제자고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 배우고 정진하며 살아가는 덕분인 것 같습니다.오늘 이 자리를 여러분과 함께 축하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불자님들의 공덕입니다. 여러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저도 여기에 서 있을 수 없을 것이고, 여러분이 아니었으면 세존사를 이끌어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세존사를 지
오늘은 ‘선 수행은 어떻게 해야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서산대사는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고, 율은 부처님의 행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은 다 부처님에게서 나온 것이니, 선‧교‧율 이 셋이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셋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선이라고 해서 교 밖에 따로 교리와 어긋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때에 따라서 방편으로 언어와 문자를 부정하기도 하는 것뿐입니다. 여기서 그 부정이라는 것은 언어와 문자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많은 분들이 도를 통하면 죽음을 초월할 수 있을까 하
계묘년 윤 2월을 맞이해서 통도사에서는 생전예수재와 가사불사를 정성스럽게 모시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불교 의식에 대해 잘 모를 때만 해도 의식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진 못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점차 사찰에서 하는 의식 하나하나에 근거가 있고, 반드시 부처님께서 적극적으로 권하셨고, 여러 전적을 통해서 검증되고, 또 그 법회들을 통해서 우리가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가사(袈裟)를 ‘복전의(福田衣)’라고 합니다. 우리가 가사 불사에 동참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만들 수 있는가. 다시 말해 가사가 어떤 역할
바라밀선원이 벌써 개원 1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이곳 경남 김해라는 도시와 아무런 연고가 없었습니다. 인연 있는 사람도 없이, 특별히 정해둔 장소도 없이 이곳에 왔습니다. 포교당을 열고서야 부산이나 울산에서 포교당을 시작하면 조금 더 나았을 수 있었다는 주위의 말씀이 절실하게 와 닿았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인연 없는 김해에 온 덕분에 온몸 가득 배우고 가슴 깊이 체득하며 한 발, 한 발 천천히 포교의 길을 밟아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저는 법회 때마다 마지막에 항상 이 말씀을 꼭 드립니다. “간절히 기도합시다.
제가 본사 소임을 보면서 고운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템플스테이에 참가하신 분들과 아침에 차담을 하면서 이런저런 질문을 받는데, 3∼4개월 전 서울에서 오신 60대 후반 부부가 “스님, 종교가 뭐예요”라고 질문을 하셨습니다. 자신들은 교회에 다니다가 지금은 안 간다면서 그렇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지역에 있는 사람, 작은 벌레들 또 지옥에 있는 중생들, 축생들, 천상의 신 등 모든 존재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방법을 제공하는 것이 종교”라고 하면서
허름한 대문이 바람에 흔들리는 요란한 소리가 이른 봄밤을 더욱 깊은 사유(思惟)속으로 몰고 갑니다. 산골의 봄바람은 때에 따라 유난히 거세어서 느끼는 체감 역시도 무척 차갑습니다. 분별의 오르내림이 다소 혼란스러웠던 어제, 마음속으로 종일토록 달궈낸 구차스런 열기는 밤을 새워 뒤척인 오늘 아침에야 부담스러운 입술 끝으로 또 작은 산 하나를 키워냈습니다.지난 밤 분별심으로 혼란했던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고, 너와 내가 따로 없거늘 우리는 늘 분별심을 일으켜 시비하고 갈등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오늘은 출가재일입니다. 옛 어른 스님들께서는 몸이 떠난 것을 출가라 하지 않고, 머리 깎은 것을 출가라 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출가인가. 몸과 마음이 번뇌로부터 떠난 것을 참된 출가라 한다고 하셨습니다. 스님들은 머리를 삭발하고 의복도 세속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한국불교의 전통을 몸으로 지켜오고 유지해오고 계속 지켜나가는 사람들이 스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스님들이 올바른 길로 잘 수행하고 정진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한국불교도 한국문화도 올바르게 발전한다고 믿습니다.전 세계에 한류가 유행입니다. 그런데 드라마와
오늘은 조계총림 송광사 부산분원 관음사의 ‘지계염불만일결사’ 기도 중 3000일 회향의 날입니다. 3000일 동안 계율을 지키며 염불하시고 정진해 주신 관음사 사부대중께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관음사 신도님들은 행복한 분들입니다. 관음사 회주 지현 스님께서는 조계총림 송광사 율주 소임을 맡고 계십니다. 율주는 ‘율’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을 대신해서 계율을 지키며 모든 스님에게 모범이 되시고, 계율을 강의하며 부처님의 율법대로 사는 수행자의 길을 가르치시는 분입니다.지계(持戒), ‘계율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다시 말해 부
오늘 홍법사에서는 열반에 드신 대만 불광산사 개산종장 성운대사의 가르침을 새기는 추모법회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불광산사는 가보신 분과 가보지 않은 분이 이해하시는 것에 큰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을 통해 소개되는 것은 불광산사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불광산사에 가서 예불을 올리고, 또 절의 규모를 보고, 돌아가는 시스템을 마주하게 되면 이것이 우리 한국불교가 나아가야 할 미래의 모습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바로 아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홍법사 창건주 하도명화 보살님께서는 1970년대 초 대만
싯다르타라는 한 사람이 부처가 됨으로써 비로소 불교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인 경험도 그렇고 불교를 공부하고 수행하는 과정들을 보면 항상 복잡하고 어려워서 허덕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불교를 조금 더 단순하고 명료하게,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 조금만 노력하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화두처럼 붙잡고 있습니다. ‘21세기 발보리심경’도 그런 문제의식으로 만들어진 내용입니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좋도록 해 보려 애쓴 결과물입니다. 오늘은 ‘21세기 발보리심경
오늘은 ‘나의 본래면목’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우리 중생은 환(幻)으로 왔다가 환을 따라 모두 가버립니다. 가고 오는 것이 다 환 가운데의 일입니다. 그럼에도 환 속에 환 아닌 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나의 본래면목’이요, ‘본래의 몸’입니다.많은 사람들이 미물이라 생각하는 벌레를 도와주는 것이 나무토막이나 돌멩이‧쇠를 녹여서 만든 법당의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공덕이 더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을 믿지 않고법당의 부처님 앞에서는 겁을 내고 죄지을 마음을 안 내는데, 벌레는 보잘 것 없고 부처님이
계묘년 한 해가 시작됐습니다. 우리 화엄사가 화엄 도량으로, 행복 도량으로 화엄사상이 넘쳐나는 세상을 만드신 분들은 여러분입니다. 그리고 화엄사 본말사 교역직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해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 신년하례를 겸해 신년 법회를 하게 됐는데 늘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행복하게 사세요.’ ‘자비하세요.’ ‘참으세요.’ 지난해 1년 동안의 삶 중에서 이런 부분들을 얼마만큼 우리가 실천했는지 살펴보시고, 새해를 시작하는 마음가짐을 다지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새해가 밝아서
부처님의 말씀 중에 ‘중생 본래 성불’이라는 표현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 말을 믿으십니까? 중생 본래 성불, 우리 모두 처음부터 부처님이었다, 이 말을 믿는지 묻는 것입니다.저는 새해 93세가 됩니다. 출가는 18세에 했습니다. 절에 와서 처음 ‘중생 본래 성불’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이 말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직 공부도 하지 않았고 수행도 하지 않아서 지금 중생으로 있는데 중생이 본래 성불이라니,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출가해서 또다시 성불하려고 애를 써야 하는가? 옛날에 본래 성불이었는데 지금은 중생이니까
반갑습니다. 울산 신흥사(新興寺)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신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본사 통도사의 말사로 신라시대 창건된 천년고찰입니다. 신흥사는 신라 명랑 법사와 인연이 깊습니다. 명랑 법사는 밀교 계통에서 아주 신비한 재주를 지닌 분이셨다고 합니다. 신라 국통이시고 통도사를 창건하신 자장 법사는 명랑 법사의 외삼촌이시기도 합니다. 당시 선덕여왕께서도 명랑 법사를 옆에 두고 국사를 논했다고 합니다. 신흥사는 초기에 건흥사(建興寺)라는 사명으로 불렸습니다. 세월이 흘러 1592년 임진왜란 때 민초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의병
오늘 한국 불자들에게 법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기쁩니다.제가 느끼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항상 누구를 만나건 어디에 있건 간에 선한 마음을 가지고 남들을 이롭게 하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저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비구로서 모든 종교를 존중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종교인들을 알고 만남을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종교가 선한 마음을 지니고 모든 이들에게 배려하고 돕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종교의 근본 가르침을 공유합니다. 모든 종교의 근본 가르침은 서로 돕고 서로 배려하고 서로 존중
부처님께서 무상정각을 이루신 뒤에 49년간 8만4천의 법문을 하셨고, 그 가르침은 ‘화엄경’ ‘아함경’ ‘방등경’ ‘반야심경’ ‘법화경’ 등의 경전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불교에서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이 법문을 교문‧선문‧염불문‧총지문 4종으로 나누는데, 교문은 경‧율‧론 삼장 연구로 간경삼매력을, 선문은 견성성불 조사공안으로 선정삼매력을, 염불문은 구념심행 정토왕생으로 염불삼매력을, 총지문은 밀교진언 상밀상응으로 주문삼매력을 불도 수행의 노정기로 삼아 수행정진을 해 오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많은 조사님들이 도를 이루셨지만 저는 경
오늘부터 한 달 동안 통도사에서는 ‘화엄경’ 산림이 열립니다. ‘화엄경’을 갖추어 말하면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입니다. 우리말로 해석하자면 ‘보살 만행의 꽃으로 불과를 장엄한다’는 뜻입니다. ‘화엄경’에 담긴 진리의 내용은 간단하게 ‘통만법명일심(通萬法明一心)’, “만법을 다 통일시켜서 한마음을 밝힌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화엄경’은 분량이 방대합니다. 그 방대한 ‘화엄경’을 압축해서 표현한 게송이 있습니다. “만일 사람이 삼세 일체의 부처를 구하여 알고자 할진 데 응당 이와 같이 관하라. 마음이 모든 일을
“부처님께 향과 등불 조석으로 올리옵고 삼보전에 귀의하여 공경 예배하옵나니 온 나라가 태평하고 흉년 난리 소멸하여 온 세계가 평화로워 부처님 법 이루어지이다.”오늘 이 자리는 평안사 창건 20주년 법석입니다. 이 도량의 이름이 평안사(平安寺)입니다. 불안하고 힘들 때 우리는 부처님께 의지하면서 마음을 다 내려놓게 됩니다. 부처님께 다 맡기고, 편안한 마음으로 가정생활하고 사회생활도 잘하도록 이끌기 위해서 이 절이 창건된 것 같습니다.평생 수행 생활을 하는 스님들께서 절을 하나 일구고 간다는 것은 사실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이름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