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불국사 경내 범영루. 앞에서 설해진 구경무아분은 일체가 무아(無我)라고 강조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부처님도 무아일테니 사물을 볼 수 없는 봉사가 아니냐는 의심이 남게 됩니다. 그래서 구경무아분 다음에 이어지는 일체동관분은 이런 의심을 풀어주기 위한 내용으로 전개됩니다. 즉, 부처님은 봉사가 아니고 오히려 다섯 개의 눈을 가지고 있는데 그 다섯 개의 눈도 청탁이 사라진 절대평등의 하나로서 사물을 관찰하는 바른 눈이라고 설명됩니다.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肉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肉眼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天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天眼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慧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慧眼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法眼不 如是 世尊 如來有法眼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佛眼不 如是
경주 불국사 경내 전경. 須菩提 菩薩 亦如是 若作是言 我當滅度無量衆生 卽不名菩薩 何以故 須菩提 實無有法名爲菩薩 是故 佛說一切法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수보리여! 보살이 만약 ‘내가 마땅히 무량한 중생을 제도했노라’와 같이 말한다면, 곧 보살의 이름을 붙일 수 없느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여! 실제의 이치에는 보살이라고 이름 붙일 어떤 법도 없기 때문이니라. 이런 까닭으로, 부처가 설한 일체법은 我 · 人 · 衆生 · 壽者相이라는 것도 없느니라.” 〈보충설명1〉 구경무아분은, 보살이 ‘나는 바라밀을 행한다’, ‘내가 무량중생을 제도한다’, ‘내가 불국토를 장엄한다’ 등을 비롯한 모든 상(相)을 철저히 제거하여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는 청정무아의 상태여야만 비로소 보살의
덕민 스님이 승가대학 학장으로 있는 불국사 전경. 須菩提 所言一切法者 卽非一切法 是故 名一切法“수보리여! 일체의 법이란 곧 일체의 법이라는 흔적이 없으니, 이런 까닭으로 일체의 법이라고 이름 붙일 따름이니라.” 〈보충설명1〉 우리가 이미 배우고 지나간 금강경 상권은 부처님과 수보리와의 대화를 통해 우리의 굵고 거친 번뇌들을 제거해 나가도록 가르침이 전개되었습니다.지금 배우고 있는 구경무아분에 이르러서는 마지막 미세한 번뇌까지도 철저하게 제거하여 ‘나’라는 인식이 깨끗하게 사라져야만 비로소 원융무애한 불법의 바다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침이 전개됩니다. 〈보충설명2〉 일체법(→삼라만상 모든 법, 진리)은 법이라고 할 아무런 흔적이 없을 때가 되어야만 참된 법이라
若有人 如來得阿多羅三三菩提 須菩提 實無有法佛得阿多羅三三菩提 須菩提 如來所得阿多羅三三菩提 於是中 無實無虛“만일 어떤 사람이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라고 말한다해도 수보리여! 실제의 이치에서는 어떤 특정한 법으로 부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바가 없느니라. 수보리여! 여래가 얻은 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그 가운데에 실상도 허상도 전혀 없느니라.” {六祖}佛言 實無所得心 而得菩提 以所得心 不生 是故 得菩提 離此心外 更無菩提可得 故言無實也 所得心 寂滅 一切智 本有 萬行 悉圓備 恒沙德性 用無乏少 故言無虛也부처님께서는 “실제의 이치에서는 얻을 바 없는 마음으로 보리를 얻었으니, 얻을 바가 있다는 마음을 내지 않기 때문에 그런 까닭으로 보리를 얻었느니라.” 하셨다. 또, 이 마음을 떠나 밖에서 따로
소상팔경도 화첩 중 어촌낙조. 겸재 정선(1676~1759) 作. {冶父}貧似范丹 氣如項羽 가난하기는 범단과 같으나 그 기운은 항우 같도다. 〈보충설명1〉 무아(無我)라 하여 지식과 명예 등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털어 버리면 가난해 보이겠지만, 실제로 그 기운은 항우보다도 훨씬 더 뛰어납니다. 〈보충설명2〉 범단은 후한 때의 청빈한 고사(高師). 上無片瓦 下無卓錐 日往月來 不知是誰 噫 머리 위로는 기와 조각 하나도 올릴 공간이 없고, 발 밑으로는 송곳 꽂을 공간조차 없도다. 날이 가고 달이 가도록 알 수 없어라. 이런 살림살이 그 누가 알 것인가? 이잇-! 〈보충설명〉 ‘희(噫)’는 있는 바 모든 것을 다 털어 버리면 머리 위로나 발 아래로 아무
금강산도 화첩 중 삼일포. 겸재 정선(1676~1759) 作.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於然燈佛所 有法得阿多羅三三菩提不 不也 世尊 如我解佛所說義 佛於然燈佛所 無有法得阿多羅三三菩提 “수보리여!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여래가 연등불이 계실 때에 어떤 특정한 법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헤아려 보건대, 부처님께서는 연등불의 처소에서 어떤 특정한 법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바가 없습니다.” 〈보충설명〉 만일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라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연등불에게 수기를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나’라는 생각이 사라지고 모든 것과 한 모습을 이루었기 때문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입
금강산도 화첩 중 은선대. 겸재 정선(1697~1759) 作. {冶父}少他一分又爭得조금이라도 다른 게 하나 없는데 무엇과 다툼을 하겠는가? 〈보충설명〉 구경무아의 상태는 한 모습을 이룬 상태이기 때문에 다른 것이 하나라도 있을 수 없습니다. 獨坐然一室空 更無南北與西東 雖然不借陽和力 爭奈桃花一樣紅텅 빈 방에 조용히 홀로 앉아 있으니, 동서남북이 따로 없도다. 그렇지만 봄볕의 기운을 빌리지 않더라도, 복사꽃이 붉게 피는 것을 어찌하리오. 〈보충설명〉 진리의 자리에 고요히 앉으면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는 듯 비워진 그 속에 오묘한 쓰임새가 있어서 봄이 오면 복사꽃이 저절로 핍니다. 이와 같은 것이 바로 무아(無我)의 경지입니다.
금강산도 화첩 중 연사만종. 겸재 정선(1697~1759) 作. 爾時 須菩提 白佛言 世尊 善男子善女人 發阿多羅三三菩提心 云何應住 云何降伏其心 이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하였다. “세존이시여! 선남자·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여 어디에 의지하여 머무르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하겠습니까?” 〈보충설명1〉 구경(究竟)이란 부처와 중생의 구별 없이 모든 존재가 한 모습으로 어우러진 경지이며, 또한 마음과 외경(外境)이 한 모습으로 승화된 경지입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틈이 있어 한 생각이라도 일어난다면 구경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가르침은 세속적 학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선가(禪家)에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보충설명2〉 반
億千供佛福無邊 爭似常將古敎看 白紙上邊書黑字 請君開眼目前觀 風寂寂水漣漣 謝家人祗在魚船수많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복 무변하지만, 어찌 예부터의 가르침을 항상 지니는 것 같으리오? 흰 종이 위에 검은 글자를 써놓았으니, 그대의 눈을 열어 눈앞의 진리를 관찰할지어다. 바람은 고요하고 물은 잔잔하니, 사씨 집안 사람들은 다만 고기를 잡으려고 고깃배에 있노라.〈보충설명1〉 바람이 고요하고 물이 잔잔해야 낚시를 드리우고 고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면서 아상·인상 등의 사상(四相)을 없애면 진리가 우리 눈에 여실히 드러나게 됩니다.〈보충설명2〉 중국은 사씨(謝氏) 집안에 어부가 많았습니다. 야보 스님은 진리를 낚아 올리는 『금강경』 학인(學人)을 어부에 비유하려고 사씨를 송(頌)에
금강산도 화첩 중 만폭동. 겸재 정선(1697~1759) 作. 讚不及毁不及 若了一萬事畢 無欠無餘若太虛 爲君題作波羅蜜 칭찬으로도 미칠 수 없고 헐뜯어서도 미칠 수 없도다. 만일 모든 일을 다 요달해 마친다면,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는 것이 태허공과 같을진대, 그대를 위해 바라밀이라 이름 했을 뿐이로다. 〈보충설명〉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험담은 잠시 나의 밖에 머물다가 가버리는 그림자입니다. 실제의 나는 비난이나 칭찬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허공처럼 어디에나 가득 차 있으면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고 이름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불가피하게 반야바라밀이란 이름을 붙이고 방편으로 문자를 쓸 뿐입니다. 杜詩 맛보기 潼關吏 - 杜甫 士卒何草草 築城潼關道
선시 맛보기 금강산도 화첩 중 낙산사. 겸재 정선(1697~1759) 作. 新安吏 - 杜甫 客行新安道 喧呼聞點兵 借問新安吏 縣小更無丁 나그네가 신안 땅을 지나다가, 떠들썩한 점병(點兵) 소리 들었네. 신안의 관리에게 묻노니, “마을이 작아서 장정도 없을 텐데~” 府帖昨夜下 次選中男行 中男絶短小 何以守王城 “어제 저녁 관에서 영장이 내려오길, 미성년자라도 뽑아내라 한다오.” “덩치도 작고 나이도 어린데, 어떻게 왕성을 지키겠소?” 肥男有母送 瘦男獨伶 白水暮東流 靑山猶哭聲 살찐 녀석은 어미가 배웅을 나왔건만, 여윈 녀석은 홀로 어정거리네. 뿌연 냇물은 저물녘에 동쪽으로 흘러가는데, 청산에는 오히려 곡성(哭聲)만 울리네. 莫自使眼枯 收汝淚縱橫 眼枯却見骨 天
금강산도 화첩 중 표훈사. 겸재 정선(1697~1759) 作. 〈보충설명〉 거대한 산악도 낱낱의 티끌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결국은 공(空)으로 돌아갑니다. 이런 이치를 아는 사람은 안광(眼光)이 빛나고 가슴 속의 기운이 웅장하게 넘쳐흐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웅장한 기개를 펼쳐 보이는 사람들이 변방에 가게 되면 변방이 평화로워지고, 나라 안으로 들어가면 영재들을 두루 교육시켜 나라가 부강해 집니다. 대승보살의 마음이 바로 그렇습니다. 마치 바다처럼 웅장하며 또 큰 파도가 일더라도 시간과 공간이 끊어진 채 언제나 푸른 것과 같습니다. 何以故 須菩提 若樂小法者 着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卽於此經 不能聽受讀誦 爲人解說 “어떻겠는가? 수보리여! 만일 작은 법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아견·
금강산도 화첩 중 정양사. 겸재 정선(1697~1759) 作. 선시 맛보기 불국사 월산 조실 스님이 생전에 즐겨 쓰시던 선시(禪詩) 두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不求名利不求榮 只隨緣度此生 명리를 구하거나 세속적 영달을 구하지 말고, 다못 이러히 인연 따라 이 생을 구제하라. 三寸氣消誰是主 百年身後虛名 세 치의 기운이 소멸되었을 때 누가 주인공인가? 백년도 안 되는 목숨 뒤에는 부질없는 헛된 이름뿐. 衣裳破處重重補 糧食無時旋旋營 옷이 낡으면 거듭거듭 기워 입고, 양식이 떨어지면 알맞게 살림하라. 一箇幻軀能幾日 爲他閑事長無明 하나의 헛된 몸뚱이 며칠이나 남았는가? 저 한가로움 일삼아 무명만 키우네. 〈보충설명1〉 首聯에서 명리와 영달을 구하지 말라는 것은 동
오늘부터 『금강경』 하권(下卷)이 시작됩니다. 법신불·노사나불·화신불이 안주하고 있고, 육바라밀의 실천을 통해 부처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르침이 있으며, 진공묘유의 사상이 깃들어 있는 『금강경』은 하늘과 사람, 아수라(阿修羅)가 모두 공경하는 경전입니다. 하권이 시작되는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의 핵심 내용은 『금강경』의 진리를 깨닫고 진공묘유를 체득해 자리이타하는 공덕이 목숨 보시나 재물 보시에 비할 바 없이 훨씬 더 수승하며 영원불멸하다는 것입니다. 須菩提 若有善男子善女人 初日分 以恒河沙等身 布施 中日分 復以恒河沙等身 布施 後日分 亦以恒河沙等身 布施 如是無量百千萬億劫 以身布施 “수보리여! 만일 선남자·선여인이 하루를 셋으로 나누어 아침에 항하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몸으로써 보시하고, 낮에도
덕민 스님은 “비어있는 가운데 충만한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冶父}知恩者少 負恩者多 은혜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고,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은 많도다. 〈보충설명〉 부처님의 가르침을 음미하고 반추하면서 말 밖에 있는 진실한 뜻을 아는 사람은 적고, 오히려 부처님의 가르침에 집착하고 알음알이만 내려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兩箇五百是一貫 阿爺元是丈夫漢 分明對面向渠言 爭奈好心無好報 眞語者實語者 呵呵呵 두 개의 오백이 일관이요, 아버지는 원래 장부로다. 분명히 얼굴 마주하고 말해 주었으니 어찌 좋은 마음에 좋은 보답이 없으리오, 진어자 · 실어자여! 하하하 허허허! 〈보충설명1〉 일관은 오백씩 둘로 나뉘어 있어도 일관입니다. 또 아버지는 원래 남성이지 여성이 아닙니다. 이것
이번 강의는 『금강경』 상권의 마지막인 이상적멸분의 끝부분입니다. 『금강경』 상권은, 『금강경』 ‘사구게’를 수지·독송하면 무한한 공덕이 따른다는 게 그 핵심내용입니다. 앞으로 이어지는 하권은 『금강경』이 어떻게 수승한가에 관하여 10과목으로 나뉘어서 전개됩니다. 상권의 마지막 부분인 이상적멸분은 내용이 깊고 그윽하기 때문에 육조 스님이나 야보 스님이 구결 또는 선시 등으로 우리의 이해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상적멸분에서는 아상과 인상 등 모든 相이 사라지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게 되면 그 경지가 곧 부처님 모습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생노병사와 진로망상에 얽매인 내가 진실된 나라고 착각하는 우리의 관념을 파기해서 청정한 마음이 되살아나면, 진리가 우리 앞에 환하게 드러나고 또 진리를 뿌리 삼은
덕민 스님은 “진리의 경계에서 여여하게 있으면 바깥 경계의 천변만화가 아무런 관계도 없어진다”고 말했다. {冶父}智不責愚 지혜 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책망하지 않도다. 〈보충설명〉 부처님은 지혜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리석은 가리왕을 책망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如刀斷水 似火吹光 明來暗去 那事無妨 歌利王歌利王 誰知遠煙浪 別有好商量 칼로 물 베기요, 불로 빛을 불기로다. 밝음이 오고 어둠이 감에 무슨 방해가 있으리오? 가리왕, 가리왕이여! 저 멀리 노을 진 파도에 특별한 살림이 있는 것을 그 누가 알겠는가? 〈보충설명〉 인욕바라밀을 실천하는 보살들은 자신의 몸이 잘라진다 해도 칼로 물 베기 같이 생각하며 오히려 그 가운데에서 법의 선열을 느낍니다. 가리왕과 같은 범부들은 이런 이
소박한 모습의 덕민스님 방안 모습. 가사와 장삼 등이 가지런히 걸려있다. 若復有人 得聞是經 不驚不怖不畏 當知是人 甚爲希有 “만일 또 어떤 사람이 이 금강경을 듣고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매우 희유한 사람이니라.” 〈보충설명〉 진리를 깨달아 아는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이 곧 금강경이고 부처님이기 때문에 어떤 일과 마주치더라도 놀라거나 두려워함이 없습니다. {冶父}祇是自家底 다만 자기 집안의 몫이니라. 〈보충설명〉 부처님께서 금강경을 듣고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희유한 사람이라고 설명해 주시니까, ‘희유’에 대해 집착하는 허물이 남을까봐 야보 스님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한 마디 남겨주는 것입니다. 즉, ‘희유(希有)한 사람’
덕민 스님은 “‘희유’는 평상심 가운데 있으며 일상생활 곳곳에 두루두루 있다”고 설명했다. 不熱火不寒 土不濕水不乾 金剛脚踏地 幡竿頭指天 若人信得及 北斗面南看 얼음은 뜨겁지 않고 불은 차갑지 않으며, 흙은 습하지 않고 물은 마른 것이 아니로다. 금강역사의 다리는 땅을 밟고 있으며, 깃발은 장대에서 하늘 향해 날리도다. 만일 어떤 사람의 믿음이 지극하면, 북두칠성을 남쪽하늘에서 바라보리라. 〈보충설명〉 ‘희유’는 평상심 가운데에 있으며 일상생활 곳곳에 두루두루 있지만, 북쪽이다 또는 남쪽이다 하는 고정관념을 깨버려야만 합당하다는 뜻입니다. 何以故 此人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所以者何 我相 卽是非相 人相衆生相壽者相 卽是非相 何以故 離一切相 卽名諸佛 “왜냐하면, 이 사람은 아상도 없고
‘금강경오가해 강의’는 불국사 승가대학 학장 덕민 스님이 2004년 4월 1일부터 매주 목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불국사교육문화회관에서 강의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법보신문은 덕민 스님의 ‘금강경오가해 강의’를 시간적-지리적 제약으로 동참하지 못하는 불자들을 위해 지면을 통해 그 생생한 현장을 전달합니다. 爾時 須菩提 聞說是經 深解義趣 涕淚悲泣 而白佛言 希有世尊 佛說如是甚深經典 我從昔來所得慧眼 未曾得聞如是之經 이 때, 수보리는 이 경전의 설함을 듣고, 이치를 깊게 깨달아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께 사뢰었다. “희유하신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설하신 이 깊고 심오한 경전은 제가 옛날부터 얻은 혜안으로도 아직 들은 바가 없습니다.” {冶父}好笑 當面諱了 좋으면 웃어야 하는데 얼굴표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