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의 저자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 선사는 사천성 팽주(彭州) 숭녕(嵩寧) 사람이다. 숭녕은 지금의 사천성 성도(成都) 인근이다. 북송의 휘종은 그에게 불과(佛果)라는 호를 주었고, 남송의 고종은 원오라는 호를 하사했다. 이렇게 생전에 두 번이나 호를 받았고, 입적하고 난 뒤에는 진각(眞覺)이라는 시호를 받았다.원오, 교학에서 선으로 전환오조법연 회상서 큰 깨달음“우리 종문 멸할 이는 원오뿐”법연, 원오 심오한 경지 극찬원오 제창 정리해 ‘벽암록’ 출간임제종 번성 이끌었던 원동력1128년 ‘벽암록’
선종(禪宗) 제일의 서책이라 불리는 ‘벽암록(碧巖錄)’은 예부터 선 수행자들이 매우 중시해 온 공안집이다.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 선사가 찬술한 ‘벽암록’의 출현 배경을 짚어 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송고’라고 하는 선의 새로운 경향부터 알아야 한다. ‘송고(頌古)’란 고칙(古則)에 대한 게송(頌)이라는 뜻이다. 고칙은 곧 공안(公案)을 말한다. 따라서 ‘송고’란 공안에 대해 자신이 꿰뚫은 경지를 게송으로 읊은 것이다.운문종 중흥조 설두 선사‘전등록’ 등 100칙 공안 선별경지 읊은 ‘설두송고’ 간행원오
목숨 걸고 간화선 수행에 매진한 우리나라 고승들의 일화를 읽고 그들의 시퍼런 칼날 같은 기상을 좋아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한국 간화선의 위기’라는 말이 나오니 참으로 격세의 느낌이 든다.선종 최고의 저작물 ‘벽암록’원오 선사가 저술한 공안집발간 뒤 사라지는 비운 맞아수제자인 대혜 선사가 소각구두선에 매몰된 후학 경책분별늪 빠진 제자 향한 자비장명원 거사가 다시 간행해체험 없으면 진리 왜곡되고문자 없인 깨달음도 어려워선종(禪宗) ‘최고의 저작’이라 불리는 ‘벽암록(碧巖錄, 碧巖集)’은 중국 임제종의 원오 극근(圜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