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은 예술, 종교, 문화, 인종, 종교 등 모든 면에서 20세기의 르네상스인이라고 할 만큼 광범위한 활동을 펼쳤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세계 최초로 레코딩하여 전세계적으로 말러 열풍을 일으킨 것이 가장 인상적인 업적 중 하나다. 또한 클래식 음악가로서 최초로 뮤지컬 ‘웨스트사이드스토리’를 작곡해 브로드웨이에 입성하였다. 번스타인은 이 작품으로 어렵고 진부하다고 여겨지는 클래식 음악에서 벗어나 새로운 음악을 미국 전역에 널리 알리는 기회를 만들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특히 남녀 배우가
‘천의무봉(天衣無縫)’.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작품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인 것 같다. 인위적으로 꾸미거나 무언가를 가공하지 않은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담고 있는 모차르트의 음악은 바느질한 자리가 없는 천상의 옷과 같이 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실제로 모차르트의 작품은 완성도에 있어서 초기의 작품과 후기의 작품 간의 차이가 거의 없다. 그러나 “남들은 내가 천재라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나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 한다”고 말한 모차르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뛰어난 천재 역시 그 악상을 작품에 녹여 내기
모든 번뇌를 물리친 깨달음의 경지, 즉 열반은 평온함 그 자체였다. 붓다는 자신의 깨달음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연 열반의 경지를 이해할 수 있는 자가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붓다는 혹시 이 깨달음의 상태를 사람들에게 말한다 하더라도 모두 이해하지 못하고 험담을 하거나 다른 구업을 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붓다는 조용한 입멸을 결심했다.그때 범천(브라흐만)이 나타났다. 범천은 붓다의 결심을 눈치 채고 간절히 부탁한다. “깨달은 이가 나오는 것은 참으로 드문 일입니다. 붓다께서 가르침을 주시지 않으면 사람들
중도에 입각한 선정 수행을 통해 싯닷타는 진정한 깨달음을 얻었다. 출가를 결심하고 수행한지 6년만인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 깨달은 자 ‘붓다’가 된 것이다. 붓다는 중도를 ‘고행이나 쾌락, 그 어느 쪽에도 편향되지 않은 가장 적절한 상태 또는 탁월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서, 중도를 통한 붓다의 깨달음은 극단적인 것을 떠나 해탈과 깨달음을 성취하는 가장 적절하고 훌륭한 상태라는 것이다. 또한 번뇌의 완전한 소멸과 그것에 대한 명확한 통찰력으로 인생에 있어서의 궁극적인 숙제를 해결한 것과 같은 의미이다. 존 케이지(John
웃다카 라마풋타와 알라라 칼라마 두 스승의 가르침에 만족하지 못한 싯닷타는 고행자들이 수행하는 고행림으로 들어갔다. 당시 인도의 사상계는 쾌락주의와 고행주의로 양분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싯닷타는 쾌락주의의 덧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고행을 선택하게 된다. 당시 수행자들 대부분은 고행을 선택했다. 고행은 주로 육체를 괴롭히는 방식이었다. 극단적인 단식이나 숨을 참는 것, 가시침대에 눕거나 뙤약볕 밑에서 뜨거움을 참는 것 등이었다. 고행자들이 이러한 극단적인 수행을 선택한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주로 구원을 받기 위함이었다
수행자 싯닷타는 가장 번성했던 강대국 마가다국의 수도인 라자가하로 향했다. 당시의 라가자하는 사문들의 활동이 활발한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곳이었다. 다양한 사문들의 활약과 그들에게서의 배움을 기대하며 길을 떠난 싯닷타는 참된 스승을 찾기 시작했다.싯닷타가 먼저 찾아간 수행자는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라고 하는 두 수행자였다. 싯닷타는 그들의 제자가 되어, 이들이 주장하는 최고의 선정을 배우게 되었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집중력과 영민함을 지녔던 싯닷타는 곧 그들이 말하는 경지를 몸소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
요제프 하이든은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평생을 100곡이 넘는 교향곡과 30여곡의 현악 사중주를 작곡하며 그가 음악사에서 큰 족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에는 후견인의 영향이 컸다. 1761년, 하이든은 헝가리의 귀족 파울 안톤 에스테르하지의 카펠마이스터가 되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와 음악감독, 그리고 위촉 작곡가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1년 후 파울의 동생인 니콜라우스 에스테르하치 공이 궁정 악단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하이든의 전성시대가 열리게 된다. 하이든은 일정한 봉급을 받으며 안정된 신분으로 에스테르하치 가문에서 30
흔히 부처님의 출가를 ‘위대한 포기’라고 한다. 위대한 포기에는, 내려놓기 어려운 것을 포기했다는 의미와 더 큰 성취를 위한 포기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잘 알려져 있듯 붓다는 29세의 나이에 첫 아들 라훌라를 보게 되었고, 라훌라가 탄생한 바로 그날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아내 야소다라에 대한 연민, 그리고 부왕 숫도다나와 온갖 사랑으로 자신을 키워준 이모이자 양모인 마하파자파티에 대한 사랑을 뒤로 한 채, 출가의 위대한 발길을 내딛는다.남겨진 야소다라와 숫도다나, 그리고 마하파자파티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사실 이들은 처한 입장
사문유관 이후 12년이 흘렀을 때, 29세의 고타마 태자는 야소다라와 사이에서 첫 아들 라훌라를 얻게 된다. 출가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 때문이었을까, 결혼 후 10년이 지나서야 보게 된 첫 자식이었다. 경전에서는 “속박을 낳았구나. 그러나 이 새로운 속박이 다른 사람에게는 위안이 될 것이다”라는 말로 갓 태어난 아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라훌라’라는 이름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장애’를 뜻한다. 하지만 ‘장애’라는 의미가 단순히 해가 되거나 앞을 가로막는 걸리적거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당시의 귀족들은 ‘아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수필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 이라는 뜻의 단어 ‘소확행’ 을 이야기 할 때 브람스가 등장한다. ‘막 구운 따끈한 빵을 손으로 뜯어먹는 것, 오후의 햇빛이 나뭇잎 그림자를 그리는 걸 바라보며 브람스의 실내악을 듣는 것…(하략)’ 음악에 조예가 깊은 하루키가 택한 브람스의 실내악 중 어떤 곡이 확실한 행복을 줄 수 있는 작품인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브람스 음악 전반에서 느낄 수 있는 진중함과 침착함이 이런 소중한 느낌으로 표현된 것이 아닐까.숫도다나 왕은 청년기에 접어든 싯닷타에 대해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교향곡(symphony)은 그리스어로 함께(syn)와 울리다(phone)가 합쳐진 것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원래 동시에 울리는 음, 또는 완전한 협화음을 뜻한다. 거의 모든 악기들이 총망라 되어있는 오케스트라가 함께 울리며 뿜어내는 음향은 마치 거대한 우주의 움직임과도 같다. 교향곡을 작곡한다는 것은 작곡가에게는 완전한 하나의 생명체를 완성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로베르트 슈만은 드라마틱한 인생처럼 작품을 만들어내는 시기가 독특하여 시기별로 특정 장르에 집중된 경향을 보였다. 학생시절부터 1833년까지는 기교에 집중된 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