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행려도’는 세로 2m, 가로 1m에 달하는 거대한 그림으로, 이처럼 거대한 크기의 그림을 “대관산수화”라고 한다. 이 장르에 탁월한 작품을 남긴 화가로 범관을 비롯하여 이성, 곽희 등 북송 초기 화가들이 있다. ‘계산행려도’라는 이름은 명대 유명한 서화가이자 감식가인 동기창이 붙인 이름으로 그림 위쪽 배접 부분에 그가 쓴 글을 통해 알 수 있다.범관, 바른 산의 덕을 그려내윤리적·실천적 주관성 밝혀인간 없는 산수화 존재 안해마음이 체득한 경지의 표현산수 오르는 것은 구도 과정삶의 현실이며 일상의 경계같은 산의 길을 함께 걸어도
안사의 난 이후, 당 왕조 몰락의 징후를 예민하게 느꼈던 지식인들이 있었다. 한유(韓愈, 768~824)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그것을 한 왕조의 몰락이 아니라 중국문명의 위기로 이해했으며, 그 근본적인 원인이 ‘요순 등 선왕의 도가 소실된 것’에 있다고 진단했다. 한유는 선왕이 하늘과 땅의 이치를 본받아 인간세계에 구현했다는 기존의 관념을 믿지 않았으며 하늘과 땅이 조화롭지 못하다고 불평했다.사대부, 지방으로 좌천되면그 지역 대표 지식인이었던고승대덕과 담론과 시 나눠승려 중 왕족·권문세족 많아존숭하는 사회분위기도 영향당대
‘명황행촉도(明皇幸蜀圖)’라고 불리는 이 그림은 당대 화가 이소도(李昭道)의 작품을 모사한 것으로 북송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소도는 아버지 이사훈(李思訓)과 더불어 산수화의 효시를 연 인물이다. 중국 산수화는 수묵산수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원래 채색화였다. 이장군 부자가 창안한 ‘금벽(金碧)산수’는 광물질 안료 석록과 석청, 주사로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부분적으로 금니를 덧발라 화려하면서도 맑은 느낌을 준다. 동양종교는 서양종교와 달라절대자나 인격신 존재 안해유교는 현실적인 삶에 초점불교·노장, 초월적 세계 관심불교에서
미학은 18세기에 비로소 성립된 학문으로, 감성과 예술작품, 그리고 미적 가치를 탐구하는 철학의 한 분과이다. 미학이 이처럼 뒤늦게 학문으로서 출발했다는 사실은 감성이 근대 이전에는 진지한 학문의 대상으로 취급받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사실 감성은 서양뿐 아니라 동양에서도 진리 추구와 무관하거나 심지어 방해가 되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격외도리(格外道理)”를 주장하는 선종의 감성적 성격을 규명하려는 시도들 역시 애당초 선(禪)과 어울리지 않는, 아니 그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 아닐 수 없다.미학은 18세기 성립된 학문격외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