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한국에서 아주 좋은 영화 한 편이 개봉되었다. 루시 워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웨이스트 랜드(Waste Land, 2010)’다. 영화는 지금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외곽 쓰레기 매립장에서 일하는 보잘것없는 사회 극빈층 사람들의 이야기다. 유명한 브라질 출신 예술가인 빅 무니즈(Vik Muniz, 1961~)가 자르딤 그라마초(그라마초 정원)로 불리는 쓰레기 매립장 노동자들과 함께 폐품으로 미술작품을 만들면서, 거의 인생을 포기하다시피 한 힘도 희망도 없는 가난한 이들을 변화시켜 나가는 과정을 다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1997)’은 “내 탓이오”를 연발하면서도 “정말 잘 만든 영화다. 어떤 면에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문화사적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영화라는 장르가 이제 철학과 종교를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의 무궁무진한 가능성들 중에서도 철학과 종교를 대신할 수 있다는 영화의 이 가능성은 역으로 보면 오늘날 대중들과의 관계 속에서 철학과 종교가 처한 상대적 빈곤 상태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조금 겸손하게 말하면, 이 영화는 대
1990년에 개봉된 영화이니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는 20년을 훌쩍 넘긴 아주 오래 된 영화다. 안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이후로도 영화 채널 등을 통해 여러 번 방영되기도 했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이 영화가 문뜩 떠올라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왜일까? 왜 이 영화가 세월호 뉴스를 보던 내게 나도 모르게 다시 떠올랐을까? 이 물음에 답을 하면서 불자의 눈으로 영화를 다시 한 번 보자.영화 속에서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연극을 하다가 급기야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마는 닐
영화 ‘바그다드 카페(Bagdad Cafe, 1987)’는 헤어지고 만나는 인생사에 대한 한 편의 우화다. 이렇게 보면 전형적인 미국 영화이면서도 얼마든지 불교적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서구인 자신들도 모르게 영화에 불교가 들어가 있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매력은 이렇게 전혀 다른 관점에서 얼마든지 감상이 가능한 영화 자체의 푸근함에 있다. 여러 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심지어 전혀 예상치도 못했건만 불교적 관점까지 허락하는 영화 자체의 이 푸근함은 어딘지 뚱뚱한 여자
대중성과 상업성을 벗어나기 힘든 것이 영화다. 그래서 ‘우선 재미있어야 하는 것’이 영화의 본질이라는 주장에 딱히 반론을 펴기가 어렵다. “영화는 재미도 있어야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보고 나서 남는 것을 주어야 하지 않느냐, 쓰레기 같은 영화가 너무 많지 않느냐”는 등의 비판도 가능하지만, 문화산업과 한류의 핵심 영역이 된 이후 이런 비판이 영화의 대중성과 상업성 앞에서는 종종 설득력을 잃고 만다.이렇게 영화를 대하는 두 태도와 생각을 극단적으로 맞서게 하는 영화 장르들 중 하나가 바로 로맨틱 코미디로 분류되는 알콩달콩한 영화들이다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은 ‘포레스트 검프(1994)’는 TV 등을 통해 여러 번 방영되었으니 안 본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필자는 이 영화를 거의 20년 전인 1995년 여름, 파리 샹젤리제에 있는 한 영화관에서 봤다. 논문 심사를 끝낸 후 후배가 빌려준 샹젤리제 거리의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잠시 머물 때인데, 무척이나 더웠던 여름 날 저녁 커피나 한 잔 할 생각에 나섰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다.이 영화를 보고 나서부터 필자는 톰 행크스가 나오는 다른 영화를 흥미롭게 볼 수가 없는 증후군 같은 것을 앓아야만 했다. 톰 행크스가 나
영화 ‘파파로티’, 참으로 오랜만에 흐뭇한 영화 한 편을 봤다. 파리에 있을 때 한 2년 남짓 아르바이트로 음악잡지 ‘객석’의 특파원 노릇을 하며 봤던 오페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지만 꼭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영화는 조폭 일당의 꼬마 대장이 감히 성악가가 되려고 한다는 엉뚱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실화에 바탕을 두었지만 영화는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주먹 쓰는 조폭이 성악을 한다?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인데, 게다가 이 조폭은 아직 나이 20살도 채 안 먹은 고3 학생이다. 요즈음 고등학생들이 무서운 것은 세상이 다 알지만,
요즈음 들어 일본이 부쩍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채 계속 헛소리만 해대고 있다. 이럴 때 일본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영화가 한 편 있다. 다름 아니라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1998)’이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많은 이들이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라고 하지만, 이 영화는 “죽기 전에 여러 번 봐야 할 영화”라고 말해야 옳다. 일본은 물론이고, 우리도 아들을 낳았을 때도 봐야 하고, 그 아들이 살아갈 세상이 거짓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어갈 때도 봐야 한다. 세상이 온통 알 수 없는 흑암 같은 수수께끼 같을 때도
일전에 1300만의 관람객을 불러 모은 한국 영화 ‘7번 방의 선물’을 불교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같은 소재인 감옥과 탈출을 다룬 외국영화, ‘쇼생크 탈출, The Shawshank Redemption’을 함께 보려고 한다.한국에서는 ‘탈출’로 번역했지만 영어 원제에 들어가 있는 ‘리뎀프션(Redemption)’은 종교적 구원을 뜻하기도 한다. ‘쇼생크 구원’으로 옮길 수는 없었을 것이고 ‘이스케이프(escape)’가 아님에도 탈출로 옮겼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미국에서만 만들 수 있는 영화라는 인상을 받은 것은 이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왠지 현재 관객 1100만을 넘어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변호인’을 떠올리게 한다. 넘기 힘든 1000만 관객 동원기록을 세운 대박 영화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정치적 의미 역시 어딘지 유사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인데, 대체 사람들은 오늘이 아니라 멀고도 먼 450년 전 이야기를 다룬 이 사극의 그 무엇에 그토록 매료되었던 것일까?답은 간단하다. 선조에서 광해군과 인조로 이어지는 조선조 비극의 시대를 다룬 영화이지만 관객들은 450년 전의 옛날이야기 속에서 오늘을 본 것이다. 오늘만
영화 ‘변호인’이 벌써 1000만을 넘어섰다. 그런데도 그 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에도 수출되어 뉴욕, LA, 토론토, 벤쿠버 등 주요 도시에서 상영 예정이라고 한다. 이 추세라면 1300만에서 턱걸이를 하던 기존 대박 영화의 상한선 기준이 1500만으로 올라갈 것이 확실하다며 언론에서는 벌써 약간 호들갑 섞인 예상을 내놓고 있다.하지만 전체 관람객 통계가 어떻게 나오든, 모든 수치에 언제나 한 명을 더해야 할 것이다. 뉴스를 보니 봉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지 앞에 수북이 쌓인 국화꽃 사이로 누군가 영화 ‘변호
세존의 말씀을 듣고 늘 그 비의와 진의를 마음 속 깊이 새기고 새기는 수보리, 만일 왕생하여 21세기 한국 땅에 와서 영화관을 찾는다면 수보리, 필시 ‘웰컴 투 동막골’을 빼놓지 않고 봤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를 다 보고 정토로 돌아갈 때, 아미타불 생각에 DVD도 하나 사서 갔을 것이다.농담이 아니다. 수보리가 항마촉지인을 한 채 젊잖게 앉아계신 아미타불을 만나 DVD를 건네면서 하는 말을 들어보자. “아미타유스, 바쁘실 텐데, 언제 한국까지 다녀오셨소? 영화에도 다 출연하시고, 껄껄…….” 수보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