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만 스님 “어떤 스님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행복한 사람”이라고 답하는 암만 스님. 열 일곱 살인 암만 스님은 3년 전 출가했다. 잔스키르 출신인 암만 스님은 1, 2주에 한 번씩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 이렇게 외출을 한다. 노스님들의 출타에 동행하거나 다른 사원에서 열리는 큰 법회에 참석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도원 밖을 나설 일이 없는 촘마들에게 장보기는 즐거운 나들이다. 암만 스님은 형제가 여섯이나 되는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집에 찾아온 스님께 인사를 시켰고 그 후 스님을 따라 수도원에 오게 됐다. 스님이 되는 것이 싫지 않았고 지금 수도원에서의 생활도 즐겁다. 출가한 후에도 몇 번 집에 다녀오긴 했지만 집보다는 수도원이 더 좋다. 집에서는
▲리키르곰파로 가는 길. 멀리서도 높이 25m의 미륵대불이 눈에 띄어 저 곳이 곰파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여름의 끝자락, 라다크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푸른 하늘이 눈부신가 싶다가도 어디서 몰려왔는지 순식간에 구름이 뒤덮는다. 금방 비가 쏟아지려나 하면 또 다시 햇살이 얼굴을 내민다. 그러니 서두르는 것도, 시간을 지체하는 것도 모두 소용없는 일임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직 그 사실을 깨닫기 전, 꾸물꾸물 흐려지는 날씨에 금방이라도 비가 올것 같아 걸음을 재촉하는데 길 맞은편에서 할머니 한 분이 이쪽으로 걸어오신다. 소박한 옷차림에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에게 “줄레”하며 인사를 건네자 할머니는 “줄레,
▲바스고성. 하얀 몸체에 붉은 지붕이 대조를 이루고 있는 바스고성은 그 위치나 형태가 사실상 요새에 가깝다. 그러나 지금은 약간의 비에도 쉽게 허물어지는 주인 잃은 성이다. “잠깐, 잠깐. 좀 천천히 가자고요. 난 지금 산소가 필요하단 말이에요.” 길 아래서 올려다볼 때는 더 없이 멋있어 보였다. 오색 타르초에 쌓여있는 고성(固城). 허물어져가는 초르덴이 입구를 지키고 있어 더욱 고풍스런 바스고성을 바라만 보고 있을 때까지는 말이다. 사실 그리 높지 않다. 숨을 헐떡이면서도 10여분 남짓이면 올라가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그 10분이 문제다. 바스고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달동네 골목 같이 제법 가파른 비탈이다. 한두 걸음 옮길 때마다
▲나왕 초스펠 씨 “아들 셋, 딸 넷을 뒀는데 그중 한 아들이 출가해 스님이 됐어요. 스물세 살인데 우리 집안의 자랑이죠.” 바스고성에서 사르정을 관리하는 노인은 올해 65세의 나왕 초스펠〈사진〉씨다. 대부분의 라다키들이 그러하듯 초스펠씨의 검게 그을린 얼굴에는 깊게 패였지만 미소로 만들어진 주름이 가득하다. 사르정에는 기거하는 스님이 없다. 우리나라 사찰의 주지처럼 3년마다 한 번씩 주지스님이 지정되지만 스님은 아침에만 찾아와 예불을 한다. 마을 사람들의 부탁을 받아 기도나 축원을 해주느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스님이 절에 오래 머물러있기는 힘들다고 한다. 덕분에 초스펠씨가 등을 밝히고 향을 피우며 법당을 관
▲인더스강과 잔스카르강이 만나는 님부의 합류 지점. 흙빛의 인더스강과 비취빛의 잔스카르강은 한 줄기가 된 후에도 섞이지 못한 채 한 동안 나란히 흘러간다. 길을 나서기 전 잠깐 회의가 열렸다. 달랑 두 여자가 의기투합해 나선 이번 여정의 리더는 여행사 사장인 민선예 씨다. 씩씩한 그가 우리를 안내해줄 가이드와 운전기사에게 대략적인 계획과 방문지를 설명하고 일정을 맞춘다. 현지의 도로 사정은 델리에서 들었던 것에 비해 그리 나쁘지 않은 눈치다. 몇몇 도로가 폭우로 유실돼 도보로 이동해야 하고, 비포장 상태여서 거리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점만 미리 감안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사실 가이드는 도로보다 식당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라다크의 중심도시 레.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레 외곽은 추수를 끝낸 보리밭이 황금빛 들녘을 이루고 있다. 그 뒤로 펼쳐진 살풍경한 산들은 히말라야산맥의 자락들이다. 비행기는 오후에 출발하는데, 어제 꾸려놓은 짐가방은 아침까지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겨울 점퍼 때문이다. 라다크 여행 시즌의 끝자락, 이제 곧 겨울이 닥친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분명 여름시즌인데 ‘1박 2일 야외취침’에서나 등장할 법하게 생긴 이 겨울 점퍼를 꼭 가져가야할까. ‘여행자에게는 눈썹도 짐이 된다’는 말을 경전처럼 믿고 있는 소심한 객에게 두툼한 겨울 점퍼는 도통 내키지 않는 옵션이다. 하지만 현지 기온이 벌써 영하를 오르내린다는 조언에 눈
▲라다크의 자연환경은 혹독하다. 사람들의 왕래가 가능한 시기는 일년 중 고작 4개월. 그러나 그 짧은 여름동안 라다크의 자연은 경이로운 풍광을 펼쳐 보인다. 라다크는 첫 사랑처럼 아무런 준비 없이 불쑥 다가왔다. 그곳이 인도 북쪽, 히말라야 산맥 중간 어디쯤이라는 것 밖에 알지 못하던 내게 문득 라다크 여행을 제안한 사람은 대학 후배였다.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후배는 사전 답사를 위한 라다크행을 준비하며 동행을 권했다. 덜컥 따라 나선 것은 그에 대한 믿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인도라는 매혹적인 이름, 히말라야에 대한 동경, 그리고 티베트 불교에 대한 호기심이 뒤섞여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히말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