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드라마틱한 인생 역정이 없어요. 그러니 딱히 할 말도 없는데, 뭐가 궁금할까요.”이렇게 시작된 인터뷰는 해가 기울도록 계속됐다. 드라마틱한 인생만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인생은 우리의 역사다. 그 역사의 주인공이 하물며 ‘국내 비구니 박사 1호’라면 삶에 담긴 무게는 드라마에 비할 바가 아니다. 고일혜원(杲日慧謜) 스님이 한국선학연구사에 그은 한 획은 비구니 진홍 스님이 1986년 대만문화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데 이어 비구니스님이 국내서 박사학위를 받은 첫 성과로 오늘날 비구니박
허물어진 천년고찰에 비까지 오면 궁색함은 극에 달했다. “천장 서까래 사이사이에서 비가 새는데 빗물 받을 그릇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옛 일을 떠올리는 스님은 애써 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그윽한 눈빛 속엔 그 시절의 고단함이 스치듯 지나갔다. 아무리 사찰이 퇴락했어도 이럴 수는 없는 법이다. 신라시대 고승 도선국사(827∼898)가 터를 잡아 창건한 청암사다. 그 뿐인가. 조선시대 벽암각성(1575~1660) 스님의 강맥을 이은 대화엄 종장 모운진언(1622~1703) 스님이 청암사에 강원을 개설한 이래 허정혜원 스님이 강교(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낭랑한 목소리가 저녁노을 드리운 도량에 울렸다. 독경도 아니고 창도 아니지만 예불문에 이어 ‘천수경’ 구절구절까지, 한 자도 틀림이 없다. 열 살, 상고머리 계집아이의 놀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위의를 갖춘 소리에 툇마루 위 스님은 눈을 떼지 못했다. 그 길로 방에 들어간 스님은 저녁 내내 펜촉에 잉크를 찍어 누런 갱지에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옮겨 적었다. “이걸 하루에 한 쪽씩 외워라.” 상고머리 소녀는 ‘삼촌스님’이 매일 건네주는 갱지 위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따박따박 외워나갔다. 절에
공주 동학사서 바라보는 문필봉(文筆峰)은 하얀 바위 불쑥 솟아오른 것이 참말로 가지런히 다듬어진 뾰족한 붓끝 같다. 원래 이름은 시왕봉이지만 동학사 대중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 바위를 문필봉이라 부른다. 그 모양새 때문만은 아니다. 풍수지리에서는 문필봉 아래서 큰 문장, 즉 대학자가 배출된다고 했다. 이 때문에 동학사에서 비구니 대강백이 많이 출연한 것인지, 아니면 대강백이 워낙 많다 보니 바위 이름도 슬금슬금 문필로 바뀐 것인지는 그리 중요치 않다. 그 봉우리 아래 비구니스님들의 경 읽는 소리가 계곡 물처럼 흐르는 곳에 자리한
이번엔 꼭 방부 들이리라 결심했다. 용인 화운사 강원을 나서며 해인사 약수암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강단에 선 지 벌써 10여년, 전강도 받았지만 건강이 썩 좋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아니 이제라도 화두 들고 참선하리라 결심했다. 다행히 그해 여름 첫 하안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제 수좌로 살리라, 그렇게 새로운 길이 열릴 줄 알았다. 그런데 또 다시 강단에 서라니. 그것도 난생 처음 들어보는 ‘통학강원’이다. 내키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었다. ‘통학강원을 희망하는 이들이 있다’는 설득이 발목을
호거산은 글자 그대로 호랑이가 머무는 산이다. 형세가 웅크리고 앉은 호랑이 같다. 그 호랑이 머리가 향한 곳이 바로 운문사다. 북동쪽에 호거산을 두고 자리한 운문사는 호랑이 앞에 앉은 형상이다. 전각들이 남향으로 배치돼 있는 덕에 호랑이를 등 뒤에 두고 앉아 있는 셈이다. 어미 호랑에 품에 안긴 새끼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한 순간이라도 정신을 놓는다면 한 입에 물릴 터다. 밤낮으로 눈 부릅떠야 하는 곳이 운문사다. 소소한 풍수일지 모르지만 이런 우연조차 운문사서 눈푸른 수행자들이 수없이 배출되는 이유를 한 몫 거들고
‘견덕’ 법계 이상의 비구 5857명, ‘계덕’ 법계 이상의 비구니 5422명(출처=제204회 조계종 중앙종회 정기회 배부 자료집). 2015년 조계종단 이부중의 구성은 비구와 비구니가 각각 절반을 맡고 있다. 자연 성비가 여성 100명 당 남성 105명인 점을 감안한다면 종단의 비구, 비구니 구성 비율은 매우 이상적이기까지 하다.여성 출가·수행 인정한 불교는 현대 사회에 부합하는 평등 종교타종교 비해 월등한 특징·장점전국비구니회 전신 ‘우담바라회’1968년 출범 비구니 승가 결집개혁종단 출범 후 종무행정에도 진출 통로 열렸지만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