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천 죽산 대종사 “세상의 모든 세계가 같거늘 모양 없는 법신이 어찌 둘이겠습니까. 중생과 모든 부처님은 다르지 않으니 산은 절로 높고 물 또한 절로 깊습니다. 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을 나누어 이웃에게 줄 수 있어야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대한불교관음종의 정신적 지주로서 대중들에게 실천하는 불제자로 살아갈 것을 강조하며 후학 양성과 중생 제도에 매진해온 남천(南天) 죽산(竹山) 대종사가 11월23일 오후 1시10분 세수 77세, 법랍 59세로 원적(圓寂)에 들었다. 1934년 9월19일 충남 당진군 송학면에서 태어난 스님은 1951년 충남의 면천고등학교를 졸업, 당시 어지러운 사회 환경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대사(
▲홍파 스님 남천 죽산 종정 스님께서 원적에 드셨다는 소식에 수많은 종도대중이 할 말을 잃고 숙연해 하고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니 어제 그 산이 내 앞에 펼쳐지고, 초목도 그대로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데 더 이상 종정 큰스님의 인자하신 모습도, 목소리도 들을 수 없다하니 저는 갈 곳 없이 버스를 올라탄 나그네 같은 심정입니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요,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만고불멸의 진리를 누구라서 피해갈 수 있겠습니까. 생로병사(生老病死)의 현상계와 생주이멸(生住異滅)의 법리를 뉘라서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대부분 그러하듯 큰스님과의 인연이 오래 이어질 듯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든 찾아뵙고 선지식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만해 스님의 ‘님의
▲자승 스님 한국 불교계를 대표해 전 불자들과 함께 남천 죽산 대화상의 열반을 깊이 애도하며 관음종 총무원장 홍파 스님을 비롯한 종도 여러분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일찍이 조계종단과도 깊은 인연을 맺었던 남천 스님께서는 32안거를 성만할 만큼 두타행이 깊었고 후학에 대한 가르침이 남달라 종지가 뚜렷하였으며, 속세의 출현은 적었으나 그 울림은 사바세계에 두루 미쳤습니다. 종정 스님에 대한 불자들의 외경심은 나날이 깊어지는데 홀연히 일대사 인연을 접었다는 소식이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합니다. 남천 스님께서는 생전에 제중생의 접화에도 각별한 애정이 있었으니 비록 몸은 산에 있었으나 ‘수행 용맹정진’, ‘사미율의’ 등의 저서를 통해 불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유인촌 장관 대한불교관음종 종정 남천 죽산 스님의 입적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에게 항상 정신적 위안을 주시고,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 주셨던 종정 스님의 열반이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합니다. 남천당 죽산 큰스님, 스님께서는 통도사에서 출가한 이래 올곧은 수행자의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관음종의 제6세, 7세 종정스님으로 추대된 뒤 열반에 드시기까지 용맹정진하시는 한편으로 사부대중들에게 진리의 등불을 밝혀주시어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종정 스님의 크나큰 원력으로 악업을 자행하는 무리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선업을 짓도록 이끌어주시고,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끌어주십시오. 국가가 어려움을 만
강릉 성원사의 성원유치원 원생들과 주경 스님. 청화 큰스님의 염불선 수행을 이은 여강당 주경 스님이 4월 26일 새벽 입적했다. 강릉 성원사 회주인 주경 스님은 입적 하루 전인 25일 고향의 불자들에게 불기 2554년 봉축 법문을 설하려 지리산 하동을 방문했다가 갑작스레 세연을 접어 불자들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올해로 세수 69세, 법랍 34년. 청화 큰스님 염불선 계승 계행과 청빈의 삶에 철저했던 주경 스님의 일상은 수행자의 사표 그 자체였다. 계행이 결코 흐트러지는 법이 없어 수행자로서의 위의가 여여(如如)했으며 포교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인 전법의 선구자였다. 특히 삼독(三毒)을 일으키는 음식인 오신채를 취하지 않으면서 채식을 실천하자 스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실천하려는
유신철폐-운하반대 민중 목소리 대변신부-수녀와 교류…종교간 소통 실천 법정 스님은 한 평생 청빈의 도와 맑고 향기로운 삶을 실천하며 대중들에게 무소유(無所有)의 지혜를 일러준 스승이다. 대중들은 삶의 지혜가 담긴 스님의 글에서 불교를 이해하며 수행승의 삶을 엿보았고, 출가사문은 스님의 삶에서 소욕지족(少欲知足)을 배우며 본분사를 다하고자 다짐하는 모범으로 삼기도 했다. 스님은 연꽃 같이 맑은 정신과 가르침이 담긴 『무소유』를 통해 대기설법을 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의 영혼을 아름답게 바꾼 시대의 큰 스승으로 각인돼 있다. 특히 유신독재 시절 출가수행자의 신분으로는 유일하게 유신철폐 개헌에 서명하는 등 고통받는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다. 이로 인해 기관원이 사찰에 상주하다시피 할 정도로 핍박을 받는 등
3월 13일 다비를 마친 법정 스님 유골이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 봉안됐다. 3월 14일 오전 10시경 순천 송광사 다비장에서 수습한 법정 스님의 유골이 이날 저녁 9시 5분경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 도착했다. 상좌 스님들은 법정 스님 영정과 유골함을 들고 극락전에서 삼배를 올린 후 스님의 법체가 머물렀던 행지실에 스님의 유골을 봉안했다. 길상사 측은 “법정 스님의 유골은 스님의 유지대로 바로 뿌려졌어야 했다”면서도 “49재 이후 불일암과 길상사, 스님이 머물렀던 강원도 토굴에 뿌려질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상좌 스님들이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입적 7일째인 초재는 3월 17일로 이후 매주 수요일 길상사에서 재가 치러진다. 마지막 재는 4월 28일 송광사에서 진행된다. 당초 길상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