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한인교회가 미국사회에 섞여들지 못하고 섬처럼 고립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원인은 언어이다. 다른 인종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영어로 설교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한인교회가 소규모에다 아직까지 한인 1세들의 경제적 지원 없이 운영될 수 없기 때문에 교회의 주류인 이들을 위해 한국어 설교가 행해진다. 그러나 한국어로 설교하는 한, 한인교회가 다인종, 다문화의 미국사회로 침투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어 설교로는 한인 2세들을 붙잡아두지 못한다. 젊은이들이 한국어를 모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인 2세의 한국어 구사력은 민족적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한국어를 할 줄 아는 2세들이 한인교회를 떠나는 비율이 50%에 육박한다는 사실은 언어의 문제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한국어든 영어든
미국에 사는 한인 기독교인 중 한인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97%나 되고 미국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3%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는 미국 기독교사에서 매우 독특하고 기이한 현상 중 하나이다. 더구나 한인교회는 대부분 성서와 개인적인 성령 체험을 강조하고 전도에 전력을 쏟는 복음주의 교회다. 선교를 위해서라면 아프리카, 몽고, 심지어 아프가니스탄까지 누가 말리건 개의치 않고 달려간다. 뉴욕에서 만났던 한국 여성이 자기 교회 목사가 ‘티베트에 선교하자’는 설교를 했다면서 어처구니없어 할 정도로 극성스럽다. 문제는 기독교의 본토인 미국에서이다. 기독교가 한인 집단 내에서 여러 종교들이 각축을 벌일 때 그 기득권 때문에 비교우위를 점하지만 미국 내의 다른 교회들과 경쟁을 벌일 때에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한인들이 미국사회에 정착함에 따라 한인교회도 함께 번영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부터 한인교회에는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다름 아니라 젊은이들이 썰물처럼 교회를 떠나고 있다. 이것은 일부 한인교회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학계에서 “소리 없는 탈출(Silent Exodus)”이라고 명명될 정도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한인2세들은 고등학교 졸업을 전후하여 70%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 90%가 한인교회를 떠난다고 한다. 이 변화는 미국에서 자라고 교육 받아 미국적 사고방식을 가진 영어에 능통한 이민 1.5세와 2세의 등장과 관계 있다. 이들의 등장과 더불어 지금까지 한인교회의 장점이었던 사회적 기능이 더 이상 장점이 아닌 상황이 초래되었다. 영어
재미 한인 중 기독교인 비율이 높은 이유는 애초에 기독교를 믿던 사람들이 이민을 간 비율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에 이민 간 후 현지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그 비율이 40%에 육박한다고 하니 그 중 불자가 개종한 경우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주변에서 종종 그런 사례를 보는데, 내가 알고 있는 노보살님도 이민 간 자식들을 따라갔다가 교회를 다녔다고 한다. 처음에는 며느리가 교회 가자고 해도 거절했지만 운전을 해서 절에 나갈 수도 없고, 일요일마저 혼자 빈집을 지키기도 무료하고, 또 며느리와 사이가 틀어질까 걱정도 되어 결국 교회를 다니기로 결심하셨다. ‘교회를 나가더라도 마음속으로 부처님께 기도하면 되지’라고 생각을 고쳐먹고 몸은 교회에 나가지만 마음은 부처님 모시면서 그렇게
얼마 전 한 대중가수의 학력을 두고 인터넷 논쟁이 시끄러웠다. 그 사건을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에 대하여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시에 지난번 대만 여행 때 들었던 이야기가 두고두고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자제공덕회 병원을 돌아보고 나오는 참이었다. 대만 사정에 밝은 한 비구니 스님이 내 뒤에서 지나가는 말처럼 말했다. 증엄 스님의 성공 뒤에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화교가 있다고. 한국 사회는 빠르게 다민족, 다문화사회로 변하고 있다. 1960년대에 본격화된 한인들의 해외 이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역이민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다른 한편, 중국,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국제결혼이나 산업훈련생 등으로 한국으로 유입되는 인구도 꾸준히 증가하고
지난 번 대만여행에서 세계적인 구호단체 자재공덕회의 증엄 스님을 친견했다. 그 동안 몇 차례에 걸쳐 정사를 방문했지만 증엄 스님을 뵙지 못했는데 이번에 뜻밖에 뵐 수 있었던 것은 모시고 갔던 명성 비구니회장 스님과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었다. 30년 전 명성스님께서 그곳을 방문하여 하룻밤 머문 일이 있었는데 올해 공승제에 한국 비구니 대표로서 초청되어 어렵게 오셨다는 말에 시자 스님이 두 분의 만남을 주선해주었다. 바로 이런 것이 큰스님을 모시면 얻는 덤이다. 대만을 방문할 때마다 대만불교의 저력에 감탄하지만, 그 지도자를 뵌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시자 스님의 안내에 따라 접견실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의 여성 수행자가 나타났다. 함께 갔던 스님들이 “학과 같다
최근 들어 외국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스님들이 더러 찾아온다. 반가워서 이것저것 정보도 알려주고 여러 가지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또 대학에서 공부하는 후배나 제자스님들에게는 졸업 후 외국에 나가서 더 공부해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뚜렷한 목적 없이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찾아오는 스님들도 있다. 그럴 땐 먼저 왜 영어를 배우려는지 이유를 물어본다. 보통 영어를 배우면 좋을 것 같아서라든가, 절에 찾아온 외국인들과 대화하고 싶어서라는 대답을 듣게 되는데, 그러면 다시 묻는다. 무슨 대화를 나누고 싶으냐고. 영어를 배우겠다는 스님들이 많아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내가 학위 과정을 이수할 때만해도 절 밖에서 공부하는 것을 승려의 본분사를 벗어난 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 절
지난 8월말 대만불교연합회에서 주최한 공승제에 참가하기 위해 대만을 방문했다. 전국비구니회 회장스님을 수행하는 것이 내 소임이었고 이전에도 몇 차례 대만을 방문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공승제를 제외한 다른 일정에 대해서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대만을 방문할 때마다 불자님들의 신심에 감동하곤 하는데 이번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승제 행사를 거행하는 체육관 입구부터 일렬로 도열해서 스님들을 마중하는 불자들로부터 그 틈 사이로 정성껏 마련한 공양물들을 드리고자 애를 쓰는 불자들에 이르기까지 대단한 광경을 목격하면서 이것이 바로 대만불교를 이끄는 힘이 아닌가 생각했다. 불자들이 이처럼 스님들을 외호하니까 스님들이 수행과 전법 외에 다른 곳에 한 눈을 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nbs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논할 때 흔히 숭산 스님의 성공을 이야기한다. 근대 이래 서양의 침투를 받은 우리들에게, 더구나 서양종교인 기독교에 밀려 한국 사회에서조차 열세에 처한 불교의 입장에서, 푸른 눈의 백인에게 불교를 가르치는 숭산 스님의 모습은 자랑스럽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왜 꼭 서양 사람들, 그것도 백인만을 포교해야 성공인가? 그 밖에 흑인이나 라틴 아메리카계, 나아가 서아시아나 남아시아 사람들은? 김선종 씨 사건에서 보았듯이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몽고와 아프가니스탄까지 진출하는 한국 기독교의 극성스런 해외선교도 문제지만 미국이나 유럽만 초점을 맞추는 한국불교도 문제이다. 시야를 넓혀보면, 불교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백인뿐 아니라 흑인이나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 중에
불교경전의 영역은 일본, 대만, 스리랑카 등 아시아 불교국가들도 추진하는 중요한 사업이다. 일본은 일찌감치 그 중요성에 눈을 떠 D.T.스즈키를 비롯한 걸출한 번역가들을 배출해냈으며 신수대장경의 영역을 위한 재단까지 설립하여 뉴마타 재단에서 『정법안장』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40여권의 책을 번역하였다. 티베트불교의 경우, 다수의 티베트 불서가 영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작년 봄 달라이라마가 직접 주관하여 티베트대장경 영역 사업에 착수했다. 서양에서 활동하는 승려뿐 아니라 티베트불교를 전공한 서양학자가 총동원되고 달라이라마가 속한 겔룩파를 비롯한 모든 종파가 동참하고 있을 정도로 총력을 다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불교전서와 원효전서의 영역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늦었지만 환영할만한 일이다.
바야흐로 휴가철이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산으로, 바다로, 그리고 외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미국사람들도 여름에 많이 여행을 떠난다. 미국에서 감탄했던 것은 여행을 떠날 때 미국사람들이 책을 꼭 챙겨간다는 점이었다. 작년 이 때쯤 오바마 대통령이 휴가 중 읽으려고 준비한 책이 다섯 권이나 된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는데, 오바마 대통령만 아니라 대부분의 미국사람들은 평소에 읽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못 읽은 책들을 휴가 때 읽는다. 미국문화에서 책의 중요성에 대하여 알게 된 또 다른 계기가 있다. 미국사람들과 대화하려면 시사도 알아야 했기 때문에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텔레비전 뉴스를 많이 보았다. 그런데 뉴스 진행 중 전문가와 인터뷰를 할 때, 그 사람을 소개하는 데 빠지지 않는 항목이 출
한국불교에 관한 한, 두 부류의 미국사람이 있다. 숭산 스님을 안다는 사람과 “한국에도 불교가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 이렇게 딱 두 부류로 나뉜다. 대부분의 미국 젊은이들은 한국을 기독교 국가로 알고 있다. 그들이 아는 한국인들이, 코리언 아메리칸이든 유학생이든, 모두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불교의 역사가 일본보다 오래되고 현재 인구의 20% 이상이 불자라고 알려주면 깜짝 놀란다. 한편, 중년 이상의 백인 불자들 중 젊은 시절 한번쯤 숭산 스님 수행처를 기웃거렸던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들 중 아직까지 한국불교 그룹에서 수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것이 세계 속의 한국불교의 현주소이다. 한국불교는 백인 주류사회에서도 한인사회에서도 소수그룹에 지나지 않는다.
며칠 전 학인스님 한 사람이 찾아왔다. 지난 4년 동안 강원 졸업하기만 학수고대했는데 막상 졸업할 때가 되니 졸업 후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해 조언을 구하러왔다. 돌아와 절 살림을 맡아주길 바라는 은사스님의 간청을 외면하기도 어렵고, 그러자니 원래 계획했던 학교 진학이 어려울 것 같고, 이래저래 마음을 정하지 못해 답답해했다. 처음 출가할 땐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었겠지만 그들이 부딪쳐야 할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 한평생 사판승으로 매어 사는 것도 내키지 않고, 자유롭게 내 길을 가고 싶지만 왠지 불안하고. 두 가지가 잘 맞아떨어져 안정된 환경에서 수행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종단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수행자들에 대한 배려가 적지 않다. 수많은 선원에서 납자들을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