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는 스님들만 지켜야 할 것이 아니라, 오계나 보살계를 받은 재가 신도도 함께 지켜야 할 의무사항에 속한다. 그러나 스님들은 사찰에 거주하기 때문에 비교적 계를 지키기가 쉬운 환경에 놓여있지만, 재가신도는 여러 정황들이 많아 계를 간직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그 가운데서 술을 마시지 말라는 불음주계는 우리나라와 같이 술을 권하는 사회 풍토에서는 지켜내기가 무척 어렵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계는 평생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사업하는 거사 신도의 입장에서는 계를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두고 갈등 하기도 한다. 계를 받으면 지켜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예외가 허락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술을 전혀 입에 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비구가 지병을 가지고 출가한 뒤 시간이 지나면서 고통을 호소하므로
승가가 청정해야 하는 까닭은 화합을 위해서다. 승가가 화합하기 때문에 중중존(衆中尊)으로 예배 공양된다. 그렇다면 승가는 항상 허물이 없는 완벽한 존재인가? 승가에는 깨달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계를 지키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심지어 세속인 보다 못한 사람마저 있다. 스님 개개인은 스스로 허물을 없애지 못하지만 승가를 통해서 언제나 청정을 회복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승가는 청정함을 유지하고 허물이 있는 스님은 갈마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승가라고 부를 수 있는 최소 단위는 비구 4명 이상이라야 한다. 그러므로 승가에 귀의한다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최소 단위 이상의 승단을 그 대상으로 한다. 이러한 승가를 청정하게 유지하는 방법이 포살이다. 포살은 안거 때 보름
율장에서 말썽을 가장 많이 일으키고 급기야 부처님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계율을 제정하게 한 무리가 곧 육군비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스님들이다. 이들 가운데 각종 경전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비구가 가류타이라는 스님이다. 이런 까닭에 예로부터 승단에 문제를 잘 일으키는 사람을 일러 가류타이와 같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류타이는 비록 문제아였지만 부처님께서 꾸중하시고 경계하신 일에 대해서는 다시는 범하지 않았고, 또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도 숨김없이 솔직하게 고백하는 성격을 가졌다. 명의표석(名義表釋)에 의하면 어떤 바라문 처녀가 가류타이를 사모하여 그를 유혹하였으나 스님은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바라문 처녀는 자신을 옷을 찢고 거짓으로 자신의 부모에게 가류타이로부터 능욕을 당했다
승가를 삼보 중 하나로 귀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부처님께서 승단을 만드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신 것은 청정과 화합이었다. 청정과 화합이 있는 승단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무리이기 때문에 중생의 귀의처가 되는 것이다. 승가도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기에 언제나 허물과 분쟁이 있지만 포살을 통하여 청정을 회복하는 법이 있기 때문에 승가 자체는 청정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청정성을 전제로 하여 승가의 화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승가라는 고유의 단어보다 종단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승가는 동일한 계율을 지키는 승단을 일컫는 것이고 종단은 교리적 차이와 주장하는 종지종풍에 따라 집단을 이루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다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만약 종지나 종풍을 위주로 한다면
몇 년 전 대만에서 인도로부터 부처님의 치아사리를 양도받아 매우 성대하게 환영식을 치른바가 있다. 그때 일부 정치가를 비롯해 사회 유력인사들도 참석하여 행사 단상 위에 고승들과 나란히 자리를 하고 앉았고, 많은 스님들이 단 아래에서 일반 신도의 앞줄에 자리 잡고 앉았다.이 때 대만의 한 방송에서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승보를 단의 아래에 앉게 하고 세속인들을 단 위에 앉힌 것은 삼보에 대한 모독이라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것은 우리나라의 사찰행사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보는 것으로 그 누구도 문제를 삼고 있지 않다. 만약 부처님이 계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부처님께서 불법은 평등하다고 하셨지만 교단의 질서를 위해서 좌차를 인정하셨다. 교단의 차례는 비구, 비구니, 식차마나니, 사미, 사미니의 순이고 신도는 우
불교를 실천하는 지침으로 흔히 육바라밀을 들게 된다. 불자들은 육바라밀에 의지하여 보살도를 닦아 나아가므로 육바라밀은 제2의 계와 같다. 육바라밀 가운데 첫째가 보시인데 보시는 불도를 닦는 기본인 바탕을 잘 다지는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공덕도 보시하는데서 비롯되고 복과 덕도 보시가 없으면 증장되지 않는다. 불자들이 보시를 할 때 사찰에서 법회 때나 기도할 때 내는 것과 불사를 위해 내는 것이 있다. 이 가운데 불사의 명목으로 내는 보시금은 예로부터 그 쓰임이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예컨대 기와를 올릴 시주금으로 범종을 만든다든가, 요사채를 지어야 하는 돈으로 법당을 짓는 등의 일은 일체 허용되지 않았다. 어차피 절에 사용될 돈인데 용처를 굳이 따질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목적을 가지고
우리나라에서 안거는 겨울과 여름 두 번을 지내고 있다. 원래 안거는 이교도의 제도였으나 거사들의 간청에 의해 비가 많이 올 때 안거를 지내도록 부처님께서 허락하셨다. 안거의 제도가 생긴 뒤부터 스님의 나이는 여름안거를 지낸 것을 기준으로 삼도록 하였고, 안거때에 맞추어 포살을 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안거가 아닌 때에는 스님들이 흩어져 유행을 하며 수행을 하였기 때문에 대중이 모여 포살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안거때에 정진을 하고 해제를 하면 자유롭게 지내도록 되어있는데, 원래 안거의 목적은 비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안거때에도 걸식을 위해 밖에 다녔으며 불교의 포교를 위하거나 부모를 위한 외출은 허락되었다. 이때 짧은 것은 7일 밤
지금처럼 많은 종교가 존재한 적은 일찍이 없었다. 우리나라의 종교를 보면 그야말로 종교백화점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종교지도자들은 종교간의 평화를 위해 여러 가지로 힘써 왔는데, 특히 불교의 타종교에 대한 관용은 주목받을 만하다. 그런데 일부 스님들 가운데 타종교에 대한 관용과 이해가 넘쳐서 불교와 타종교의 교리적인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모호한 상태로 설법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예컨대 진리는 하나이므로 궁극에는 불교와 기독교가 도달하려는 점이 같다던가,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서이지 모든 종교의 내용은 같으며, 불성이나 신성이나 같다라고 하는 것 등이다. 율장에 의하면 부처님께서는 외도의 마음을 품거나, 외도를 찬양하고, 외도를 좋아하면서 승단에 머무는 비구를 적주비구라고 하시고 함께 거주하
흔히 출가한 스님을 통칭하여 부를 때 화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스님이라고 해서 무조건 화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화상은 처음 출가하는 사람이 자신을 돌봐주고 가르쳐 줄 수 있는 스님에 대해 부르는 명칭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은사라고 부르지만 은사는 유교적인 관념이 섞여있는 단어이므로 본래 명칭인 화상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조계종에서는 스님 된지 15년가량 이면 누구나 은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만, 부처님이 정하신 법에 의하면 제자를 받고 화상이 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을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 우선 은사, 즉 화상이 되려면 제자보다 승랍이 10년 앞서야 하고, 5년간 곁에 두며 계율을 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이때 화상자신이 제자를 가르칠 수 없으면 율에 정통한 스님께 위탁하여 계율을 가르쳐야 한
언제부터인가 보살계를 설하는 자리에 계사나 증사로 추대되는 스님들이 번쩍이는 금색의 가사를 입고 의식을 진행하고 있다. 금색의 가사는 흔히 금란가사를 일컫는 것으로 금색비단 바탕에 섬세하고 화려한 문양이 있는 가사이다. 이런 가사는 봉건시대에 황제나 국왕이 신표의 예물이나 혹은 왕사와 같은 일종의 벼슬과 함께 내리던 권위의 옷이었다. 지금 계를 주는 스님들이 입는 금색가사는 이러한 금란가사의 모방이며 따라서 은근히 권위적인 것을 나타내고 있다. 원래 계를 줄 때 입는 가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착용하던 가사를 입는 것이며 따라서 금색의 가사는 부처님이 허락하신 옷은 아니다. 통도사에는 부처님의 가사라고 전해지는 금색가사가 소장되어 있지만, 고고학적으로 증명된 것이 아니며, 다만 진실의 여부를
가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좇아 출가하여 수행하는 사람임을 나타내는 의상이다. 부처님이 법을 펼 초기에는 다른 출가이교도들과 같이 낡은 옷으로 몸을 가렸지만, 교단이 커지면서 부처님께서는 질서있게 만들어진 밭의 이랑을 보시고 그것을 모방하여 비구의 옷을 만들라고 아난에게 분부하셨다. 이렇게 생겨난 가사는 다른 유행사문과 차별되어 식별하기가 용이하였고 나아가 비구의 옷을 세 가지로 제한하는 법도 생겼다. 불교가 여러 나라로 전파되자 남방같은 열대지방의 비구들은 옛 제도대로 가사를 입었지만 북방의 추운지방에는 기후에 따라 가사의 모습이 바뀌게 되었다. 우리나라 조계종의 가사는 정화이래 색이나 조수가 조금씩 다른 가사를 각자 만들어 입어왔는데, 근래에 종법으로 품계에 따라 가사의 조수를 정하여 입는 제도를
해마다 각 사찰에서는 보살계 법회를 개최한다. 보살계는 이제 정기적인 행사가 되어 경쟁적으로 치루어 지고 있으며 따라서 절에 조금이라도 다니는 신도라면 한 두 번의 보살계를 받은 경험이 있고, 그때마다 받은 보살계첩이 집안의 장롱 속에 보관되어 있을 것이다. 보살계를 앉아서 받고 서서 파계하더라도 공덕이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이것은 큰 오류이다. 사실 보살계는 스님들이 받는 비구계보다 내용적으로는 더 어렵고, 그 지키지 않는 과보도 크다. 보살계를 받음으로서 과거의 업장이 없애진다던가, 혹은 보살계를 받는 것만으로도 공덕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보살계를 받는 것은 깊이 업장을 참회하고 그 업장을 녹이기 위한 공덕의 실천을 해나가는 출발선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보살계를 받는 것은 불자다운 삶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종교가운데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종교가 불교이다. 이 가운데에는 선대부터 불교신자이거나, 스스로 불교를 자신의 종교로 선택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막연히 불교의 분위기가 좋거나, 부모가 절에 다니므로 자신도 불교도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불교신자가 되는 것은 삼귀의를 받은 후 부터이다. 비록 절에 다닌 지 몇 십년이 되었다하더라도 삼귀의를 받지 않은 사람은 아직 정식 신도가 아닌 것이다. 이 전통은 부처님이 계실 때부터 모든 재가신도에게 적용되었던 것이다. 삼귀의를 맹세하고 처음 재가 신자가 되었던 사람은 ‘야사’라는 스님의 부모였다. 야사는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으나 세속생활에 환멸을 느껴 출가하였는데, 그의 부모가 아들을 찾으려 왔다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