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나 중국의 사찰음식에서 오신채를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오신채를 섭취하면 화를 잘 내게 되고 음욕이 많아지기 때문에 먹지 않는다고 한다. 오신채가 그런 약리작용이 있다하더라도 개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먹지 않아서 화나 음욕이 적어진다고 볼 수 없다. 재가인 가운데 오신채를 늘 먹지만 화를 잘 내지 않고 불사음계를 잘 지키는 불자도 있고, 오신채를 안 먹지만 음욕이 강하고 화를 잘 내는 사람도 있어, 화나 음욕은 마음에서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율장에서는 오신채 가운데에서 마늘 먹는 것을 금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마늘의 강정효과나 진심(嗔心, 화내는 마음) 때문이 아니다. 비구의 경우 마늘을 먹고 온 비구가 냄새 날 것을 염려하여 부처님 가까이 앉지 못한 것 때문에 마늘을 먹지 않도록
부처님께서는 출가를 위해 온 가족을 뒤로하고 깊은 밤 궁궐을 빠져 나오셨다. 오직 한 사람의 마부만이 태자였던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다. 이 마부가 곧 천타(闡陀), 혹은 차익(車匿), 팔리어로 찬나(Channa)라고 부르던 사람인데 그는 부처님께서 성도 하신 후 고향에 돌아오셨을 때 출가하였다. 천타는 출가 후 무리를 지어서 여러 가지 비법을 일삼던 육군비구 가운데 한사람이 되었다. 그는 악한 성품으로 욕설을 잘하며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을 충고하는 스님들에게 “너는 나를 가르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너를 가르칠 수 있다. 어떠한 까닭인가? 부처님은 우리 집안의 부처님이시기 때문이다. 나와 근보(부처님이 타시던 말)가 부처님을 입산시켜 도를 닦게 하였다. 모든 장
불교가 지금까지 전승된 가장 큰 공적은 가섭존자가 주도한 결집에 있다. 결집이 없었다면 삼장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고 불교도 융성하지 못했을 것이다.가섭존자가 결집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계율 때문이었다. 부처님께서 입멸하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 어리석고 좋지 못하며 늦게 출가한 발난타(스밧다)비구가 말하기를 “저 장로(부처님)가 항상 이것을 하라, 이것을 하지마라 잔소리하였는데 (열반에 드셨으니) 이제 자유를 얻었으니 즐겁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그치자” 라고 하며 기뻐하였다. 가섭존자가 이 말을 홀로 듣고 승가의 존속과 질서를 위해 부처님의 유훈이 사라지기 전에 율과 경을 모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이다. 가섭존자는 오백 명의 아라한을 모으고 먼저 계율을 잘 기억하고 있는 우
요즘 조그만 절의 주지를 맡거나 비중 있는 자리의 소임에 있는 스님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큰스님으로 불린다. 이것은 신도가 자신이 다니는 절의 주지 스님을 존중하는 뜻에서 이렇게 부르기도 하고, 공식석상에서도 대접하는 의미로 높여 불러주기 때문이다.그래서인지 지금보다 큰스님이라는 명칭이 흔했던 시절도 없는 것 같다. 옛 스님들의 호칭은 문헌이나 부도 등을 통해 알 수 있는데 그나마 역사에 기록된 분들은 문자 그대로 큰스님들이었을 것이다. 그 호칭은 대개 대선사, 대종사, 대율사, 대강백. 대화상이 아니면 대(大)자가 빠진 선사, 종사… 등으로 되어있다.이런 와중에 OO비구 이런 호칭을 보면 반갑기 그지없다. 스님에게 가장 합당한 호칭은 바로 이 비구라는 말이다. 우리가 스님이라는 말 대신 흔히 사용하는 화
율장은 부처님의 옛 자취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문헌이다. 율장에는 승가의 생활에 필요한 규정들이 있는데 불교가 북방에 유입되면서 율장과 위배되는 여러 가지 형태의 생활들이 형성되었다. 이것은 율장이 인도의 기후나 풍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북방에서는 그대로 수용하기가 어려움이 있었던 까닭이다. 부처님이 계실 당시에도 인도 변방지역에 있던 스님들이 다른 기후나 풍속 때문에 지내기가 힘들어 지자 부처님은 그 지방에 알맞도록 제도를 고치도록 허락하셨는데 이것을 일러 방면비니(方面毘尼)혹은 수방비니(隨方毘尼)라고 한다. 북방에서는 인도나 남방과는 달리 걸식에서부터 삼의를 걸쳐야 하는 것과 땅을 파지 말아야 하는 것 등에 이르기까지 현실적으로 도저히 율장의 원칙대로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요즘 계율에 대한 사부대중의 관심이 어느 때 보다 높다. 계율은 승가 내에서도 율사만 지켜야하는 것으로 인식될 만큼 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형편이다. 그래서인지 계율에 관한 일은 자신과 무관하다는 태도가 만연해 있다. 승가가 청정하기를 바라는 재가불자들이 계율에 관심을 두는 것은 어쩌면 승가의 이러한 상황과도 관련 있다고 할 수 있다. 몇 해 전 동화사에서 재가불자들에게 율장을 공개하는 문제에 대해 언급이 있었다. 재가불자도 율장을 읽어야 한다는 의견은 현재 남방이나 대만 등지에서 율장을 공개하고 있고, 신도도 율장을 알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남방은 확인하지 않아 모르겠지만 대만은 아직까지도 율장을 인쇄할 때 출가자 이외는 읽지 말라고 밝히는 경우가 종종 있어, 재가자에게 율장을 공개하는 것에 그리
우리나라 역사공부를 제대로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려 때 팔관회나 연등회 같은 불교의식이 성행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정작 팔관회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절에 오래 다닌 불자도 선뜻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늘 계율생활을 하기 힘든 일반 사람들이 짧은 시간이나마 청정하게 보내도록 마련된 계율법회가 바로 팔관회이다. 팔관회에서 주는 계율은 여덟 가지 항목으로 이것을 팔계, 혹은 팔관재계라 한다. 팔관재계(八關齋戒)에서 관(關)은 단속한다는 의미가 있고, 재(齋)는 닦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 여덟 가지 계율(팔계)을 잘 지니고 닦는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팔계는 남의 목숨을 자비롭게 여기라, 나의 것이 아닌 것을 가지려 하지 말라, 음란한 행위를 하지 말라, 거짓을 말하지 말라, 술이나 마약류
오랫동안 눕지 않고 앉아서 수행(장좌불와)하거나, 말하지 않는 수행(묵언)을 하는 스님들에 대해 흔히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일반인이 하기 힘든 수행을 하기에 존경과 찬사를 보내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여러 수행 가운데에서 묵언은 쉽지 않은 수행으로 통한다. 몇 년, 혹은 십년을 넘게 묵언 정진하시는 스님들이 도처에 있는 것을 보면, 한국 불교에서 묵언은 중요한 수행방법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여럿이 함께 수행할 때 묵언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어느 때 비구의 한 무리들이 묵언을 하며 안거를 보내기로 결정하였는데 부처님께서는 이를 꾸짖으신 일이 있다. 부처님께서 이들의 묵언을 허락하지 않으신 까닭은 안거 중에 묵언을 하게 되면 포살설계에 참여하여 참회하거나 갈마 할
계는 스님들만 지켜야 할 것이 아니라, 오계나 보살계를 받은 재가 신도도 함께 지켜야 할 의무사항에 속한다. 그러나 스님들은 사찰에 거주하기 때문에 비교적 계를 지키기가 쉬운 환경에 놓여있지만, 재가신도는 여러 정황들이 많아 계를 간직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그 가운데서 술을 마시지 말라는 불음주계는 우리나라와 같이 술을 권하는 사회 풍토에서는 지켜내기가 무척 어렵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계는 평생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사업하는 거사 신도의 입장에서는 계를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두고 갈등 하기도 한다. 계를 받으면 지켜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예외가 허락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술을 전혀 입에 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비구가 지병을 가지고 출가한 뒤 시간이 지나면서 고통을 호소하므로
승가가 청정해야 하는 까닭은 화합을 위해서다. 승가가 화합하기 때문에 중중존(衆中尊)으로 예배 공양된다. 그렇다면 승가는 항상 허물이 없는 완벽한 존재인가? 승가에는 깨달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계를 지키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심지어 세속인 보다 못한 사람마저 있다. 스님 개개인은 스스로 허물을 없애지 못하지만 승가를 통해서 언제나 청정을 회복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승가는 청정함을 유지하고 허물이 있는 스님은 갈마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승가라고 부를 수 있는 최소 단위는 비구 4명 이상이라야 한다. 그러므로 승가에 귀의한다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최소 단위 이상의 승단을 그 대상으로 한다. 이러한 승가를 청정하게 유지하는 방법이 포살이다. 포살은 안거 때 보름
율장에서 말썽을 가장 많이 일으키고 급기야 부처님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계율을 제정하게 한 무리가 곧 육군비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스님들이다. 이들 가운데 각종 경전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비구가 가류타이라는 스님이다. 이런 까닭에 예로부터 승단에 문제를 잘 일으키는 사람을 일러 가류타이와 같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류타이는 비록 문제아였지만 부처님께서 꾸중하시고 경계하신 일에 대해서는 다시는 범하지 않았고, 또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도 숨김없이 솔직하게 고백하는 성격을 가졌다. 명의표석(名義表釋)에 의하면 어떤 바라문 처녀가 가류타이를 사모하여 그를 유혹하였으나 스님은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바라문 처녀는 자신을 옷을 찢고 거짓으로 자신의 부모에게 가류타이로부터 능욕을 당했다
승가를 삼보 중 하나로 귀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부처님께서 승단을 만드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신 것은 청정과 화합이었다. 청정과 화합이 있는 승단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무리이기 때문에 중생의 귀의처가 되는 것이다. 승가도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이기에 언제나 허물과 분쟁이 있지만 포살을 통하여 청정을 회복하는 법이 있기 때문에 승가 자체는 청정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청정성을 전제로 하여 승가의 화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승가라는 고유의 단어보다 종단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승가는 동일한 계율을 지키는 승단을 일컫는 것이고 종단은 교리적 차이와 주장하는 종지종풍에 따라 집단을 이루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다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만약 종지나 종풍을 위주로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