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지를 개척하는 사람들의 여적은 험난하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그 길을 ‘희망’이라는 등불에 의지한 채 나아갈 뿐이다. 때론 실패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생각지도 못했던 난관에 부딪혀 좌절하기도 한다. 대다수의 개척자들은 실패와 난관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포기하게 된다. 결코 포기하지 않은 일부 선각자들은 목표했던 결과와 마주하게 되고, 그들에 의해 역사는 바뀌곤 한다. 또한 그 지난한 노력의 여정은 많은 이들의 지남(指南)이 된다. 의례 등 유형문화 연구기반 마련불미전·불교미술학과 기획 추진정부도 실패한 ‘고려불화전’
새벽 여명에 짙은 어둠이 시나브로 엷어질 즈음, 이채순(70·불일심) 보살은 향을 사르고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 앞에 머리를 숙인다. 정성껏 108배를 한 뒤 ‘천수경’ 독경이 시작된다. 밝아오는 아침햇살과 더불어 운율을 담은 다라니 독송소리가 집안 가득 울려 퍼진다. 이어 ‘지장경’ 독송까지 마친 뒤 조용히 좌복에 가부좌를 튼다. 고요 속에서 어제를 참회하고 오늘을 감사한다.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행복과 평안을 기원한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수행은 하루 일과가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이 보살이 일하는 아산 온양전통시장은 또 다
불교사에 있어서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 그의 생애는 남방과 북방을 아우르는 키워드다.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그 어디에도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 앞에는 ‘위대한 번역가’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다. 인도인으로서 팔리어와 산스크리트, 중국어, 중앙아시아어 등 여러 나라의 언어에 능통했던 그는 경율론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경전 380여권을 한문으로 번역했다. 그의 글은 간결하면서도 명쾌했다. ‘금강경’과 ‘법화경’, ‘아미타경’ 등 한역경전들은 현대에도 수많은 나라에서 읽히고 있다. 유마경 무한자비 감동해 개종한국
새침데기 소녀의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처음 마주한 담임선생님은 “하면된다”고 가르치셨다. 자애로운 관심과 무한한 사랑을 받게 되자 평범한 소녀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 되었다. 소녀는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을 자신의 것으로만 욕심내지 않고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어린 나이지만 기죽은 친구의 기를 살려주고 늘 혼자인 친구에게는 절친이 되어 주었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학교생활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길을 안내했다. 친구들은 소녀를 ‘긍정이’, ‘행복이’라고 부르며 졸졸 따라다녔다. 친구지만 어른스럽고 따스한
전북불교신도회장, 전북신행단체협의회장, 금산사 신도회장, 금산사복지원 이사, 화엄불교대학 이사, 전북불교연합대책위 공동대표….청광 김백호 회장이 현재 맡고 있는 직함이다. 가히 전북지역을 대표하는 재가불자라 해도 틀리지 않을듯하다. 직함만이 아니다. 그의 일상은 새벽 5시 향을 사르고 예불을 모시는 것으로 시작된다. 지극히 정성스러운 몸과 마음으로 시작된 하루, 이제 그의 발길은 전북지역 단체 사무실로 향한다. 전북지역 불교계의 현안을 꼼꼼히 살피다보면 해가 진다.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귀가한 그는 ‘천수경’ 독경으로 하
적십자는 1859년 이탈리아 솔페리노전투에서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구호활동을 펼친 장 앙리 뒤낭의 제안으로 결성된 국제적인 봉사·구호단체다. 우리나라는 1905년 고종의 칙령으로 처음 설립돼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는 상해 임시정부 하에서 독립군과 재외동포를 위한 인도적지원을 펼쳤다. 각종 사회활동과 재난구호, 복지사업에도 불구하고 우리 불자들에게 ‘붉은 십자가’가 주는 거리감은 감출 수 없는 불편함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을 선교의 도구로 활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로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그러나 적십자의 설립정신은 그
코흘리개 시절 목탁과 요령은 장난감이었다. 염불과 기도소리는 흥얼거리는 동요에 다름 아니었다. 도량석을 듣고 일어나 염불과 기도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범종소리를 들으면서 석양을 맞이했으니 불교는 그대로 그의 일상이었다. 이제 그 어린아이는 세수 80인 노거사가 되었다. 사찰에서 지냈던 어릴 적 기억들이 희미해지고 뉘엿뉘엿하지만 아버지 스님의 자비롭고 소박한 살림살이는 어제 일처럼 또렷하기만 하다. 단 한 번도 “너는 부처님 밥 먹었으니 불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한 적이 없었던 아버지 스님. 몸과 마음으로 부처님의 삶은 이렇게 지극
수면은 옅은 바람에도 쉬이 일렁이지만 심해(深海)는 태풍이 일어도 고요하다.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혜로움이 심해 같이 깊은 사람은 어떤 외풍에도 강건하며 결코 가볍지 않다. 전국병원불자연합회 김주효(70) 이사장은 깊은 바다와 같은 사람이다. 그가 걸어온 길은 심해를 닮아 고요하고 우직하다. 국립서울병원 불자회를 창립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전국의 병원불자회를 연합회라는 공동체로 완성했고 초대회장으로서 불자 의료인들을 하나로 묶어 신행활동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기독교세가 강한 의료계에
‘청춘(靑春)’의 정의는 무얼까? 철학자 사무엘 울만은 그의 대표작 ‘청춘’에서 이렇게 정의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하며 장미의 용모,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손발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을 가리킨다.” 내셔널, 파나소닉, JVC 등의 창업자로 전 세계 경영인들의 존경의 대상인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좌우명을 ‘청춘’으로 정하고, “청춘이란 마음의 젊음이다. 신념과 희망이 넘치고 용기에 차 매일 새로운 활동을 하는 한 청춘은 그대 곁에 있다”는 글을 남겼다. 서기 399년
건달바는 불설법회에서 불법과 불제자를 수호하는 여덟 신장 중 한 분이다. 특히 건달바는 긴나라와 함께 법석의 아악(雅樂)을 담당한다고 해 ‘음악의 신’으로 불린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음악으로 전하는 건달바는 부처님 당시의 진리와 감동 그리고 치유를 소리그릇에 담아 보시한다. 올해 78세인 가수 송춘희 법사는 이 시대의 건달바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우보만리(牛步萬里). 우직한 소의 걸음이 만리를 간다 했는데 40여년간 불자가수로서 걸어온 외길은 우리 곁에 있는 산의 나무와, 계곡의 물과, 밤을 비추는 별처럼 한결같다. 있
법회의식 때 찬불가를 부르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현재와 같은 의미의 찬불가 역사는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법회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서양음악기법으로 만든 찬불가를 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왜 다른 종교의 음악을 흉내 내느냐”는 비판은 물론 “법당에 오르간 소리가 웬 말이냐”는 호통도 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음악을 통한 포교시대’를 이끈 선각자들의 원력이 있었기에 오늘날 3000여곡에 달하는 찬불가가 탄생하게 됐고, 법회의식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의과학의 급속한 발전으로 100세 장수시대는 이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불과 십수년 전만해도 60세가 넘으면 거창하게 환갑잔치를 하고 현역에서 한 발 물러나 소극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새로운 직업을 찾거나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해 청장년 못지않게 활기차게 사는 노년의 삶이 증가하고 있다. 1980년 구산 스님 친견 후 발심부처님 가르침 전법하겠다 서원30여년 교정·환경·봉사에 헌신한 생각 바꾸니 모든 것이 행복 올해 73세인 권대자(대각화) 포교사가 바로 그런 경우다. 이젠 할머니 소리를 들으면서 손자,
빼꼼빼꼼문구멍이 높아간다.아가 키가큰다.옛 시골집 격자무늬 창에는 창호지 곱게 바른 하얀 문이 있다. 아이들은 그 하얀 문을 그냥 두는 법이 없었다. 굳이 침을 발라 구멍을 내고 그 틈으로 밖을 볼길 좋아했다. 그런 아이를 나무라기보다 문구멍 높이만큼 커진 아이의 성장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버지의 따뜻한 시선.아동문학 발전에 반세기 헌신불교 위한 어린이포교도 앞장한국불교아동문학회 창립 주도경전 윤색해 불교동화 발간도 신현득(82·善行) 아동문학가의 ‘문구멍’이라는 동시다. 시는 사람이 피운 가장 고운 ‘글꽃’이다. 눈으로 읽을 때마
촛불이 슬며시 어둠을 밀어냈다. 향을 사르고 부처님과 마주앉아 조용히 마음을 살폈다. ‘승만경’ 독송이 이어졌다. 108배로 부처님께 정성껏 예를 올렸다. 오체투지와 함께 발원하는 ‘승만보살 10대원’. 간절한 그 목소리에 새벽예불의 장엄함은 더욱 깊어갔다.“세존이시여, 저는 오늘부터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받아 지닌 계를 범할 마음을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이인자(75·만후) 승만경연구회장. 이 회장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자비수관 등 수행모임은 물론 ‘승만경’ 관련 공부모임이 있으면 시간과 장소를 따지지 않고 찾
바야흐로 고령화시대다. 60세를 장수로 여기던 시절은 지나갔다. 정년퇴임으로 사회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오히려 자신의 전공을 살리거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는 시니어불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노년에 완숙미를 더해 더 큰 성과를 내는 것이 오늘날현상만은 아니다. 괴테의 ‘파우스트’, 톨스토이의 ‘부활’ 등 세기의 역작들은 70대 이후에 완성됐으며 한국불교의 위대한 별 일연 스님 또한 삼국유사를 70대 후반에 시작해 84세 입적하기 직전 완성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으